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 달빛월광 프로젝트 (판타지) 2023. 1. 16. 23:28
컴퓨터 모니터에서 나오는 선정적 에너지로 한껏 충전된 (상준 속의) 에프엠은
흥분으로 달아오른 낚싯대를 휘저으며, 통신의 바다를 헤엄치는 인어들을 하나 둘 낚아 올리기 시작하였다.
아직은 시들지 않은 건장한 육체와 잘생긴 외모를 미끼로,에프엠적인 호기심에 사로잡힌 여자들을 심심찮게 유혹할 수 있었지.
개중엔 순수한 영혼의 소유자들도 간혹 있는 듯하였으나 지금 생각해 보면,무지를 벗어나지 못한 어린 마음이 순수로 포장되어, 예정된 타락에로의 발아를 다소곳이 기다리던 과정에서
나를 만난, "타이머 작동"녀들일 따름이었지.
무언가 굉장히 잘못되어 감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론 육욕을 탐하던나락으로 떨어지는 순간들마다 그가 있었다.
음탕한 단순함이 인간의 삶을 지배하도록 하려는전략.
거미줄처럼 얽힌, 에프엠의 다양한 음모들 가운데에서도, 오염된 달빛을 통해 인간에게 뿌리어지는우스꽝스러운 음모인 것이다.
20세기 초중반을 지배하던 음모의 바탕이 권력과 돈이었다면,
20세기 후반과 2천 년대를 맞이하는 과도기적 음모의 전제에는,에프엠적 섭리의 정통 요소에 속하는 "종족 보존 이데올로기"가
쾌락의 돌연변이 종(種)으로 진화(?)하여 도사리고 있었던 것이다.
성애적 돌출 행동이 내면화되고 습관화된 이면에, 복잡한 심리 작용과 왜곡이 있었음은 말할 것도 없으나,의식을 파고드는 에프엠의 그물을 끊어 버릴 고성능 가위가 영혼 속에 간직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찾지 못하는 - 아니 찾으려 하지 않는 - 스스로의 업이 근본적인 문제라고,
친구는 열심히 일러 주고 있다.
이성(異性)을 대하는 상준의 비상식적인 방식에서, 본능적이고 원시적인 두려움을 느낀 여자들은음탕한 달빛이 반사되는 그의 눈빛만 봐도 자리를 피하기 일쑤였고,
그럴수록,에프엠의 포로가 된 그는 그녀들의 초라한 영혼을 비웃으며 새로운 사냥감을 물색하곤 하였다.
변태 성향을 띤 애욕이 긴장하는 순간이면,어딘가로 열심히 흐르던 시간은 멈춰 버리고, 흔적만 남은 꼬리뼈에 무거운 혹처럼 매달려 칭얼대던
자괴감도 씻은 듯 사라진다.
소화불량에 걸린 시간이 - 변기를 잡고 구토하느라 - 맹목적으로 멎어 버릴 때,
상준의 퇴행적 행태는 날개를 달고,죄의식과 목적의식이 주도하는 "시간의 흐름"을 탈출하여
정지된 시간 위를 자유로이 날아다닌다.
늙은 창녀가 주름진 얼굴에 분장처럼 화장을 덧씌우고 뒷골목에서 호객 행위를 하듯,
은퇴한 킬러가 오래된 습관처럼, 더는 쓸 일 없는 총구에 열심히 광을 내듯,
더는 알아주지도 않는 빛바랜 번듯함을 애써 추스른 상준은달빛이 만들어낸 그로테스크한 그림자를 끌고서 오늘도 낯 선 밤거리를 헤맨다.
좀 더 자극적인 방법으로 여성에게 다가가고, 좀 더 압축된 시간에 군더더기 없이그녀로부터 흥분을 느끼려는, 본능이 지배할 때
그는 짐승으로 전락하고 만다.
우주 밖에서 온 친구는 이렇게 속수무책 망가져 가는 상준을 왜 여태껏 방관만 하는 것일까.
