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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 과거라 불리는 평행우주
    월광 프로젝트 (판타지) 2023. 2. 16. 18:06

     

     

     

     

     

     

     

     

     

     

     

     

     

     

     

    그럼 이번엔,

    "자네가 살아온 과거"의 어느 한 시점으로 이동해서

    음탕귀들이 자네의 불순한 상념에 어떻게 개입하여 저열한 난동을 부려왔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볼까.


    다시 눈을 감게.

     



    당신 덕분에 드디어 정통 시간 여행을 떠날 수 있겠군요.

     



    가까운 과거에서부터 자네 생의 초기에 이르기까지,

    자네가 현재의 지경에 이르도록, 집요하게 작용해 온 에프엠의 종적인 전개 궤도를 역추적하여,

    급속한 오염의 치명적인 원인을 제공한 몇몇 사건 시공들 중 하나로 이동해 보겠네.


    이 또한,

    자네 삶의 4차원적 궤적을 방향타 삼아 평행우주를 찾아 나서는 여행이니 만큼,

    자네가 경험한 "상상 미래계"로의 이동과 별반 차이가 없다네.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시달리며 눈 감기를 주저하자 친구는,

    상준이 마음을 가라앉히고 여유를 되찾을 때까지, 침묵으로 기다려 주었다.

     

     

     

     




    자네의 안정된 의식이 스스로 결정을 내리기 전엔

    우리의 기기는 작동하지 않을 걸세.

    우리와 자네의 우호적인 정신 감응이 제어 장치의 스타트 키(KEY) 역할을 하기 때문이지.

     


    자네가 여기 극단적인 사건계에 남아서 에프엠이 기대하는 우주적 교란을 극대화하진 않으리라

    확신하네만, 어쨌거나 선택은 자네에게 달려있네.

     

    여기에 남는다는 것은 현재계의 자네가 실종되는 것을 의미하나

    뭐 그렇다 해서 자네에게 엄청난 비극을 선사하는 것은 아니네.

    주인공을 잃은 현실은 단지 밀도가 낮아져 - 자네의 분신들이 활보하는 - 무수한 상대성 "사념 우주"들 중 하나가 될 뿐..

     


    에프엠의 업장을 벗고 진화의 주체가 되기 위한 자연스러운 과정을 따를 것인지, 아니면

    현실로 돌아와 에프엠의 감염으로 망가져 가는 영혼을 방치한 채 파멸의 행로 상에 다시금 발을 들여놓을 것인지..

    선택하게나.

     

     



    선택의 여지가 없는 조건을 제시하는군요.


    이미 내 마음을 파악하였을 테니 지체 말고 날 데려다줘요, 친구.

     

     

     

     




    상준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눈을 감았고

    친구의 옅은 웃음소리가 포근히 그를 안아 올렸다.

     

     

     

     

     

     

     



    '과거의 실재했던 사건들로 생동하는 평행우주가,

    영원무궁한 복수(複數) 시공들의 지도(地圖) 어디쯤에 위치하는지,

    대기권 아래 갇힌 3차원 의식이 어찌 가늠할 수 있으랴.


    그래도 명색이 평행우주 여행(?)자인데 대략이나마 이동 패턴을 파악하고는 있어야겠지.


    머리에 쥐가 날 정도로 상상의 나래를 펴 보건대, 아마도

    양배추 잎들이 겹쳐져 있듯 끝없이 포개어진 "다차원의 소프트한 시공 구조" 안에

    비상 통로들이 기묘하게 얽혀 있는 것은 아닐까. 더군다나

    그 통로들 자체가 살아서 꿈틀대는 일종의 의식체라면..


    그것들이 친구의 명령 한 마디에 나를 달랑 업어

    이 우주에서 저 우주로 가볍게 옮겨놓는 것은 아닐런지..

     

    그야말로

    아이 손 잡고 이웃집 나들이 하는 식이랄까..'

     

     

     

     



    후후, 고민하지 말게. 자연스럽게 깨달아질 테니..

     



    그리 답변하실 것 같아 첨부터 묻지 않은 겁니다.

     

    그리고 웬만하면, 텔레파시 대화법의 에티켓은 좀 지켜 주시죠.

    저도 혼자 생각하고 싶을 때가 있다구요!

     



    허허.. 알았네 알았어.

     

    자네, 짧은 시간에 많이 발전했는 걸..

    나한테 훈계를 다 하고 말이야.

