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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환희상준 이야기/어느 기쁜 성탄절 2022. 12. 22. 12:38
이그, 홀아비 냄새.
어쩜 방안이 이다지 궁상스러울까.
새삼스럽기는..나 원래 좀 지저분한 놈인 거 몰랐어?
에휴 말을 말아야지.전에 내가 치워 주고 나서, 한 번도 청소 안 했쥬?
안 그래도 내일쯤 하려고 마음먹었었어..
상준이 주섬주섬 흐트러진 방바닥을 정돈하며 말을 잇는다.
오늘은 제발, 맘에 안 들더라도 팔 걷어붙이지 말고이불속에 가만히 있어야 돼!?
나중에 상준 씨 와이프 될 사람이 걱정돼요. 청소만 하다가 늙어 죽을까 봐..
그게 네가 될 확률이 현재로선 가장 큰데?넌 지금 스스로한테 악담을 하는 거라고. 알기나 해?
장담 마세요. 누구 맘대로!?그.. 그런가? 이거 괜히 섭섭한데..?
또 금세 풀 죽는 거 봐, 귀여워.. 호호호.
어흠, 됐고!집에 안 들르고 여기부터 온 거야?
그럼요. 상준 씨랑 처음 맞는 이브인데..
내가 서울에 올라가 버리고 없었으면, 어쩔 뻔했어?
뭘 어쩔 뻔해요? 우리 집이 여기서 코앞인데..
없으면 없나 보다 하고 집에 가면 그만이쥬.
부모님께 전화는 드렸니?
예.
대답은 넙죽넙죽 잘하네.부모님은 너 지금 홍천에 있는 줄 아시겠다? 좀 찔리지 않냐?
그의 보복성(?) 빈정거림이 과하다 느꼈는지, 연지가 정색을 하며 벌떡 일어났다.
나! 그럼 가?
그녀의 사슴 같은 눈망울에 그렁그렁 눈물이 고여, 금방이라도 발그레 익은 볼을 타고 흘러내릴 것 같았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워, 짐짓 당황한 척 따라 일어난 상준이 연지를 와락 껴안아 버렸다. 그리고는,밤이슬이 가시지 않아 촉촉한 머릿결에 뺨을 비비고 입을 맞추었다.
후후, 미안 미안.이렇게 와 줘서 꿈만 같고 감격스러워 목이 멜 지경인데..
가면 안 되지!
고맙다.눈물 나도록 고마워, 연지야..
손가락으로 그녀의 머리칼을 빗어 넘길 때마다, 그 보드라운 감촉은 하나 가득 손안에 넘쳐허전함으로 비어있던 상준의 마음을 채워 주었다.
그의 허리를 감아쥔 연지의 두 팔과 깍지 낀 손에 지그시 힘이 들어감을 느끼며, 상준은 황홀감에 눈을 감아야 했다.
그녀의 깨끗한 이마 위에서 잠시 멈춘 입술을 떼어, 앙증맞은 귓불로 가져갔다.
뜨거운 입김을 귓가에 흘리며 그는 독백하듯 속삭였다.
넌, 용감한 아이야. 적어도 나보다는..내가 무기력함을 술로 달래는 동안 넌 이렇게 찾아와 주었구나.
연지 넌, 정말 순수한 아이야.
그녀가 턱 밑에서 상준의 독백 같은 중얼거림을 끊어 버린다.
자꾸, 아이, 아이 할래요? 아저씨?!아저씨, 아직 술이 덜 깨셔....
가슴속에서 점점 뜨거운 것이 복받쳐 오름을 느낀 그는, 불 같이 타오르기 시작한 입술로 연지의 말을 막았다.그녀의 진분홍 혀끝이 기다렸다는 듯 상준의 갈라진 입술에 정성 들여 윤활유를 바른다.
포옹하는 혀들은 각자 상대의 상냥한 위무(慰撫)에 힘을 얻는다. "서로에게 절실한" 달콤함을 음미하며..
어디선가 종소리가 아스라이 들려오고 있다. 하늘로부터 내려와 둘을 축복하는 종소리일까.연지..
널 여러 번 안았음에도, 매번 처음처럼 느낌이 새로워.
저도요, 상준 씨..
그녀는 의외로 라인이 선명한 글래머다. 마치 밀로의 조금(?) 여윈 비너스가 환생한듯한..
눈부시게 아름다워, 내 사랑..
그의 열정은 어느새 연지의 가느다란 목을 타고 아래로 내려오기 시작하였다.
입에서 절로 터져 나오는 옅은 탄성(嘆聲)과 함께, 상준의 목에 감겨 있던 그녀의 팔이 본능을 행사하여 그를 끌어당겼다.그는 목적지를 바로 가지 않고, 변죽을 울리는 여정에 여념이 없었다.
그만해, 간지러워 죽겠어.
어깨를 살짝 미는 시늉을 하며 연지가 한 발짝 뒤로 물러선다.
상준은 갑자기 그녀 앞에 무릎을 꿇고, 상기된 얼굴을 바닥에 닿을 만큼 조아렸다.
공주 마마, 소인 더는 참을 수 없사오니 부디 윤허해 주옵소서.
한쪽 다리를 그의 등에 올려놓은 채 연지가 한 마디 한다.
무엄하다! 노예 주제에..
지금부터, 최고의 기술을 발휘하여라. 실패할 시엔 엄벌에 처하겠노라. 크크큭...
예! 마마. 키득키득...
이들은 사랑을 나눌 때 간혹 즉흥적인 연극 행위를 도입하여 이벤트성 바디 게임을 연출함으로써,끈끈한 정이 더욱 차지게 되는,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 물론, 점잖게 칭얼대는 상준의 주도하에 말이다.
그녀는 깊은 한숨을 토하며 상준의 머리카락에 열 손가락을 묻었다.근원에서 넘치는 따뜻함이 그의 심신을 적시며 흘러내린다.
들어와, 상준 씨...그는 사랑하는 여인에게 극치의 기쁨을 제공하는 뿌듯함을 만끽하였고, 황홀경에 도취되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신이 허락한 생명 창조의 율동"에 근접하여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