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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결핍을 거니는 고독상념 소용돌이 (상준 외전) 2023. 1. 27. 21:10
추위가 거리를 누비면, 추위를 쫓는 산책에 나선다. 건물과 건물 간의 밀어에, 언 귀를 기울여도 보고.. 논쟁과 결속이 보일러를 가동하는 집들. 불안이 꽁무니에 힘을 주어 미끈한 담장을 자아내었다. 안도(安堵)를 기대하며 담 따라 미끄러지는 시린 얼굴의 주인들. 얽힌 보금자리들의 중심에 후끈 도사린 맛난 다정(多情). 하나 둘 켜지는, 창(窓)끼리의 밀회. 어둠 속 밝음들의 묵계는, 유리에 부딪는 한풍(寒風)의 암호를 즐겁게 외면한다. 배고픈 산책이 코끝을 스치는 매서운 위로에 힘입어 귀환하는 곳. 저물어도 밝을 줄 모르는 깡마른 창문. 당당한 조명의 주시를 피하여, 상기된 절망이 비추이지 않는 저녁으로 캄캄함에 순응하는 후미진 구멍으로 들어간다. 무모하게 열린 틈에서 동사(凍死) 직전의 쓸쓸함이 꾸역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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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공상만 너마저지수 이야기/이상한 사춘기 2023. 1. 26. 02:58
점심시간이면 밥을 먹자마자 운동장으로 나가 열심히 공을 차던 그가 (덕분에 점심시간만은 그로부터 해방되어 피폐한 몸과 마음을 추스르며 불안한 안식이나마 취할 수 있었는데..) 그날은 밖에 나갈 생각을 않고, 책상 위에 엎드려 쉬고 있는 지수 쪽으로 다가가 옆자리에 앉았다. 미스 나, 자니? 미스 나아.. 자?? 징그럽게 밀착해오는 철용에게 일일이 반응하는 것이 두려워, 지수는 자는 척하고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때 그의 투박한 손이 아랫도리로 들어와 중요 부위에서 멎었다. 흠칫 놀라 몸을 크게 뒤척였으나, 그의 손이 바지를 힘주어 움켜잡는 바람에 급습하는 저릿한 통증과 난감함으로 숨소리조차 굳어 버리는 긴장감이 이내 지수를 사로잡고 말았다. 다행히 더 큰 고통을 줄 의도는 없는지, 철용이의 손가락 서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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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욕망을 거니는 고독 : 사랑 뒤에서상념 소용돌이 (상준 외전) 2023. 1. 26. 02:56
10월 하순 만추의 쌀쌀한 저녁. 퇴근 무렵의 휘황한 거리는, 화려한 의상을 입고 취해 비틀거리는 텐프로 아가씨처럼, 사치스러운 욕망으로 달아오른다. 화연이? 지금 어디야? 난 벌써 20분 전에 도착했는데.. 고급 중형 세단. 화연이 운전하고 조수석엔 상준이 앉아 있다. 미니에 가까운 검은색 긴팔 원피스가 그녀의 적당히 날씬한 몸매에 밀착하여 수줍은 볼륨감을 도드라지게 한다. 제법 차가울 밤공기를 의식하여 걸친 부드러운 모피 숄 속에서, 그녀의 아담한 어깨가 - 야릇한 기대감으로 다소 들뜬 주인과는 달리 - 침착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시크한 섹시미를 물씬 풍기는 화장만큼이나 세련되어 보이는 (연한 갈색의) 웨이브 진 머리는, 숄에 얌전히 닿을 정도의 길이로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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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욕망을 거니는 고독 : 사랑 앞에서상념 소용돌이 (상준 외전) 2023. 1. 24. 21:27
무더운 여름밤 11시경. 지방 대도시의 어느 잘 나가던 나이트 클럽. 미스터 전, 자네 능력 보겠어. 지금부터 10분 줄 테니 인원수대로 쌈박한 가시나 조달하도록! 에이 한부장님도. 귀찮게 여자들은 무슨.. 정 당기시면 단란주점으로 자릴 옮기죠 뭐. 허어, 짜식 보게요. 짬밥 좀 먹었다고 개기는 것 보소요. 길 대리! 룸살롱 여우 같은 것들 뭔 재미야. 이제 반찬 바꿀 때도 됐잖아. 잔말 말고, 미스터 전은 어여 가서 물 좋은 애들로 골라와 봐. 여기 웨이터 놈들은 영 성의가 없어서 말이지. 부장님, 싱싱한 신입사원들 다 놔두고 왜 제가..? 우리 팀 얼굴마담인 자네가 나서야지 그럼 부장인 내가 하리? 그리고 아직 똥오줌 못 가리는 애들한테 시키긴 뭘 시키노. 자네가 이참에 솔선수범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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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평행 우주월광 프로젝트 (판타지) 2023. 1. 24. 02:53
