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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 못 말리는 애수(哀愁) : 고질병
    상준 이야기/어느 기쁜 성탄절 2022. 12. 23. 22:28

     

     

     

     

     

     

     

     

     

     

     

     

    옆에 누워 잠이 든 연지를

    상준은 연민의 눈길로 내려다본다.

     

    새근거리는 숨결을 따라 너울처럼 일렁이는

    싱그러운 갈색 머리는 베개 가득 풍성하였지만,

    전기스탠드의 빨간색 꼬마전구가 희미한 불빛을 드리우고 있는 고운 어깨선이 상대적으로 빈약해 보여, 

    마음이 아팠다.

     

     

     

    '이 순간이 꿈이 아니길..

    아니, 차라리 영원히 깨어나지 않는 꿈이었으면...'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어둠에 묻힌 밤........................

     

     

     

    동네를 주유(周遊)하는 천진한 아이들의 노랫소리가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흐트러진 이불을 가지런히 여미어 주고,

    머리맡에 팽개쳐진 구닥다리 워크맨을 당겨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새벽은 아름다워] 2부가 시작되었습니다.

     

    오늘은 성탄절.

    밖에는 지금 흰 눈이 펑펑 내리며 온 세상을 하얗게 덮고 있습니다.

     

    십 년 만에 찾아온 화이트 크리스마스.

    선물 가득 실은 썰매와 그것을 끄는 사슴들을 위해

    싼타클로스가 내려 준 선물일까요?

     

    깨어있는 분은 당장 눈밭에 나가 발자국을 남기셔도 좋습니다.

     

    이렇게 목가적인 "밤의 풍경"과

    잘 어울리는 노래 한 곡, 띄워 드릴게요.

     

    마침, 수요일 새벽 세 시로군요.

    사이먼 앤 가펑클이 부릅니다.

     

    "Wednesday Morning 3 A.M."

     

     

     

     

    I can hear the soft breathing of the girl that I love

    as she lies here beside me asleep with the night.

    And her hair in a fine mist floats on my pillow

    reflecting the glow of the winter moonlight.

     

     

    She is soft she is warm, but my heart remains heavy.

    And I watch as her breasts gently rise gently fall....

    ......................................................

     

     

     

     

     

    연지를 깨울까 봐 조심조심 자리에서 일어난 상준은,

    술기운이 남아 울렁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기 위해

    잠시 벽에 머리를 대고 심호흡을 하였다.

    그리고, 밖으로 나왔다.

     

     

     

     

     

     

    골목 안에는 어느덧 하얀 융단이 깔려 있었다.

    전혀 기대를 하지 않았기에, 즐거워하는 아이의 마음이 "지나간 시간"을 타고 넘어와 그를 점령하도록, 상준은 내버려 두었다.

     

     

    하늘에서 여전히 쏟아지고 있는 함박눈은

    폭신한 융단을 더욱 두툼하게 만들고 있다.

     

    가로등의 노란 조명을 받아 소품처럼 흩날리는 눈송이 아래에, 아이들이 서 있다.

     

    골목 어귀에서,

    작은 십자가를 하나씩 들고 열심히 캐럴을 부르는 아이들.

    무대 위에서 열창하는 어린이 합창단보다도

    진지한 모습들이다.

     

     

    We wish you a merry christmas .......................... And a happy new year...

     

     

     

    아이들의 낭랑한 목소리는 큰길 쪽으로 사라지는 중이었으나 골목 안에는, 그들의 목소리에 실린 천사의 메시지가 다스한 입김처럼 한참을 여운이 되어 남아 있었다.

     

     

     

     

    눈 오는 밤의 포근한 정취와 어울리지 않게 돌연 눈물이 핑 돌았고, 코 끝을 찌르는 알싸한 슬픔이 그를 쓰러뜨렸다.

    아무래도, "자신만의 왜곡된 정서에 충실한 그가 선호하는" 언밸런스한 감상(感傷)이, 헉 소리도 못 내게 상준을 관통하고 지나간 듯하다.

     

     

    자취방 앞은 금세 발자국 하나 없는 아담한 눈밭으로 가꾸어졌고, 그는 그곳에 벌러덩 드러누워, 어지러운 춤사위를 뽐내는 눈송이들의 화려한 군무를 아무 생각 없이 감상하였다. 그런데 상준의 시선은 자꾸만, 하얀 군무 뒤에 멀찍이 물러나 있는 창공의 어둠으로 옮겨지는 것이었다.

     

     

    사정없이 박혀드는 눈의 감촉이 차갑게 데운 액체는, 상준의 뜨끈해진 두 눈을 방울방울 장식하기 시작하였다.

     

     

     

     

    무엇이 구체적으로 슬픈 지는 그도 잘 모른다.

     

    혹시, 미래 어느 지점의 충격과 절망으로부터 재앙과도 같은 슬픔이 탈출하여 "지금"을 미친 듯이 두들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막연한 훗날 그가 맞게 될 무시무시한 슬픔의 시점에도 지금처럼 눈은 펑펑 내릴 것이기에, "예정된 미래"와 지금을 연결해 주는 유일한 매개체로써 눈송이들이 채택된 것은 아닐까...

     

    심각한 비극의 암시가 현실로 침투할 때, 현실의 보호막인 "미지(未知)"가 농간을 부려, 비운의 눈물이 엉뚱하게도 (눈 가린 무의식의 고독이 여유롭게 자아내는) "한가한 눈물"로 탈바꿈한 것은 아닐런지....

     

    정녕, 아직 실현되지 않은 앞날과 연관된

    "변형 데자뷔"가 찾아온 것이라면,

    왜 하필 이 순간일까.

     

    어찌하여,

    연지의 사랑이 기쁨과 행복을 선사하는 황홀한 현재,

    정체 모를 어둠 속 슬픔은

    소녀적 센티멘털리즘을 가장하고 몰래 다가와,

    미래 어딘가에서 겪어야 할 구체적인 비탄을

    감질나게 맛만 보여 주고 있는 것일까.

     

    어쩌면,

    눈송이가 자극하는 이 미스터리한 눈물은,

    언젠가 - 사랑하는 연지로 인해 - 감당해야 할 애끊는 비통함을 대폭 순화하여 찰나적 예지몽처럼 감지케 한

    절대자의 배려인지도 모르겠다.

    비록 상준의 의식이 도저히 파악할 수 없는

    수준일지라도.....

     

     

     

     

     

    뺨을 타고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이

    쌓인 눈을 녹이고 땅으로 스며들었다.

     

     

    거리가 가늠 안 되는 아주 먼 곳으로부터

    여러 마리의 개 짖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오기 시작하더니

    점점 사납고 요란한 울음소리로 증폭되고 있다.

     

     

    상준은 뭔가 갑자기 머리에 떠오른 사람처럼 급히 상체를 일으켜, 앉은 자세로 이리저리 분주하게 팔을 놀렸다.

     

    그렇게, 그가 누웠던 눈밭에는 큼직한 글씨가 새겨지고 있었다. 밝아올 성탄의 아침을 기쁘게 맞이할..

     

     

     

     

     

    연. 지. 영. 원. 히. 사. 랑.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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