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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위문 공연꿈계의 월남전 (판타지) 2022. 10. 27. 18:13
연병장을 가로지르며 베니어합판을 운반하던 전일병이 잠시 걸음을 멈추고,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올려다본다. 오후 다섯 시가 넘어서는데도 작열하는 태양의 열기는 식을 생각을 않는다. 뜨거운 햇빛의 줄기들이 그의 벗은 어깨와 허리를 게걸스럽게 공략하여, 탄탄한 상체를 과하게 그을려 놓았다. 가설(假設) 무대 아래 장병들이 퍼질러 앉을 위치에다가, 예하 부대명(名)이 적힌 팻말들을 박아넣기 위해, 비지땀을 흘리며 해머를 휘두르던 김하사가 숨도 돌릴 겸 그를 보고 누런 이를 드러내어 한 마디 던진다. 전일병, 힘들지? 그것만 나르고 내무반 들어가 잠깐 쉬도록 해. 공연 끝날 때까지 말뚝 근무 서려면 장난 아니게 피곤할 거야. 일병 전상준. 아닙니다, 힘들지 않습니다. 씨발, 왜 하필 땅개 사령부들 다 놔두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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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워터 홀Letters to D.J. (지수 외전)/SUPERMAN 2022. 10. 27. 11:55
Another stories of Jisoos in parallel universes : 1. Superman (원본) (24) 유감스럽지만 널 부정하는 넌 여기가 아니라 다른 시공에 있어. 그런 너와 함께 사라질 시공 말이야. 우릴 신나게 모독하고 있는 넌 오히려 너무나 나르시시즘적이어서 탈이지. 더욱이 영체의 특성상, 각인된 자아를 초월하기란 거의 불가능이니, 되도 않는 시도는 하지 않는 게 좋아. 이런 특성 때문에 현재 넌 구조적으로 자발적 해탈이 어렵고 따라서 우리에 의해 강제로 해탈되고 있는 상황인 거지. 그리고 착각하지 말라. 우리가 할 짓이 없어 한가하게 떠드는 것이 아니야. 이건 일종의 마취제로서 지금의 네 심적 충격을 고려한 우리의 배려라 할 수 있다. 웜홀 통과 과정을 온전히 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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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미련한 시도, 달콤한 허탈이상한 연애편지 (상준 외전) 2022. 10. 26. 01:26
3학년. 고등학교의 마지막 봄소풍이었지. 지난 십일 년 동안 한 번도 능동적으로 참여하지 못하고 구경만 해오던 오락 시간에, 전교생이 둥그렇게 둘러앉은 자리에서, 무슨 용기가 났는지 난 죽이 잘 맞던 같은 반 친구와 함께 떨리는 손으로 마이크를 쥐고 어쭙잖은 솜씨를 뽐내며 팝송을 부르고 있었어. (아마, 전설적인 듀엣의 명곡이었을 거야.) 그렇게나 많은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불러보는 건 생전 처음인지라 너무 부끄러워 얼굴은 금세 홍당무가 되었고 친구의 멜로디에 서투른 화음을 넣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수많은 시선이 나를 발가벗기는 곤욕스런 순간에 갑자기, 아득한 각성이 찾아오더라. 눈앞이 캄캄해지고 주변의 소음은 사라지는데 여기저기 카메라 셔터 누르는 소리만 증폭되어 귀를 간지럽혔어. 될 대로 되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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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에프 엠 마스터Letters to D.J. (지수 외전)/SUPERMAN 2022. 10. 25. 12:36
Another stories of Jisoos in parallel universes : 1. Superman (원본) (23) 고맙네. 미스 B의 충정을 잊지 않겠네. 마스터님의 은총이 망극하옵니다. 오늘 이렇게 누추한 자리를 영광스럽게도 빛내어 주셔서 참으로 감사합니다. 그래, 그럼 수고하시게. 내 그대에게 작별 선물 삼아 키스를 하려 하는데 받아 주겠나? 네에? 아아 너무 뜻밖이라.. 어찌 저 같이 미천한 것에게.. 겸손하기는.. 계속 빼는 것도 미덕은 아니야. 자아 내 품으로 들어오라. 그리고 그 탐스러운 입술과 촉촉한 혀를 아낌없이 내게 달라! 기꺼이 그럴게요. 아름답고 멋지신 크리스 리브님.. 아니 이게 무슨 방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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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시공 파편Letters to D.J. (지수 외전)/SUPERMAN 2022. 10. 24. 22:55
