상념 소용돌이 (상준 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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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애착을 거니는 고독 : 집착과 미련(未練) 사이 어디쯤 2상념 소용돌이 (상준 외전) 2023. 2. 7. 13:46
불과 수년 전의 멀쩡하던 열정이 실종되었다는 것. 생각하면 참 신기한 일이다. 우리의 마인드가 예전과는 사뭇 달라져 있다는 것. 자연의 법칙처럼 당연한 건가. 열정에 대한 무기력을 심신의 노화인 양 경험한다는 자체가 서글프게 느껴진다. 쥐뿔 가진 게 없어도 열정만 있으면 "살아있음"은 증명되지만, 아무리 가진 게 많아도 열정이 사라지면 사라진 만큼 가까워지는 것은 죽음. 하물며 가진 것도 없는 데다 열정마저 소진되었다면, 달리 무슨 말이 필요하리. 살아있는지조차 의심스러워지겠지. 열정이란 개념에 도덕의 향취를 첨가하고 싶진 않아. 열정은 그저 열정일 뿐.. 백주 대로에 창피한 줄 모르고 흘레 붙은 암수 똥개들의 열정도 열정은 열정이지. 보잘것없는 비루한 열정이라도 호기롭게 시도할 수 있다면 아마 그때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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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애착을 거니는 고독 : 집착과 미련(未練) 사이 어디쯤 1상념 소용돌이 (상준 외전) 2023. 2. 3. 16:38
우리나라 날씨도 이제, 일조량 부족한 구라파의 몇몇 나라들처럼 되어 버렸어. 해는 떠도 연무, 황사, 미세먼지, 켐트레일 등으로 있으나 마나 하고, 어쩌다 간신히 흐림을 뚫고 나오는 빛줄기마저 오염된 듯해. 파란 하늘은 정말 일 년에 몇 번 손꼽을 정도. 그래서, 짧아진 봄 가을이 예전보다 훨씬 소중해졌다. 화창한 날에 자연의 비타민D를 보충하지 않으면, 그게 부족한 내 몸은 곧 사달이 날 것 같은, 이 경박한 간절함.. "조마조마한 지구의 질주를 타고 멸종되어 가는" 희귀한 평화를 불안하게 누리는 가엾은 우리에게 하늘 속 하늘이 주시는 감질나는 은총일까. 마지막일까 두려운.. "존재의 고마움에 무지한 어린이"의 날에 은은한 추억이 제법 박력 있는 바람을 타고 내려와 나를 향해 내리쬔다. 전(全) 방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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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미완(未完)을 거니는 고독 : 시를 아는 척 2상념 소용돌이 (상준 외전) 2023. 1. 31. 15:36
서양인들의 시론이 반 넘게 차지하는, 지루한 책이 있었습니다. 우리를 가르치던 머리 희끗한 교수가 그 책은 꼭 사야 한댔지요 아마. (그 역시 시인이었습니다.) 그가 사라는 책들은 하나같이 절판되어 구하기 힘들더군요. 하는 수 없어 단골 헌책방으로 달려갔답니다. 암시의 효능 떨어져 바스러지는 초라한 세상 앞에 서서 빽빽이 꽂힌 의기소침을 둘러보았습니다. 시취에 코를 쥐고, 죽은 시선(視線)이 누워 있는 종이 관(棺)을 찾아보았습니다. 다행히 책은 있더군요! 그 책을 소유한 우리는 하나같이 시인이 되었지요. 무슨 이유인지 그 녀석만 책을 사지 못하였습니다. 돈이 없어서였을까. 게을러서였나.. 그 책을 옆구리에 낀 우리 모두가 시인일 때 그놈은 그저 그놈일 뿐이어서 불안하였나 봅니다. 그리도 옆구리가 허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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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욕망을 거니는 고독 : 사랑 속으로 2상념 소용돌이 (상준 외전) 2023. 1. 31. 15:32
좋을 대로 생각하셔. 어쨌든 나의 충실한 도구가 되어줄 수 있단 얘기지? 기꺼이? 날마다 젖어오는 욕구를, 참은 보람이 있네. 검증 안 된 사람과 함부로 하는 건 싫었어. 스스로 위로하며 그럭저럭 버틸망정.. 만져 봐.. 간택되어 영광이옵니다. 부드러워.. 금세 또 활짝 피었구나! 널 즐겁게 해 주려면 이 정돈 돼야겠지? 어머, 벌써? 자기야말로 식을 줄을 모르네? 헬스하듯 매일 단련하나 봐. 이번엔 또 어떤 시나리오가 준비되어 있을까? 한껏 무르익는 날들이 앞으로 늘어갈 텐데, 일일이 이벤트를 연출할 너의 성의가 기대돼. 눈부신 너를 보다가 영감처럼 떠오른 게 있었어. 간단히 브리핑할까? 아님 바로 실전에 돌입할까? 오, 나의 사랑스런 여왕이여..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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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미완(未完)을 거니는 고독 : 시를 아는 척 1상념 소용돌이 (상준 외전) 2023. 1. 29. 19:17
