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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 시공 파편
    Letters to D.J. (지수 외전)/SUPERMAN 2022. 10. 24. 22:55

     

     

     

     

     

     

     

    Another stories of Jisoos in parallel universes : 1. Superman (원본) (22)

     

     

     

     

     

     

     

     

     

     

     

     

     

     

    아.. 저로선 이해는커녕 상상도 할 수 없는 이야기네요.

    거두절미하고 여쭙겠습니다. 스크린에 나온 아이들이 살아있는 생명체가 아니란 말씀인가요?

    그럼에도 합성과 같은 단순 특수 효과는 아니란 말씀이시죠? 그럼 홀로그램? 휴머노이드?

    이 중 하나라 해도 SF 영화 속에나 나오는 상상이 실현되었단 얘긴데..

    충격 그 자체가 아닐 수 없습니다.

    허허, 그렇게 밖에 추측이 안 되나?

    그 아이들은 자신들의 세상으로부터 살아 움직이는 인간의 형상 그대로 아니 인간의 영육 그대로 영화라는 가상 속에 옮겨진 것이라네. 엄밀히 말하면 가상이란 표현도 적절하진 않겠군.

    자넨 영화 관련 종사자들의 두뇌가 만들어 낸 각본이나 콘티 등의 창작물들이 정녕 백 프로 창조 영역의 소산이라 보는가?

    그럼 아니란 말씀이세요?

    물론 슈퍼맨이란 캐릭터의 시작은 훨씬 더 오랜 전의 일이긴 하죠. 이 매력적인 히어로가 수 십여 년간 거대한 엔터테인먼트 산업 속으로 흡수되면서 여러 차례 진화를 거듭 해오다가 오늘날 종합 예술의 꽃인 실사 영화로 드디어 탄생하게 된 것은 일종의 도약이라고도 볼 수 있지요. 영화 제작의 정교한 기술적 진보를 바탕으로 스태프 간의 세밀한 협업이 이뤄낸 대단한 역작이라 봅니다만..

    음 일리 있는 얘기야. 역시 영화 전문 디제이 다운 멘트로구만. 그런데 말이지.

    인류의 집단적 영감이 배출한 이 불세출의 영웅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한 일치율로 우주 밖 어딘가에 존재한다면 자넨 믿을 텐가?

    다시 묻겠네.

    예술가의 창조라는 게 실은 창조가 아니고 영감에 의해 다른 차원이나 다른 우주를 발견하는 과정일 뿐이라면 자넨 인정하겠는가?

    모르겠습니다. 제 사고의 영역을 뛰어넘는 질문 같아서요.

    창조적 영감의 작용 메커니즘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발상에도 말문이 막힐 지경이지만 무엇보다 다른 우주라는 개념부터가 제가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벅차군요.

    이래서 마스터님들은 신이신가 봅니다.

    그렇다고 창조의 고전적 개념을 폐기할 필요는 없다. 우주 생명체들의 상념이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다양한 우주들을 만들어 내고 있으니 말이야. 일종의 가역 반응이라고나 할까.

    누군가가 창조한 상념계를 누군가는 발견하는 것이지. 창조가 발견이고 발견이 곧 창조야.

    감독과 제작진은 본인들이 작품을 만들어 낸다고 철석같이 믿겠지만 실은 다른 우주의 사건들을 무의식적으로 모사하는 것에 불과하다네. 더 정확히 말해 러닝 타임 내내 관객들은 다른 시공의 실제 사건들을 구경하는 셈이지.

    한 편의 영화를 이루는 많은 씬들이 말하자면 사건 시공들의 파편에 해당한다네.

    감독과 제작진이 뽑아놓은 연기자들도 다 선발된 이유가 있지. 세상에 우연은 없으니까.

    그들은 바로 이 시공 파편들의 실존 인물들이야. 여기서 주연급 배우를 예로 들어 보세.

    그는 당연히 상당한 분량의 씬들에 모습을 보일 테지만 각 씬마다의 그 인물은 결코 동일하지 않다는 게 함정이지. 모습만 같을 뿐 다른 우주에서 날아온 엄연히 다른 존재들인 것이다.

    미친 연기력의 메소드 연기자들을 보면 연기할 때 눈빛에서부터 관객을 압도하는 무언가가 있음을 알 수 있지 않은가. 그것이 성공한 배우의 척도 중 하나이기도 하고.

    우리를 소름 끼치게 하는 연기가 그의 재능인 것은 확실한데 그도 그럴 것이 각 씬마다 해당 상념 시공의 분신과 합일하여 극중 인물이 아닌 실존 인물 자체가 되기 때문이지. 마치 빙의된 것처럼 말이야.

    지구의 영화인들은 거대 자본을 투입하여 복잡한 방식으로 거창하게 블록버스터들을 만들어왔지만, 이는 자신들이 무엇을 하는지도 모른 채 다른 우주들에서 발생하는 동시성의 역사들을 끌어모아 짜깁기한 것에 불과하다네.

