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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 민아
    상준 이야기/이상한 사랑 2023. 6. 1. 11:12

     

     

     

     

     

     

     

     

     

     

     

     

     

     

     

     

     
    무식하게 밀어붙이면 불가능이 없다는 진리(?) 위에 외부 과시용 과학적 합리주의를 양념으로 가미하고,

    다채로운 기법과 이데올로기로 적당히 얼이 빠진 무식한 일꾼들에겐

    결실의 설탕가루가 겉에만 감질나게 뿌려져 있는 (거창한 생색으로만 가득 채워진) 공갈빵을 하나씩 입에 물려

    지혜(?)로운 착취에 대한 불평과 잡음을 적절하게 입막음하며,

    진정한 분배 및 복지 대신 인간의 생명을 갉아먹는 환경오염과 - 실현을 배제한 - 장밋빛 설계들만

    끊임없이 재생산하고 있는 기적.

     


    공생을 무시한 노골적 이윤 추구가 자멸을 초래한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기본 상식이자 민중의 서슬 퍼런 경고이기에 울며 겨자 먹기로 경영의 교리 삼을 땐 언제고, 이젠

    스스로 터득한 참신하고 세련된 모토인 양 은근슬쩍 잘 난 척까지 하며

    자본주의 구성원들에게 부의 영생을 설파하고 삶의 문화 수준 함양 및 지역사회의 안녕과 복리 증진에도

    나름대로 이바지하였다 뻐기니,

    화려한 연막이 인심 쓰듯 솔솔 흘리는 떡고물 덕에 시끌벅적한 지상천국 곧 열리겠구나.

    얼씨구나 좋다! 에헤라디야 살 맛 나네!

     

     


    이렇게 고마운 그들이라 하니 도리상 보답은 해야겠어서 소박한 백성들은 포상을 위해 개인 금고를 열었지만,

    모든 쓸만한 재물은 그들의 창고에 다 들어가 버린 탓에 아무것도 줄 것이 없었더라.


    은근히 기대하던 포상이 물 건너가버려 기분이 상한 그들은

    자신들의 비대한 창고에서 재물의 일부를 꺼내어 순진한 백성들에게 고리(高利)로 빌려주고

    그것을 도로 자신들에게 포상하라 이르더라.


    단순한 백성들은 그렇게 하여서라도 그들에게 기어이 감사를 표시하였겠다.

     


    그런데 참 이상타!

    삶의 질적 수준이 높아지고 복지 혜택을 누려 행복하게 지낸다는 백성들이

    어째 이자를 지불할 능력은 없어서 (금고가 텅 비었으니 당연한 일) 끝없이 고민을 거듭해야 할꼬.


    결국엔 그들을 찾아가 이러저러한 사정을 밝히며 머리만 연신 조아리는 충직한 백성에게,

    배가 불러 마음마저 넉넉한 그들 왈 이자 걱정은 말란다. 급한 것 아니니 천천히 갚으라 안심시키며

    대신 자기들에 대한 변함없는 존경과 충성으로 지금처럼 계속 시중 들어줄 것을 요구하였더라.

     

     

    착한(?) 백성들은 그들의 마음 씀씀이에 감복하여 새삼스럽게 복종을 재다짐하며 열심히 그들의 시중을 들었고,

    실속 없는 환상과 유혹 기능을 대폭 보강한 그들의 제품은 빚을 내어서라도 빠짐없이 구입하여

    그들의 지시대로 삶의 질을 계속적으로 높여갔다나 어쨌다나..


    개개인의 텅 빈 금고는 망각하고 시장 경제의 독실한 신도로서 그들의 거대한 창고 앞에 몰려가

    성소를 꾸미고 예배를 올리니, 세상 방방곡곡에선

    교주가 된 그들의 영원한 권세를 위하여 풍요와 번영의 축가가 울려 퍼지더라.


     

     
     

     

     

     

     

     

     

     

     

     

     

     


    지극히 추상적인 "혁신" 이데올로기의 찬란함 앞에서

    당장이라도 유토피아를 건설할 태세로 톱 경영진들이 손가락 하나만 까딱하면,

    모든 복잡한 실무적 난제들은 일거에 해결되어야 하고 가시적 성과가 일사천리로 이루어져야 하는

    이놈의 웃지 못할 기적!


