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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귀월광 프로젝트 (판타지) 2023. 3. 10. 16:07
밤 10시가 넘어서 극장을 나오는 세 사람.
영화 재밌었니?
네, 신났어요!
007 영화가 다 그렇지 뭐..미영아, 오빠 팔짱 끼기로 했으면 꽉 좀 끼어 봐라! 밋밋하긴..
오빤 덥지 않아요? 난 더워 죽겠는데..
야, 오늘 같은 날 데이트 기분 팍팍 내야지 언제 내보겠냐.
그건 그래..
살갑게 찰싹 달라붙는 미영의 제법 볼륨 있는 가슴이 팔꿈치에 와 닿는다.
'으휴, 죽겠구만. 요 말랑한 감촉..빨랑 만져 봐야지.'
유리야, 너도 이리 와서 이 오빠 팔짱 좀 껴 보렴.
저녁 사주고 영화까지 보여 줬는데, 우리가 이 정도 서비스 못해주겠니.
싫어, 얘!좋으면 너나 실컷 껴라.
쟤는 하여간 숫기 없어 탈이라니깐..
괜찮아. 유리 좋을 대로 해. 난 그냥 미영이랑 사이좋게 걸을게.
이번엔 그녀의 절구통 비스름한 허리를 대뜸 감아 보았다.그러자 그녀가, 아랫배를 더듬는 상준의 손을 잡아 살며시 뿌리쳤다.
오빤 다 좋은데, 너무 응큼한 것 같애.아까 극장 안에서도 오빠 손 땜에 많이 신경 쓰였어여.
그랬어? 미안.난 그저 미영이가 이쁘고 사랑스러워서.. 헤헤.
그나저나, 우리 이렇게 헤어지는 거냐? 좀 섭섭한데?아직 열 시밖에 안 됐잖아. 시원하게 맥주나 한 잔씩 마시고 들어가자.
그것도 괜찮은 생각이네요.
유리야, 니 생각은 어떠니?우리 오랜만에 나왔는데 간단히 한 잔 빨고 들어갈까나?
그녀는 돌아보며, 두세 발짝 떨어져 터벅터벅 따라오던 유리에게 물었다.
너 미쳤니?!지금도 넘 늦었어, 빨랑 들어가야지!
'저, 저런..다 된 밥에 재 뿌리는 것 좀 보소. 못 생긴 것들이 꼭 저리 초를 친다니까.
니미럴, 말리는 시누이가 더 어쩐다고 유리보다 미영이 요년이 더 얄밉잖아. 이러려고 친구 델꼬 나온 거 아냐?남자를 한껏 껄떡대게 만들어 단물만 쪽쪽 빨아먹은 다음에,
그날의 "파투"를 전담할 "사태 수습용"으로 유리를 이용하는 지도 모르지.
만일 그러하다면, 더더욱 널 놓칠 순 없다.
헛물만 켜고 호락호락 물러나는 얼뜨기들을 몇 명 상대해 본 모양인데,이 전상준, 그런 미련한 족속과는 질적으로 다르다구!
미영이, 너 오늘 임자 만난 줄 알고나 있어라.'
그렇지? 아무래도 오늘은 좀 늦었지? (꼴에 연기하고 있네.)
인마, 늦긴 뭐가 늦어!한여름 밤은 길기만 하고만..
오빠, 다음에 한 번 더 만나지 모..그날은 꼭 술 사줘야 해요?!
'내가 그 말을 믿을 줄 아니?그리고 널 다시 만나 정식으로 술판 벌여 줄 돈과 시간이 있으면
차라리 그걸로 다른 여잘 꼬시겠다.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올릴 것!
이게 오빠의 - 너처럼 폭탄 엇비슷한 - 여자 따먹기 제1 수칙이다 이거야.'
정 그렇다면 하는 수 없지.근처 편의점에서 캔맥주랑 과자 사 가지고 어디 조용한 데 가서 얘기나 더 나누자.
딱 한 시간 아니 삼십 분만!! 오케이??
오빠가 집까지 잘 모셔 줄 테니 걱정은 붙들어 매 놓고..
12시 전까진 칼같이 대문 앞에 도착하도록 해줄게, 응? 미영아아..
그럴까, 그럼? (옳지, 착하지 우리 미영이.)
