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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3. 변소
    Letters to D.J. (지수 외전)/FRIDAY THE 13TH 2024. 11. 3. 12:21

     

     

     

     

     

     

     

     

     

     

     

     

     

     

     

     

    Another stories of Jisoos in parallel universes : 2. Friday the 13th (원본) (33)

     

     

















    저들의 막사 뒤편 나무들 사이 어디쯤에 구덩이를 깊게 파 임시방편으로 만들어 놓은 간이 변소가 있다 하였는데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그 위치를 파악하기가 녹록지 않았습니다.

    나뭇가지들과 성냥 통을 들고 나오긴 하였지만 정식 횃불이 아니라서 불이 제대로 붙지도 않았고

    또 간신히 붙인다 해도 금방 타버려 장시간 불을 밝힌다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였습니다.
    따라서, 별도의 칸막이 없이 - 막사에서 뜯어낸 - 판자를 꽂아 대충 표시해 둔 개방형 변소를 찾는 데

    적지 않은 시간을 허비해야만 했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혼자 나와, 창고 근처 적당한 데서 후딱 해결할 걸"하는 후회마저 들더군요.

    배려해 주시는 김에 먼저 그리 제안해 주셨으면 한결 마음 편히 실행에 옮겼을 텐데, 무슨 연유인진 몰라도
    마스터는 제가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낑낑대며 헤매는 동안 묵묵히 뒤를 지키고 계실 따름이었습니다.


    몸 둘 바를 모를 만치 제 잠재력을 높이 사고 틈만 나면 저를 치켜세운 마스터 앞에서

    그런 추하고 적나라한 모습을 보이기는 싫어, 아픈 배를 움켜쥐고 열심히 똥구덩이를 찾아 돌아다녔습니다.

    ​이분의 능력이면 그곳을 바로 찾아내고 앞장서 안내할 법도 한데 어째서

    제가 시간을 낭비하는데도 그냥 가만히 구경만 하시는 건지, 의아하단 생각이 잠깐 들었으나

    점점 강렬해지는 배설의 욕구가 그런 한가한 상념의 지속을 허용치 않았습니다.

    ​그러나, 어찌어찌하여 가까스로 구덩이 앞에 당도할 때까지도
    너무 생생하고 현실적인 이 욕구가 과연 진짜일까 아닐까 하는 혼란한 감정은

    사그라지기는커녕 강한 변의에 비례하여 고조되더군요.





     

     

     

     

     

     






    칸막이 없이 여러 명이 동시에 볼일을 볼 수 있는 중국 시골 마을의 민망한 뒷간처럼,
    생각보다 꽤나 넓고 깊은 구덩이 위에 - 막사에서 뜯어낸 - 길고 짧은 판자들을 여러 개 얼기설기 잇대어 걸쳐 놓고

    그 위에 쭈그려 판자들 틈으로 배설을 하는 구조였습니다.

    ​워낙 많은 인원이다 보니 최대한 한꺼번에 볼일을 보려면
    이런 식의 변소가 차라리 효율적이겠다는 생각도 일견 들었습니다.

    칸칸이 하나씩 여럿 만들자니 번거롭고, 투여되는 시간과 노동력의 낭비가 만만치 않아

    딴에는 머리를 쓴 결과물인 듯합니다.

    ​남자들밖에 없으니 내외라는 게 필요 없고, 처음에 잠깐 민망한 것만 극복하면 나름대로 쓸만하겠다 싶었습니다.
    아마 지금쯤은 다들 적응하여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는 공간이 되었겠네요.





    잔가지에 다시 불을 붙이고 조심스레 판자를 밟아 보았습니다.

    삐걱거리는 건 물론이고 중학생 소년의 무게에도 제법 휘어지며 작게 흔들리는 모양새가

    튼튼한 것과는 거리가 좀 있는 듯하여 많이 불안하였으나, 배변의 욕구가 이를 상쇄할 만큼 거센 바람에
    (가급적 안쪽으로는 더 들어가지 않고) 구덩이 가장자리와 가까운 판자 틈을 찾아 엉덩이를 깠습니다.


    배변용으로 일부러 뚫어 놓은 구멍이라기엔 다소 작아 보였지만 그렇다고 다시 일어나 가운데로 들어갈 용기는

    나지 않았습니다. 조준만 잘 해서 대충 싸고 나오면 별문제 없을 것 같긴 했으나, 다만 설사일 경우

    판자가 더러워지는 것은 불가피하겠지요.

    그럼에도 난감함이 크게 느껴지지 않았던 건
    판자들은 이미 불특정 다수의 배설물들에 의해 대부분 오염되어 있는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그뿐 아니라
    깜깜한 구덩이 속에서는 고약하기 짝이 없는 악취가 노골적으로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하긴
    그 많은 인원이 수십 일 동안 싼 똥오줌이 쌓이고 쌓여 저 밑에 썩고 있을 테니 냄새가 안 나는 게 이상한 거지요.
    식량이 부족해서 모두들 거의 굶다시피 했을 거란 걸 감안하더라도 말입니다.


