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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평행 우주월광 프로젝트 (판타지) 2023. 1. 24. 02:53
추운 날씨에 아랑곳 않는 짧은 스커트, 그 아래 드러난 가냘픈 다리.
자신을 성숙한 여성과 동일시하는 소녀의 나르시시즘과그녀의 뒷모습을 능글맞게 주시하는 상준의 색정이 부지불식간에 상호 교통하여,
소녀의 실루엣을 미끈한 "요부의 굴곡"으로 탈바꿈시켰다.
그는 걸음을 더욱 빨리 하여 소녀의 뒤로 바싹 다가갔고,거친 숨소리가 그녀를 긴장시켰는지 그녀의 발걸음 역시 빨라지기 시작하였다.
헬륨등(燈)의 조명 범위를 완전히 벗어난 어두컴컴한 골목 안에, 소녀와 상준 이외엔 아무도 없었다.
여학생들 사이에 유행하는 타이트한 교복 치마를 그녀 역시 입고 있었는데보기 안쓰럽게 강조된 히프의 좌우 움직임이 그를 최면의 상태로 몰아가는 것 같았다.
불과 십여 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현상으로, 자신들을 성숙한 처녀와 동일시하려는 암묵적 집단의식이색정적 나르시시즘으로부터 형성되어 자연스럽게 도출한, 유행들 중 하나이리라.
이는 여성적 굴곡을 강조하여 섹시미를 부각하려는 욕망의 표출로써이 자체가 성욕의 발산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하체에 꽉 끼는 치마를 선호하는 다수의 소녀들에게서 "정염의 갈구"는 주된 관심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위에서 언급했듯이 "달빛 음모"의 핵심 사항 중 하나인 색정적 상호 교통 현상에 의해,
그러한 유행은
직접적인 육욕의 포로가 된 남성들을 자극하는 기폭제 역할을
본의 아니게 그러나 충분히 하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소녀들의 오염된 집단의식이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파장들 중 하나로,나이 많은 남자들이 어린 소녀들을 육욕의 노리개로 삼으려는 현상의 확산을 들 수 있다.
오해는 마시라!무의식적 차원에서 그렇다는 얘기지, 의식의 수준에서 거론될 수 있는 상기 현상의 일차적 책임은
분명 파렴치한 기성세대에 있음을 명시해 둔다.
상준의 몸은 심하게 떨리기 시작하였다. (당연히 추위 때문만은 아니었다.)
소녀와 나란히 걷게 된 순간부터 손을 뻗어 추행하기 시작하였고,
그녀는 두려움의 노골적인 엄습으로 소리도 지르지 못한 채 돌처럼 굳어 멈춰 서 버렸다.
지금 이 시점에서, 그가 저지르고 있는 어둠의 행각은인생의 향방을 결정하는 가파른 기로에 도달하고 말았다.
벌겋게 달아오른 보름달의 반사광이, 뒤통수를 따갑게 때리며에프엠의 전략이 추구하는 소기의 목표를 달성하려는 순간이었다.
신문 귀퉁이에 심심찮게 오르내리는 이른바 색정광들의 성범죄가지금 이 자리에서도 막 발생하려는 순간인 것이다.
비록 과거지사이기는 하나, 우리네 삶의 이면을 기어오르는 악취를 덮기 위해이 사회가 한 때 향기 나는 포장재로 만들려고 열심히 육성한 그가,
청년세대의 소위 반듯한 모범이었던 (모범이라 믿고 싶었던) 그가,
범죄자의 길로 성큼 들어서고 있는 중이었다.
성격적 결함이 정신없이 몰아쳐, 눈 뜰 새도 없이 뒤로 나가떨어지고비탈길을 수도 없이 구르면서 부딪치고 멈춘 곳에,
살아갈 의욕과 희망을 잃은 빈털터리가 후안무치의 짐승으로 돌변하여 서 있었다.
적자생존의 삭은 동아줄을 놓쳐"자본주의의 딸들이 갈고 다듬은" 뾰족한 손톱의 밭에 떨어졌음에도,
비루먹은 호랑이는 만신창이 된 상처를 자랑하며 포효하고 있다.
강박과 편집 그리고 피해망상이날카롭던 이빨들을 다 뽑아놓고 말았으니, 전성기 지난 늙은 호랑이를 어느 누가 두려워하랴.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천덕꾸러기가구겨진 자존심을 유일하게 보상해 줄 연약한 토끼를 구석으로 몰아간다.
애정결핍으로 허기진 "무늬만 호랑이"가희생양이 된 어린 토끼를 더듬기 시작한다.