    결과적으로 내가 만든 슈퍼맨과 유사한 제작 패턴이 되었으나 비용적 측면에서의 비효율성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정도인 거지. 알지 못함과 앎의 차이는 그만큼 큰 걸세.

    이번에 나의 우주를 경험한 친애하는 리처드와 친구들은 아마 평생 깨달을 수 없는 많은 것들을 보고 느꼈을 것이다.

    이미 인프라가 갖춰진 우리 에프엠의 고효율 제작 방식은 그들이 준 각본과 콘티를 바탕으로 해당 시공들을 추적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네.

    "슈퍼맨이 활동하는 우주"에서 특정 사건의 시공 파편을 원격 스캔하여 배경과 인물들은 4차원 상념 프린터로 시공을 통째 복사할 때 함께 복제하고, 주인공인 슈퍼맨의 상념 및 활동 궤적은 따로 계산하여 복제 슈퍼맨의 감정과 행동을 내가 연기할 수 있도록 - 대본 역할을 하는 - 데이터를 축적하는 일련의 과정이 뒤따르지.

    그리고 상영 때마다 "복사 시공"의 실시간 재생과 자동 편집이 가능한 우리에겐 불필요한 과정이지만, 인프라가 없는 자네들 사정을 고려하여 필름화 후반 작업을 감독과 스태프에게 전수하였네. 지구의 영화관에서 상영하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절차이니 번거롭고 성가셔도 어쩔 수 없지.

    여담이지만 아틀란 상영관에서의 일차 시사회에 참석한 리처드와 친구들이 경탄하면서도 상영 내내 한숨과 탄식을 거듭하더군. 필름으로 재탄생한 것의 퀄리티가 상대적으로 많이 떨어짐을 뼈저리게 느껴야 했으니까.

    뭐 어쩌겠나 그들로서는 아쉬워도 현실을 인정하는 수 밖에.

    맙소사! 그런 게 다 가능하다고요?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네요.

    마스터님이 연기하는 롤 모델은 그럼 어떻게 되나요? 허락 없이 복제된 것도 서러울 텐데 사건의 중심에서 가차 없이 도려내어지는 건가요?

    감히 마스터를 모독할 텐가? 우린 무자비한 존재가 아니야.

    복사된 영육은, 본 시공과 시공 파편에 이은 2단계 하위 분신이라네. 그는 역 프린팅 장치를 통해 본시공의 상념 자아에 귀속되는 과정을 밟게 된다네.

    앞으로 그따위 잔인한 발언은 삼가 주게나.

    아이쿠 죄송합니다. 용서해 주세요 마스터님.

    그렇다면 그 아이들을 비롯하여 복제된 모든 인물들도 현재는 우리 시공에 존재하지 않겠군요.

    영화 속에서 본의 아니게 메서드 연기를 하게 된 실존 인물들이지만 그래도 명색이 출연진인데 변변한 인터뷰도 한 번 못 가져 보고 가버렸다니 제가 다 서운하네요.

    그 부분은 나 또한 유감이지만 어쩔 수가 없다.

    시공 프린팅 기술로 복사된 생명은 안정성이 현격히 떨어지는 관계로 영화 제작이 완료되는 시점까지 겨우 버텨 주는 형국이라 그들이 독자적으로 지구상을 활보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하아, 왜 극비였는지 이제야 알겠습니다. 마스터님의 언급으로 공식화였는데도 이처럼 혼란스러운데 말이죠..

    세계적으로 엄청난 메가 히트를 기록 중인 흥행 보증 수표 슈퍼맨의 이면에 이런 놀라움을 넘어 가공할 비밀이 숨겨져 있었다니 정말이지 온몸이 떨려오는 걸 금할 수 없네요.

    내일 아침이면 어떤 기사들로 도배가 될지 벌써 그려지는군요. 전국이 크게 요동칠 것은 기본일 테고요.

    그런데 꼭 그런 건 아니지만 현실은 영화보다 밋밋할 확률이 높아서 이 때문에 제작에 애로 사항은 없으셨는지요?

    영화가 오프닝부터 엔딩 타이틀까지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박진감 넘치고 재미있었다는 게 관람객들 대다수의 반응이어서, 무언가 영화적 양념이 더 가미되지 않았을까 궁금해지기도 하고요.

    흥행에 성공한 모든 영화들도 예외 없이 시공 파편의 짜깁기일 뿐이다.

    길게 부연할 필요 없이 이 말로써 답변을 대신할까 하네.

    자아, 내가 그대에게 물어보겠노라.

    최고로 기발하고 기괴하고 재미있고 환상적인 각본을 어느 천재가 완성하였다 치자. 그의 영적 감수성은 무의식의 바다를 항해하는 마르코 폴로이자 콜럼버스.

    이 얘기인즉슨?

