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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지(未知)와의 조우월광 프로젝트 (판타지) 2023. 1. 11. 03:17
서기 1999년 11월 26일
온실 효과로 인한 녹녹함을 타고 하늘의 가장자리를 포근히 감싸고 있던 희뿌연 스모그가,
갑자기 내려온 시베리아 기단에 밀려 눈에 띄게 사그라지고 있었다.
마치 대기권으로 접근하여 지구를 노리는 (영화 속) 사악한 외계인의 모함(母艦)처럼,
살을 에는 바람으로 클로킹한 기단은 거대한 모습을 상공에 숨긴 채도시의 골목들 구석구석까지 "타이 파이터"같은 작은 냉기들을 출격시켰다.
차가운 바람에 씻겨 오랜만에 투명해진 하늘에는 별이 - 셀 수 있을 정도로 - 드문드문 빛났고,그들을 다스리는 여왕인양 휘황찬란한 보름달은
그녀의 하얀 얼굴을 뽐내며, 절망에 허덕이는 상준을 유혹하고 있었다.
매스미디어의 그물망으로 지구를 옭아매는 데 성공한 에프엠(F.M.: Free Mason)의 추종자들이
이성(異性)에 관한 맹목적인 호기심과 이성에 대한 맹목적인 갈망을 사악한 에너지로 농축한 지도어언 삼십 년이 지났다.
삼십 년이 흐른 지금,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 전함(戰艦)은그렇게 긁어 모은 "선정성 에너지"를 빔으로 전환한 후 달 표면을 향하여 쏘았다.
이로 말미암아 - 애초에 달이 반사하던 - 순수한 태양빛은 오염되었고,
특히 보름달이 되었을 때오염된 달빛의 음탕한 기운은 최대가 되어 지구상의 남자들을 포획하기에 이르렀다.
오염된 달빛의 주된 표적은, 비교적 순수한 마음을 지닌 (청소년 남성을 포함한) 미혼 남성.
여성을 삶의 동반자이자 사회 생활의 파트너로 여기며,적당한 혼탁을 허용하는 세련된 매너로 여유롭게 여성을 리드하고,
현실적 기반에 사랑을 접합하여 결혼을 계획하고 실행할 줄 아는
유능한 무리에겐, 달빛이란 그저 약 한 봉에 잠재울 수 있는 흔한 감기 바이러스나 다를 바 없었다.
에프엠의 검은 섭리에 적당히 감염되어 면역력을 획득한 이들에게,
"또한 적당히 오염된" 사회가 눈감아 줄 만큼의 행각으로 단련되어노련하고 거뜬하게 문제(?)들을 해결해 내는 사나이들에게,
오염된 달빛은 오히려 (그들이 컨트롤할 수 있는) 달콤한 묘약일 수 있었다.
그러나, 아직은 영악하지 않은 다수의 청소년들과병적인 감수성으로 낭만적 환상을 꿈꾸는 그래서 바보라 불리는 소수의 남자들에게,
그것은 치명적인 돌연변이 바이러스와 같은 것이었다.
상준 역시 그런 바보들 중의 하나였다.
하늘이 내린 숙명인지, 전생의 업인지, 유전인자의 결함인지,아니면 이들 세가지의 오묘한 결합이 원인인지는 확실치 않으나,
자라오면서 그의 성격적 특성은 사회와 끊임없이 부딪쳐 성격적 장애로 확대되었고, 이것은,
본능과 사회성이 적당히 작동하여 이성을 자연스레 사귈 줄 아는 또래들과 달리
여성과의 교제를 지극히 불편하게 하였다.
여성들도 그의 이러한 부자연스러움과 부적절함에 점차 부담을 느꼈고 심지어 짜증을 내기에 이르렀다.
현실이 이러하니 - 진정한 사랑이란 게 뭔지도 모르면서 - "진정한 사랑"을 평생 할 수 없게 될지 모른다는 조급한 생각은수시로 엄습하였고, 어쩌다 맘에 드는 여성과의 만남이 성사되어도,
일회성 만남을 달착지근한 중장기 연애로 반드시 연결해야 한다는 강박감은
그로 하여금 자꾸만 무리수를 두게 하였다.
그리고
이성을 대하는 그 나름의 패턴이 시간이 흐를수록 이상한 방향으로 정형화되어 감을
그는 속절없이 체감하여야만 했다. 그것이 불길한 징조인 지에 대한 판단은 유보한 채..
자잘한 개인적 결함들이 그때그때 이합집산하며 야기하는모든 떨떠름한 상황들과 난감한 결과들은,
현실 앞에 오롯이 서있는 너 하나만의 책임이 결코 아니란다.
"성격 이전(以前)의 문제"에서부터 우주의 섭리가 근원적으로 작용한 때문인데,현재 너의 꼬질꼬질한 삶은
네 무수한 미래 비전(VISION)들 가운데 일부가 겹쳐져 현현(顯現)하는 것일 뿐.