    정말이지 경탄스럽습니다, 팀장님.

     

     


    그리 간단치 않은 현실의 복잡성은 외면하고 비판을 위한 비판으로 소중한 역량만 소모하다니,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군.

     

     


    소중한 역량이라고요? 저한테 그런 거 기대하지 마십쇼.

    가공할 기적에 동참하고 그 기적을 앞장서서 이끌어 내는 선배님들의 놀라운 역량이

    애초부터 제겐 없었으니까요.

     

     

     


    상준은 휘청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팀장님 이하 여러분!

    전 그만 갈랍니다. 알량한 기적 계속 만드시고 부디 잘 먹고 잘 사십시오.

     

     

     


    2년 전에 공채로 입사한 막내 박성민 씨가 그의 팔을 붙잡으며 만류한다.

     

     

     


    전대리 님, 많이 취하셨어요. 고정하시고 앉으세요, 제발..

     

     


    야 야, 가라 그래!

    짬밥 처먹으면 뭐 해, 분위기만 망쳐놓는 저런 놈 필요 없어!

     

     

     


    민과장이 소파에 반 드러누운 자세로 허공에 발길질을 해댄다.

     

     

     


    전대리 설마..

    사표 쓰겠단 소린 아니겠지?

     

     

     


    안경을 고쳐 쓰며 정대리가 쏘아본다.

     

     

     


    삥! 뽕! 정답입니다! 지금 이 시간부로 저는 회사를 떠납니다.

    남아 있어 봤자 도움은커녕 문젯거리나 제공하는 제가 나가야죠.


    과중한 업무도 지긋지긋하고 아첨 아부도 저의 체질이 아니랍니다.

    각양각색의 사람들과 부딪치는 것도, 높은 사람 눈치 보며 알아서 기는 것도 정말 짜증 나걸랑요?
    피 터지는 경쟁 속에서, 이것 저것 업무 외적인 것까지 따지고 챙기며 진급 포인트에 매달릴 자신은 더더욱 없습니다.


    직장이란 곳이, 당신네들이, 도무지 두렵기만 하다고요! 두 손 두 발 다 들었어요.

    낙오자 전상준, 깨끗이 물러납니다.

     

     

     


    그는 테이블 위에 어지럽게 널려있는 빈 술병들 중 절반 가량 남아 있는 것을 집어 들어 병나발을 불었다.

    그리고, 민아의 팔을 잡아당겼다.

     

     

     


    민아 너, 마음에 들었다. 오늘 밤 나랑 지낼 수 있지?

     

     

     


    팀장의 두툼한 손에 한쪽 가슴을 점령당한 이 양이 몸을 뒤틀며 한마디 거든다.

     

     

     


    좋겠다, 얘. 첫날부터 2차 손님도 모시고..

     

     

     


    짜식, 꼴에 할 건 다하고 있네.

     

     

     


    상준은 민과장의 마지막 빈정거림에 가래침을 뱉고, 민아의 부축을 받으며

    담배 연기 자욱한 룸을 빠져나왔다.  


    박성민 씨가 황망히 그를 따라나서려 하자 팀장이 제지한다.

     

     

     


    그냥 놔둬!

     

    못난 놈, 지두 사내놈이라고 술기운에 객기를 다 부리는구만.

    내일 어떻게 나오나 한번 두고 보자고..

     

     


    저 친구 저러다, 내일부터 진짜 출근 안 하면 어쩌죠?

     

    내 밑에 한 사람 빠져 버리면, 당장 지장이 큰데 말이야..

     

     

     


    정대리가 고쳐 앉으며 팀장의 눈치를 살핀다.

     

     

     


    안 나오면 안 나오는 거지, 뭐가 걱정이야?

    누가 들으면 엄청난 인재 나신 줄 알겠군.


    일개 말단 대리 하나 잘린다 해도 공장 돌아가는 덴 아무 지장 없네!!

     

     


     

     

     

     

     

     

     

     

     

     

     

     

     

     

     

    마담한테 일금 십이만 원을 선불로 지급하고, 상준은 룸살롱을 나와 거리에 섰다.


    영하의 날카로운 공기가 와이셔츠만 걸친 그를 깔보며 덤벼들지만,

    만취한 상준은 전혀 위협을 느끼지 않는 모양새다.

