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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꿈계의 월남전꿈계의 월남전 (판타지) 2022. 11. 23. 23:34
음..
망각이 삼켜버릴지라도, 하여간 여긴
네 아버지가 어떤 형태로든 등장하고 있으니까, 네 아버지의 꿈속이기도 하다?
고로, 상대성 논리에 입각하여,네 아버지 꿈 속 인물들 중 하나인 이 녀석도 네 아버지의 상념 투영물이 되는 것이니,
내가 이놈한테로 스며들었다 한들 하등 이상할 건덕지는 없다??
너..알고는 있냐?
이런 걸 두고 궤변이라 하는 거다!
으휴!기껏 설명하면 딴지나 거는 네놈을, 뭐가 이쁘다고 근원우주께선 이토록 챙기시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요 나지수란 맹랑한 녀석 말이야..발현 여부를 떠나, 동성애 기질이 의식 저변에 잠재되어 있는 것만은 확실하지 않겠어?
그러니 요렇듯 야리꾸리함이 철철 넘쳐나는 꿈을 즐기는 걸 테지.황당하긴 해도 그 정돈 이해가 간다 이거야.
그러나 월남전은 좀..이게 그리 쉽게 펼쳐지는 아이템이냐고!
월남전 영화며 책이며 신물 나게 봤지만, 난 삼십 평생 기를 써도 꾸어지지가 않더만..
이렇게 스펙터클하고 사실적으로 꾸려면 대체 뭔 짓을 해야...
웃기는 소리.너의 기억에서 지워졌을 뿐 안 꾼 게 아냐.
주위를 둘러봐.우선, 너의 평행 분신이 여기 있고 - 곡절이야 어떻든 - 너 또한 지금 이 전쟁터에 있잖니.
이보다 더 명백한 증거가 어딨어!
인류의 집단 무의식 속에 켜켜이 퇴적된 이 전쟁을, 꿈꾸지 않은 인간은 없어.
천 년, 만 년 전에도, 인간들은 꿈에서 월남전을 체험한다.
여긴 우리 모두의 꿈 속이야!
"꿈의 동시성"은, 무의식이 그러하듯 시공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것이다.
첫째, 과거나 미래의 인간이 꿨던 혹은 꿀 꿈이현재의 인간에게 꾸어질 수 있으며,
둘째, 다른 차원 또는 다른 우주의 "꿈꾸는 생명체"와도꿈을 공유할 수 있다.
셋째, 전생과 후생 심지어 영계의 사념 존재들이 꾼 꿈들까지도인간의 무의식은 포착이 가능해.
나지수의 현실과 동떨어진 월남전이왜 뜬금없이 이곳의 배경으로 채택되었는지,
그냥 배경 정도가 아니라
운명을 결정짓는 중차대한 사건들의 온상이 되어야 하는지,
차츰 감이 오지 않나?
꿈의 내용은, 그것이 세세한 장편이던희미한 단상(斷想)에 불과하던, 결코 뜬금없지 않아.
꿈의 스토리는 허무맹랑한 창작물이 아니거니와,단순히 보고 들은 이미지의 잔영들을 엉성하게 편집하여 나열한
짜깁기는 더더욱 아니야.
이러한 월남전은,"나지수가 주인공인 평행우주 시스템"의 무한 상념시공들 중 어딘가에서
분명히 벌어지고 있는 대(大) 사건이다.
그곳에 증식하고 있는 "다른 세상의 월남전" 꿈 거품 가운데 일련의 클러스터가 이곳 꿈계를 덮쳐
"사건 중첩"이 연쇄적으로 발생한 것이다.
전생의 경험이든, 상념의 나비효과든 간에,평행 분신들이 까마득한 우주 너머에서 영원한 현재형으로 겪고 있는 전쟁.
끝없이 재생되고 무한하게 분화(分化)하는 그 살벌한 지옥이
망망대해를 휘젓고 다니는 향유고래처럼 우리의 꿈계들을 교란하고 있음이니...
결국, 우리가 현실이라 믿는 세상들이 전부우주 너머 누군가들의 상념이나 꿈에 지나지 않는단 얘기로군.
