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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 탈출 환상곡
    꿈계의 월남전 (판타지) 2022. 11. 29. 01:55

     

     

     

     

     

     

     

     

    UH-1 한 대가 연병장 한복판에 희뿌연 돌풍을 일으키며,

    화약 내음 가득 찬 공중으로 막 솟아오르고 있다.

     

     


    방향 감각 상실한 유탄들이 광녀의 치맛자락처럼 펄럭이며,

    전일병의 첨이자 마지막 사랑 고백을  끝끝내 질식사시킨다.


    바람을 베어내는 그것들의 예리한 몸부림이

    두 남녀를 비극의 절정으로 닦아세운다.

     

     


    그는

    등에서 가슴으로 한결을 옮겨 안았다.

     

     

     

     


    꽉 잡아요!

    다 왔습니다!!

     

     

     

     


    슈베르트 가곡 "마왕"의 한 장면이 재현되는 듯하다.


    질풍처럼 쫓아오는 악마로부터 어린 아들을 지키려 애쓰는 (말 탄) 아버지인 양,

    전일병은 허리를 최대한 굽히고

    재게 놀리는 지친 다리에 더욱 채찍을 가한다.


    그녀의 뜨거운 입김이 그의 목 언저리에 끊임없이 와 닿는다.
    그녀의 헝클어진 머리가 바람에 날리며 그의 얼굴을 처량하게 간질인다.

     

     

     


    이륙을 준비하는 나머지 한 대가 삼사 미터 전방에서 어른거린다.

     

     

     

     


    무전병!

    2시 방향 철책이 움직인다! 포대에 빨리 좌표 알려줘.


    성중사!

    후방 엄호 병력에서 세 명 빼다가  이쪽으로 이동 배치시켜!


    배불뚝이 저 코쟁이 새낀 60 안 쏘고 뭐 해?!

    헬기에 짱박혀 씨레이션이나 까먹는 거 아냐?

    안 되겠다. 양상병이 가서 저 시끼 뒤통수 갈기고 와.

     

     

     

     


    회전 날개가 돌기 시작한 UH-1과 지근거리에서,

    소대장을 비롯한 아군 7,8명은 얼굴 없는 적을 향한 응사에 몰두하고 있다.


    헬기로의 포위망을 서서히 좁히는 그들의 압박을 적절히 커버하기엔,

    폭탄 두 방이 선물한 흙더미와 구덩이는 - 탁 트인 연병장에서 - 영 부실한 엄폐물인 것 같다.

     

     

     

     


    소대장님! 하늘 좀 보십시오!

    전투기 같은 게  또..


    덩치가 장난 아닌데..

    이번엔  B-52가 들어온 것 아닐까요?

     

     


    그럴 리 없어..! 이 상황에서 폭격이 재개되면 민간인 수송 작전은 끝장이야!
    미군하고 얘기가 다 된 사항인데 무슨 헛소린가!?

     

     


    하긴 그렇네요..


    그럼 저건 뭘까요? 비행기 소리도 전혀 안 나고..

    그러고 보니 모양새가 B-52 하고는...


    설.. 마..

    소련 놈들 미그기가 저 따구로 진화(進化)한 건 아니겠죠??

     

     


    말 같잖은..

    여긴 한미 연합 방공망이 철통 같은 구역이야. 근데 걔네들이 어케 들와?!
    그리고 자네 눈엔 저게...

     

    앗! 도대체 뭐지 저 희한한 건?!!

     

     

     

     


    언뜻 스텔스 기종을 연상케 하는 (스텔스보다 몇 단계는 더 업그레이드되어 군더더기가 사라진 듯한)

    정삼각형의 납작한 미확인 비행체 3대가

    삼각 대형을 유지하며 오백여 미터 상공에서 저공비행을 하고 있다. 아니, 정지 상태로 떠 있다 해야 옳을까.


    삼각 꼭짓점에서 발산되는 푸르스름한 (형광과 흡사한) 불빛으로 간접 가늠해 보아도,

    F-4의 서너 배는 족히 되고도 남을 비교적 거대한 크기이다.


    조종석 확인은 도저히 불가능할 만큼 - 밤임을 감안하더라도 - 지독히 새까만 (정체불명의) 매끈한 금속(?)이,

    부대 위에 낮게 떠 아군과 적군 모두를 알 수 없는 두려움으로 얼어붙게 만든다.