     


    춤추는 땅과 씨름하며 오 분여를 버티자, 롱코트와 부츠로 몸을 가린 민아가

    그의 코트를 다소곳이 안아 들고 곁에 다가섰다.

     

     

     


    많이 기다리셨죠?

    그러게 추운데 뭣하러 밖엔 나와 있어요, 안에서 기다리지..

     

     

     


    그녀는 상준의 어깨에 코트를 씌워 주고 차도로 나가 택시를 잡는다.

     

     

     


    저.. 아저씨, 카르마 호텔까지만 가 주실래요?

    오빠가 술이 너무 취해서 걸을 수가 없거든요, 죄송해요.

     

     

     


    기사는, 알만도 하다는 표정으로 그를 힐끗 쳐다보고는 말없이 핸들을 움직인다.

     

     

     


    이 분도 못 가서 호텔 앞에 도착한 택시.
    민아가 택시비를 내고 좌석에서 그를 끌어내리다시피 하였다.

     

     

     


    저기.. 오빠, 여기 호텔 앞인데요. 이리 들어가도 괜찮겠어요?

     

     

     


    그녀는 자신의 어깨에 얼굴을 대고 가까스로 서 있는 상준의 귀에 입을 가져가 목청을 높인다.


    귀찮다는 듯 대답 없이 고개만 끄덕이는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민아는 그를 힘겹게 부축하며 호텔 옆 골목으로 들어가, 근처 두세 군데 장급 여관들 중 하나를 선택하고 로비로 들어섰다.


    간단히 수속을 마친 그녀는, 종업원의 도움을 받아 이 층 객실 침대 위에 상준을 눕히는 데까지 성공하였다.

    거의 뻗어 있는 그를 대신하여 모텔비마저 지불한 것은 물론이었다.


    침대 위에 엎어져 있는 그에게서 코트와 바지를 벗겨 옷걸이에 걸고 베개와 이불을 여미어 주는 민아.

    간단히 메모를 하여 머리맡에 놓아둔다.

     

     


    "오빠, 술이 너무 취하셔서 어쩔 수 없었어요.

    언제든 저희 룸살롱에 오셔서 진 양을 찾으시면, 택시비와 여관비를 제외한 나머지 금액은 환불해 드릴게요.

    그럼, 편히 쉬세요~   - 민아."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심한 갈증을 느끼며 잠에서 깬 상준이 스프링처럼 상체를 일으켰다. 새벽 세 시.


    메모지를 집어든 그의 입가에 미소가 흐른다.

     

     


    `초짜는 초짜군. 환불을 해준다니..

    순진한 아가씨 같으니라고..'

     

     

     


    지근거리는 두통을 손가락으로 누르며, 상준은 미니 냉장고에서 생수병을 꺼내어 벌컥벌컥 들이켰다.

    한결 정신이 맑아지는 느낌을 받으며 그는 즉시 룸살롱으로 전화를 걸었다.

     

     

     


    실례지만, 진 민아 씨 부탁합니다.

     

     

     


    마담이 의심이 담긴 목소리로 누구냐고 묻는다.

     

     

     


    아, 좀 전에 진 양하고 같이 외박 나갔던 사람인데, 나

    서비스도 못 받았단 말이오. 그러니, 이리로 다시 오라 전해 줘요!

     

     


    이봐요! 서비스 못 받은 건 댁 사정이고,

    지금 애들 한창 근무 중이라 중간에 빼낼 수도 없어요!

     

     


    돈은 새로 지불할 테니, 화나게 하지 말고 보내라면 보내!

    단골 끊어져 봐야 당신만 손핼 텐데..?

     

     

     


    전화선 너머 마담의 목소리가 갑자기 나긋나긋해진다.

     

     

     


    저어, 손님. 한 시간만 기다려 주시면 안 될까요?

     

     


    좋아, 기다릴 테니 거..

    진 양하고, 한 명 더 보내시오.


    다른 한 명은 아무나 보내도 좋은데 진 양은 꼭 와야 되니까,

    괜히 다른 놈들 찝쩍댄다고 옆길로 새게 하면 재미없을 줄 알아!?

     

     

     

    아유, 별걱정을 다 하셔.

    특별히 모시라고 단단히 일러 놓을 테니깐 걱정 붙들어 매 두세요,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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