추운 날씨에 아랑곳 않는 짧은 스커트, 그 아래 드러난 가냘픈 다리. 자신을 성숙한 여성과 동일시하는 소녀의 나르시시즘과 그녀의 뒷모습을 능글맞게 주시하는 상준의 색정이 부지불식간에 상호 교통하여, 소녀의 실루엣을 미끈한 "요부의 굴곡"으로 탈바꿈시켰다. 그는 걸음을 더욱 빨리 하여 소녀의 뒤로 바싹 다가갔고, 거친 숨소리가 그녀를 긴장시켰는지 그녀의 발걸음 역시 빨라지기 시작하였다. 헬륨등(燈)의 조명 범위를 완전히 벗어난 어두컴컴한 골목 안에, 소녀와 상준 이외엔 아무도 없었다. 여학생들 사이에 유행하는 타이트한 교복 치마를 그녀 역시 입고 있었는데 보기 안쓰럽게 강조된 히프의 좌우 움직임이 그를 최면의 상태로 몰아가는 것 같았다. 불과 십여 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현상으로, 자신들을 성숙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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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아이를 거니는 고독 : 동물원에서 2상념 소용돌이 (상준 외전) 2023. 1. 20. 23:58
오싹한 반가움이 나를 기다리고 있어서일까. 매번 누군가와 함께였는데 이번만은 혼자 오고 싶었습니다. 잔인한 기억들로 조잡하게 기워진 추억은 처절한 환상입니다. 어수룩하여 현실을 짚어도 절뚝거리는 추억은, 둔갑하여 홀리는 환상들이 너저분하게 널린 그곳에서 차라리, 요망한 그것들에게 잡아먹히고 싶었습니다. 여전히 봄을 점령한 게이샤들은 방정맞은 거짓 눈물을 하얗게 쏟았고, 그 팍팍함에 나도 여전히 목이 말랐습니다. 어린애처럼 아이스콘을 핥으며 독수리 우리를 기웃거립니다. 근처 벤치에 홀로 앉아 싸구려 하드를 핥는 아이가 눈에 뜨입니다. 데자뷰! 보이지 않는 요정의 인도(引導)였을까요. 나는 다가가 어리디어린 외로움 옆에 앉았습니다. 귀여운 아이야 엄마는 어디 가고 네 혼자 이러고 있니? 아저씨 또 왔네?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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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애완인지수 이야기/이상한 사춘기 2023. 1. 20. 00:03
담임의 기대(?)에 충실히 부응하여 6반의 천덕꾸러기에다 애완견이 되어 버린 지수는, 무감각의 범위를 벗어나 "감정 돌연변이"의 지배하에 놓이게 된다. (신경망의 절단 부위에서, 이전과는 판이하게 작용하는 특이한 신경이라도 자라난 걸까.) "구타에 가까운 손찌검이 주특기인" 철용의 장난 때문에 온몸에 멍이 가실 날 없지만, 이마저 습관처럼 되다 보니, 그냥 넘어가는 날은 오히려 불안하고 심지어 아쉽기까지 하였다. 지수를 시기하여 언제나 격앙된 감정을 앞세우고 날이 선 폭행을 노골적으로 가하는 민호와는 또 다르게 실실 쪼개가며 표 안 나도록 지능적으로 고문하고 즐기는, 철용이의 거칠고 투박한 손길에서 그는 이성(理性)에 반(反)하는 매저키즘의 불씨를 -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 획득하고 말았다. 그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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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욕망을 거니는 고독 : 사랑 옆에서 2상념 소용돌이 (상준 외전) 2023. 1. 20. 00:01
새벽 1시경 부근 모텔. 오빠, 보기완 딴판인데? 괜찮았어? 응, 아주 좋았어. 너도 내가 기대했던 대로야. 그럼 우린, 겉과 속이 제대로 맞아떨어지는 커플인 셈인가? 커플? 커플은 지금 있는 하나면 족하지 않아? 이 단어 왠지 진부하게 들린다. 현실을 직시하자는 거냐? 둘 다 싱글이 아니라 해서 커플 되지 말란 법 있어? 현실을 바로 볼 줄 알았다면 오빠를 만나지도 않았겠지..? 현실을 바르게 보는 것과 우리가 만나는 것은 별개 아니었나? 어떻게 살아야 정답인지를 내가 알고 있었다면 이렇게 심심하지는 않았을 거라고. 넌 심심해서 나온 거구나. 난 사람들이 들이대는 정답들이 숨막혀서 나왔어. 웬 방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