지독히도 상대적인 진리들..기괴한 가설들이 판치는 우주..
좋아! 아주 멋져!!
평행계 시스템에 대응하도록 튜닝된 광대무변한 무의식은"사건 시공"들의 정보를 빠짐없이 코드화 하지. 그리고 그렇게 축적된 데이터들을 언제나 꿈을 통해 재생할 수 있지.
우주 현현(顯現)의 미시(微視)와 거시(巨視)를 아우르는 정교한 카오스가,3차원 인간의 의식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서,
두뇌와 무의식의 상호 작용을 이끌어 상념계 시스템을 카피한다고나 할까.
뇌 작용의 일환으로 치부되는 "꿈의 윤색이나 재구성"도,무수히 다양한 상념 변형들만큼 시공 버블이 불어나고 있음에 대한, 은유일 따름이다.
우리는 잘 때마다 - 자신들도 모르게 - 우주(꿈계)를 수도 없이 창조하고 있어.알겠니?
또 한 가지 주지할 사항.꿈속 구성원 가운데 "백 프로 상상의 산물"은 없다는 것.
나지수가 현실에서 어떠한 직간접 정보도 얻은 바 없는데,나를 비롯한 수많은 단역들이 이처럼 생생하게 건재하고 있다는 사실..
놀랍지 않니?
베트콩 소녀에서 미군 전투기 조종사에 이르기까지, 생면부지인 듯해도상기(上記) 세 가지 경우가 원인이 되어 - 꿈꾸는 자와 - 얽히는 것이며, 그러므로 어찌 되었든
4차원 평행 시공에 실존했거나 실존하거나 실존할 존재들로만
꿈계의 등장인물은 구성된다고 봐야 해.
꿈의 주된 사건과 꿈꾸는 자의 주요 동선(動線) 이외에 나머지 공간과 배경들은보통 흐릿하게 처리되거나 - 마치 불필요한 것인 양 - 과감히 생략되지만,
이는 꿈꾸는 자의 기억 여부에 국한된 문제일 뿐이다.
위에서 언급했듯꿈이란 (꿈꾸는 자만의 것이 아닌) 등장하는 다른 이들의 꿈과 겹쳐진 중첩계이므로,
꿈꾸는 자의 관심이 미치지 않는 지평까지
모든 들러리들의 무의식은 구체성(具體性)을 상보(相補)적으로 확장시킬 수 있어.
이것은,
꿈계가 "독립된 세계"의 자격을 당당히 획득하는 방식이기도 하지.
꿈이나 현실이나,무명(無名)의 민초(民草)들이 세상을 만들어가는 건 마찬가질세 그려...
최후의 한 발까지 토해낸 머신 건이무방비의 공포와 고열로 경기를 일으킨다.
피로 물든 어둠의 토굴에서 용케도 기어 나온 적들이, 끈끈이로 몰리는 바퀴벌레처럼하나 둘 참호에 뛰어들기 시작한다.
기관총을 걷어차며 뛰어오른 월맹군이착검된 소총으로 전일병의 목을 쑤시려고 한다.
간발의 차로 치명타를 피한 전일병의 날랜 움직임이,개머리판을 반사적으로 휘둘러 적의 관자놀이를 찍는다.
성대(聲帶)가 쪼개질듯한 비명에, 뒤를 돌아보니 마침베트콩이 마구잡이로 후려치는 묵직한 넝쿨 제거용 칼에 M60 사수의 한쪽 손목이 잘리어 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 가해자도 곧바로김하사의 춤추는 대검에 복부를 관통당하는 희생자가 되고 말았다.
탄력 받은 몸놀림의 전일병이 무아지경에서 연거푸 셋을 해치우고달빛 아래 무르익는 백병전의 향연(?)에 본격적으로 빠져들 무렵,
김하사의 소원(?)대로 천지개벽이 일어나중상(重傷)에 허덕이는 "목불인견의 어둠"을 섬광과 굉음으로 하얗게 녹이기 시작하였다.
미제 팬텀기들의 1차 기총소사가 대지를 핥자, 적들은무식하게 내리 꽂히는 기관포 탄알에 짓이겨져
하나같이 압정으로 박아둔 표본실 개구리 신세가 되고 만다.