억압된 무의식이 다시 어긋난 방식으로 응집되어소녀의 발가벗겨진 두려움을 향해 막 분출하려고 한다.
정상성을 상실한 저능아처럼,무모하게 불에 뛰어들어 타들어 가는 무지한 나방처럼,
상준은 날카로운 파멸의 분기점에서 서성이고 있는 것이다.
악마가 선사한 만용으로 소녀에게 가까이 다가서는 데 성공한 그가 보여주는 행동은소심한 그답지 않게 거칠고 대담하기 짝이 없었다.
그때까지도 얼어붙어 있던 소녀는, 축축한 혀가 입 안에 들어오려 하자급작스러운 경련을 일으키며 본능적으로 이를 악 물고 빗장을 단단히 걸어 잠그기 시작하였다.
이때, 맞은편 골목 어귀에서 인기척이 나더니일렁이는 사람의 그림자가 서서히 이리로 방향을 틀고 있었다.
근래에 사회가 부쩍 어수선해짐에 따라도심 구석구석을 순찰하는 경찰 병력과 순찰 빈도가 함께 늘었다고는 하지만,
이런 후미진 골목에까지 그들이 들이닥칠 줄은 미처 몰랐다.
아니, "만용이 뻔뻔한 짓거리를 지켜주리라"는 엉뚱한 믿음에사로잡혀 있었음이 옳은 표현이겠다.
이럴 땐 또 쓸데없이 민첩한 순발력이, 스커트 속에 들어가려던 손을 급히 빼고신속하게 소녀를 돌려세워, 마치 아는 일행인 양 그녀의 손을 덥석 잡았다.
그리고 나란히 반대편 출구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순진한 소녀는 소리를 지르는 등의 최소한의 항거도 잊은 채상준의 손아귀에 잡혀 자석에 끌리듯 이끌려 나아갔다.
골목을 거의 빠져나왔을 무렵그는 커다란 검은 구름이 보름달을 가리는 광경을 언뜻 보았고
불과 몇 초 후에는, 미지의 힘이 뒤통수를 가볍게 가격하는 (착각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일까. 갑자기 현기증을 느낀 상준은 소녀의 손을 놓고휘청거리며 내리막길을 걸었다.
머릿속에서 음성이 전해져 왔다.
친구여, 자네의 행동을 인위적으로 변경해서 미안하네.
가급적 직접 개입은 자제하고 있으나, 지금의 경우자네의 파행이 발산하는 마이너스 에너지가 우리에게까지 파급 효과를 미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네.
그래요.나도 내가 왜 이런 추악한 짓을 하게 되는지 모르겠어요. 예전엔 이러지 않았는데..
내 속에 무언가 사악한 존재가 드나들면서 무방비 상태의 나를 조종하는 것 같아요.
어쨌든 고맙습니다.하마터면 나락으로 떨어질 뻔 한 인생을 구원해 주셨군요.
안심해 하긴 아직 이르네.
현시점의 자네가 일단 파멸의 위기를 벗어난 건 사실이나, (다차원 시공들의 순간순간마다실에 꿰인 염주처럼 늘어서 있는) 자네 분신들의 삶의 궤적에 자네의 불순한 에너지가 영향을 미친 것 또한 사실이네.
물론 자네 역시 "또 다른 자네들" 중의 하나이므로, 그들의 잘못될 가능성이 전개하는 불순한 파장이지금의 자네에게 피드백될 것이고..
일종의 악순환이지.
위대한 진화를 주관하는 창조주 입장에서 볼 때, 자넨 단순한 하나의 영혼과 육체가 아닐세.
과거 현재 미래의 무수한 가능성들이 억겁의 빈도수로 순열 조합되고 명멸하는(억겁의 가능성의 사건들이 중첩된) 다차원의 소우주가, 바로 자네란 말이야.
지구인의 공간 개념으로 부연하자면,억겁의 평행우주들 속에 자네의 분신들이 한 명씩 존재하여 가능성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는 거지.
여기 자네가 숨 쉬고 있는 곳도 그 평행우주들 중 하나라네.
에프엠의 음모는 이렇게 평행우주를 드나들며 인간 진화의 긍정적인 가능성들을 자꾸만 허물어 가고 있네.
각각의 평행우주의 진화 과정에 에프엠의 불온한 섭리가 부자연스럽게 끼어드는 것도 문제지만,이로 인해 평행우주 자체가 진동력을 잃고 사라져 가는 것이 더 큰 일이라네.
이는, 자네 삶의 궤적이 유연성을 잃고 에프엠적 삶의 방식으로 경화되어 기계적인 패턴으로 하향 조정될 때발생할 수 있는 일이지.