난 먼저 들어갈게. 우리 집 귀가 시각 엄격한 거 알잖니.오늘 이미 한 시간 오바야.
'허이고, 유리 아버님 걱정도 팔자셔.따님 얼굴이 무기라 괜한 걱정 하실 필요 없다고요!
기특한 녀석,암, 이렇게 나와야지. 붙잡지 않을 테니 빨리 사라져 다오.'
그럴래? 들어가, 그럼..낼 전화할게.
'짜식들.. 내가 과민했나.이다지도 순진하고 멍청한 애들인 것을..
흐흐, 어쨌든 한시름 놓았군.'
오빠가, 유리, 차 타는 데까지 바래다줄까?
됐어요, 코앞이 지하철 역인 걸요.미영이 술 너무 많이 먹이지 마세여!?
캔 맥주 하난데 뭘..음료수나 다름없지.
그것도 얘한텐 많은 거예요.
그래?미영아, 너 술 그렇게 약해?
아녜요,자기 혼자 먼저 들어가려니까 괜히 심통 나서 저런 소릴 하는 거예요.
얘!술도 마시기 전에 벌써 취했니? 기껏 생각해 주니깐..
이런 널 두고 들어가려니 걱정된다, 걱정돼, 기집애야!
골고다 공원 옆 으슥한 골목.
고층 빌딩 뒷문 앞 호젓한 돌계단 위에 두 사람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어때, 장소 잘 잡았지? 시끄러운 차 소리도 안 들리고..컴컴하긴 해도 오히려 아늑하잖니?
응. 약간 무섭긴 하지만..오빠가 지켜줄 텐데 뭐..
그렇지?
당연하지!오빠 쌈 잘해.
근데, 왠지 오빠가 더 무서워지려고 하는 건 나만의 착각일까? 호호..
크크큭..왜, 오빠가 귀신으로라도 보이냐? 미영이를 잡아먹을..
차라리 귀신이면 낫게?
................???
후후, 농담.우리 건배하자.
그래.캬아, 맥주 맛 좋다!
다음번엔 오빠가 깔쌈한 곳으로 꼭 데려가 줄게. 약속하마.
꼭이야?! 약속! (손가락을 내미는 미영.)하지만 지금도 그닥 나쁘진 않다. 분위기 괜찮아.
미영이..오빠 좋아?
이잉, 모올라..
치이.. 좋으면서...
과자를 입에 넣고 오물거리는 입술이 귀여우면서도 육감적이다.
'장소 설정 기막히군. 다음에도 종종 이곳을 이용해야지.'
침 넘어가는 소리가 검은 정적을 방해할까 봐 (그래서 영미의 경계심을 부추길까 봐)일부러 헛기침을 하면서 그녀의 좁은 어깨에 넌지시 팔을 둘렀다. 그리고 다른 손은,
그녀 무릎 위에 놓인 과자 봉지로 향하는 척하다가 부근의 맨살에 닿았다.
미영이는 정말이지 매력적이야. 오빠, 미영이 볼에다 뽀뽀하고 싶은데..그래도 돼?
거짓말!속으론 못생겼다 흉보고 있지? 다 알아.
상준은 촉이 제시하는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최대한 그녀와 밀착하여 앉았다.그의 둔부가 자석처럼 그녀의 그것에 다가가 붙었다.
남들이 뭐라 하던, 내 눈엔 미영이가 예쁘게만 보이는 걸.넌 내 타입이야.
자아 미영이, 눈 좀 감아 봐.
싫어!오빠, 나쁜 짓 하려고 그러지?!
야! 나쁜 짓 하려고 맘먹었으면 벌써 하고도 남았겠다.넌 아직도 오빨 그런 인간으로밖에 안 보냐?
섭섭하다, 섭섭해!사랑스러운 미영이한테 오빠의 마음을 선사하고플 따름이야.
그러니 눈 감아, 으응??
알았쪄. 다 큰 아저씨가 삐치긴..뽀뽀만이다!? 다른 짓 하면 안 돼?!
턱을 쳐들고 스르르 눈을 감아 버리는 그녀였다.
'이 아이는 정녕 순진한 걸까.남자의 속셈을 눈곱만치도 파악하지 못하는 바보라서 이러는 걸까.
그럴 리 없겠지. 요렇게 발칙한 여우가 늑대의 본성을 모를 리 없지.
