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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 한결
    꿈계의 월남전 (판타지) 2022. 10. 31. 11:37

     

     

     

     

     

     

     

     

     

    전장(戰場)에 찌든 장병들이 작심하고 - 스트레스를 싸서 - 게워낸 웃음소리가, 맛 간 스피커의 잡음과 섞여,

    인기 코미디언의 (포복절도하기엔 다소 지겨운) "우려먹기 개그"에 참신한 생명력을 부여하고 있었다.

     

     

     

     

     


     

    키득키득..

    권상병 님, 무작정 올라가면 빤쮸헌테 미안하대요. 존나리 웃기지 않습니까? 낄낄..

     

     


    조또! 자꾸 불 난 집에 부채질할래?   
    니미, 배삼영의 개다리춤도 못 보고..

    에이, 엿같네 진짜.. 퉤!!

     

     


    하이고, 1절만 하세요.  
    전들 속상하지 않겠습니까? 하추나 왕팬이면 뭐하냐고요. 코빼기도 볼 수 없으니..
    똥꼬 치마 입고 왔다 갔다 하던 무용수들은 또 어떻구요. 아직도 삼삼하니 눈앞에 아른거려  아랫도리가
    뻑지근하다니깐요?

       
    짜증내고 불평해봤자 제 속만 쓰릴 뿐, 엎질러진 물 다시 주워 담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닙니까요!    
    저처럼 맘을 비우시고, 듣는 걸로다 그냥 만족하십시오.

     

     


    너랑 나랑 같냐? 이 씨발탱구야!

    새파란 이등병 노므시키가 꿈도 야무지게 맘 편히 구경할 생각을 했다면, 그게 이상한 거지!

    개념을 물에 말아먹은 놈아, 이러니  빠졌단 소릴 안 들어?

     

     


    거참, 시끄러워서 노랠 들을 수가 없네. 가뜩이나 확성기 성능도 안 좋구먼.. 

       
    히히, 권상병님, 그만 발끈하시고 이거나 좀 드셔 보시겠습니까?

    세 시간 말뚝 서려면 아무래도 입이 심심할 듯하여, 보급 창고에서 실례 좀 해왔죠.

    쇠고기로 하실래요, 칠면조 고기로 하실래요?

    말씀만 하십쇼, 쬬코렛 비스켓 깐포도, 가지가지 준비되어 있으니..

     

     


    하여간, 처먹는 덴..    
    창고를 지네 집 뒷간처럼 드나들더니 볼따구니 살 오른 거 봐라, 뒤룩뒤룩해갖곤..

    느글느글한 씨레이션 깡통 물리지도 않냐?

     

     


    배가 부르신가 보군요. 싫음 관두십시오. 저 혼자 다 먹을 테니..

     

     


    짜슥이 성미는 급해갖고.. 인마, 하늘 같은 고참 말 끊어 먹을래??

    쇠고기로 할게. 칠면존 너 먹어라. 냄새가 별로라..

    깐 포돈 디저트, 험험...

     

     

     

     

     

     

     


    ............... 네에, 깜찍한 정운희 양의 앵콜송 "그사람 바보야"까지 들으셨습니다.

    이어서, 정운희양 못지않게 여러분들이 너무나 좋아하시는 미모의 여가수, 한결 양을 소개합니다.

    열렬한 박수로 맞아주시기 바랍니다.

     

     


    안녕하세요, 한결입니다.

    참전 용사 여러분 만나 뵙게 되어 영광이에요. 반갑습니다.

     

     

     

     


    "그대 마음에 처음 노크하던 날, 풍선 쥔 아이처럼 즐거웠었지.
    그대와의 멋진 만남을 그리며 풍선처럼 부푼 가슴은 황홀했었지.          


    그대 마음에 두 번째 노크하던 날, 다소곳한 그리움에 촉촉해진 눈으로
    무심한 그대 모습 바라보았지. 기다림에 지친 소녀는 홀로 애만 태웠지......................"

     

     

     

     


    아, 한결은 도저히 못 참겠다. 씨발..

        
    박 이병, 나 말리지 마! 한결만 쫌 보고 올께.

    부탁한다.

     

     


    권.. 권상병 님! 그러다 걸리면 최소 영창행(行)이에요!

    바보짓 마시고 제발 자릴 지키십시오.

     

     


    장교 하사관 놈들  죄다 무대 밑에서 침 질질 흘리고 있을 텐데, 뭔 걱정이야?!   
    깜냥껏 몰래 구경하고 올 테니까 너나 근무 잘 서고 있어. 괜히 나 따라 하지 말고..

     

     

     

     


    '미치겠네, 저 꼴통 권상병.. 기어이 일을 저지르는군.    
    에라, 모르겠다. 설마 하니 쫄다구인 나한테까지 불똥이 튀진 않겠지.

