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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애착
    상준 이야기/어느 기쁜 성탄절 2022. 12. 13. 16:37

     

     

     

     

     

     

     

     

     

     

     

    ................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어둠에 묻힌 밤.

    주의 부모 앉아서 감사 기도 드릴 때,
    아기 잘도 잔다,

    아기 잘도 잔다................................

     

     

     

     

     


    레코드 가게에서 은은하게 흘러 나오는 캐럴을 조용히 따라 부르며,

    상준은 잔뜩 웅크린 자세로 길을 걷고 있었다.


    십이 월의 매서운 바람이 황량한 "겨울의 도시"를 포위하면, 그 속의 사람들은

    전의를 상실한 병사들처럼 고개를 움츠리고 바쁜 걸음을 재촉하기 마련이다.


    크리스마스 이브인 오늘도, 영하의 차가운 공기는 성탄절의 분위기로 술렁이는 도시를 차분히 가라앉혔고

    사람들의 들뜬 마음에 닿아 서리를 내리게 하였다.


    그렇더라도, 상점들마다 내걸린 각종 장식물과 깜빡이 등 (꼬마전구) 그리고 크리스마스 트리가 있어서

    한겨울 밤 하늘의 별들과 함께 최소한의 성탄절 기분을 발산하기에는 충분하였다.

     

     

     

     


    "징글벨"로 바뀐 캐럴이 등 뒤로 멀어져 갈 때, 닳아빠진 구두 뒤축을 끌고 들어선 곳은

    상준이 자취하고 있는 동네 입구.


    (내년 이 월 졸업을 앞 둔 대학 4학년생 상준은 - 삼 월이 정식 입사 시기인 - 중견 식품 제조 업체에 인턴사원으로 들어와, 석 달 전부터 이곳 홍주에 있는 공장에서 품질 관리 파트의 업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어귀에 작은 사진관이 하나 자리 잡고 있다.
    그곳의 쇼윈도를 볼 때마다, 상준은 황홀함이 묻은 시선과 즐거운 미소를

    진열장 구석에 얌전히 놓여 있는 작은 액자에게로 보내곤 하였다.

     


    버스가 서고 한 무더기의 사람들이 내린다.
    젊은 남녀, 학생, 노인, 그리고 아기 업은 아주머니와, 어린 꼬마의 손을 꼬옥 쥔 중년 남자.
    그의 다른 쪽 손에는 큼직한 케이크 상자가 들려 있다.

     


    살을 에는 바람이 허름한 코트를 유린하고 냉기가 뼛속으로 스며드는 가운데, 오늘도 상준은

    사진관 앞에 서서 꼼짝 않고 그것을 바라보고만 있다.


    가슴이 울렁이고 코끝이 찡해 온다.

     

    굳어오는 몸을 풀기 위해 팔다리를 놀리며 제자리 걸음을 하면서도, 그의 시선은 그곳에서 떨어질 줄을 모른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아이가 나를 보며 웃는다.

    오, 천사의 미소..

     


    보름 전, 연지가 여기서 증명사진을 찍었는데, 워낙 얼굴도 예쁜 데다 사진까지 잘 받아서

    사진관 주인이 그녀의 허락을 받고 크게 뽑아 진열하게 된 것이다.

     


    백옥 같은 피부의 갸름한 얼굴.


    엷은 쌍거풀 아래 촉촉이 말간, 어린 사슴마냥 순진한 눈망울.


    적당히 오똑한 코와, 가지런한 이를 수줍게 감추고 있는 도톰한 입술. (루주를 바르지 않아도 충분히 발그소롬한, 아담한 건강미.)


    가벼운 기초 화장 외엔 화장을 모르는 연지의 얼굴이, 사진관 옆 화장품 전문점 유리창에 붙어 있는 성형 미인의

    화장발 얼굴보다 백배나 더 이뻤다.

     


    공장에서 매일 볼 수 있고 또 그저께 데이트를 가졌건만, 지금 액자 속에서 미소 짓는 그녀의 얼굴을 보니

    새삼스러운 그리움이 소름처럼 돋아 올랐다. 


    상준은 뛰기 시작하였다.

