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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 음모의 폭주 1 : 유인(誘引)
    평행 지구 (판타지) 2024. 9. 7. 13:43

     

     

     

     

     

     

     

     

     

     

     

     

     

     

     

     

     

    아무튼 현재로선, 레지스탕스와 토벌대의 정면 대결 양상이 걷잡을 수 없이 치열해지고 있다 이 말씀 아닙니까?


     

     

    평화적으로 설득하려는 노력도 아예 없었던 건 아니라네. 그러나 어쩌겠는가.

    앞서 얘기했네만, 힘없는 여성들의 호소만으로 강성 군부의 강경 대응 조치를 변경하기에는 씨알이 먹히지 않으니..

     

    현재의 레지스탕스 조직이 형성됨에 있어서 초기에는 여러 가지 비극적인 우여곡절들도 많이 발생하였지. 예를 들자면

    무작위 판별 검사에 의해 "숙주로 추정되는 자들의 집합소"로 판정받은 사업장을 기습 폐쇄하고 - 사람들이 들어있는 채 -

    봉쇄 명령을 내린 계엄군부의 결정에 저항하기 위하여 육탄으로 토벌대의 회사 난입을 저지하던 남자 직원들과

    이에 동조한 일부 여사원 모임 회원들이 총격을 받아 많은 수가 사망에 이르는 등

    토벌대와 민간인의 충돌로 인한 불상사들이 이곳저곳에서 심심찮게 터지는 추세였어.


    숙주의 전국적인 창궐과 함께 부대 내부의 감염도 확산되어 토벌대원들 가운데 숙주로 판별되는 수가 급격히 늘어나는

    와중에 엄습하는 공포로 인하여 군의 사기는 점점 떨어지고 반대로 군기는 더욱 강화되어

    심신의 피로가 누적된 병사들의 신경은 극도로 날카로워질 수밖에 없었어. 상황이 이러하니
    강경 진압에 맛 들여 적당히 난폭해진 대원들에게 자신들의 임무를 방해하는 저항 세력은, 남녀를 불문하고 모조리

    국민의 안전을 위해 목숨을 내놓고 싸우는 군인들을 돕지는 못할망정 감히 대들고 훼방 놓는 (배은망덕한)

    "귀찮은 족속"과 다를 바 없었지.

     

     



    그렇다면, 당황한 일부 신병들의 과잉 대응 문제를 넘어

    멘탈이 비교적 단련된 예비역 차출 대원들까지 일반인들을 향해 신시아를 마구잡이로 사용하였단 말입니까?

     




    신시아는 숙주 전용 병기라서 일반인한테 사용하는 것이 첨부터 군법으로 엄격히 금지되어 있었고

    매번 오발 사고로 축소하기도 민망하게 잇달아 터지는 난사 사건의 여파로 군율은 더욱 강화되어

    이를 어길 시 지위고하를 막론 엄중히 책임을 물어 처벌하였는데, 이것이 토벌군에겐 또 하나의 스트레스였나 봐.


    (외관상 일반 사람과의 차이가 없는) 숙주들에 정면으로 맞서야 하는 최전선을 사수하면서 극도로 긴장되는 나날을 보내야 하는 것만으로도 없는 용기를 짜내야 할 판인데, 헤드쿼터의 무능을 현장의 말단 병력에게 전가하여 꼬리 자르기 하듯

    이건 뭐 조금만 실수해도 가차 없이 처단해 버리니, 충천해야 할 토벌대의 사기는 거꾸로 바닥만 치는 지경이 된 지 오래라네. 어디 그뿐인가.

     

    그래도 명색이 계엄사 소속 군인들인데 달랑 신시아 하나로만 무장하고 레지스탕스까지 커버해야 했으니

    가중되는 불만이 이만저만 아니었겠지. 참을성의 한계를 벗어나 피아 구분 없이 폭주해 버리는 과격분자들이

    소대 이하 병력을 장악하여 범죄 집단으로 전락하는 일도 빈번해지는 와중에, 군의 사기 저하를 더는 간과할 수 없었던

    지휘부는 결국 숙주들의 증대되는 난폭성을 명분으로, 소대 단위의 토벌대가 상비군 부대의 탄약고를 접수하고

    자위 차원에서 총기와 실탄을 소지할 수 있게 묵인해 주었네. 단, 이로 인해 예상치 못한 불미스러운 문제가 대두될 시

    소대장 재량에 의한 자율 조치였음을 강조하고 전적인 책임은 소대장에게 묻는 식의 포석이 깔려 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는 것이고..

     




    이쯤에서 한 가지 의문이 드는군요.

    치안 유지의 일차적 책무를 지니는 경찰들은 계엄하에선 다들 손을 놓고 있는 모양이죠? 아니면

    다른 업무에 투입돼 있나요?