종적인 "너의 전생"들과 횡적인 "너의 분신"들이
씨줄과 날줄처럼 엮이어 펼치고 있는, 비전들일지니..
그들은, 최초의 너로부터 시작하여
이 순간에도 다차원 시공으로 무한하게 분열하고 증식해 가는 중이란다.
구름 위에 앉아 낚시질하는 이따위 소릴 누가 지껄였냐고?
"팽창 우주" 밖에서 날아온 친구들이 얼마 전에 조심스레 귀띔해 준, 위대한 비밀들 가운데 하나라고 하네.
설마 천기누설은 아닐 테지..
설령 전지전능한 차원에선 저절로 풀리는 위대한 우주적 실마리의 한 부분일지라도,이곳의 내가 스스로 노력하여 달라지지 않는 이상 아무것도 변하는 것은 없다고 한다.
이 얼마나, 무미건조한 교과서적 결론인가.
속이 뻥 뚫리는 기발함과는 거리가 멀어 답답하기 짝이 없는 충고를친구랍시고 해주는, 미지의 존재들.
숨 막히는 실상(實狀)을 쪼개고 들어온 "친구"의 실존이숨통을 틔어 주기는커녕 생경한 우주만큼의 부피로 그를 짓눌렀다.
"그들에게 절대적으로 중요한" 상준을 변화시키기 위해 적절한 시점을 꾸준히 노리다가이제서야 접촉에 성공한 것이라는데,
그를 소중히 여기는 (거의 전지전능한) 친구들의 등장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전담 마크 하듯 그에게 밀착하여 절망과 허무 그리고 죽음과 공포 쪽으로 그를 일관되게 밀어붙이는
(속도를 늦추지 않고 도리어 박차를 가하는) 뻔뻔한 "어둠 속 세력"이
그의 인생 초기부터 있어왔다더라. 그들이 준 정보에 따르면..
그 존재가 바로 에프엠이며,인간으로 하여금 줄기차게 핑계를 만들어 타인과 사회를 탓하게 만들고 파멸의 순간까지 변명을 늘어놓게 하는 것도
그 망할 놈의 에프엠이라고, 친구는 일러 주었다.
그리고, 특이하게 (그에게 적합한 방식으로) 그를 괴롭히는 "상준의 전담 에프엠"은상준을 둘러싼 우주와 "그의 내면"을 안팎으로 동시에 차지한 사특한 집합의식이자
그의 아우라에 집적하여 코드화한 "영혼의 부호(符號)"이다,라고도 하였다.
에프엠을 물리치는 길은 오직"생각하므로 존재하는 그"가 그러한 "존재함의 패턴"을 스스로 바꾸고 변화하는 것이며,
이 길만이 유일하게,
("그의 우주"를 잠식하려고 애쓰는) 거대한 음모를 분쇄하기 위한출발점이자 동시에 궁극적인 방법이라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상준의 무엇이 변화되어야 한다는 건지.
또, 변화하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하라는 것인지..
추상성의 베일도 아직 벗지 않은 "그의 중대한 임무(?)"가 대체 무엇이란 말이며그런 게 진정 있기나 한 건지...
막연함이 증폭되어 혼돈의 수렁으로 빠져드는 그에게, 친구들은곧 알게 될 터이니 조급해하지 말라고만 하였다.
느긋하게.. 모든 것을 다 안다는 듯이...
그렇다면..친구들은 다음과 같은 사실도 알고 있을까.
막연한 혼란보다 더 불안하고 에프엠의 정체보다 더 무서운 것이 실은,자칭 신성하고 초월적인 친구 본인들의 갑작스러운 출현이며,
이보다 더욱 부담스럽고 절망적인 것은,
그들이 도와주러 친히 왕림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변화시키는" 결정적 역할이 주인인 상준의 몫으로만 할당되어 있다는,
빼도 박도 못하는 진리가 그를 꽁꽁 결박하여 꼼짝할 수 없게 만든다는 사실임을!
이야말로, 에프엠에 포위되어 에프엠적으로 사고(思考)하도록 길들여진 그에겐에프엠이 가져다주는 절망의 수십 수백 배일 수 있음을,
친구는 정녕 인지하고나 있을까..당연히 알고는 있겠지.
자신들도 거쳐온 진화(進化)의 도상(途上) 까마득한 어느 지점(地點)에 그가 정확히 위치하고 있으니.
그럼에도 다스한 위로의 한마디 없이 모르는 척하는 것은,
(그들이 섬기는 무궁한 섭리 조화의 육화한 존재) "궁극의 상준"과 합일할 무한 수의 과거 자아들 중
깨달음에 역설적으로 근접해가는 하나이며
고로 "궁극의 그"의 영원한 무결(無缺)을 유지할 성스러운 재료로 쓰일 상준이기에,
일절 타협 없는 추상같은 우주심(心)으로 그를 담금질하려는 의도가 아닐는지.