그의 영혼이 토로하는 답답함을 진작에 인지하고 있던 친구가상준을 위로라도 하려는 듯, 다음과 같은 텔레파시를 전하여왔다.
벗이여,
에프엠의 사악함마저도 우주 진화를 위해 필요한 것이라네.
우주는 역동하면서 진화하지.
정적인 것에는 창조가 없다네. 창조는 항상 역동적이야.
역동적인 것은 진동한다는 뜻이며,진동으로 창조가 이루어지고 생명이 탄생하는 것이네.
우주는 영원히 진화하는 위대한 생명이라네.
그리고그 위대한 생명이 자네를 낳은 것이네.
그러므로위대한 생명의 일부이자 그 자체인 자네에겐
"진화를 위해 창조할" 권리와 책임이 있어.
자넨역동적인 운동을 하면서 스스로를 진화시켜야 한단 말일세.
자네의 현생을 짓누르는 업을 떨어내 버릴 정도로격렬하게 진동하여,
자네 내부에 숨은 빛을 발현해 내야 한다네.
그래야,자네와 근원적으로 연결된 우주도
비로소 진화할 수 있는 거라네.
자넨, 할 수 있어!지금의 자네를 괴롭히고 있는 이 업을 과감하게 떨어내 버리게나.
자네의 심리가 아무리 왜곡되어 있다 해도, 자넨 순수한 영혼을 가진 인간이라네.자네가 이렇게 자책하고 고통스러워하는 것도 그 증거이고..
자넨 어떤 면에서 행운아야.
이 괴로움의 순간들이 궁극에는 자네를 해탈의 경지로 안내할 것일세.
내 장담하지.
저 달빛의 음모가 자네같이 순수한 마음의 소유자들을 주된 타깃으로 하고 있지만바로 그 점에서,
에프엠의 섭리는위대한 우주심(心)에 영원히 종속될 수밖에 없는 한계를 드러낸 셈이지.
지금 자네의 심리와 행동을 지배하는 "이상(異常) 육욕"은자넬 파멸시킬 만큼 충분히 치명적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극명하게 단순화되어 있고 유치하다고 생각되지 않나?
무의식에 도사린 채 수백만 년의 왜곡을 겪어 온에프엠의 복잡한 양상들이 압축되어,
단순함을 표방하며 자네 표면으로 드러나 버린 거야.
순수한 영혼의 잠재성이 가진 창조 능력의 도미노 효과를 애써 외면하고 싶은 에프엠이,
순수한 영혼에 대한 공격의 결과가 이런 식으로 표출될 수 밖에 없음을 알면서도,
"모 아니면 도"라는 카미카제 식(式) 공격을 자네에게 하고 있는 중이라네.
에프엠의 입장에서 볼 때,잘만 하면 큰 성과를 올릴 수 있지만 자칫 잘못하면 자살 행위가 될 수 있는,
편법에 불과하다네.
"최초의 자네"가 가진 "초(超)우주 근원의 영성(靈性)"이지금껏 큰 훼손 없이 자네 내면의 기저에 머물 수 있었던 건,
진화를 향한 자네의 무의식적 열망이 그만큼 컸던 때문이지.
자네의 변태적 행동은곪은 상처의 고름을 남김없이 뽑아내는 상징적 행위라고,
이해해 주길 바라네.
고통은 말할 수 없이 크겠지만, 역설적으로, 자넨 신성한 변화에 가까워져 있다네.
그리고,자네 행위가 수습 불가능할 정도로 악화되지 않게 우리들이 수위를 조절하고 있으니,
결코 불안해하지도 말게.조금만 더 힘을 내게나, 친구.
친구의 메시지가 일시적으로는 그의 답답한 가슴을 시원하게 해 주었지만,상준은 얼마 가지 않아 다시금 혼란에 빠져 버렸다.
