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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나체 침투조꿈계의 월남전 (판타지) 2022. 11. 3. 15:10
'이런! 한결 생각을 미처 못 했군.
내가 구하러 갈께요. 아무쪼록 살아만 있어주오...!'
야!포기하지 말고 지키자던 놈이 어딜 가는 거야?!!
전일병!! 전일병!!!
땅거미가 확연하게 깔린 저 앞 어느 지점에서, 월맹군 혹은 베트콩이 건드렸을 크레모아가 대기(大氣)를 갈가리 난도질하며 비산(飛散)하였고, 더불어 저지선 부근까지 할퀸 후폭풍의 성가신 위력은, 정병장의 절규에 가까운 고함을 매몰차게 묻어버렸다.
엄폐호를 뛰쳐나온 전일병이 가파른 오르막을 거슬러 십여 미터 가량이나 줄달음쳤을까.
적의 바추카포가 벙커를 날렸고, 흙덩이들과 함께 덮친 둔탁한 무엇인가가 등에 정통으로 부딪쳐, 그는 고꾸라지면서 비탈을 두어 바퀴 굴러야 했다.
뒤 이어 데굴데굴 구르다가 - 자빠진 그의 옆구리에 닿아 - 멈춘 그 큼직한 "무엇인가"의 정체를 확인한 순간, 전일병은 정신이 아득해오며, 귀청이 나간 것 같은 (뜨겁게 팽창한) 정적에 휩싸였다.턱이 사라진 정병장의 분리된 머리를 노려보며, 그는 한 개비 남은 마리화나를 - 불과 20여 초 남짓 사이에 - 폐부로 모조리 빨아들였다.
베트콩 침투조가 올라오고 있다.
벌거숭이 베트콩 소녀가 맨앞에서 뛰어온다.
바가지 머리를 한 그 소녀는 검은칠 한 알몸에 탄띠만 둘렀다.소녀가 든 (대검이 꽂힌) 구식 AK소총은 그녀 키의 절반을 훌쩍 넘어서고 있었다.
침투조의 선봉에서 용감하게 돌진하는 수 명의 알몸 돌격 대원들은, 자기들 발 아래 숨어 있는 전일병을 발견하지 못하였나 보다.
"금단의 약초" 탓일까.
비탈은 꿈틀거리는 뱀처럼 요동하면서, 일어서려는 그의 시도를 번번이 무산시켰다.
끊일 줄 모르는 총성과 심심하면 터지는 (폭죽과도 같은) 폭발만으로도 지옥의 문은 충분히 열리고 있건만, 어설픈 신체 훼손이 유발하는 (사신(死神)을 헷갈리게 하는) 비명들, 고참병들의 (기습한 비극을 저주하느라 욕이 반을 차지한) 고함 소리, 발포 명령을 내리는 장교들의 (약발이 먹히지 않는) 퇴색한 외침, 그리고 우리 쪽에서 마구잡이로 응사하는 기관총 소리까지, 뒤죽박죽으로 섞여 아수라장을 방불케 하였다.
연병장 특설 무대 주변에서, "조명 꺼!!" 라는 신경질적인 부르짖음이 무대 효과의 일부인 양 날카롭게 피어 올랐으나, 헛심만 뺀 때늦은 경고가 되고 말았다.
월맹 정규군의 박격포로 추정되는 포탄이 무대 측면부를 때린 것이다.
이런! 소닉홀이 사라지고 있잖아.
소영아, 네 엄마 아무래도 죽은 것 같다.넌 괜찮아?
...................
연병장과 주변 진영은, 화기(火器)들의 집요한 방해에도 불구하고 (적들에 앞서) 이미 어둠의 점령지였다.
피범벅의 대혼란 속에서도, 실전으로 단련된 노련한 해병대원들은 어느새 각자의 임무를 찾았고,사방에서 조여오는 (얼굴 없는) 적들의 그림자에 분노의 살기를 겨누고 있었다.
'김하사의 예상이 적중한 것일까. 우리측 대응 포격이 이제야 시작되다니..
녀석들은 이 날만을 기다려온 것인지도..대대적인 양동 작전을 감행했음이 틀림 없어!'
155, 105미리 포대의 지원으로,진지를 둘러싼 산과 들판 곳곳에 요란한 섬광이 쉴 새 없이 번득이기 시작했다.
시체들이 너저분한 연병장은 적과 아군이 잠시 숨고르기를 하는 동안 적막에 휩싸여 있고, 급조된 목재 설치물들만 중앙에서 캠프파이어의 통나무 더미처럼 활활 타올라, 연병장을 짓누르는 어둠의 위력을 역설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피아(彼我) 공히 저격 목표지로 삼고 있는 연병장을 향하여,5미터 이상 치솟아 오르며 주위를 대낮같이 밝히고 있는 맹렬한 불길을 향하여,
전일병은 앞뒤 가리지 않고 뛰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뒤에서 누군가가 덜미를 잡아 - 이성 잃은 - 그를 제지하는 바람에, 무모한 개별 행동은어리석은 횡사(橫死) 직전에 주저앉을 수 있었다.
전일병! 죽고 싶어 환장했나!?
김하사였다.여기 이러고 있으면 위험해. 꾸물대지 말고 날 따라와!
김하사님, 위문단은 어떻게 됐습니까? 전멸인가요?
한결은...??
그래서, 한결 살리겠다고 지금 뛰어나갔던 거이냐?
어쭈 이놈 봐라? 철모는 엇다 팔아먹고..눈깔을 보니 또 몇 대 빤 모양일세. 이러니, 일병놈의 새끼가 근무지를 이탈해서 겁대가릴 짱박고 나대지.
