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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엉뚱한 연정(戀情)지수 이야기/이상한 사춘기 2023. 2. 4. 23:43
이때, 구세주(?)의 목소리가 달아나려는 정신의 뒷덜미를 붙잡았다. 차 철용! 사랑싸움은 보금자리에서나 하시지. 뭐야?! 노랗게 흘러 내리던 세상이 다시금 윤곽을 갖추어, 안경 너머의 반전된 현실을 보여 주었다. 뜻밖에도 건장한 뺀질이 이경택의 손이 철용의 두꺼운 팔목을 잡고 있는 게 아닌가. 운동장에서 축구하다 들어온 그가 마침 이 광경을 목격하게 된 것이다. 야, 이 무식한 놈아. 미스 나 때릴 때가 어딨다구.. 네 한방이면 오늘 초상 치러야 돼. 너 쇠고랑 차고 싶냐? 뭔 일인진 몰라도 그래, 천하의 차철용이 요런 피래미한테 주먹질했다고 하면, 저기 날아다니는 파리 새끼가 웃겠다. 넌 상관할 일 아냐! 이 손 못 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철용의 주먹은 어느새 반쯤 풀어져 있었다. 비록 덩치는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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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애착을 거니는 고독 : 집착과 미련(未練) 사이 어디쯤 1상념 소용돌이 (상준 외전) 2023. 2. 3. 16:38
우리나라 날씨도 이제, 일조량 부족한 구라파의 몇몇 나라들처럼 되어 버렸어. 해는 떠도 연무, 황사, 미세먼지, 켐트레일 등으로 있으나 마나 하고, 어쩌다 간신히 흐림을 뚫고 나오는 빛줄기마저 오염된 듯해. 파란 하늘은 정말 일 년에 몇 번 손꼽을 정도. 그래서, 짧아진 봄 가을이 예전보다 훨씬 소중해졌다. 화창한 날에 자연의 비타민D를 보충하지 않으면, 그게 부족한 내 몸은 곧 사달이 날 것 같은, 이 경박한 간절함.. "조마조마한 지구의 질주를 타고 멸종되어 가는" 희귀한 평화를 불안하게 누리는 가엾은 우리에게 하늘 속 하늘이 주시는 감질나는 은총일까. 마지막일까 두려운.. "존재의 고마움에 무지한 어린이"의 날에 은은한 추억이 제법 박력 있는 바람을 타고 내려와 나를 향해 내리쬔다. 전(全) 방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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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악화일로 1월광 프로젝트 (판타지) 2023. 2. 2. 03:48
차원간 이동 통로인 웜홀을 확장하여, "자네의 사건이 주관하는" 평행 우주로 자넬 이동시킨 거라네. 웜홀을 통과하는 동안 육신의 파장을 높여 놓았으니, 자넨 투명 인간이 된 셈이야. 들킬 염려는 하지 말고 다가가서 찬찬히 관찰해 보게. 또 다른 상준은, 불과 십몇 분 전 그가 했던 파렴치한 행위를 한 치의 오차 없이 그대로 반복하고 있었다. 그런데, 강제로 입을 맞추려는 대목에서부터 무언가 이상한 상황이 연출되기 시작하였다. 그의 손이, 보다 거칠고 과장된 동작으로 그러나 한편으론 능숙하게, 스커트를 걷어 올리고 스타킹을 말아 내리는 것이었다. 더욱 위화감이 드는 것은 바로 이때부터가 본격적이었다. 강렬히 저항하던 소녀가 어느 순간부터 포기한 듯 경직된 몸을 풀며, 휘두르던 팔을 그의 목에 얌전히 걸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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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미완(未完)을 거니는 고독 : 시를 아는 척 2상념 소용돌이 (상준 외전) 2023. 1. 31. 15:36
서양인들의 시론이 반 넘게 차지하는, 지루한 책이 있었습니다. 우리를 가르치던 머리 희끗한 교수가 그 책은 꼭 사야 한댔지요 아마. (그 역시 시인이었습니다.) 그가 사라는 책들은 하나같이 절판되어 구하기 힘들더군요. 하는 수 없어 단골 헌책방으로 달려갔답니다. 암시의 효능 떨어져 바스러지는 초라한 세상 앞에 서서 빽빽이 꽂힌 의기소침을 둘러보았습니다. 시취에 코를 쥐고, 죽은 시선(視線)이 누워 있는 종이 관(棺)을 찾아보았습니다. 다행히 책은 있더군요! 그 책을 소유한 우리는 하나같이 시인이 되었지요. 무슨 이유인지 그 녀석만 책을 사지 못하였습니다. 돈이 없어서였을까. 게을러서였나.. 그 책을 옆구리에 낀 우리 모두가 시인일 때 그놈은 그저 그놈일 뿐이어서 불안하였나 봅니다. 그리도 옆구리가 허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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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욕망을 거니는 고독 : 사랑 속으로 2상념 소용돌이 (상준 외전) 2023. 1. 31. 15:32