       
    쯔쯧, 한결이 그리 좋을까. 노래 잘하고 얼굴 반반한 것 빼면 무어 볼 것 있다고..

    아 참, 몸매도 있었구나.

    젠장, 얘도 딱 내 스탈이네.'

     

     


     

     

     

     

     

     

     

     


    ............. 그대 마음에 세 번째 노크하던 날, 우울한 기분이 나를 감싸고
                  소중한 꿈마저 내 가슴을 짓눌렀지. 희미해지는 그대 놓칠까 안타까웠지.


                  그대 마음에 마지막 노크하던 날, 난 부푼 희망을 버리고
                  슬픔 어린 눈망울로 그댈 바라보았지. 변함없는 그대 웃음이 날 울리고 말았지...........

     

     

     

     


    '정말 보고 싶었던 사람...
    어떤 땐 어머니보다 먼저 머리에 떠올라, 당황되고 죄스럽기까지 했었지. 
    그녀가 지금 연병장에 있다.

     

    아아, 보고파 미치겠다.


    교대해주긴 개뿔..!

    김하사의 공수표를 철석같이 믿은 내가 바보지. 예쁘고 화사한 그녀를 보느라 얼이 빠져, 약속을 까맣게 잊은 게 분명해.

    멋진 고참인양 호언장담은.. 허세나 부리지 말 것이지.

    첨부터 기댈 안 했음 이다지 아쉽지도 않았을 것을...'

     

     

     

     


    전일병, 웬 한숨이 그리 잦아? 한결 노래 들으니 갑자기 탈영이라도 하고 싶어 지냐?


    니 심정 충분히 이해는 된다.

    우리 같은 행정 요원들이야 애초부터 이리될 걸 잘 아니까, 언감생심 구경은 아예 꿈조차 꾸지 않아 새삼 억울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지만, 넌..

    작전 나갔다 간신히 살아 돌아와,

    그놈의 짬밥 땜에 쉬지도 못하고 바로 작업 투입돼,

    게다가 공연 시작되고서는 지저분한 벙커에 처박혀 무희의 궁둥짝 대신 캐리버 50이나 애무하고 있으니,

    나라도 니 입장이면 빡이 돌겠다 야...

     

     


    정병장님, 제가 불쌍하시다면 부탁 한 가지만 들어주십시오.

     

     


    야, 내 비록 실전 경험 전무(全無)한 물병장이지만 그래도 엄연한 선임인데, 설마 하극상하려는 건 아니겠지?

    만약, 가서 구경하고 올 테니 좀 봐달라던가 뭐 이딴 맹랑한 소리 할 요량이라면, 나 가만히 안 있는다?

     

     


    제가 약 먹었습니까? 그런 무시무시한 발언을 하게..    
    백 번 양보해서 정병장님이 봐주신다 해도, 제 목숨이 두세 개가 아닌 이상 언제 누구한테 발각될지 모를 위험을 무릅쓰고 - 소대 왕고들이 즐비한 - 연병장으로 간다는 게 얼마나 무모한 짓인지 정도는, 잘 알고 있습니다.


    전 단지..

    정병장님 혹시.. 그거 키우시면 한 까치만 어떻게...

     

     


    그거였어?

    짜식, 겨우 그걸 갖고 무슨 서론이 그리 거창해!? 괜히 긴장했잖아! 그 정도야 뭐..


    까짓 기분이다. 옛다  두 대..

    너네 소대에선 상병 달기 전까진 이것도 맘대로 못 피운다며?? 언제든 생각나면 나한테로 와, 전일병.

     

     


    고맙습니다.  정병장님..

     

     

     

     

     


    '전상준, 너 여기서 뭐 하는 거니.        
    네가 애달아서 갈구하던 한결, 그녀가 이곳에 와 있단 말이다.
    한국에 있었다면 나 같은 숙맥은 죽었다 깨도 만나지 못할,

    그녀가 널 위해 첩첩산중 여기까지 찾아와 주었다고!


    대체 무얼 망설이느냐.      
    이야말로 하늘이 내려주신 기회 아니더냐. 어서 일어나 그녀에게로 달려가!
    가서 일단 그녀의 손부터 잡고 보는 거다.

    이곳은 전쟁터. 너의 피를 말리는 전쟁이 널 도와주는 순간이다.   
    인간 대 인간으로 자연스럽게 말을 걸어라.

     

    이런 기회, 너의 인생에서 더 이상 오지 않아.
    언제 어디서 개죽음당할지 모르는 일이잖아. 또 살아서 한국으로 돌아간들 무엇이 달라질 것인가.
    부산항 부둣가에 꽃다발 들고 그녀가 마중 나오기라도 한단 말이냐.


    그녀는 널 기다려주지 않아.