이곳까지 순순히 따라온 걸 보면 아무래도 내가 맘에 드는 모양이야.애틋한 사랑의 감정이 싹텄다기보단, 성적 호기심이 충만한 어린 암컷으로서
그냥 나의 남성에 매력을 느끼고 있을 뿐이겠지.
내가 바라는 바가 바로 그거야.늑대의 저돌적 대시에 일순간 경계가 허물어져 내리는 "못생긴 여인의 왕성한 호기심"!
흐후, 이제부터 내가 너의 당돌한 호기심을 실컷 충족시켜 주마.'
드디어 입술과 입술이 닿아, 두 남녀의 내부는 하나로 이어졌다.
'아.. 키스는 언제나 짜릿하단 말이야. 슬슬 본격적으로 시작해 볼까.
욘석 봐라, 이거 보통 솜씨가 아닌데? 혀 굴리는 것 보게?
요즘 여자들 참 문제 많군. 말세야, 말세..'
지능적인 듯하지만 결국은 어수룩한 치한인 주제에, 별 걱정을 다 하고 있네요.
나란 놈이 요렇게 능글맞은 속물인 줄은 몰랐습니다. 아니 알고 있었어도이처럼 객관적 시선에서 남 보듯 바라보니 참 새삼스럽네요. 정말 못 봐 주겠습니다.
음흉한 눈빛 하며 느끼한 말투..
맛 간 변태가 따로 없군요. 욕지기가 날 것 같아요.
새천년의 거리를 활보할 원조교제 소녀들에 비하면 저 아이는 요조숙녀나 다름없네.
물질 만능 주의에 빠져 있다는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98년도의 그녀는 아직 애송이 초보였지.호기심으로만 무장한 아마추어라고나 할까.
그녀의 (절반만 분출된) 잠재된 허영심은 "하류 문화의 배설물에 오염된 시간"을 타고 삭을 대로 삭아,5, 6년 뒤에는 "몸을 파는 소녀들의 극단적 집합 의식"과 합류하게 되네.
이런 박색이 원조 교제를 하게 된다고요?
치마만 둘렀다 하면 껄떡거리고 달려드는 자네 같은 혈기방장한 수컷들 때문이라 봐야겠지? 인간이기를 포기한..
자네의 생각 없는 일탈적 행위가 그녀의 무의식을 "트리거 사념의 임계치"로 급격히 몰아가고 있었던 거야.
돈을 위해 몸을 내던지는 카미카제식 인스턴트 매춘이 "타락한 주류 문화"에 편입하기 위한, 트리거 말일세."달빛 음모"의 파급 효과를 지금이라도 실감하기 바라네.
과자의 고소함이 가득 밴 미영의 입 안을, 혀로 열심히 닦아 주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등골이 오싹해짐을 상준은 가슴이 시리도록 느껴야 했다.
아직 잠잠해지기엔 이른 도로변의 번잡함이화려한 네온사인들의 버무려진 불빛을 후미진 이곳까지 억지로 쑤셔 넣고 있긴 했으나,
대낮에도 볕이 안 들어 꽤나 을씨년스러운 고층 빌딩 후면의 회색 골목을
끈적한 어둠에서 건져내기엔 역부족이었다.
환청인가.바로 등 뒤에서 부스럭거리는 인기척이 들린다.
차도에서 여기까진 적어도 삼십여 미터 거리인데, 신경이 날카로워진 그가 발자국 소리를 놓쳤을 린 없고..그렇다면
누군가 발소리를 최대한 죽여가며 슬금슬금 그에게로 다가왔단 말인가.
오빠, 왜 그래?오빠 키스 실력 이것밖에 안 돼?!
야, 키스고 나발이고 지금 내 뒤에 누구.. 와 있지!?
오긴 누가 왔다고 그래?
목을 빼고 골목 입구 쪽을 두리번두리번 살피던 미영이, 이상하다는 듯 상준을 쳐다본다.
맞아요!
저 때 당시 왠지 모르게 머리털이 쭈뼛 솟는 것이, 전신에 소름이 쫘악 끼쳤었습니다. 뭔 일이 일어나진 않았지만..지금 회상해 보면, 단순 착각이라 하기엔 참으로 수상쩍은 기류가 그 주변에 흘렀던 것 같습니다.
