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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 전투 개시
    꿈계의 월남전 (판타지) 2022. 11. 10. 02:25

     

     

     

     

     

     

     

     

     

     

    어깨 길이에서 끝이 살짝 말려 귀엽게 단정하던 퍼머넌트 머리가 지금은 되는 대로 헝클어져 봉두난발과 다름없게 되었으나, 그것이 한결의 청아한 미모를 (털끝이라도) 건드리기엔 역부족이었다.

     

     

     

     


    여러분, 많이 아프시겠지만 조금만 참으시면 됩니다. 머잖아 무사히 안전하게 후송될 것임을 약속드립니다.


    이곳은  적과의 대치가 첨예하게 이루어지는 지역이기 때문에, 오늘과 같은 일이 왕왕 발생하곤 합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우리 용맹한 해병대원들이 확실하게 격퇴한 것도 사실입니다.   


    비록 불상사로 인해 끝까지 진행되지 못하고 중도에서 끊어져 유감입니다만, 오늘 공연은 정말이지 환상적이었고 우리로선 영원히 잊지 못할 밤이었습니다.   
    이런 말씀드릴 자격은 안 되지만, 참전 용사들을 대표하여 여러분의 용감한 방문과 (기쁨을 주기 위한)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그럼 아무쪼록, 그리운 모국으로 안녕히 돌아가십시오.

     

     

     

     


    '포성과 총성이 어우러져 좁은 벙커 안으로 악착같이 비집고 들어오는 현 상황에서, 
    심심할까 봐 이따금씩 - 벙커 안팎에서 - 단말마의 비명들도 양념으로 보태어지는 소름 끼치는 실재적 공포 속에서, 
    나의 이 (기만을 포장한) 가증스러운 멘트가 이들에게 얼마만큼의 설득력으로 다가올 것인가.     
    원죄처럼 거짓을 안고 있는 내 어떤 말로도 이들을 진실성 있게 위로하지는 못 하리라...'

     

     

     

     


    "인간 한결"의 곁에 머물 수 있는 천금 같은 기회를 천신만고 끝에 확보하였건만, 결과적으로 그녀를 속이고 있다는 자괴와 회의가 끈덕지게 발목을 잡고 늘어져, 무기력한 전일병은 정작 포근한 "감격의 공간"은 온전히 점유해보지도 못한 채 황망히 그곳을 빠져나와야 했다.

     


     

     

     

     

     

     

     


    안은 어때?

    술렁이지 않도록 잘 다독거리고 나왔냐?

     

     


    네, 그렇습니다.

     

     


    짜식, 한결도 물론 만났겄제?   
    니놈 소원 풀어 주려고, 직접 드가서 구경하고픈 맴 굴뚝같은디 꾹 참고 널 들여보낸 거야.

     

     


    네, 알겠습니다.

     

     


    근데 어째, 애인 만나고 나온 놈 얼굴이 그 모냥이여!? 똥 씹은 표정도 그보단 낫겄다.

     

     

     

     


    김하사와 전일병 말고도 타소대 병력 예닐곱 명이, 지하 벙커 둘레의 참호에 흩어져 - 각자 맡은 위치에서 -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고 있었다.  


    까만 하늘을 촘촘하게 수놓은 별의 무리들이 땅 위에서 벌어지는 (인간 군상의) 처절한 "땅뺏기 놀음"에 연민의 시선을 보내는 동안, 캐리버 50의 가늠자를 통하여 고정되어야 할 전일병의 시야는 대책 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한결 씨, 당신을 지킬 수 있어 영광입니다.  


    당장 달려들어가 당신을 안고 싶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당신의 가녀린 어깨를 흔들며 여긴 왜 뭣하러 왔냐고 소리쳐 흐느낀들, 내 사랑이 증명되는 건 아니겠지요.    


    당신을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는 이 순간 나는 무한히 행복합니다.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죽음에 대한 의욕을 느껴요.  


    강요당하는 애국과 어정쩡한 추상적 명분은, 맞지 않는 군화처럼 날 언제나 어색하고 불편하게 했지만,

    지금 이 시각  내 뒤에 있는 당신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내가 싸워야 할 이유"랍니다.   
    당신이 여기 있음으로 비로소, 아무 거북함 없이 너무나 편안히 난 방아쇠를 잡아당길 수 있게 되었어요.  


    아아..

    지척에 당신을 두고, 당신 곁에서, 오로지 당신을 위하여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니..

    꿈만 같습니다.     


    사랑해요, 한결 씨...'

     

     

     

     

     

     


    적이 올라온다!

    떼거리로 몰려오고 있어!   
    저 엄청난 숫자 좀 봐, 저렇게 많은 놈들이 대체 어디 숨어 있었던 거지?

     

     

     

     


    벙커 뒤편 참호를 담당하고 있던 병사의 겁에 질린 투덜거림이, 어지러운 감동을 일거에 쪼개버리고 뇌리로 들어와 박혔다.

     

     

     

     


    와우, 전일병!

    신나게 한판 벌일 시간이 어김없이 와주는구나.    
    탄띠 제대로 걸렸나 한 번 더 점검하도록!

    렛츠고!!!