     

     

     

     




    과거에 일어났던 실재 사건들이 활성화된 계이기 때문에

    기억 소자들의 밀도가 강하여 파장이 농밀하고, 이로 인해,

    웜홀의 격자 변이가, 횡적인 상상계로 이어진 그것에 비해 상대적으로 과격하므로,

    웜홀 확장 시간이 길어져 통과 완료가 다소 지연될 수도 있음을

    친구는 시공 상승 중에 알려주었다.




     

     

     

     

     

     

     

     

     

     

     

     

     

    어젯밤 열한 시부터 오늘 새벽 네 시경까지, 컴퓨터 자판기를 신나게 두들겨댔다.


    쏟아지는 졸음을 어금니로 씹어가며 공 들인 보람이 있어

    영계 한 마리를 어렵사리 낚을 수 있었다.

     

     

     

     

     

    '만나봐야 알겠지만, 자기 말로는 스무 살 꽃다운 처녀란다.

    그리고 현재 기분이 영 말씀이 아니시란다.'

     

     




    "희롱감이 될 대상"의 연령을 대폭 낮춘 이후로 첫 번째 희생물이 걸려든 셈이라,

    다 잡은 고기 도로 물속에 빠뜨릴까 조심조심 낚싯줄을 감는다.


    삼십 대 초반의 별 볼 일 없는 백수가 하룻밤 사이 스물다섯 명문대생 오빠로 둔갑하여,

    순진(?)한 처녀한테 데이트하자고 조른다.

     

     

     

     

     

    '감언이설로 스리슬쩍 비위를 맞추어 가며

    기분 꿀꿀한 사람끼리 영화나 한 편 땡기자고 하니깐

    "이게 웬 떡!"이냔 식으로 단번에 오케이란다.

     


    짜식..

    오빠들 등치는 일에 재미 붙인 밥맛 없는 콧대만 아니길 바란다.


    바보처럼 순진하고 물렁해서, 생전 처음 겪어보는 "남자의 끈적이는 유혹" 앞에 맥없이 무너지는 숙맥이거나, 아니면

    얻어먹은 만큼 화끈하게 보시할 줄 아는 깔끔한 세미프로이거나, 부디 둘 중의 하나이길..

     

    어설프게 접근하는 어정쩡한 초보 늑대들의 껍데기를 홀라당 벗겨 기분 전환만 실컷 한 다음

    끝끝내 - 줄 건 주지 않고 - 토껴 버리는 얌체 숙녀(?)라면,

    나도 앉아서 멍청히 당하고 있진 않으리.'

     

     




    통신으로 만나는 여자들은 대개

    본인들의 상상 초월 기괴한 몰골에도 자신감을 가지는 강심장들이었기에,

    오늘 만날 미영이 역시 이쁘고 날씬한 거랑은 전연 상관없으리라, 지레짐작하고 일찌감치 마음을 비웠다.

    (그 애 스스로도 자기가 어글리 페이스라 강조함으로써 남자에게 일말의 기대감조차 허용하지 않은 것은 물론이다.)

     

     

     



    '20대 중후반의 약삭빠른 여자를 만나려 할 때 느껴지는 막연한 부담감이나,

    거의 엽기 수준의 추녀를 적당히 유혹해야 하는 경우

    감정을 숨기거나 조절해야 하는 신경 중추가 망가져 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신기하리 만큼 감쪽같이 사라지고,

    설익은 소녀에게 마음껏 수작을 걸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 가슴이 방망이질하는 건 왜일까.


    로리타(?)에 환장하는 말종 변태의 끼가, 나란 놈한테도 있었던가 재수 없게..


    스무 살이라는 프리미엄이 이리도 대단한 것이었나.


    아무리 빼어난(?) 박색이라도 어린 여자라면 귀엽게 느껴지니..

     

    어지간한 중증인가.



    저녁 7시 한성 극장 옆 돛대리아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 미영이를 상상하니,

    하루 종일 기분이 들떠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다.


    더군다나 짧은 치마를 입고 나온단다.

    드럼통 허리에다 살진 암퇘지 뒷다리 같은 다리일지라도 미니스커트만 걸쳤다 하면

    충분히 껄떡댈 수 있는,

    서른 살 물오른 늑대를 만나러 나오면서 말이야, 흐흐흐..


     

     

     

     

     



    '단발머리에 통통하고 동글동글한 얼굴이 어디 있을까.


    위엔 흰색 반팔 티, 아래는 빨간색 체크무늬 미니스커트랬지?!