일종의 죄의식으로 인한 과민반응이었을까요?
지금부터 각별히 주의하여 이곳 현장을 주시하기 바라네.
웜홀 이동 시의 신체 변환 과정상에서 에너지 진폭을 4차원 레벨보다 조금 더 높여음탕 귀를 볼 수 있는 영체 수준으로 세포를 활성화하였으니,
부디 놀라지 말고 놈의 양태와 행동을 면밀히 관찰하게나.
참고로,
놈 또한 영적 존재이긴 하나 저급한 정령이기 때문에 고급령 레벨의 자네를 감지하진 못해.
그러니 겁먹지 말고 침착하게.
그때,미영의 뒤에서 (돌계단 측면의 난간 부근에서) 시커먼 "제3의 그림자"가 빠르게 일렁이며 점차 커지고 있었다.
'저.. 저건 또 뭐야!가로등도 없는 곳에 저토록 진한 그림자는..
그림자가 혼자 살아서 움직이잖아!'
그의 몸에 난 솜털 하나까지 전율하기 시작하였다.귓속에선 윙윙거리는 소음이 연달아 고막을 할퀴었다.
그 순간, 신체 내부에서 이상한 변화가 느껴졌다.
저 꿈틀대는 그림자 비슷한 것을 향해 세포들이 일렬로 정렬하는 느낌이었다.
야간 투시경을 쓴 것처럼 눈앞이 생경해지더니, 붉은 기운이 섞여 어른거리는 그것이 이내 포착되었다.
그림자 괴물이, 엉큼한 두 남녀를 향하여 우람한 럭비 선수처럼 돌진해 오고 있었다.
분명 엄청난 속도로 달려드는 것 같은데 (날아오는 것인지도..)관찰자 상준에게는, 이런 급박한 상황이
"정지된 시간 속에서 느릿느릿 펼쳐지는" 슬로 모션과 다를 바 없었다.
마치 물속으로 번져가는 검은 잉크와도 같은 광경이랄까..
괴물(?)은 드디어 정체를 선명하게 드러내었고,또렷이 보이는 이목구비에 하마터면 외마디 비명을 지를 뻔하였다.
툭 튀어나온 핏발 선 눈알.뾰족하게 솟은 귀와 그 밑까지 찢어진 입 그리고 역시 뾰족한 송곳니.
뱀의 혀처럼 날름거리는 (핏속에 막 담갔다 빼낸 듯한) 기다란 혓바닥.
태국의 전통 무용수들이 쓰는 탈의 형상과도 유사한 흉측한 몰골이,어느덧 붉게 물든 배경을 뚫고 클로즈업되었다.
더욱 경악스러운 건,
일본 도깨비 같은 무시무시한 그 얼굴이 어딘가 낯설지 않다는 점이다.
괴물은 누군가를 분명 닮아 있었다.
'아니, 저 놈한테서 왜 내가 보이는 거지?기분 존나게 더럽군..!'
(공포와 혐오가 뒤죽박죽 곤죽이 된) 역겨운 불쾌감이 주위를 비릿하게 적신다 싶더니만,영화에나 나올 법한 유령처럼 놈은 미영의 몸을 통과하여 "과거의 상준"을 와락 껴안아 버렸다.
아니, 껴안는 척 어깨를 잡고승용차 타이어 만한 낯짝을 그의 놀라 벌려진 입 속으로 들이밀었다.
우욱!!
오빠!겨우 캔맥주 몇 모금에 지금 오바이트 쏠리는 거야? 나 참, 기가 막혀서..
아까 먹은 치킨이 잘못됐나..갑자기 속이 메스꺼워 오네. 자기야 쏘리.
그를 닮은 반투명의 거구가 삽시간에 줄어들어 상준의 목구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그리고그의 내장을 점령하기가 무섭게 다시 부풀어 올랐다. 흡사 장기(臟器)와 피부가 급격히 팽창하는 것 같았다.
(같은 게 아니라 진짜 그런 모습이었다. 이를 지켜보는 시간 여행자의 눈에는..)
뇌도 팽창하여 두개골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외계인을 다룬 영화를 보면 기생충 같은 에일리언이 몸에 침투하여 인간을 숙주로 만들어 버리던데,
철딱서니를 말아 자신 "이곳의 상준"이
영락없는 그 꼴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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