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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 주접
    상준 이야기/어느 기쁜 성탄절 2022. 12. 17. 20:03

     

     

     

     

     

     

     

     

     

     

     

    나야, 인마!

     

     

     

     

    나와 함께 공장으로 내려온, 학교 동문이자 인턴 동기인 친구 인혁이의 목소리다.

     

    녀석은 어느새 방문 앞에 서 있었다.

     

     

     

     

    야, 문단속이나 좀 철저히 하고 들앉아 있어라.

     

     

     

    인마, 어떤 얼빠진 도둑놈이 여길 들어오겠냐.

     

     

     

    어쭈 이 놈 봐라? 벌써 한 잔 한 모양일세.

     

     

     

    그래, 병나발 좀 불었다.

     

    한데, 넌 여기 웬일이냐. 잔무가 밀려 있어 크리스마스 기분 잡친다고 투덜대더니..

    지금 퇴근하는 길이냐?

     

     

     

    보나마나 너 요 모냥으로 청승 떨고 있을 게 눈에 밟혀서, 이 형님이 위로해 줄 겸 들려 봤다.

     

     

     

    짜식 생색은..

    어쨌든 고맙다 이렇게 문안 인사까지 와 줘서.

     

     

     

    놀고 있네.

     

    야, 애인 출타중이라구 이렇게 처박혀만 있을 거냐?

    나가자! 내 한 턱 낼 테니..

     

     

     

    해가 서쪽에서 뜨겠구나. 니가 한 턱을 다 내고..

     

    인혁이 너야말로 서울에 제수씨 혼자 남겨두고 오늘 같은 날 여기서 이래도 되는 거냐?

     

     

     

    야,

    너 지금 한가한 보직 맡았다고 내 앞에서 자랑하는 거야?

    이 자식이 나 내일도 공장 나가야 하는 거 뻔히 알면서 염장 지르고 앉아 있네?

     

     

     

    어이쿠, 미안하다 미안해.

    이거야 원..

    위로주는 오히려 내가 사야 되겠군.

     

     

     

     

     

     

     

     

     

     

     

    빨갛게 핀 연탄 화덕 위에는 먹음직스러운 곰장어가 지글대고, 그 타는 연기가 구수한 냄새와 함께 바람에 실린다.

     

     

     

     

    한턱낸다는 게 그래, 고작 포장마차냐?

     

     

     

    어, 이거 왜 이래. 이래 봬도 엄연한 쌀롱이라구.

    봐라, 없는 게 없어. 더구나 이렇게 미인이신 마담 아주머니도 계시지 않냐.

     

    안 그렇습니까요?

     

     

     

    총각도 참..

    농담도 잘하네, 호호..

     

     

     

    꿈보다 해몽이 좋구나.

    좋다 좋아. 어차피 얻어먹는 처지에 이것저것 가릴 필요는 없지.

     

     

     

    마음 놓고 허리띠나 풀어둬라.

    모처럼 형님이, 고생하는 아우 몸보신 좀 시켜 줄게.

     

     

     

    자식은 말끝마다 형님 타령이야. 생일도 나보다 늦은 놈이..

     

     

     

    아주머니, 여기 맥주 두 병 추가요. 안주는 알아서 푸짐하니 주시고..

     

     

     

    예, 예.

     

     

     

     

    서너 순배 잔이 돌고 서서히 취기가 오르면서, 친구 녀석의 입놀림은 점점 가속이 붙는다.

    뭐라 지껄이는지 통 알 수 없을 정도로 녀석의 말은 귓전에서만 윙윙거리고, 상준은 몽롱한 상태에서 골뱅이를 씹으며

    건성으로 대꾸한다.

     

    녀석의 알량한 신세 한탄 듣는 일도 이젠 지겹다.

     

     

     

    자아, 한 잔 받아라.

     

     

     

    허연 거품이 컵을 넘쳐 손등으로 흐른다. 연지의 웃는 얼굴이 노란 액체 속에서 어른거린다.

     

    어디선가 교회의 종소리가 아스라이 귓전을 스쳤고, 상준은 불현듯 기도하고 싶어졌다.

    전지전능하신 절대자의 그 전지전능함을 당장 이용하고 싶었다.

     

    상준은 단숨에 잔을 비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만 가봐야겠어. 조만간 내 한 잔 살게.

     

     

     

    야! 겨우 열 시 밖에 안 됐는데 벌써 일어나면 어떡해!

     

     

     

    잠깐 들릴 데가 있어서 그래.

    너 꽤 취한 것 같다. 술도 잘 못하는 놈이 괜한 객기 부리지 말고 이쯤에서 너도 일어나는 게 어때?

     

     

     

    이 새끼, 남 걱정은..