    그러고 보니 저는 꿈에서 냄새를 맡은 기억이 거의 없는데 이렇듯 냄새가 나는 것도 특이하긴 하군요.
    후각이 발동되는 꿈이라..

    게다가 이 똥 냄새 또한 흔한 구린내라거나 시골에서 흔히 맡을 수 있는 썩은 퇴비 냄새와는 다르게 독특한 데가 있어요.
    한마디로 표현하기 어려운 희한한 악취랄까요.






    푸다닥 뿌직!



    예상이 틀리길 기대하였지만 역시나 설사가 맞았습니다.
    칠흑 같은 밤의 정적을 타고, 듣기 곤혹스러운 "자연의 소리"가 멀리까지 퍼져 나가는 것 같았습니다.





    마스터님 죄송합니다. 이런 부끄러운 모습 보여서..



    ​아니다. 단지 생리 현상인 것을..

    나 역시 방귀는 뀐단다. 너무 민망해하지 말거라.
    그보다, 이 변소가 많이 께름칙한가 보구나.



    ​다른 것보다 우선 여기 똥 냄새부터가 예사롭지 않네요. 보통의 인분 냄새 같지 않고 뭔가 색다른 것 같습니다.
    대관절 뭘 먹어야 똥에서 이런 냄새가 날까요.



    ​사람의 대변이 아닐 거란 생각은 안 들었는가?



    ​예? 그렇다면 짐승들이 여기다 습관처럼 싸질러 놓고 간단 말씀인가요?

    이곳엔 이들 외에 그 어떤 생명체도 없는 줄 알았는데..



    ​저들이 꼭 사람이란 법은 없지 않은가.



    ​그리 말씀하시니, 그러잖아도 불안하고 두려운데 갑자기

    비교할 수 없을 만치 더 큰 공포가 밀려오는 기분입니다.

    ​하기야 여긴 대장부터가 심해 괴물과 같은 형상이니
    저 사람들이 인간이 아니라 한들 특별히 경악할 노릇도 아닙니다만..

    아, 마스터님이 그렇다는 건 아니고요.
    저쪽 악몽계에서의 마스터님이야 이쪽에 비하면 양반이고말고요.




    허허, 괘념치 말래도.

    ​너 또한 편견에서 자유롭지 않은 인간임을 내 어찌 모르겠느냐.

    내 눈치 볼 것 없이 네 상념을 맘껏 펼치는 게 현 시점에선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니라.

    ​이곳의 대장 즉 흑마스터가 이리로 와서 배설을 할 레벨은 아닌 듯하고

    어떤 존재들이 여길 이용하는 것인지 저들의 정체는 머지않아 밝혀질 테니, 먼저

    그들이 무엇을 소화시켜 여기에 그 찌꺼기를 버려두었나 이 부분에 포커스를 맞춰 보자꾸나.




    마스터님은 저들이 인두겁을 쓴 괴물이란 걸 기정사실화하고 계시군요.

     

    제게도 그러한 촉이 스멀스멀 기어오르고 있었지만 차마 단정 지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일 경우 미지에 대한 공포가 거대한 해일처럼 저를 집어삼킬 것 같아서요.



    ​틈만 나면 약한 소리를 하는구나. 악몽은 악몽일 뿐이다.
    이를 자각하는 너에겐 어떠한 공포의 형상도 현실이 되지 못한다.

    ​가소로운 에너지로 날뛰는 환상들은
    너와 내가 부리는 경이로운 환상들 앞에서 결코 기를 펴지 못할 것이니, 주눅 들지 말고 담대해지거라.



    ​"뜻하는 대로 이루어지리라 적어도 자각몽 안에서는.." 이 말씀이지요?

    그게 머리로는 십분 헤아려져도 이와는 별개로 심하게 요동치는 심장을 어쩌면 좋단 말입니까.
    저는 아직 초인이 되려면 멀었나 봅니다.








    그때였습니다.
    귀에 익숙한 목소리가 어둠을 헤치고 희미하게 들려옵니다.







    ​지수야, 어딨어 지수야!
    무섭게 나 혼자 놔두고 어디 간 거야!?

     



    ​이런!
    깊이 잠에 빠진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었던 게로구나.



    ​저보다 훨씬 불안과 공포에 사로잡혀 있을 아이라는 걸 미처 신경 쓰지 못했네요. 이놈의 똥 때문에..

    ​이 야심한 때에 저리 헤매고 다니다니 너무 위험해요!

    ​영미야! 여기야. 우리 여기 있어!