     

     

     

     

     

     

     

     

     

     

     

     


    소영아, 저게 대체..

    이 또한 시공 파편의 유입이냐?

     

     


    아니,

    그저 단순한 "에프엠적(的) 책동"일 뿐이야.


    너의 (육신으로의) 무사 복귀를 원치 않는 에프엠 마스터들이

    이곳 꿈계의 하수인들을 시켜 드림홀 현현을 방해하려고 한다.


    저것은, 이곳 세상의 비밀 정부가 악성 외계인들과 손 잡고 개발한 일종의 비밀 병기지.
    4차원계로부터 날아온 "에프엠의 메시지"를 포착하고,

    세계 각국과 연결된 지하 비밀기지의 베트남 쪽 출구에서

    지구산(産) 반중력 무인(無人) 유에프오가 공간을 접어 점프한 것이다.

     

     


    너희들 공격을 받는 걸로도 모자라 이젠 유엡포한테까지 당해야 한단 말이니?

     

     


    넘겨짚지 마.

    저들은 우릴 저지하려는 거야.


    우리가 저 헬기를 폭파해야 넌 드림홀 격자에 엮일 수 있거든.

     

     


    이거 참.. 딜레마네.

    내가 살자니 엄청난 비극이 발생할 테고, 비극을 막자니 내가 죽게 생겼군.

     

     


    그 정도로 고뇌할 필요까진 없고.
    이곳 지구의 가이아 의식을 수호하는 홀리(holy) 화이트 브라더스가,

    내 요청을 받아들여 이 지역에 결계를 그어놓았으니까..


    놈들이 날 향해 변형 플라스마 빔을 쏘아댈 테지만,

    내 친구들의 극미립자파(波) 보호막을 결코 뚫진 못할 거야.

     

     


    결국 비극은 필연적이란 얘기군..

     

    너처럼 도통한 초월자들이 여기 베트남에도 존재한다는 말이냐?

     

     


    친구들은 가이아 에너지장에 접속된 에텔체들이다.


    본거지는 히말라야 일대지만, 자신들의 "해탈 오오라"를 지구령(靈)에 도킹하면

    그들은 세상 어디에나 동시에 존재할 수 있지.

     

     


    그런데, 저 음험한 병기가 왜 널 조준한다는 거냐?

     

     


    나, 막리엔은

    비록 어리지만 특등 사수다.
    내가,

    이제 곧 바주카 포로 헬기를 명중시킬 장본인이야. 키득키득..

     

     


    그래, 너 참

    훌륭한(!) 베트콩 전사(戰士)다.


    그 구닥다리 쏘고 나면 너 또한 무사하지 못할 텐데..

    바로 발각돼서 개박살 난다고!

     

     


    목숨은 이리 오기 전에 이미 버리고 왔어. 킬킬킬...

     

     


    눈에 저 살기 보소!

    가공할 충성심이로고.

    세뇌가 이렇게 무서울 줄이야..

     

    이거야 원..

    얘한테 고맙다고 해야 하는 거냐 소영아?

     

     

     

     

     

     

     

     

     

     

     

     


    한결 씨,

    이렇게 와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귓가에 대고 나지막이 속삭였으나 그녀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다시 기절이라도 한 것일까..

     

     

     

     

     


    상준 형! 얼마나 찾았는데..

    이건 너무 위험한 짓이야. 어서  나랑 같이 벙커로 가자.

     

     

     


    가까스로 전일병에게 다가간 내가 그의 팔을 잡고 흔든다.


    발동 걸린 헬기 특유의 요란한 소음이 나의 핏대 선 애원을 모조리 잡아먹는다.

     

     

     


    나지수, 이 멍청한 놈아! 그렇게 죽고 싶어? 네가 여길 왜 와!?


    꼼짝 말고 엎드려 있어, 새끼야!!

     

     

     

     


    유탄의 무차별 대시가 헬기 몸체 곳곳에 스파크를 일으킨다.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한 나는,

    신속한 엎드림 동작을 위해 (깁스도 못 하고 압박 붕대에만 의지한) 온전치 않은 상체를 혹사했다.


    유리조각으로 뼈를 갉아대는 통증이 다시 나를 괴롭혔으나,

    정신은 온통 상준 형에게만 쏠려 있다.