좋을 대로 생각하셔. 어쨌든 나의 충실한 도구가 되어줄 수 있단 얘기지? 기꺼이? 날마다 젖어오는 욕구를, 참은 보람이 있네. 검증 안 된 사람과 함부로 하는 건 싫었어. 스스로 위로하며 그럭저럭 버틸망정.. 만져 봐.. 간택되어 영광이옵니다. 부드러워.. 금세 또 활짝 피었구나! 널 즐겁게 해 주려면 이 정돈 돼야겠지? 어머, 벌써? 자기야말로 식을 줄을 모르네? 헬스하듯 매일 단련하나 봐. 이번엔 또 어떤 시나리오가 준비되어 있을까? 한껏 무르익는 날들이 앞으로 늘어갈 텐데, 일일이 이벤트를 연출할 너의 성의가 기대돼. 눈부신 너를 보다가 영감처럼 떠오른 게 있었어. 간단히 브리핑할까? 아님 바로 실전에 돌입할까? 오, 나의 사랑스런 여왕이여..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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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미완(未完)을 거니는 고독 : 시를 아는 척 1상념 소용돌이 (상준 외전) 2023. 1. 29. 19:17
답장드립니다. 우선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제 경우는, 세세한 분석보단 감상 후의 처음 느낌이 소중하답니다. 시인의 의도와는 상관없는, 저만의 감흥이라고나 할까요.. 여기에 초점을 맞추므로, 난해성 여부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아요. 시가 가지는 주관적 모호함은 그 자체로 완성도에 기여하는 장치일 순 있어도, 확고부동한 해석과 진의가 반드시 따라와야 할 필요는 없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처음의 느낌이 애매함일 뿐이라도 그것이 펼쳐 보이는 다양한 상상의 가능성과 역동성은 감동적인 유희를 제공한답니다. 외람되지만, 저 역시 헷갈리는 "제 의도"에 큰 비중을 부여하지 마시고 유희적 상상력으로 시를 가볍게 다루어 주시면, 제가 한결 부담을 덜 것 같네요. 시의 심각성은, 시가 되고픈 절실함만큼이면 충분한 듯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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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아공간Letters to D.J. (지수 외전)/FRIDAY THE 13TH 2023. 1. 28. 21:36
Another stories of Jisoos in parallel universes : 2. Friday the 13th (원본) (6) 이때 좀비들의 느리고 낮은 그것과 대비되는 고음의 비명이 지수를 다시 한번 두려움과 혼란에 빠뜨렸습니다. 공포와 고통에 삼켜진 여자아이 특유의 찢어지는 소리였습니다. "비명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소리만 듣고 알 수 없는 상황에 의존하여 무시할 수도 있었으나 불길한 예감에 꽂힌 그는 결코 내키지 않는 행동을 또 해야만 했습니다. 억지로 꾸역꾸역 올라와 산마루를 코앞에 두었을 무렵이었습니다. 뒤돌아 무의식적으로 "괴물 새마을"을 응시하였습니다. 그리고 못 볼 것을 보고야 말았습니다. 꿈에서도 보고 싶지 않은 장면이 -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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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욕망을 거니는 고독 : 사랑 속으로 1상념 소용돌이 (상준 외전) 2023. 1. 28. 21:33
새벽 3시 30분 △△△호텔 엘리베이터를 독차지한 순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둘은 자석처럼 밀착하여 밀폐된 공간을 달구기 시작한다. 아아, 따뜻해. 드디어 우리만의 보금자리로구나! 훗, 어린애처럼 좋아하네? 흐흐, 화연이.. 이제 곧 죽여 주겠어. 풉, 뭐야!? 음흉스럽게시리.. 먼저 욕실 쓸게. 뜨거운 물 속에서 피로 좀 풀어야겠어. 어이쿠 어련하시겠어? 그렇게 하세요 마나님. 화연이 거품 욕조에 몸을 담그고 휴식을 취하는 동안 룸에 있던 상준도 신속히 아담이 되어 그녀가 불러주기만을 고대하고 있다. 상준 씨 뭐해? 등 좀 문질러 줘. 벗음으로써 풍만함을 획득한 화연은 더욱 눈부신 여성미의 화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