그의 수많은 생애들 가운데 이번이 해탈의 여정을 갈무리하는 단계라서
이렇듯 혼란의 극치가 난동하는 무시무시한 세상으로 그가 내쳐진 거라면,
조금만 더 참고 분발하라는 응원의 채찍을 가하는 것인지도..
잠재의식의 차원으로 들어가야 단서가 잡힐까 말까 한 "성격의 복잡성" 앞에서여러 가지 요인들이 앞다투어 (그러한 성격을 형성한) 자신들의 공(功)을 자랑하겠지만, 그중에서
자라온 환경과 부모의 양육 방식 또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을 무시할 순 없으리라.
덜 자란 어른의 이기적인 고집과 융통성 없음이"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란 합의된 명제(이 역시 에프엠적이지만..)를 무색하게 하고
고립의 길을 자처한 것은, 그렇다 치고,
(에프엠의 고전적 분열 방식인)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골수에 묻어 아버지를 지독히 원망하는이른바 신화적 집단 무의식은 언제부터 그를 노골적으로 쫓아다니며 괴롭히게 된 것일까.
애정결핍의 핏발 선 눈알을 부라리며, 만나는 여자마다 애정을 갈구하던 조급함이,여자들의 경멸과 비협조를 핑계로 변태의 탈을 뒤집어쓰게 된 것은, 또 언제부터인가.
고립과 무능의 늪에 서서히 가라앉아 가는 것도 모르고,남자의 갖춤에 집착하는 여성들의 심리적 패턴에만 분노하여 은근히 희생양임을 자처하는 자의식은,
그의 갈구하는 정신에서 비롯된 것인가
그의 상처 입은 영혼으로 말미암은 것인가.
이도 저도 아니면,불안한 미래에 시달려 경기(驚氣)를 일으키다 노화하고 마는 "세포들의 총화(總和)"가
자포자기한 의식(意識)을 대신하여 최후까지 발악하는,
생존 본능의 찌꺼기일 뿐인가.
잘 나가는 인간이 되기 위한 의지와 노력이 (그 의지의 발원 양상 또한 지극히 에프엠적임은 차치하고) 여실하게 부족함을,숨을 헐떡이며 인정하는 시기가 오면, 한동안은
엘리트의 능력치에 한참 못 미치는 본인의 생래적 한계를 절감하고 고뇌하다가,
"자신감 상실이 부추기는" 돌발 행동에 스스로 실망하고 주위의 기대를 저버렸다는 자책에 빠져 좌절하다가,
문득, "가당찮은 욕심이 환상이었음"을 깨닫고주제와 분수를 파악하여 자신을 웬만큼 놓음과 동시에 한편으론
"수치심과 자격지심, 자기모멸 등이 축조한" 지옥행을 평생 예약하는 순간부터는,
모체의 자궁으로 영원히 회귀하고픈 "퇴행에의 강박"이 날마다 찾아와 그를 괴롭히기 시작할 텐데,
20대 초반의 (촉망받는) 핸섬한 청년이 십 년도 지나지 않아 심신불안의 늙은이로 조로(早老)할 텐데,
기이하게 춤추는 현실의 가혹한 희롱을
"상준의 시간"은 버텨낼 수 있을까.
꿈엔들 짐작하지 못했을 "친구들의 방문"이
"그의 우주"들에 번진 세기말적 절망을 보여 주고
"그의 비극"을 넘어서는 초(超)우주적 절망을 뇌리에 심어 준 덕택으로,
"그의 존재함이 발산하는 지옥"쯤은 충분히 숨어서 묻어갈, 도피처를 그가 찾은 셈이니,
천둥 번개를 무서워하면서도 초월적인 공포라 즐겁게 호들갑 떠는 철부지들처럼
당분간은, 세상 위를 한가하게 부유(浮游)하는 고차원 위기감에 더부살이하며,
"감당하기 벅차 체감이 어려운" 초(超)시간적 두려움을 여유롭게 관찰하며,
겨우 그를 괴롭히는 수준의 비루한 개인적 고난이란 게 기실 얼마나 하찮은 것인가를 느껴가며,
상준의 현재는
"개인사(史)를 박해하는 현실"을 버틸 수 있지 않을까.
당분간은 말이다.
상준의 초라해진 도덕이 간신히 고개 들어, 위축된 양심을 펴고안락한 갱생을 희망하며, 친구들의 엄중한 경고에 귀를 기울이는 것과는 별개로,
음흉한 달빛은 밤마다
그의 엉뚱한 퇴행을 줄기차게 촉진하였으니..
휴면(休眠)에 적합한 모체(母體)를 찾기 위해 그는 애먼 (젊고 어린) 여성들을 사냥(?)하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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