연속해서 이어지는 폭탄 투하는 거의 융단 폭격의 수준에 버금가는 것이어서,참호 속 뒤엉킨 무리들을
(죽고 죽여야 하는) 절박한 순간으로부터 해방시키기에 충분하였다.
가공할 폭격의 스피디한 접근이 그들을 아찔한 공황에 가두어 놓은, 때문만은 아니다.
동시다발성 폭발이 참호의 언저리까지 장악함에 따라엄청난 규모로 날아온 흙덩이들과 기타 각종 파편들은 그들을 한꺼번에 매몰하고도 남았으니
더 이상의 백병전이 불가능할 밖에..
원거리 폭발의 여파로도 수 미터 이상 튀어 오른 (작은 바위와 다를 바 없는) 커다란 돌덩이가,전일병을 내리누르고 목을 조르던 놈의 등에 정통으로 떨어졌다.
정신을 잃은 녀석이 그와 포개지듯 엎어지자마자,갑작스러운 생매장은 해일처럼 진행되었다.
'허억!!전상준, 넌 아직 죽으면 안 돼!
한결을 살려야 하는데..
한.. 결....
우우 욱!!흙이...
숨.. 막혀.....'
전일병!정신 차려 인마!!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전신에 흙칠갑을 한 김하사가 - 역시나 흙으로 샤워한 - 전일병의 코와 입에서 흙먼지 매캐한 이물질들을 빼내어기도(氣道)를 확보하고 인공호흡을 실시한다.
커억 컥!!
짜식, 너도 명(命) 하나는 타고났구나.참 깊숙이도 파묻혔다.
으으..김하사님 무사하셨군요.
지하벙커는 무사한가요?
케엑 퉤퉤__!
이눔아, 나도 아즉 정신이 덜 돌아왔당께!?
무식한 미군 넘덜아주 작정하고 아작을 내놓았나 벼..
주위가 조용한 걸 본께로,기습한 넘덜은 섬멸됐던 물러났던 우린 일단 한 고비 넘긴 것 같네 그랴.
어디 보자..
벙커 입구가 부서지긴 했는디 다행히 완전하게 막히진 않았구만.
딴따라 아즘씨들도 니나 나 못잖게 운 한번 허벌나게 좋아부럿지,"여기 민간인 있소!" 하고 표시가 된 것도 아니고
코쟁이의 "될 대로 돼라"식 폭격을 어쨌거나 버텨냈으니 말여.
우리 지하벙커는 웬만한 폭격에도 끄떡없다고 들었는데..
그리고 설마 하니폭격 전에 우리측 하고 충분한 교신도 하지 않았을라구요.
김하사님 하고 제가 이렇게 목숨 붙어있는 것도
나름대로 표적 투하가 이뤄졌단 증거 아니겠습니까?
멀지 않은 곳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쩔뚝거리며 달려오고 있다.
김하사! 김하사!살아있었구나.
소대장 박소위였다.오른쪽 허벅지를 칭칭 감은 붕대는 제 구실을 못하고 벌겋게 물들어 있다.
두 사람은 얼싸안고 생존의 천진한 기쁨을 만끽한다.
소대장님두 몰골이 말이 아니구마이라..
폭격 덕분에 위기는 넘겼지만서도, 우리 부대 또한 초토화돼버린 것 맞지요이??
초토화까지는 아니고..재건 가능한 정도로만...
오오, 전일병도 무사하구나!둘 다 어디 크게 다친 덴 없고?
네, 대충 그런 것 같습니다..소대장님, 저 안에 위문단이...
알고 있네.자네들이 훌륭하게 임무를 완수해주었으니 저들은 별 탈 없을 거야.
지금 F부대에서 지원군이 오고 있는 중이야.응급구호반도 곧 추가된다니까, 자네들은 함부로 움직이지 말고
답답하겠지만 여기 이대로 대기하고들 있게.
참, 연병장 쪽은 으찌 되었능게라?우리 소대 아그들도 솔찮이 있었을 텐디요??
연병장 얘기가 나오자 소대장의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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