    전개되는 국면을 보니, 토벌대가 데모 진압 등의 (경찰이 하는) 일선 업무까지 맡고 있는 듯하여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여태 나한테 무슨 얘길 들은 겐가?!

    경찰이고 군이고 할 것 없이 건장한 남자들은 죄다 "숙주로의 전락"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니까..


    기생물 캡슐들이 천문학적인 수량으로 살포된 데다 침투 경로가 정확히 규명되지 않은 상태에서 숙주들이 대거

    속출하는지라 정말이지 불안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란 말일세!

    이렇게 말하는 나나 자네도 언제 숙주로 돌변할지 전혀 짐작할 수 없으니 미치고 환장할 노릇 아니겠나??

    오죽 불안하면, 판별검사에 대한 여러 안 좋은 소문들이 난무하여 뒤숭숭한 시국인데도

    자발적으로 인근 부대나 "군 산하 의료기관"을 찾아가 검사를 받고들 있겠는가. 그렇게 위험을 무릅쓰는 남자들이

    계엄 정부의 독려와 상관없이 최근 들어 부쩍 늘어나는 추세라던데, 나는 개인적으로 반대라오.
    백신도 개발되지 않은 판국에 양성이면 소위 "인간 살처분"의 대상으로 낙인찍힐 게 뻔하고

    검사 자체도 꽤나 고통스럽다는데 굳이 일부러 받을 필요가 있겠냐 말이지.

    숙주가 된 이들의 짐승 같은 행동 패턴이 얼마나 살벌하고 공포스러운 절망을 자아내면

    그들이 - 자신들도 어느날 갑자기 그리 될까 봐 - 극도의 불안을 견디지 못하고 제 발로 찾아가겠냐마는..


    가급적 미리 분류하여 정상인들을 최대한 보호하겠다는 취지라면서 공무원들부터 솔선수범의 본보기로

    반(半) 강제적 검사에 동원되더구먼. 그렇게 해서 일반인들에게도 자발적인 검사 참여를 홍보하고 유도하는 모양인데

    영 탐탁지가 않아. 본말이 전도된 대책 같지 않은가? 자네 생각은 어때? 대체 누굴 위한, 무엇을 위한 검사인지 원..

     

     



    제 생각에도 그런 찜찜한 신경조직 검사는 함부로 받을 것이 아니라 버티는 데까지 버텨 보는 게 좋을 듯하네요.

     

    그건 그렇고 아까 말씀하신 불상사들이 도화선으로 작용하여

    군부를 향한 레지스탕스의 본격적인 투쟁은 시작된 것이로군요.

     




    토벌대고 레지스탕스고 양쪽 다 못할 짓 아니겠나? 둘이 힘을 합쳐도 모자랄 판에

    둘 다 하나 이상의 적을 상대하게 되었으니 말일세.

     

    그러고 보면 여자들 참 대단해. 나 같은 꼰대들한테 업신여김이나 당할 수준들이 아니다 이거야.

    불의에 대한 항거일 수도 있고, 사람에 대한 도리를 등한시하는 무감각을 규탄하는 걸 수도 있겠어.

    인류애를 거창하게 들먹이지 않아도, 당장에 끓어오르는 연민의 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아줌마들의 억척스러움이랄까.

    모성애에서 비롯된 측은지심이랄까. 역시 여자는 약하나 어머니는 강한 모양이야. 물론 젊은 아가씨들도

    만만하게 봤다간 큰코다칠 만큼의 저력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고.

    무기를 들고 전면에 나서서 투쟁하는 여성 대원들이 - 전체에 비하면 - 비록 극소수이긴 하지만,

    "생지옥의 참상 속에서 방향을 잃고 두려움에 갇혀 버린 대다수 못난 남자들이 본받을 만한"

    용기를 지녔음은 인정 안 할 수 없겠네. 하는 짓들이 못마땅하기는 해도 인정할 건 해야지 않겠나.
    게릴라전을 불사하는 여전사들의 무모하리만치 대담한 기개가 때론 도를 넘어

    눈살이 절로 찌푸려지는 경우도 적지는 않지만 말이지.

     




    객관적인 시각을 견지하려 애쓰시는 기사님 모습이 좋아 보이네요.

     

    그녀들의 예상치 못한 반격이 은하연합의 신성한 권위에 손상깨나 입혔겠지요?

     




    역시 자네답군. 자네야말로 은하연합에 대한 반감으로부터 언제쯤에나 자유로워질 텐가?

     

    에이리언을 숭배하는 사이비 종교 사이트들뿐만 아니라 레지스탕스의 활약상을 전하는 사이트들도

    최근 들어 많아졌다네. 연합국의 감시와 폐쇄 압력이 심해져도 아랑곳하지 않고

    주소를 수시로 옮겨가며 레지스탕스의 정당성과 토벌대의 비정함을 세계인들에게 부각하고 있지.