좌우간, 행정반 뺀질이들이 쫄다구 물 다 흐려논다니까네...
한결은 어찌 되었냐구요!!?
짜샤, 시방 그 가이나가 문제여?
공연단 희생이 아주 없었던 건 아니지만, 여하튼 죄다 발 빠르게 피신시켰응께한결도 어딘가 잘 짱박혀 있을 기다.
직접 대피시키셨습니까? 한결 봤어요?그녀가 노래 부르고 있을 때 일이 터졌잖아요!
얼레? 입에 개거품을 물고 고참한테 대드는 것 좀 보소!?
그 가이나가 참말 니 애인이라도 이러는 건 아니제!
죄..송합니다.한결한테 가..보고 싶은 맘에...
내가 직접 움직인 건 아니고 그냥 멀찍이서 대충 본께 그런 것 같단 말이시.
이 판국에 공연단 사상자 파악까정 할 경황이 있간디?한결 그 가이난, 무대로 한 방 떨어지기 전에 얼른 피하긴 했는데..
그런데요?
군바리인 우리도 이리 우왕좌왕 똥오줌 못 가리는데, 민간인 여자가 뭐 어쩌겠어.총소리 포소리 나면서 바로 실신이었지 뭐..
김하사 등 뒤로 불과 15미터쯤 떨어진 부대 철책 부근에도 로켓포가 떨어져근처의 또다른 전망대가 순식간에 부서져내렸다.
그를 덮치며 쓰러지는 김하사의 귀에 대고 전일병이 소릴 지른다.
한결을 살리고 싶습니다!!
이..이건...적어도 연대 규모급 공격이다!
적의 2차 공격이 개시되었는데도 미군의 지원 폭격은 감감무소식이군. 과연 짐작한 대로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어, 낄낄낄...하긴.. 적의 작전은 거의 성공한 셈이고 폭격 타이밍을 놓칠 만도 해.
개자식들 설마, 뒤늦게 미친 척하고 "완전 초토화"를 명령해서 우리까지 쓸어버리는 건 아니겠지.띨빵한 사령부 놈들..
참말 이렇게 될 줄 몰랐던 거야?!
이처럼 위험한 곳에 연예인들을 투입하여 우릴 즐겁게 해준다고??
창고에서 녹슬어가던 엄청난 미제 무기들은 다 얻다 빼돌리고, 수 차례 지원 요청에도 미적미적 방관만
하다가, 기껏 고안해낸 미봉책이 위문 공연??
적어도공연 잡은 날만이라도 방어를 보장해 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살인자들...
공연단 스케줄 대로라면 22시경에 헬기가 오는 것으로 되어있습니다만..
이런 상황에서 UH-1 서너 대가 어떻게 날아오나!
송하사님!어디 계십니까, 송하사님..
한바탕 광풍이 휩쓸고 지나간 연병장 곳곳엔 비릿한 피내음이 질퍽하게 깔려 있었다.
방금 전까지 왁자지껄하던 즐거운 광란은 오간 데 없고, 대신침략자들을 응징하는 원주민의 경직된 적의가 치고 들어와, 처참한 광폭(狂暴)을 싸서 뭉갠다.
송하사 덕분에 무대와 비교적 가까운 자리를 잡아, 느긋한 마음으로 공연을 관람하던 도중이었다.
근처에 포탄이 떨어지면서 파편이 되어 날아온 나무토막이 내 가슴팍을 때렸고, 숨이 멎는 고통과 함께 나가떨어진 이후부터 내장을 녹이는 듯한 통증 때문에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아마도 갈비뼈가 으스러진 모양이다.
쉬잇! 조용히 못 하나?!확인사살 당하기 싫음 죽은 척하고 누버있그라 마.
바로 옆에서 내 손을 꼭 잡고 연방 휘파람을 불어대던 송하사가, 지금은 시체 두 세 구를 사이에 두고 떨어져 엎드린 채다급한 속삭임으로 나를 나무란다.
무대를 불사르며 타오르는 화염의 기세는, 빨간 물감을 뒤집어쓴 것 같은 그의 얼굴은 물론두려움이 어른거리는 미세한 표정까지 포착하기에 충분하였다.
귀가 통째로 찢기어 나간지도 모를 만큼,산전수전 다 겪은 그 역시 - 전혀 생각지 못한 - 이번 기습엔 적잖이 당황해 하는 것 같았다.
부대 근방 산악 지형이 완전히 탈바꿈 할 정도로 (그러나 얼마나 효과적으로 적을 소탕할 수 있을지는 심히 의심이 가는) 집중포화가 본격화되었으나, 내 귀엔 그저 아련한 풀벌레 소리쯤으로 느껴질 뿐이었다.
전열(戰列)을 재정비한 우리 부대원들의 연병장 탈환과 부상병 구출이 가시화되기 전,자살 특공대나 다름 없는 "나체 침투조"는, 대(大)반격이 잠깐 볼일 보는 (잠정적이어서 살벌한) 휴지기를 - 적요(寂寥)를 인질 삼아 - 겁없이 활보하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나는 소총 연발음이 신경을 긁는다.
피신의 기회를 놓쳐 - 목숨에 대한 끈질긴 집착이 - 별 수 없이 꼼수(?)를 부려야 하는 "가짜 시체"들과,운신이 힘들어진 나 같은 부상자들은 물론,
덜 죽어 본능적으로 기척을 내는 "절반의 시체"들까지도 낱낱이 가려내어
즉석 처형을 집행하는 것이리라.
짜증 섞인 노여움의 AK 벼락들이 히스테리컬하게 떨어지며내가 있는 곳으로 점점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