가능성도 희망도 없는 무생물적인 삶을 사는 인간이 늘어날수록 평행우주는 줄어들게 되고,이것은 대우주의 진화에도 역행하는 현상이라네.
자네의 미래들이 점차 오염되면서 자네 영혼의 외투가 얇게 닳아가고 있네.
자네의 나쁜 미래들은,(위대한 근원이 주도하는) 올바른 평행우주를 없애려는 에프엠의 계획에 따라 하나로 통합되고 있어.
우린 이런 상황을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거야.
자네를 비롯한 지구인들이 이런 식으로 에프엠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면, 우리의 존재 의미도 사라지고 말아.그러니, 자네도 힘들겠지만 지금의 고비를 잘 넘겨주기 바라네.
궁극적으론, 자네 스스로 변해야 우주가 변하는 것일세.
우리가 끝까지 자넬 지켜주겠네, 친구.
하여간 지켜주시겠다니 고마워요.그런데, 그 평행 우주라는 관념이 너무 복잡해서 머리가 아프군요.
평행 우주는 단순한 관념적 이론이 아닐세. 그것은 다차원 시공 안에 실재하는 세계야.
꿈과 현실은이분법적으로 갈라져 있는 개념이 아니라 중첩되어 있는 실존일세.
꿈속에서 자넨꿈인지 현실인지 확실한 구분을 못하고 마치 현실인 듯 자연스럽게 행동하지 않나.
그러다가, 이건 꿈이지 하고 문득 부자연스럽게 느끼는 순간이 오고 잠에서 깨면다시 현실 속에 돌아와 그것이 꿈이었음을 깨닫게 되는 거지.
평행 우주들과 이 세상의 관계 또한 이와 같은 것이네.
모두가 현실이고 동시에 모두가 꿈일 수 있는,융통성 있는 실존의 세계라네.
젤리처럼 말랑거리는 실존이군요.
이해를 돕기 위해 자넬 평행우주로 당장 데려가 줄 수 있네.
자네 잠재의식이 우리에게 간절히 요청하는군. "나의 위태로운 평행우주"로 데려가 달라고 말이야.
자아, 눈을 감게.
부드럽게 상승하는 엘리베이터를 탄 듯 상준은 몸이 부상(浮上)하는 기분에 휩싸였다.
궁금증이 발동하여 살짝 실눈을 떠 보았다.
서 있는 그를 중심으로 반경 일 미터 가량의 공간이 반투명의 회백색 원기둥 속에 넣어져차갑고 매서운 늦가을 밤의 대기와 구분 지어졌다.
고개 들어 위를 보니, 원기둥의 윗면은 조금 전 보름달을 가린 검은 구름에 닿아 있었고, 아래는..
오, 맙소사.
지상 수십 미터는 올라온 듯 지붕과 옥상들이, 공중으로 솟아오르는 그의 발 밑에서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원기둥의 밑면은, 조금 전까지 그가 딛고 서 있던 콘크리트 바닥에 여전히 닿아 고정되어 있는 것 같다.)
거대한 손전등이 아래로 켜지고, 그 빛기둥 속에 그가 갇힌 채 위로 올라가고 있는 느낌이었다.
원기둥 속은 아늑했지만, 주변의 배경은 빙글빙글 돌기 시작하면서 그 회전속도가 점점 빨라져 갔다.
아래에서 가물가물해지는 건물들도 함께 돌기 시작했고, 하늘의 별들도 어지럽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제서야, 친구가 왜 눈을 감으라고 했는지 짐작이 갔다.
심한 어지럼증이 찾아와 정신을 잃을 지경이 되어서야 상준은 급히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하였다.
불과 몇 초나 흘렀을까.친구가 텔레파시로 메시지를 전해 왔다.
눈을 뜨고 주위를 살펴보니 상황은 전혀 변하지 않은 것 같다.
위쪽엔 조금 전 소녀와 함께 빠져나온 골목 어귀가 보였고, 그는 내리막길에 엉거주춤 서 있는 상태 그대로였다.
자가용 한 대가 클랙션도 울리지 않고 그의 옆을 스치듯 지나갔다.
자네가 빠져 나온 저 골목으로 다시 들어가 보게.
상준은 강력한 최면에라도 걸린 것처럼 친구가 지시하는 대로 움직였다.
골목 안으로 이십여 미터 근방.
눈에 익은 헬륨등 아래 두 사람의 그림자가 일렁이고 있었다.
이럴 수가..
겁에 질린 여고생을 희롱하고 있는초췌한 몰골의 사내!
바로 상준 자신이었다.'월광 프로젝트 (판타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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