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준 이야기/이상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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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구원의 손길상준 이야기/이상한 사랑 2023. 8. 25. 09:13
유흥주점 안은 이미 초상집 같은 분위기였다. 불 같은 성격의 업주는 애들 교육 똑바로 못 시켰다고 얼굴 마담에게 고함을 지르며 일차로 분풀이를 하였고 이내 대기실로 들어와, 돈을 세고 있는 이 양으로부터 우악스럽게 돈봉투를 가로챘다. 이런 뻔뻔한 년들을 봤나! 너희들 때문에 오늘 손해가 얼만 줄이나 알아?! 봉투를 머리 위로 흔들며 사장은 말을 잇는다. 이것까지 합쳐도 오늘 손해 본 술값엔 턱도 없어! 나머진 너네 둘 급여에서 깔 테니깐 그런 줄 알아! 에이, 치사해서 정말.. 그만 두던가 해야지. 지금 당장 경찰서 가서 그 새끼 폭행죄로 처넣을까 부다, 씨발.. 이년이 그래도 정신 못 차리고.. 오 양 니가 우리한테 진 빚이 얼만데 누구 맘대로 그만둬?! 오늘 술값이 문젠 줄 알아? 좌우지간 오늘 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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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비참상준 이야기/이상한 사랑 2023. 7. 21. 22:48
여자의 앙칼진 목소리가 쩌렁쩌렁 저녁 공기를 가르며 상준의 뒤통수를 때렸다. 바지를 추스를 경황이 없어 외투자락만 꽁꽁 움켜쥐고 있던 그가 여인에게 머리카락을 잡힌 채 고스란히 봉변을 당하는 동안, 구경거리에 약한 행인들은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머리가 당겨져 순간적으로 젖혀진 상준의 얼굴에 여인은 더럽혀진 손을 마구 문질러대었다. 옜다! 니 꺼 너나 실컷 먹어라! 너희 같은 새끼들 땜에 내 옷이 대체 몇 번이나 더러워지는 거야!? 그의 입장에선 재수없게도, 비슷한 수모를 이미 서너 번 당해 가뜩이나 치를 떨며 복수를 꿈꾸던 히스테리컬한 여자를 선택한 것이 화근이었다. 고의성은 없었고 불가피한(?)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남성적 본능이 우발적으로 저지른 실수였음을 강변하기엔 때가 너무 늦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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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본격적 일탈상준 이야기/이상한 사랑 2023. 6. 28. 21:23
다음날 상준은 공장에 나가지 않았다. 비록 술기운을 빌리긴 하였으나 상사와 동료들에게 속내를 솔직히 드러낸 셈이었고 그것으로 사표를 대신하였던 것이다. (그렇더라도 무책임하고 비겁한 처사라는 비난을 피할 수는 없겠다.) 종업원이 올라와 흔들어 깨우고 나서야 뒤숭숭한 악몽으로부터 겨우 벗어난 그는, 오후 한 시가 다 되어가는 시각에 쫓기듯 숙박업소를 빠져나왔다. '이제 어디로 간다? 이대로 연지한테 갈 수는 없는 노릇이고..' 지갑을 열어 보니, 오천 원짜리 달랑 두 장. 버스 정류장 근처 도로변에 세워진 간이매점으로 가서 담배 한 갑을 샀다. 어제의 과음으로 속이 몹시 쓰려왔지만 뜨거운 국물 한 그릇 사 먹고 나면 빈털터리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그 주점이 문 열자면 아직 대여섯 시간이나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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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일탈의 시작상준 이야기/이상한 사랑 2023. 6. 15. 16:02
깜빡 잠이 또 든 것 같다. 누군가 상체를 세게 흔드는 통에 상준이 눈을 떴다. 오빤.. 사람 불러놓고 이렇게 쿨쿨 잠만 자기예요? 이 양의 벌거벗은 몸이 한눈에 들어온다. 으음.. 민아는? 하이고, 눈꼴 시어라. 오빠 애인, 도망 안 갔으니 걱정 마세요. 지금 열심히 샤워하고 있답니다. 이 양 말대로, 목욕탕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안심한 그가 이 양을 안아 올려 침대에 던진다. 그녀의 - 나이에 비해 - 풍만한 가슴이 출렁이며 상준을 자극한다. 저기 말이야. 아까 나랑 같이 온 일행들은 언제쯤 나갔니? 그 아저씨들요? 오빠 나가고서, 한 삼십 분 정도? 오빠 때문에 술맛 떨어졌다고 투덜대면서들 일어나더라고요. 오빠가 우리 집 매상 떨어뜨린 거 알기나 해요? 야, 그 인간들 원래 그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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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민아상준 이야기/이상한 사랑 2023. 6. 1. 11:12