     

     

     

     


    전일병은 한결을 번쩍 들어 올려 - 안타까운 시선으로 발을 동동 구르는 - 그녀의 일행한테 밀어 넣었다.

     

     


    진한 아쉬움이, 갈 곳 없는 허무를 벼랑 끝에 고정시킨다.


    찰랑찰랑한 위기가 어느새 절벽 위로 차올라 허무의 발을 적신다.

     

     


    죽음과도 같은 "이별의 절망"에서 헤어나기 위하여,

    차라리 "죽음의 위기" 속으로 새털처럼 가볍게 다이빙이나 해볼까..

     

    이러한 상념을 철모 대신 눌러쓰고 돌아서는 순간,
    날아다니는 "살인귀의 누런 송곳니들" 중 하나가 결국 그의 오른쪽 다리를 물어뜯고 말았다.


    신경을 쭈욱 뽑아내고 힘줄을 가닥가닥 찢어 한 데 버무린 다음 송곳 다발로 짓찧는 듯한,

    전대미문의 고통이 선혈과 함께 그의 무릎에서 솟구쳤다.

     

     

     

     


    쇳소리 같은 신음을 토하며 쓰러지는 전일병에게로, 나는 엉금엉금 기어갔다.

     

     

     


    형!

    정신 차려, 혀엉!!

     

     


    호들갑 떨지 마. 난 괜찮아, 인마...

     

     

     


    그의 충혈된 두 눈에 소금기 어린 액체가 흥건히 고여 있음을, 나는 보았다.
    반드시 육체의 아픔 때문만은 아닐 거라는,

    그것과는 무관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스치고 지나갔다.

     

     

     

     

     


    한결을 태운 잠자리가 기우뚱거리며 몸을 일으킨다.
    모래를 따갑게 뿌리는 돌풍 속에서,

    나는  (그를 울게 한) 희미한 이목구비를 보았다.

     

     


    그녀는 헬기 밖으로 얼굴을 내밀어 (그녀로선 엄청난 용기를 요하는 행동이리라..)

    나를 아니 - 내가 뒤에서 받쳐 안고 있는 - 전상준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분명 그녀였다.


    몸의 한 부분이 산산이 부서진 (죽음과 사뭇 친해진) 그의 모습을

    그녀는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바람이 눈에 고인 액체를 흩뜨려놓아 똑똑히 보일는지는 미지수지만,

    전일병 또한 그녀를 쳐다본다.


    바라봐 주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고맙고 영광인 "그녀의 시선"을

    그가 어찌 외면할 수 있으랴..

     

     

     

     

     

     

     

     

     

     

     

     


    소영아, 네 엄마도 아버지를 보고 운다.
    네 엄마와 아버지가, 물기로 얼룩진 서로의 얼굴에서 차마 눈들을 떼지 못하고 있어.


    자신들의 곧 있을 죽음을, 둘 다 예감하는 걸까?

     

     


    포탄을 발사했다. 그리로 날아가고 있어.

     

     


    이런!

    난  어떻게 하면 되니...?!!

     

     


    그냥 죽으면 돼.

    나지수의 목숨이 끊어지면 넌 이미 다른 세계로 들어서 있을 테니..

     

     


    말을 해도..

    항상 이런 식이지.

     

    어째 갈수록 잔인해지냐, 통과 의례가..

     

     

     

     

     

     

     

     

     

     

     

     


    '날 위해 울어주는 눈물이 보이네요.

    이것이 착각이어도 좋아요.


    오늘 당신의 고운 눈물을 본 것으로 나는 만족합니다.

     

    잘 가요.  봐도 봐도 그리운 사람....'

     

     

     

     


    십여 미터 상공으로 올라간 한결의 눈물을 향해, 전일병이 손을 흔든다.

    그리고...

     

     

     

     

     


    공중 폭발은,

    동강 난 기체(機體)들이 화염을 물고 두 사람의 머리 위로 낙하하기 전에

    먼저, 부러진 프로펠러를 망나니의 칼처럼 나지수한테 휘둘렀다.


    육중하고 투박한 비수가 공포의 속도를 앞질러, 부메랑처럼

    이 꿈의 (내가 깃든) 상념 분신을 덮친 것이다.

    죽음을 의식할 짬도 주지 않고..

     

     

     

     

     

     


    내 유체의 드림홀 진입과 더불어,
    추진 로켓인 "나지수의 상념"은

    그렇게 떨어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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