     

     

     

     


    도륙을 자행하기 전에 - 자포자기적 절망과 구분이 안 가는 - 들뜬 기분을 주체하지 못하는 김하사의 생뚱맞은 버릇 중 하나가, 영어로 발사 명령을 내리는 것이었다.


    이를 신호로 벙커 앞에 포진한 세 명의 병사들 (김하사 본인, 전일병 그리고 또 한 명) 이 일제히 방아쇠를 당겼다.   
    전방을 가로막는 어둠의 장벽에 대고 어마어마한 양의 총알을 쑤셔박느라 - 우는 매미의 날개처럼 - 격심하게 요동치는,

    전일병의 딱 벌어진 어깨 주위로 황금 탄피의 분수가 솟구쳤다.

     

     

     

     


    개새끼들!

    한결 근처에 얼씬만 해, 내 가만 두지 않을 테니..

     

     

     

     


    타는 숯덩이처럼 달구어진 총열의 열기로 말미암아, 기관총을 받치고 있던 삼각 지지대가 흐물흐물 녹아내릴 것 같았다. 

    M60과 캐리버 50이 급탄 벨트들을 대관절 몇 개나 소모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전일병과 타소대 상병은, 시간 차를 두고 번갈아 탄띠를 장착하는 방식으로, 무차별 난사의 지속성을 힘겹게 유지하고 있었다.  

     

     


    병사들의 애처로운 집단 무의식이 한가롭게 두려움의 심연을 유영하며 바라고 있다.


    중립에 서고자 하는 어둠을 윽박지르며 날아와 "만물의 영장"을 헝겊인형 취급할

    무반동총의 횡포가 가급적 지연되길.


    기어이 (뜨겁게 발기하여 껄떡대고) 날아오겠걸랑

    명중도라도 대폭 깎아 참호 너머 음습한 (여자 생식기 같이 생긴) 골짜기나 겁탈하길..


    정녕 고렇게는 못 하겠걸랑 "뒤끝 없는 한 방"으로,

    구질구질한 고통이 엉겨 붙기 전에 전광석화처럼 영육(靈肉)을 분리하는

    깔끔(?)한 매너라도 보여주길...

     

     

    그러나 이와는 별개로
    병사들 각자의 의식은, 잘 훈련되어 기민해진 급박함에 의해 한 가지 색으로 탈색된 지 오래였다.

     

     


    전일병이 전우들의 엄호 사격에 기대어,

    언제 달려들지 모를 "금속성의 공포"가 소외감 느낄 만큼,

    탄띠 갈아 끼우는 동작에만 고도로 집중하고 있을 때였다.

     

     


    F-4 팬텀기 편대의 날 선 제트엔진 소음이 밤하늘을 오리기 시작하였다.

     

     

     

     


    귀하신 몸 드디어 행차하셨고마!

    헛기침만 하지 말고 어서 그 잘난 몸뚱일 디밀어 보랑께?! 

     

     

     

     


    김하사가  M16을 갈기면서 하늘을 향해 한바탕 대거리를 하고 있다.

     

     

    핏빛으로 물든 둥근달이 갑자기 구름을 헤치고 나타나 지상을 향해 두리번거린다.

    살육의 현장을 내려다보려고 불쑥 내민 (호기심 어린) 얼굴이 유난히 커 보인다.


    어둠이 지나치게 맑아 특이하던 밤에 불그스름한 달빛이 더해지자,

    서로를 죽여야 하는 인간들의 집단 광기가

    얌전 빼던 내숭을 멈추고

    본격적으로 송곳니를 드러내어 발악할 태세를 갖추기 시작하였다.

     

     

     

     

     


    전일병!

    저 달 재수 없지 않아? 우릴 계속 비웃고 있잖은가.

    우리가 죽어 자빠지는 걸 기어코 구경하겠다고 버티는

    저 고약한 심보 보소!

       
    이럴 즉엔 비가 억수 같이 쏟아져야 하는 것인디 말이여..  


    그렇지!!

    곧 폭탄 비가 내릴 터인디 뭔 걱정이당가.

      
    그래, 퍼부어라! 다 죽여라 다아..!

    너도 나도, 저들도 우리도, 공평하게 다 쓸어 버려!! 빌어먹을..

     

     


    하사님! 제대로 좀 보고 쏘드래요!

    탄알 바닥나려고 해요. 공중에다 대고 쏘면 어케요!

     

     

     


    김하사의 언행이 낯설기만 한 M60 사수가 합당한 참견을 하고 나선다.

     

     

     


    넌 뭐야 인마!

    잔소리 말고 대검이나 꽂아!

     
    U.S. 폭탄이  알아서 장사(葬事) 지내줄 꺼니께,

    그때까지 백병전이나 하며 놀아보더라고!!

     

     

     

     

     

     

     

     

     

     

     

     

     

     


    소영아, 코치 안 해주고 어디로 가버리는 거니?  
    나 많이 다쳐서 움직이지도 못하는데, 그놈의 웬수 같은 드림홀인지 뭔지엔 무슨 수로 도착하냐고!