무식하게 밀어붙이면 불가능이 없다는 진리(?) 위에 외부 과시용 과학적 합리주의를 양념으로 가미하고, 다채로운 기법과 이데올로기로 적당히 얼이 빠진 무식한 일꾼들에겐 결실의 설탕가루가 겉에만 감질나게 뿌려져 있는 (거창한 생색으로만 가득 채워진) 공갈빵을 하나씩 입에 물려 지혜(?)로운 착취에 대한 불평과 잡음을 적절하게 입막음하며, 진정한 분배 및 복지 대신 인간의 생명을 갉아먹는 환경오염과 - 실현을 배제한 - 장밋빛 설계들만 끊임없이 재생산하고 있는 기적. 공생을 무시한 노골적 이윤 추구가 자멸을 초래한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기본 상식이자 민중의 서슬 퍼런 경고이기에 울며 겨자 먹기로 경영의 교리 삼을 땐 언제고, 이젠 스스로 터득한 참신하고 세련된 모토인 양 은근슬쩍 잘 난 척까지 하며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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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객기상준 이야기/이상한 사랑 2023. 5. 8. 17:47
다음날 조회 시간. 본사 차원의 "매출 목표 수정안"에 부화뇌동하여, 고객이 (사장이?) 요구하는 과제의 빠짐없는 완수를 위해 목표치 초과 달성에 자만하지 않는 활기찬 도전 정신의 재무장과 분발을 팀장이 새삼 촉구한 가운데, 그의 고압적 격려를 수용한 사원들은 그간 왠지 비능률적인 업무 태도를 고수하기라도 한 것 같은 자발적 집단 최면에 종속되어 자신들의 노고를 스스로 평가절하하는 당치 않은 겸손에 도취한 채 실속 없는 긴장을 움켜 쥐고 아침부터 이리저리 바쁘게들 움직여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날따라 치하를 명분으로 고위급 경영진들은 줄줄이 시찰을 나왔고, 중간 관리자급 나리들은 그들의 눈치를 보느라 (적어도 그날 하루 만은) 여기저기 애면글면 작업 현장을 기웃거리거나 직속 사원들을 달달 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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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육욕이라는 이름의 절망상준 이야기/이상한 사랑 2023. 3. 31. 22:08
상준의 왕성한 정력을 표면적 구실 삼아 이루어진 둘만의 중장기적 신혼 생활이, 연지의 암묵적 합의하에 거의 3, 4년이나 "월세방 신혼"의 후끈한 분위기를 만끽하게 해 준 것까진 좋은데, 그의 무한 동력 같은 껄떡댐을 - 허약하진 않아도 - 원체 날씬한 그녀의 몸이 장기간 감당하기란 워낙에 역부족이어서 자기 보호 차원으로라도,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딸내미 소영을 필사적으로 끼고 방패막이로 활용해야만 했다. 이 얼마나 웃지 못할 해프닝인가. 아내가 육아에 전념하다 보면 남편 입장에서도 귀찮고 자질구레한 일들이 많이 늘어날 테고, 또 그에 대한 와이프의 사랑과 관심이 소영에게로 상당 부분 분산되리라는 사실을 빤히 측량하고 있는 게으른 상준이 연지의 애정을 독차지하려는 불순한 심산에서 자기의 소중한 딸마저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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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상한 사랑상준 이야기/이상한 사랑 2023. 3. 14. 17:34
그해 시월, 상준은 홍주에서 혼인 신고를 하고 연지의 집에 부랴부랴 신방(新房)을 꾸몄다. 그 즈음 아이가 태어났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부모의 허락을 받고 느긋하게 연애를 즐기다가 양가의 진정한 축복 아래 결혼식을 올리려던 계획은 물 건너간 일이 되었고, 시련 속의 사랑은 더욱 애틋하여 서울로부터의 기약 없는 희소식을 포기하고 결단을 강행하게 된 것도 막나가는 사랑에 맛 들인 두 연인에겐 그저 상큼한 해프닝일 뿐이었다. (세상 밖으로 나온 아기의 존재가 "중요하다 여긴 다른 현실 문제들"을 자잘하고 대수롭지 않게 만든, 영향도 컸다.) 연지의 부모 역시 처음에는 이들의 앞날이 순탄치 않을 것을 염려해 두 사람의 결합을 반대하였으나, 막내딸을 너무나 사랑하기에 그리고 소중한 딸이 사랑하는 남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