    가고 싶으면 너나 가라. 난, 주인아줌마 하고 한 잔 더 할 테니.

    조심해서 가, 인마! 빙판에 미끄러지지 말고.

     

     

     

    내가 할 소릴 지가 하네.

    하여간 오늘 고마웠다.

     

     

     

     

    인혁이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고 밖으로 나왔다.

     

    찬 공기를 힘껏 들이마시면서 심호흡을 하니 어느 정도 정신이 맑아졌다.

     

    눈이라도 펑펑 쏟아지면 좋으련만, 하늘에는 여전히 별이 총총.

     

    포장마차 안의 온기로 풀렸던 몸이 영하의 강추위에 다시금 굳어왔고, 잔뜩 세운 코트 깃을 양손으로 움켜쥔 채

    상준은 저 아래 큰길 쪽을 향하여 바삐 걸음을 옮겼다.

     

     

     

     

     

     

     

     

     

     

     

    ......................... 기쁘다 구주 오셨네 만백성 맞으라 ...................

     

     

     


    뾰족한 지붕 위에서 알전구들의 반짝임이 거대한 십자가를 형상화하였고, 그 아래 육중한 벽돌 건물의 (커튼이 드리워진) 창문 틈새로는 교인들의 우렁찬 찬송가가 한 줄기 빛에 섞여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들의 사회적 위치를 짐작게 해주는 고급 승용차들이 교회 옆 넓은 주차장에 도열한 가운데, 상준은 정렬한 군대를 사열하는 사령관처럼 위풍당당히 출입문을 통과하였다.

     


    천국의 문이 열리고, 선택받은 자들이 외치는 찬양의 소리가 천지를 진동시켰다.
    그 소리에 위축된 상준은 머리를 한껏 조아려 뒷좌석의 빈자리를 찾느라 두리번거렸고, 마침 찬송이 끝나자 주님의 충실한 종은 연단 위에서 기도를 진행하는 중이었다.

     

     

     


    자, 우리 모두 기도합시다.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상준도 눈을 감고 진심으로 기도하였다.

     

     


    `하느님, 오늘 연지를 만나고 싶습니다. 부탁입니다. 만나게 해 주세요.'

     

     


      ................ 1992번째 성탄절을 맞아,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은 어떤 마음가짐을 지녀야 할 것인가 ................
    지금도 엄동설한에 떨고 있을 우리의 불쌍한 이웃들을 생각하며 그들을 위해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자 하는 우리 자녀들의 마음이야말로, 주님의 뜻하는 바이며 거룩한 .........................................................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주님이 자리 하사, 사랑과 봉사의 정신으로 하나가 되면 그때부터 지상 천국은 시작될 것입니다.

     

     


    아멘!

     

     

    아멘!

     

     

    아멘!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신도들의 분주한 응답 소리..)

     

     


    `하느님, 제 소원은 이것뿐입니다.
    부디, 크신 사랑으로 저를 이해하시어

    우주를 주관하는 능력의 일억 분지 일만이라도 제게 베풀어 주시옵소서.'

     

     


    주여, 믿습니다!!

     


    오, 할렐루우야!!!

     

     


      ........................... 아버지시여, 오늘 이 자리에 나와 주님의 은혜로운 말씀에 귀 기울이는 모든 신도들에게,
    영원히 주님의 나라에서 살 수 있는 축복을 내려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옵나이다.

     

     


     아___ 멘___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본다.


    옆에 앉아 있던 화려한 코트의 중년 부인이 연방 코를 만지며 얼굴을 찡그린다

    상준이 앉은 쪽을 곁눈질해 가면서.      


    연단 위 충실한 종의 눈에 광채가 일렁이면 때를 같이하여,

    금박으로 멋을 낸 바구니는 선택받은 사람들 사이로 한가로운 유영을 시작한다.


    사람 수대로 흰 봉투를 잡아먹어 배가 불룩해진 바구니가,  
    두툼하게 살찐 손들의 호위를 받으며 이쪽으로 다가온다.

     

     


    `하느님 죄송합니다. 미처 준비를 못하였습니다.'

     

     

     


    도망치듯 교회를 뛰쳐나왔다.


    갑자기 지끈지끈 골치가 아프고 속이 메스꺼워졌다. 술을 많이 마신 것 같지도 않은데 왜 이럴까..

     

    뱃속에서 무언가 울컥 치밀어 올라왔다.
    결국 검은색 세단 옆에 웅그리고 앉아 오바이트를 했다.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 위액이 쏟아지고 외제 타이어에 내용물이 튀었다.


    헛구역질을 거푸 하는 그의 귓가에 기름진 음성들의 합창이 들려온다.

     

     

     


    ........................ 기쁘다 구주 오셨네 만백성 맞으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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