     

     


    난 소영이가 아니고 막리엔이다.   
    여기서 더 머뭇거렸다간 네놈 같은 반동분자들이 우릴 박살내고 말겠지.
    적절한 타이밍으로 치고 빠지는 게 우리 임무라  어쩔 수 없다.

     

     


    얘가 얘가.. 또 이런다.

     
    유창하게 베트남인 행세 하는 걸 보니, 베트콩 여자애한테 완전히 뿌릴 내리고 있는 중인가 보군.    
    그나마 이렇게라도 원격 텔레파시가 가능하니 불행 중 다행이야.

     
    그런데 너도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난 이제 어찌한다!?

     

     

     


    우리가 이동하여 동지들과 합류하는 지점이, 드림홀 생성 존(ZONE)이야.


    환상계의 특성상, 네가 숨은 그 몸뚱이의 주인이 수시로 꿈의 스토리를 각색하고 있기 때문에, 이곳의 "사건 격자" 활성화 에너지는 특히나 더 불안정해.
    더욱이 지금은 꿈의 클라이맥스를 향하여 스토리 변형에 가속이 붙는 단계라, 이런 상황에서 드림홀 셋업의 임계치는 상향 조정될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홀의 입구에 안정적으로 진입하려면 극도로 격렬한 사건의 좌표를 추적해야 한다.


    전투가 시작되기 전에  좀 전의 그 소닉홀로 들어갔어야 하는 건데.. 

       
    아무튼 아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사정이 좋지 않아졌단 것만 알아둬!
    완벽한 파국에 해당하는 시점까지 밀고 올라가지 않는 한, 널 홀 안으로 주사할 잠재 포스를 획득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진다고.


    그래도 운 좋은 것은, 스토리의 주연들이 파국의 궤적을 쫓아 억지스럽게라도 모여들도록

    이 꿈 주인 (1차 꿈의 상념 분신)의 무의식이 때맞춰 상념 튜닝에 몰입하였다는 거지.

    내가 널 어떻게 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야.


    넌 그저, 꿈 주인의 상념 분신 즉 드림 바디가 기구한 운명 속으로 휘말려 들어가는 걸 지켜보기만 하면 돼.
    그러한 와중에, 관련 드림바디들은 너와 나를 우리의 목표지인 활성 사건 포인트로 운반해 줄 것이다.

     
    그때 가서  너에게 다시 일러주마.

     

     

     


    그러니까, 그냥 이대로 누워서 개기고 있음 만사 해결된다 이 말이지?

        
    하긴.. 날 위협하는 존재인 너네들이 물러가는 마당에 노심초사할 이유가 없지.
    느긋하게 별이나 세며 아군이 구해주길 기다려야겠군.

    그 거창한 "극단적 파국"이란 것으로 기어들어가야 할 일이 조금 걱정스럽긴 하지만..


    근데, 어쩌다 내가 (네 엄마의 살인범이란 걸 빼곤 별 볼 일도 없는) 요 마땅찮은 녀석 꿈속으로 들와 버린 걸까.

    얄궂게도, 하필 욘석이 쏜 총 속으로 빨려 들어올 건 또 뭐람..


    그리고, 빙의가 될 거면 내 평행 분신과 연관된 전일병한테로 붙었어야지, 어째서 나랑 아무 상관도 없는 이놈이냐고.
    설마, 이놈도 내 분신의 전생의 사돈에 팔촌이네 어쩌네..

    라고 말하려는 건 아닐 테지?

     

     

     


    꿈계 또한  4차원 평행 시공 거품의 패턴을 따르는 상념계의 일종이라고 말했을 텐데, 그새 잊었나?


    꿈계의 구성원들이 비록, 꿈꾸는 자의 무의식이 반영되어 다양하게 가공 처리된 상념 분신들이긴 하나,

    이들의 입장에서 보면 오히려 자신들의 무의식이 꿈꾸는 자에게 끄달려져 - 본인들은 기억 못 하기도 하는 - 각자의 꿈들로 재편된 셈인 거지.


    즉, 인간의 꿈은 본인 꿈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무의식과 그물망처럼 연결되어 있어서 - 이들의 무수한 꿈계가 유기적으로 중첩된 - 다차원 복합계의 특성을 띨 수밖에 없어.

    (게다가, 꿈속 상념 분신이 독자적으로 또 꿈을 꾸는 무한 연쇄계 이른바 "거울 속 거울" 시스템마저 겸비하였으니,

    이쯤 되면 일반 "중첩 평행계"와 다중(多重) 꿈계의 경계는 모호해지고 이 둘을 굳이 구분할 필요도 없어지게 되지.)


    다시 말해, 이곳은 나지수의 이중(二重) 꿈속 (드림 바디의 꿈속)이자, 동시에 전상준 외 다수의 꿈 속 세상인 거야.


    물론 인간들 대부분이 꿈의 이러한 속성을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간혹 누군가와 같은 꿈을 꾸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어린애처럼 신기해하곤 하지. 실은 전혀 놀랄 만한 일도 아닌데 말이야.


    예지력이나 데자뷔 현상 등과 관련한 신비들의 이면에 이런 "꿈의 비밀"이 개입되어 있음을

    이젠 이해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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