      
    공연이 무사히 끝나면,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토하며 저주받은 여길 미련 없이 뜰 것이고..   
    너는 엄마 잃은 아이처럼 홀로 남겨져, 다시금 절망 속에서 죽음과 싸워야 한다.
    지금이 너의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라는 명백한 사실을, 왜 망각하고 있는가.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당장 뛰어가서 그녀를 안아라!

        
    바퀴벌레 밟아 으깨듯 인명(人命)을 살상하는 너에게, 두려울 것이 무엇이겠느냐.   
    화염방사기로 삶의 터전을 초토화하는, 너의 절대 권능이 무엇을 주저하느냐!'

     

     

     

     

     

     

     

     

     

     


    아빠, 정신 차려욧!

    한가하게 관람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고요.

     

     


    소.. 소영아, 여긴 군대 같은데..

    넌 어디 있니?

        
    앗, 네 엄마가 또, 무대 위에서 노랠 부르고 있네?

    너구나! 이번엔 엄마의 몸으로..?     
    그럼 난  누구 몸속에...??

     

     


    여긴 엄마를 죽인 그 스토커의 환상계예요.   
    (그가 잠자는 동안 꾸는) 꿈속의 상념 분신 즉 드림 바디가 다시 만들어낸, "이중(二重) 꿈의 계"입니다.

    아빤, 이자의 "꿈속 꿈 드림바디" 안에 갇혀버린 것이고요.

     

    "이곳의 엄마"가 부르는 노래 후렴 부분에 집중하세요!

      
    무대 좌우측 및 중앙의 엠프에서 발생하는 멜로디파와 비트파가 중첩하여 복합 파동 섹터를 형성하는 것, 보이시죠?         소닉 홀(Sonic-hole) 셋업이 진행 중이니 절대 놓치시면 안 돼요.  
    "파"나 "라" 음계 위에 반드시 올라타야만 소닉홀로의 진입이 가능해집니다.

     

     


    선율이 눈에 보이잖아!?

    신기하군..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파동 체인 아빠한텐 극히 자연스러운  "상동성(相同性) 반응"일 따름입니다.

     

     

     

     

     

     

     

     

     

     


    고막을 찢는 강렬한 폭발음이 지척의 거리에서 사납게 돌진해와, 몸을 일으키려던 전일병을 벙커의 축축한 바닥에 마구 쑤셔 넣었다.

    곧이어 제2, 제3의 폭음이 - 본능적으로 엎드린 - 그의 어깨를 짓밟아,
    한동안인지 잠깐인지 여하튼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정병장님! 로켓 포하고 무반동총이 틀림없습니다. 이건 사고가 아니라 놈들의 기습이란 말입니다!


    이럴 리가 없는데.. 어떻게 감히 여길...

     

     


    아니야, 아닐 거야!

    적어도 오늘은 이래선 안 돼! 우리 정보가 여태  빗나간 적은 없어!

     

     

     

     


    거의 울먹이는 음성으로 이렇게 부르짖는 정병장의  전투복 하의가 빠르게 젖어들고 있었다.

    불시에 몰려든 죽음의 공포를 감당하지 못하고 오줌을 싸버린 것이다.  


    당황하여 잠시 어찌할 바를 모르고 허둥대는 이들을 비웃으며, 포탄들의 기분 나쁜 비행음(飛行音)은 - 적의 습격이 아니길 간절히 바라는 - 두 초병의 덜 익은 절망에 쐐기를 박았다.


    벙커 바로 뒤쪽의 (목재로 된) 전망(展望)초소가 산산조각 났고, 나무와 넝쿨로 철저히 위장된  근처 반지하 콘크리트 탄약고에도, 조준 발사 수준의 명중도를 자랑하며 두 방이 터졌다.   

     

     

     

     

     
    전일병! 이러다 우리 죽겠어.

    이리로 떨어지기 전에 우선 여길 뜨고 보자!

     

     


    안 됩니다!

    조만간  적의 침투조가 모습을 드러낼 텐데, 우리가 자릴 이탈하면 진지 함락은 시간 문제라구요.

     

    부디 침착하십시오!

    전방엔 크레모아도 설치되어 있고, 놈들이 철조망을 넘어오다 조명지뢰를 건드릴 수도 있으니, 아직은 포기할 단계가 아닙니다. 

     

     

     

     

     


    조금 전까지 악단의 반주가 경쾌하게 울려 퍼지던 확성기에서, 사람들의 아우성이 - 증폭된 기술적 잡음과 섞여 - 급하게 기어 나왔다. 연병장 사정도 이곳과 별반 다를 바 없이 급격하게 악화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곳의 고조된 위기를 중계하던 장치마저 박살이 났는지, 포탄 터지는 굉음의 전달을 마지막으로,

    급조된 야외 공연장의 생생한 아비규환은 페이드아웃(fade-out)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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