알 듯 말 듯 심오하고 시처럼 불친절한 (상징과 비유로 축약하여 얼버무린 듯한) 그의 추상적 이야기를간신히 이해는 한다 해도, 영혼의 심장을 자극하는 우주적 깨달음으로까지는 승화시키지 못하는
현생의 인간적 한계가, 가뜩이나 균열된 의식을 더욱 아프게 파고들었다.
찬 바람이 기승을 부리며,
상준의 움츠린 어깨를 겨우 감싸고 있던 허름한 코트를 무색하게 하였다.
차원의 혼돈이 화려하게 만개하는 "시공 영역"(지구 시간 개념으로 서기 1990년에서 2015년 사이의 기간)에꼼짝없이 갇힌 그는, 달빛의 전면적 공세에 하릴없이 무기력함을 보이고 있을 뿐이었다.
흐릿한 안구 표면에 한 차례 음란한 기운이 흐른다.
전방 이십여 미터 거리에서 희미하게 껌벅이는 헬륨 불빛 안으로, 소녀의 앳된 모습이 포착되었다. 순간..
복잡했던 상념은 정지해 버렸고,
그녀의 뒤를 밟아야겠다는 얼토당토않은 강박이, 더딘 발걸음에 채찍을 가하기 시작하였다.
그렇다면, 오염된 달빛이 여자에게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일까.남자들이 주된 타깃이긴 하나 이들 희생자가 결국은 여자를 공격하기에
넓게 보면 여성들 또한 당연히 피해를 입는 것이 되지만,
이렇듯 간접적인 영향 말고도 혹시,
이들 "여자사냥꾼"의 포획 사정권에 쉬이 노출되도록
어떤 식으로든 달빛이 여성에게 변화를 야기하여 정렬시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에 관해선 친구가, 단편적인 언급 외에 구체적인 정보를 전달하지 않았기 때문에,작금의 몇몇 사회적 현상을 토대로 상준은 나름대로의 추측을 시도해 보았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나는 어려서부터 여성적인 것에 남다른 집착을 보여 왔던 것 같다.
나의 전생들 중 상당한 부분이 여성으로서의 삶이었다거나,유아기를 비롯하여 이후 성장 과정에서 - 어머니, 여자 형제, 이성 친구 등등의 - 여성성이
농밀한 밀도로 지속적인 관여를 해왔다거나,
하여간 이에 대한 근거들은 여럿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들은,나의 초공간적 내면에 잠재한 (맹목에 가까운) 여성성 숭배를 표면 의식 가까이 밀어 올리는 데
도움을 준, 부차적 이유들에 불과하다.
억겁의 우주를 억겁의 시공에 펼쳐 놓은저 위대한 창조의 섭리 속에서,
남성성과의 오묘한 조화를 통해 역동적인 진화 과정을 부드럽게 리드하는
"여성의 거대한 원형(原型)",
동적인 것을 보살피는 "정적인 것의 원형"이최초의 나를 빚었고,
그래서 내가꿈속에서도 "그녀"를 그리워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역사를 이끄는 에프엠의 남성적 의지가불안정한 분신들을 원형으로부터 무수히 나투도록 유도하였고,
인류의 역사는
이들 불안정한 분신들의 (반목, 갈등, 투쟁, 억압의) 시대들이었다.
상극의 소용돌이에서 튕겨져 나온 "거친" 남자들이 "유약한" 여자들 위에 군림하던 시대,즉 에프엠의 역사를 마감할 수 있는 시점에서,
에프엠의 전략은 오히려 최고의 효용을 발휘하며, 인간의 창조력을 해체하고 인류의 도약을 저지하기 위한
음모의 그물망을 더욱 촘촘하게 옥죄고 있으니,
우매한 분신들은
의식의 혼란으로 비틀대며 기괴한 해프닝을 일으키느라 정신이 없었다.
나 또한, 어려서부터 뜬금없이 성적 정체성의 혼란에 빠지기도 하였고,어린 나이에 걸맞지 않은 색정의 노예가 되기도 하였다.
