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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환희상준 이야기/어느 기쁜 성탄절 2022. 12. 22. 12:38
이그, 홀아비 냄새. 어쩜 방안이 이다지 궁상스러울까. 새삼스럽기는.. 나 원래 좀 지저분한 놈인 거 몰랐어? 에휴 말을 말아야지. 전에 내가 치워 주고 나서, 한 번도 청소 안 했쥬? 안 그래도 내일쯤 하려고 마음먹었었어.. 상준이 주섬주섬 흐트러진 방바닥을 정돈하며 말을 잇는다. 오늘은 제발, 맘에 안 들더라도 팔 걷어붙이지 말고 이불속에 가만히 있어야 돼!? 나중에 상준 씨 와이프 될 사람이 걱정돼요. 청소만 하다가 늙어 죽을까 봐.. 그게 네가 될 확률이 현재로선 가장 큰데? 넌 지금 스스로한테 악담을 하는 거라고. 알기나 해? 장담 마세요. 누구 맘대로!? 그.. 그런가? 이거 괜히 섭섭한데..? 또 금세 풀 죽는 거 봐, 귀여워.. 호호호. 어흠, 됐고! 집에 안 들르고 여기부터 온 거야?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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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기적상준 이야기/어느 기쁜 성탄절 2022. 12. 19. 21:30
열한 시가 다 되어가는데도, 지방의 도시는 싼타를 기다리는 어린아이인 양 쉬이 잠들려 하지 않는다. 큰길 건너, 셔터가 내려진 슈퍼마켓 앞에 구세군이 서 있다. 여군을 포함 모두 세 명인 그들은, 오늘의 모금을 마감하고 들어 갈 채비를 하는 중이었다. `진정, 소원을 들어 주시려는군요..' 바지 주머니에서 닳고 닳은 오천 원 짜리 지폐 한 장을 꺼내,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손아귀에 갇혀 있는 볼썽사나운 그것과, 건너편 어둠 속으로 사라져가는 제복(制服)들을 번갈아 바라보며 상준은 야릇한 감정에 빠져 버렸다. `금박 입힌 바구니보다는 투박한 철제 냄비가 역시 제게 잘 어울리죠? 고맙습니다..' 허겁지겁 그들을 뒤쫓았다. 여기 있습니다. 보잘것없지만 오늘 제 주머니에 남아 있던 전(全) 재산입니다.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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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Inner SpaceLetters to D.J. (지수 외전)/FRIDAY THE 13TH 2022. 12. 18. 18:36
Another stories of Jisoos in parallel universes : 2. Friday the 13th (원본) (1) 누님 그간 잘 지내셨죠? 누님께 보낼 제 첫 번째 영화 사연을 마무리하고 일주일 남짓 지난 것 같습니다. 글 쓰는 작업이 녹록지 않음은 전부터 익히 느껴온 바라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힘들 줄은 몰랐습니다. 평범한 일상을 누리는 일반 사람들과 달리 여러 제약과 악조건의 환경 속에 아늑히(?) 결박되어 있는지라, 이것이 오히려 - 쓰고자 하는 열망에 잠식당한 - 제게 글쓰기의 강한 원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음에도, 그 알량한 유리함을 비웃기라도 하듯 이처럼 빡세게 에너지를 갉아먹을 줄이야.. (체험한 바를 가감 없이 옮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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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주접상준 이야기/어느 기쁜 성탄절 2022. 12. 17. 20:03
나야, 인마! 나와 함께 공장으로 내려온, 학교 동문이자 인턴 동기인 친구 인혁이의 목소리다. 녀석은 어느새 방문 앞에 서 있었다. 야, 문단속이나 좀 철저히 하고 들앉아 있어라. 인마, 어떤 얼빠진 도둑놈이 여길 들어오겠냐. 어쭈 이 놈 봐라? 벌써 한 잔 한 모양일세. 그래, 병나발 좀 불었다. 한데, 넌 여기 웬일이냐. 잔무가 밀려 있어 크리스마스 기분 잡친다고 투덜대더니.. 지금 퇴근하는 길이냐? 보나마나 너 요 모냥으로 청승 떨고 있을 게 눈에 밟혀서, 이 형님이 위로해 줄 겸 들려 봤다. 짜식 생색은.. 어쨌든 고맙다 이렇게 문안 인사까지 와 줘서. 놀고 있네. 야, 애인 출타중이라구 이렇게 처박혀만 있을 거냐? 나가자! 내 한 턱 낼 테니.. 해가 서쪽에서 뜨겠구나. 니가 한 턱을 다 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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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꿈 곁을 거니는 고독 2상념 소용돌이 (상준 외전) 2022. 12. 16. 20:44