Another stories of Jisoos in parallel universes : 1. Superman (원본) (22) 아.. 저로선 이해는커녕 상상도 할 수 없는 이야기네요. 거두절미하고 여쭙겠습니다. 스크린에 나온 아이들이 살아있는 생명체가 아니란 말씀인가요? 그럼에도 합성과 같은 단순 특수 효과는 아니란 말씀이시죠? 그럼 홀로그램? 휴머노이드? 이 중 하나라 해도 SF 영화 속에나 나오는 상상이 실현되었단 얘긴데.. 충격 그 자체가 아닐 수 없습니다. 허허, 그렇게 밖에 추측이 안 되나? 그 아이들은 자신들의 세상으로부터 살아 움직이는 인간의 형상 그대로 아니 인간의 영육 그대로 영화라는 가상 속에 옮겨진 것이라네. 엄밀히 말하면 가상이란 표현도 적절하진 않겠군. 자넨 영화 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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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늪꿈계의 월남전 (판타지) 2022. 10. 24. 14:10
자아 자, 모두들 긴장 늦추지 말고 대열 정비해서 사주 경계 철저히 하도록! 김하사! 전방에 별일 없지? 네, 사람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습니다. 살점 같은 게 몇 군데 흩어져 있는 것으로 볼 적에, 작은 짐승의 소행이었음이 틀림없습니다. 무전병! C사단 사령부에 연락해서 A-10 지역 이상 없다고 보고해! 자아, 다들 출발하자! 09시 정각에 헬기 도착이니까 서둘러야 한다. 소대장을 포함한 고참 대여섯 명이 선두를 형성하여 본격적인 늪지대로 접어들었다. 늘어진 덩굴을 정글도로 베어 내며 앞장서는 그들의 오버(?)에, 나머지 열두 명의 대원들은 감히 피곤한 내색도 못 하고 녹초가 된 몸을 삶과 죽음의 경계(境界)로 하염없이 몰아갔다. 중간에 위치한 나는, 후미의 전일병에게 다가가기 위해 늪 속에서 적당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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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연민..이상한 연애편지 (상준 외전) 2022. 10. 24. 01:23
내 소극적인 태도가 초래한, 한동안의 잠잠함. 그것이 길어질수록, 커가는 그리움을 나는 떨쳐낼 수 없었다. 겉으론 아무 일 없듯 굴어도, 간헐적으로 널 접할 때마다, 애써 평정한 마음은 출렁이는 파문을 일으켜야 했다. 부지불식간에 죄인이 되어버린 나. 널 보면 왜 죄의식이 느껴졌을까. 너와 난, 절절한 스토리를 공유한 (우여곡절 풍성한) 연인 사이가 아니었는데. 사실, 흔한 대화 한 번 나눈 적 없는 남남일 뿐이었는데.. 너와 나 사이 불미스러운 사고가 발생한 것도 아닌데 그저 네게 미안할 따름이었어. 그래서 널 더욱 피하게 되었지. 언제부턴가, 길 저편에서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네가 걸어오면 난 화들짝 놀라 얼른 몸을 숨겨야 했다. 그리고는 네가 어서 지나가기를 기다렸지. 멀어져 가는 너를 한참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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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강하꿈계의 월남전 (판타지) 2022. 10. 23. 11:18
우주왕복선만큼이나 거대한 (SIG/SAUER P228 권총의 40 구경 9밀리) 탄알이 대기권에 진입하는 유성처럼 화염 덩어리가 되어 총구를 빠져나온다. 고속촬영의 진수(眞髓)를 보여주듯 어슬렁거리며 다가오는 그것을 따로이 세울 필요도 없이, 외로운 히치하이커는 그것으로 딸려 들어갔고 그 과정에서, 그를 지지(支持)해주던 "분신의 친화(親和) 오오라"는 로켓 발사대인 양 떨어져 나갔다. 꿈틀대는 고온(高溫)의 "상념 + 금속" 혼합체가, 한 여인의 (공포로 경직된 채 아우성치는) 가녀린 피부 세포들 위에 소행성처럼 충돌한다. 이봐, 지수. 용기를 내! 온갖 힘든 훈련 다 받아낸 자네가 겨우 이까짓 점프에 겁먹고 안절부절인가. 자넨 무적(無敵)의 해병대원이야! 잊은 건 아니겠지? 입대 동기인 상준이 형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