물론, 이러한 행각이"유년기를 벗어나지 못한 나" 혼자의 의지로 이루어졌던 것은 아니다.
당시 주위의 여성들은여성성의 원형에서 속수무책으로 이탈한 기형적인 분신들 이른바 세속에 찌든 여자들이어서,
오염된 달빛의 영향을 받아, 왜곡된 자기애적 쾌락을 어린 내게로 무분별하게 투사하였고,
그러했기에 나의 맹랑한 유년기가 가능했던 것이다.
미성숙한 분신들 간의 색정적 상호 교통이 원인이 되어 아이들의 투명한 자아는 급속도로 혼탁해졌고,그것이 잠자는 무의식을 들쑤셔 일어난 죄의식의 먼지는, 여러 가지 부작용을 양산하기에 이르렀다.
그 부작용들 중 하나의 결과가 지금의 나이며, 여성의 원형에 대한 (무의식 차원에서의) 고착이현실의 여자들에 대한 혐오로 연결되어, 그녀들을 육욕의 대상로만 인식하는
다분히 위험하고 극단적인 성향을 보이게끔 되었다.
이러한 심리적 왜곡 현상이 낳는 돌출 행위가 아직은 간헐적이라여자들의 내면에 숨어 있는 이상(理想)적인 여성성을 직시하려는 나의 노력이 크게 방해받고 있진 않지만,
근래 들어 노골적으로 강해진 "보름달의 음탕한 기운"이,
양극단에서 요동하는 심리적 경련 상승을 위한 촉매 역할을 강화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한편,
오늘날 여성들 중에서도 특히 사춘기 소녀들에게는
현대의 물질적 풍요가 주는 혜택을 비교적 고르게 받아 저마다 왕성한 발육을 자랑하는 특징이 있는데,
그녀들이 마음껏 발산하는 호르몬과 페로몬의 분자 진동패턴에, 달빛은 미세한 변화를 일으키고 있음이 분명하다.
남성 희생자처럼 과격하게 돌변하는 패턴은 아니라지만, 아무튼 이러한 미세 변화로 인해,자신들이 느끼지 못하는 사이 그녀들의 무의식은 나르시시즘적 쾌락을 받아들이게 되고,
이러한 쾌락이 다시 의식을 자극하여 외양의 치장 등에 신경을 많이 쓰도록 하는 것 같다.
나이에 맞지 않는 (요란하지만 어색한) 화장이나, 어른을 모방한 "다이어트에의 집착"은 물론이고,나아가 - 에프엠적 자본과 결탁한 매스미디어가 전(全) 방위로 전개하는 - 사회적 유혹에 본의 아니게 부화뇌동하여
스스로를 상품화하는 데까지 이르기도 한다.
여성 심리의 특성상 - 남자들에게서처럼 - 직접적인 육욕을 보편적으로 끌어내는 것은 아무래도 효율적이지 않았겠지.그래서 여자들에게는 부지불식간에 "남자의 욕정을 도발하는 이미지"를 발산하게 함이, 보름달빛의 술책인 모양이다.
문란할 정도로 자유분방한 소수의 아이들뿐 아니라,착실한 모범생의 라이프 스타일을 고수하는 소녀들까지도 이러한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게,
사태는 진행되고 있었다.'
"지금 상준이 미행하고 있는" 저 소녀를 굳이 분류하자면,후자의 유형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순진한 여고생의 전형인 그녀가 아무런 저항 없이,사회에 퍼져 있는 "자기들만의 사고방식"을 따르고
표피적인 유행의 물결에 휩싸이는 작금인 것이다.
'월광 프로젝트 (판타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6. 과거라 불리는 평행우주 (0) 2023.02.16 5. 악화일로 2 (0) 2023.02.11 4. 악화일로 1 (2) 2023.02.02 3. 평행 우주 (0) 2023.01.24 1. 미지(未知)와의 조우 (1) 2023.0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