    ​다행히 구덩이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나 봅니다.
    지수가 혹시 모를 위험을 무릅쓰고 외치는 소리에 그녀는 즉각 반응하고 이리로 다가오는 것 같았습니다.




    마스터가 계속해서 잔가지 묶음에 성냥불을 붙이는 수고를 하시는 덕분에

    구덩이 주변은 앞을 분간할 정도의 밝음을 간신히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간이 횃불용으로 쓸 요량이라, 창고에 구비된 나뭇가지 토막들에 저들은 휘발유 같은 기름을 대충 묻혀 보관하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횃불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생각보다 제법 불이 잘 붙었고 부실한 것치곤 금방 꺼지지도 않았습니다. 물론

    그렇지 못한 불량한 것들도 섞여 있어 복불복이긴 합니다만..

    아마, 기름이 많이 부족하여 아껴야 하는 상황이었겠지요.





     

    영미야 너무 가까이 오진 마. 잘못하다간 똥통에 빠지는 수가 있어.



    ​어멋! 지수 너 여기서 뭐해? 망측하게 엉덩이를 까고..



    ​어, 어..
    갑자기 배가 아파서..

    여긴 화장실이 이 모양이라..






    마스터하고 심도 있는 얘기를 나누느라 정신이 팔려, 영미 앞에 못 볼 꼴을 보일 수 있다는 사실을 저는 깜빡하였습니다.

    그렇더라도 뒤늦게나마 후닥닥 바지를 끌어올렸을 부끄럼쟁이 제 어린 드림바디가, 웬일로

    그녀에게 맨엉덩이를 보인 채 꼼짝도 안 하고 있네요. 볼일 보는 자세 그대로 말입니다.






    그렇게 빤히 보면 너무 창피하잖아!



    ​미안, 여기가 화장실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어.
    돌아서 있을 테니까 나 신경 쓰지 말고, 하던 거 마저 해.



    ​볼일은 아까 끝났어. 그런데 급히 뛰어나오느라 닦을 걸 준비 못했네?

    너 혹시 휴지 같은 거 주머니에 없니?



    ​어떡해? 나 손수건밖에 안 가지고 있는데..
    이거라도 줄까?



    ​아.. 아니야. 그걸 어떻게..

    저기.. 미안한데, 근처 바닥에 나뭇잎 같은 거라도 있으면 좀 모아다 줄래?







    ​녀석, 누가 지수 아니랄까 봐..

    ​저런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던 거로군요.
    깔끔 떨기로 소문난 샌님 지수가 뒤처리도 안 하고 바지를 올린다는 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겠죠.

    설사 여자애한테 맨살의 궁둥이를 내보이는 한이 있어도 말입니다.

    저의 분신이라서가 아니라 참 대단한 녀석이에요 흐흐..







    ​응 알았어. 아, 근데 나도 소피가 급해서..

    이거 먼저 해결하고 갖다 줄게.







    ​말괄량이 기미가 살짝 있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막 나가는 아이일 줄이야!

    ​또 어떤 꿈주가 이 꿈에 한 다리를 걸치고 자신의 음흉한 심리를 반영하는 것일까요?

    ​그녀의 부자연스러운 맹랑함이, 그간 공포에 질려 나약한 모습만 보이던 그녀와 대비되어
    상당히 어색하게 느껴집니다.







    ​앗 뭐야!?

    조심해! 여기 널빤지들 튼튼하지 않아.







    ​지수가 말릴 새도 없이 영미는 진짜 급하다는 듯 날렵하게 움직여 그의 옆으로 올라섰습니다.

    그리고 스스럼없이 교복 치마를 내리고 그 자리에 옴츠려 앉는 것이었습니다.

    조금 전까지 잃어버린 엄마를 찾듯 울먹이며 서성이던 아이가 맞나 싶습니다.


    미약한 횃불로는 쫓을 수 없던 질퍽이는 어둠 속에서도
    그녀의 하얀 둔부는 자체 발광하듯 빛나고 있었습니다.


    정말로 급하긴 했나 보군요. 방광이 꽉 차도록 오래 참았던 모양입니다.

    앉자마자 거세게 쏟아지는 오줌 줄기 소리가, 인접해 있던 지수의 귓가를 때리고도 남았으니까요.
    조준하고 자시고 할 틈도 없었겠지요.


    판자와 부딪친 줄기가 방울방울 비산하여 -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 - 그의 엉덩이에까지 튀었으나
    이번에는 아무리 깔끔한 그였어도 그저 어안이 벙벙하여 "평소 같지 않은 영미"를 쳐다볼 뿐
    얼굴을 찡그리는 등의 불쾌한 내색을 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지수를 놀라게 만들어 돌처럼 굳어 버리게 한 사건은
    그녀의 돌발 행위 이후에 터지고 말았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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