답장드립니다. 우선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제 경우는, 세세한 분석보단 감상 후의 처음 느낌이 소중하답니다. 시인의 의도와는 상관없는, 저만의 감흥이라고나 할까요.. 여기에 초점을 맞추므로, 난해성 여부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아요. 시가 가지는 주관적 모호함은 그 자체로 완성도에 기여하는 장치일 순 있어도, 확고부동한 해석과 진의가 반드시 따라와야 할 필요는 없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처음의 느낌이 애매함일 뿐이라도 그것이 펼쳐 보이는 다양한 상상의 가능성과 역동성은 감동적인 유희를 제공한답니다. 외람되지만, 저 역시 헷갈리는 "제 의도"에 큰 비중을 부여하지 마시고 유희적 상상력으로 시를 가볍게 다루어 주시면, 제가 한결 부담을 덜 것 같네요. 시의 심각성은, 시가 되고픈 절실함만큼이면 충분한 듯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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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욕망을 거니는 고독 : 사랑 속으로 1상념 소용돌이 (상준 외전) 2023. 1. 28. 21:33
새벽 3시 30분 △△△호텔 엘리베이터를 독차지한 순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둘은 자석처럼 밀착하여 밀폐된 공간을 달구기 시작한다. 아아, 따뜻해. 드디어 우리만의 보금자리로구나! 훗, 어린애처럼 좋아하네? 흐흐, 화연이.. 이제 곧 죽여 주겠어. 풉, 뭐야!? 음흉스럽게시리.. 먼저 욕실 쓸게. 뜨거운 물 속에서 피로 좀 풀어야겠어. 어이쿠 어련하시겠어? 그렇게 하세요 마나님. 화연이 거품 욕조에 몸을 담그고 휴식을 취하는 동안 룸에 있던 상준도 신속히 아담이 되어 그녀가 불러주기만을 고대하고 있다. 상준 씨 뭐해? 등 좀 문질러 줘. 벗음으로써 풍만함을 획득한 화연은 더욱 눈부신 여성미의 화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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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결핍을 거니는 고독상념 소용돌이 (상준 외전) 2023. 1. 27. 21:10
추위가 거리를 누비면, 추위를 쫓는 산책에 나선다. 건물과 건물 간의 밀어에, 언 귀를 기울여도 보고.. 논쟁과 결속이 보일러를 가동하는 집들. 불안이 꽁무니에 힘을 주어 미끈한 담장을 자아내었다. 안도(安堵)를 기대하며 담 따라 미끄러지는 시린 얼굴의 주인들. 얽힌 보금자리들의 중심에 후끈 도사린 맛난 다정(多情). 하나 둘 켜지는, 창(窓)끼리의 밀회. 어둠 속 밝음들의 묵계는, 유리에 부딪는 한풍(寒風)의 암호를 즐겁게 외면한다. 배고픈 산책이 코끝을 스치는 매서운 위로에 힘입어 귀환하는 곳. 저물어도 밝을 줄 모르는 깡마른 창문. 당당한 조명의 주시를 피하여, 상기된 절망이 비추이지 않는 저녁으로 캄캄함에 순응하는 후미진 구멍으로 들어간다. 무모하게 열린 틈에서 동사(凍死) 직전의 쓸쓸함이 꾸역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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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욕망을 거니는 고독 : 사랑 뒤에서상념 소용돌이 (상준 외전) 2023. 1. 26. 02:56
10월 하순 만추의 쌀쌀한 저녁. 퇴근 무렵의 휘황한 거리는, 화려한 의상을 입고 취해 비틀거리는 텐프로 아가씨처럼, 사치스러운 욕망으로 달아오른다. 화연이? 지금 어디야? 난 벌써 20분 전에 도착했는데.. 고급 중형 세단. 화연이 운전하고 조수석엔 상준이 앉아 있다. 미니에 가까운 검은색 긴팔 원피스가 그녀의 적당히 날씬한 몸매에 밀착하여 수줍은 볼륨감을 도드라지게 한다. 제법 차가울 밤공기를 의식하여 걸친 부드러운 모피 숄 속에서, 그녀의 아담한 어깨가 - 야릇한 기대감으로 다소 들뜬 주인과는 달리 - 침착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시크한 섹시미를 물씬 풍기는 화장만큼이나 세련되어 보이는 (연한 갈색의) 웨이브 진 머리는, 숄에 얌전히 닿을 정도의 길이로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