    거세게 돌진하는 바람에 숨이 막히고 양 볼은 이미 얼어 감각이 없어졌지만,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무정한 자식,

    애인은 이렇게 쓸쓸한 성탄 전야를 혼자서 보내야 하는데.. 
    불쌍하지도 않은 모양이지?'

     

     

     

     


    집 앞 구멍가게에 들렀다.

     

     


    아저씨, 소주 한 병만 주세요.

     

     


    아, 청년이구먼. 안주는 뭘로 줄까?

     

     


    안주 필요 없습니다. 그냥 소주만 주십쇼.

     

     

     

     


    코트 주머니에 소주병을 꽂고 골목으로 들어섰다.


    가로등 불빛 아래 보이는, 인적 없는 골목의 을씨년스러움은

    그대로, 허전함에 텅 비어 버린 상준의 마음이었다.

     

     


    바지 뒷주머니를 뒤져 열쇠를 꺼낸다.
    담벼락에 붙어 있는 쪽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다.


    방안에 썰렁한 기운이 감돈다. 연탄불이 꺼진 모양이다.

     

    벽을 더듬어 스위치를 올렸다.
    아침에 이 방을 빠져나올 때와 조금도 다를 바 없는 광경이, 껌벅이는 형광등의 조명을 받으며,

    대강 그린 정물화의 엉성한 구도처럼 펼쳐진다.

     


    구석에 쑤셔 박힌 이불과 베개.


    방 문 옆에 팽개쳐진, 라면 찌끼 묻은 냄비와 찌그러진 주전자.


    책상 위에는 읽다 만 책들과 서류뭉치 등이 흩어져 있고, 그 옆 휴지통은 정원을 초과한 쓰레기들의 무게를 못 이기고

    내용물들을 방바닥에 토하고 있다.


    수 십 권에 달하는 헌 책 나부랭이들은, 옷깃만 스쳐도 우르르 무너질 듯한 위태로움을

    만원(滿員)이 된 낡은 책장 옆구리에 의지한 채 쌓여 있었고,
    엎어져 꿈쩍도 않는 "줄 나간 기타"의 등짝 위론 비듬 같은 먼지가 진작에 얇은 막을 형성하였다.

     


    비좁은 공간의 지겨운 괴괴함은

    벽시계의 째깍거림과 과충전 된 전기면도기의 굉음(?)을 증폭시켜 귀를 멍하게 한다.

     


    상준은 이 모든 것을 버릇처럼 확인한다.
    뭔가 달라진 부분을 찾으려 열심히 눈알을 굴려 보지만, 아무것도 달라진 것은 없다.

     


    '연지가 이 방을 다녀간 지도 벌써 일주일이 다 되어 가는구나.


    깔끔한 그 애가 이 꼴을 보면, 자기 방도 하나 제대로 치우지 않는 게으름뱅이라고 날 욕하겠지?
    아니야, 착한 연지는 얼굴만 귀엽게 찡그리고 말 거야.
    "아이, 지저분해" 한 마디만 짧게 뱉고는, 두 팔 걷어 열심히 쓸고 닦고 하겠지. 늘 그랬던 것처럼..'

     

     


    자리에 털썩 주저앉는다.


    자꾸만 떠오르는 연지의 얼굴.


    맞은편 벽에 그 아이의 예쁜 모습이 투영된다.


    머리를 세차게 흔들어도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

    고운 님의 영상. 

     


    치아로 마개를 따고 냉수 마시듯 소주를 들이켰다.

     

    속이 걷잡을 수 없이 화끈거리고 뒷골이 쑤신다.
    반 남은 소주병을 구석으로 치우고 베개를 집어 든다.
    그것을 가슴에 괴고 엎드린 다음, 얼굴을 방바닥에 처박은 상태로,

    굴러다니는 구겨진 담뱃갑을 더듬어 찾는다.

    그 속에서 건포도처럼 쭈글쭈글해진

    하나 남은 담배를 꺼내, 이(齒) 사이에 끼운다. 

     

     


    똑. 똑. 똑. (누가 창문을 두드린다.)

     

     


    누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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