    우주 밖의 무수한 시공들 가운데 그의 상념이 현실로 전개되고 있는 시공들을 그는 발견한 것이다.

    그렇지. 내가 장시간 헛수고를 한 게 아니란 걸 그대가 입증해 주었어.

    지성과 미모를 겸비하였다며 대표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한 이유가 있었군.

    과찬이십니다.

    마스터님과 유익한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시간이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네요. 마스터님의 화려한 언변이 선사하는 신비하고 알찬 정보들을 소중히 듣느라 시간이 이렇듯 흘러버렸는지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미리 적어 놓은 질문들이 조금 남았긴 하지만 지금까지 해 주신 이야기들에 비하면 생략해도 될만한 사소한 것들이라 다행입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여쭙고 싶은 것은, 요 근래 이 영화와 관련하여 이상한 유언비어들이 시중에 떠돌고 있는듯합니다.

    영화를 관람하는 자체만으로도 일종의 세뇌 작용이 일어나서 사람들의 정신을 지배한다고 하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그래요 그 얘긴 나도 입국장 기자 회견 때 들어 알고 있긴 한데..

    그때도 말했듯이 일단 이것에 관해선 노코멘트하겠소. 정 궁금하다면 케랄터의 해당 기관 수뇌진에 직접 문의해 보시오.

    누군가의 개입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유언비어던 아니던 에프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는 것만 밝혀두겠소.

    일고의 가치도 없는 한낱 해프닝일 따름임을 강조하실 만도 한데 노코멘트를 선택하신 데에는 깊으신 의도가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겠습니다.

    경제적 이득의 효과와 더불어 마스터 집단에 대한 숭배 및 신격화 그리고 엘리트 지도층에 대한 찬양과 홍보가 반복적인 관람을 통해 강화되도록 필름에 화학적 신경학적 장치를 제국이 은밀히 첨가하였다는 악성 루머가 급격히 퍼지고 있어서 당국도 긴장하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물증은 나오지 않았으나 정황상, 반국가 단체인 청령 민병대의 소행이 아닐까 예상되고 있어요. 이 점은 어찌 보시는지..?

    허어, 마지막 질문이 길어지는군. 우선 그대의 멘트에서 정정하고 넘어갈 게 있어.

    마스터 그룹은 새삼 신격화할 필요가 없어. 우리는 자네들에게 이미 신이야. 잘 알잖나.

    물론이지요 여부가 있겠습니까.

    저런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불순 세력들이 그리 주장한다는 것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오해의 소지가 있어나 봅니다. 진심으로 사과드려요.

    그랬나? 내가 좀 예민했나 보군. 이해하게나.

    케랄터 제국이 이 영화를 자신들의 홍보 수단으로 활용하던 말던 난 관심이 없어. 어느 쪽이던 제국이 우리의 충직한 부하이자 추종 세력인 것에는 변함이 없으니까.

    그보다, 우리 스스로 에프 엠의 존재 의의를 널리 알리고자 이 영화를 만들었다는 것은 서두에서도 말했듯이 떳떳하게 밝힐 수 있는 사실이다.

    마스터와 슈퍼맨은 여러 면에서 공통점이 많아. 그중 무소불위의 능력을 남용하지 않고 정의를 위해서만 힘쓰는 모습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지.

    내가 연기한 슈퍼맨도 본인의 시공을 초월하여 마스터의 직분을 함께 수행하고 있던 특수한 슈퍼맨이었지. 그래서 연기하기가 많이 수월했는지 몰라. 수퍼맨이 마스터이기까지 하면 이보다 금상첨화가 어디 있겠나.

    숭배까지는 바라지도 않겠어. 이 영화를 보고 인류가 - 우주를 굽어살피는 - 신적 존재로서의 우리를 존경해 마지않는다면 그것만으로도 영화 슈퍼맨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봐.

    아까 청령이라고 했나?

    고수들끼리는 서로를 알아본다 했던가. 우리는 청령의 조화와 섭리를 존중한다네. 다만 그들의 월권을 경계할 뿐이야.

    그들은 지고지순한 인디고 크리스탈 아이들을 꼬드겨 틈만 나면, 우리가 관리하는 평행우주 시스템의 안정성을 훼손하려 하지. 그들에게도 명분은 있겠지만 우리의 찬란한 시공 거품을 호시탐탐 터뜨리려 하는 짓은 백번 양보해도 용납할 수 없는 (신 중의 신인 근원의 섭리에도 어긋나는) 반우주적 일탈인 것이다.

    공존의 대원칙을 파기하고 저들이 무모한 도전을 해온다면 우리 마스터 그룹도 더는 인내하지 않고 분연히 맞설 것임을 만천하에 고하노라.

    늠름하십니다. 크리스 리브님 같은 마스터가 계셔서 우리 인류가 얼마나 든든한지 모르겠습니다.

    영원토록 강성하시어 마스터님의 고결한 소망이 하늘과 땅에서 동시에 이뤄지기를 간절히 기원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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