(1) 처음으로부터 어딘가에서, "처음의 나로부터 몇 번째"의 나를 걸고, 댄스파티를 뒤엎기 위한 주사위 놀이가 벌여졌다면, "지금의 나"를 깨우는 천둥 번개는, 북극성 너머 널브러진, 주사위 구르는 소리들인가. 핵폭발을 기다리는 증발이 후끈하게 애무를 하여, 당황한 눈은 떠지지 않는다. 베갯속에 기생하는 근질거림이, 지옥에까지 고인 오르가슴을 참지 못하고 걷잡을 수 없이 쏟아 내는 천국들. 공룡처럼 사라질 그것들이 눅눅한 침대 위에서 끈적여도 당황한 눈은 떠지지 않는다. 처음으로부터 어딘가에서, "처음의 나로부터 몇 번째"의 내가 주사위를 흔들어, "숨 쉬며 기다리는 가위"를 떨쳐 버리고, 천둥이 귀띔해 준 확률은 침대를 빠져나와 욕실로 들어간다. 샤워기에서 솟아나는 시원한 내가 잠이 덜 깬 확률을 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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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스 나지수 이야기/이상한 사춘기 2022. 12. 14. 17:16
93년 5월 21일 오후 1시 36분경 덕망 중학교 2학년 6반 교실 안. 5교시 수업을 알리는 벨이 울린 지 7분여가 지났지만, 국어 선생님은 들어오시지 않는다. 창(窓)가(앞에서 두 번째 줄)에 앉은 지수는 왠지 불길한 예감이 자꾸만 들어, 무더울 정도로 화창한 늦봄의 오후인데도 온몸에 소름이 끼치는 오싹함을 쉼 없이 느껴야 했다. 그러나, 다른 아이들은 모두들 천하태평으로, 앞뒤 좌우에 앉은 녀석들과 장난을 치거나 떠들어대는가 하면, 심지어 교실 뒤쪽 공간에서 씨름을 한답시고 쿵쾅거리지를 않나 소란스럽게 책상을 넘어 다니질 않나,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그런가 하면 그 와중에도, 금방 먹은 점심이 왕성하게 소화되는지 창가에 앉은 아이들의 대부분은, 따가운 햇볕 세례에 정신들을 못 차리고 머리를 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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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애착상준 이야기/어느 기쁜 성탄절 2022. 12. 13. 16:37
................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어둠에 묻힌 밤. 주의 부모 앉아서 감사 기도 드릴 때, 아기 잘도 잔다, 아기 잘도 잔다................................ 레코드 가게에서 은은하게 흘러 나오는 캐럴을 조용히 따라 부르며, 상준은 잔뜩 웅크린 자세로 길을 걷고 있었다. 십이 월의 매서운 바람이 황량한 "겨울의 도시"를 포위하면, 그 속의 사람들은 전의를 상실한 병사들처럼 고개를 움츠리고 바쁜 걸음을 재촉하기 마련이다. 크리스마스 이브인 오늘도, 영하의 차가운 공기는 성탄절의 분위기로 술렁이는 도시를 차분히 가라앉혔고 사람들의 들뜬 마음에 닿아 서리를 내리게 하였다. 그렇더라도, 상점들마다 내걸린 각종 장식물과 깜빡이 등 (꼬마전구) 그리고 크리스마스 트리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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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꿈 곁을 거니는 고독 1 : 그리움이 꾸는 꿈상념 소용돌이 (상준 외전) 2022. 12. 12. 14:54
(1) 미래도, 미래 비슷한 것도 없어 답답하지만, 과거로, 다채로운 "과거 비슷한 것"으로 찬란한, 무한한 건망증들이 정겹게 펼쳐놓은 "한정된 시간과 공간"들이 난교하듯 부둥켜안고 삐걱삐걱 울부짖는, 억지로 맞춰 놓아 어색한 하늘과 땅들이 붕괴 직전의 퍼즐 조각처럼 흐릿한 구획 안에 울퉁불퉁 갇힌, 아슬한 무한 차원. 아기자기한 사건들 속에 숨어 있다가 슬플 틈도 주지 않고 투욱 툭 나오는, 나의 생기발랄한 어머니. 투명한 눈물 방울 속 어려진 세상이 방울방울 증식하여 여기저기 뱉어놓는, 맑고 화사한 형제 자매 그리고 희소한 친구들. 나오면 언제나 뒹굴며 노는 내 어린 애증들. 추억을 희롱하는 발가벗은 꾸러기들. 다시 못 올 곳에 가버린 사무치는 정한(情恨)들이 물어물어 어렵게 찾아오는, 마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