    그렇게만 입고 나온다면야 금방 눈에 띌 텐데..

     

    잘 안 보이네.

    요 깜찍한 녀석, 감히 이 오빠를 바람 맞히는 건 아니겠지.


    적당히 하얀 피부에 코 주위는 약간의 주근깨라.

     

    뭐야, 벌써 7시 30분이 넘었잖아!'

     

     




    돛대리아 상점 내부와 가게 앞 주변을 이 잡듯 뒤져 봐도,

    미영이같이 생긴 여자애는 눈에 띄지 않는다.

     

     

     



    '이런, 개 같은..!

     

    밥까지 굶고 나왔건만..

    내 이걸 그냥!'

     

     

     



    실망이 역력한 표정으로 상준은 한성 극장의 간판을 올려다본다.


    비키니 차림의 글래머러스한 금발 미녀가 비스듬히 누워 교태를 부리며,

    갖은 똥폼을 잡고 권총을 허공에 겨누고 있는 제임스 본드의

    다리에 매달려 있다.

     

     

     



    저기..

    준이 오빠..?

     

     

     



    등 뒤에서, 앳된 소녀의 목소리라 하기엔 다소 낮은

    보이시한 음성이 차분하게 어깨를 넘어온다.

     

     

     



    '그럼 그렇지.

    하늘(?)이 도우시는군.'

     

     



    심호흡과 함께 재차 마음을 비우고 천천히 돌아선다.

     

     



    '이야후! 의왼데!!

    쭈그렁 박색일 줄 알았는데..'

     

     



    눈을 한없이 낮춘 덕도 있긴 하나,

    그동안 경험한 (그로테스크한 외모의) 여인들에 비한다면 미인이라 칭하기에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의

    제법 귀여운 통통 소녀가

    전형적인 풋과일의 이미지로 그의 앞에 서 있는 것 아닌가.

     

     



    '그래 바로 이거야. 이 짧은 치마..

     

    이래서 여름은 좋은 계절이야. 아, 저 싱그러운 맨살..


    적당히 띵띵한 맨다리가, 늘씬한 각선미보다 차라리 더 섹시하군.

    남자의 주책맞은 손길을 은근히 기대할

    저 싱싱한 허벅지를 보라..'


     

     

     

     

     

     

     

     

     

     

     

     

     

     



    한낮의 작열하는 태양이 대도시 한복판의 아스팔트를 프라이팬처럼 후끈 달구어 놓은 덕에,

    "바글대는 인파가 토해 낸 이산화탄소"만으로도 메스꺼움을 호소할 지경인 초저녁 번화가는,

    미지근해진 복사열의 느끼한 추파마저 견뎌야 하는 이중고(二重苦)로

    비틀거리고 있었다.

     

     



    친구의 지시를 받아 눈을 뜬 상준이

    왕복 10차선의 대로 위에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 있는 자신을 채 인지하기도 전에,

    전방 10여 미터 앞에서는

    과거로 무사 귀환한 우주 미아한테 환영 인사라도 하려는 양

    대형 버스 한 대가 경적도 울리지 않고 무서운 속도로 돌진해 오고 있다.


    어, 어..

     

    당황할 새도 없는 찰나적 순간에 버스는,

    두 팔을 들어 얼굴을 가리고 제풀에 뒤로 넘어지는 사내의 어정쩡한 동작을 조롱하며

    그대로 깔아뭉개고 달아나 버렸다.

     


    혼비백산 기절 직전의 상준이 본능적으로 몸을 굴리는 (한참 뒤늦은) 위기 모면(?)의 와중에도,

    서너 대의 크고 작은 차들은 연달아 아주 부드럽게(?) 그를 들이받고 있었다.



    졸지에 엄청난 교통사고의 희생자가 되어 버린 그가 간신히 인도로 올라와

    전율하는 몸을 가로수에 기대고 가쁜 숨을 몰아쉬는 동안에도,

    후덥지근한 열기에 온종일 시달려 버들가지처럼 늘어진 행인들은

    아무런 관심도 내색도 없는 무표정으로 저마다 가던 길만 열심히 오가고 있었다.

     




    '옳거니!

    이번에도 친구가 나를 투명인간으로 만들어 놓은 모양이군.

     

    그래도 그렇지

    하필 찻길 복판에 떨구어 놓을 게 뭐람.

    여태껏 별다른 사고 없이 잘 지내왔는데..


    나 원, 정말이지

    시간 여행 공짜로 하는 대가 호되게 치르는군,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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