    관심 있으면 시간 날 때 한번 열심히 검색해 보소. 운 좋으면 살아있는 주소를 발견할 수도 있을 테니..

     




    제가 나중에라도 그럴 경황이 있겠습니까? 저는 한낱 "우주의 미아" 신세일 뿐인 걸요..

     

    연합국의 치밀하고 대대적인 선동에 기사님 같은 분들이 전 세계적으로 수백 수천만 아니 그 이상 생겨났을 것 아닙니까?

    레지스탕스에 우호적인 사람들이 인터넷에서 열심히 활동한다 한들 아직까진 반대 입장이 더 우세하지 않을까 싶네요.

    세상에 부랴부랴 등장한 그녀들이 일부의 지지를 얻고 있을지언정 아웃사이더의 특성상

    그녀들의 입지는 언제나 유동적일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가 분명 있을 듯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숙주들의 준동이 줄기는커녕 나날이 증가하는 시점이고

    이에 따른 여자들의 피해가 우려의 수준을 벗어나 실로 심각해진 지 오래기 때문이지.

    이런 판국에 공격의 타깃을 엉뚱한 데다 잡고 사태를 복잡하게 만들고 있으니, 같은 여자들도 - 공포에 떨어야 하는 약자의 처지에서 - 그네들이 이해 안 되기는 마찬가지.

    대다수 여성들과 "그녀들을 보호해야 하는 (아직은 멀쩡한) 남성들"로선 미우나 고우나,

    악귀와 같은 숙주들로부터 본인들을 지켜 주는 - 액션을 직접적으로 취하는 - 연합국에게 탄탄한 지지를 보내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한 것 아니겠나.

    은합연합을 구세주로 여기는 사람들한테 이들 레지스탕스의 존재는 - 멋모르고 까부는 - 반역자들과 다를 바 없고, 또

    에이리언을 따르는 무지한 집단들 편에선 "레지스탕스가 에이리언 강림을 위한 전위 부대"라며 함부로 떠들어 대니

    "숙주는 우리의 확실한 주적이다"라고 공식 표명하지 않는 한, 이들에 대한 의문 부호는 지금의 환란이 평정될 때까지

    꼬리표처럼 계속 따라붙을 걸세. 복수심에 불타 평정심을 잃고 날뛴다거나 에이리언과 결탁하였다는 등의 오명에 갇히지 않으려면 그녀들로선 이러한 딜레마를 야기하는 자신들의 모호한 스탠스부터 우선 명확히 할 필요가 있는데 말이지..

    감정에 치우쳐 부화뇌동하던 "결성 초기 단계"도 아니고 이제는 본인들의 입장을 천명할 때가 되고도 남았을 건데

    그러지 않는 걸 보면 참..

    레지스탕스의 입지가 점점 좁아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현재 그녀들이 먼저 시급히 풀어야 할 과제는, 아마

    가장 절박한 일차적 피해자일 "세상의 뭇 여성들"이 배신감을 느끼고

    같은 여자로서 이럴 수 있냐며 원망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는, 작금의 세태를 어떻게 타개할 것인가야.


    이러한 소통 부재와 오해의 문제들을 그대로 안고 간다면 연합국에게 탄압의 명분만 강화해 주는 꼴이 되리라는 건

    안 봐도 비디오.
    내 경우, 심적으론 이네들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을뿐더러 아주 괘씸하게 여겨질 정도이지만

    최대한 역지사지하여 두둔도 반대도 하지 않을 요량이네. 앞으로 어찌 나올지 그냥 지켜만 보려고.

    자넨 어떤가?

     



    글쎄요..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이니 레지스탕스 쪽에서도 이제부턴 융통성을 좀 발휘해야 되지 않을까 싶네요.

     




    맞아. 전략적 제휴라는 말도 있잖은가.

    아니꼽더라도, 없애야 할 "공동의 적"을 먼저 처리하고 보는 게 우선인 듯싶으이.


    토벌대 본부 사이트의 입시런 03T 섹션에 들어가면, 숙주들의 인면수심의 난폭성과 잔인함이 적나라하게 소개되고 있다네. 자네도 그걸 보면 레지스탕스의 주장과 행보가 얼마나 순진한 이상론에 입각한 것인지 대번에 느낄 걸세.

     




    그건 은하연합이나 연합국의 지지 세력이 내세우는 견해일 테지요.

    저항세력 측에선 오히려 저들의 "실상을 호도하는 기만술"에 속지 말라 부르짖을 걸요?
    자연스럽게 인구 조절이 이루어질 수 있는 호기를 놓치지 않으려고 지능적으로 직무를 유기하는 미국이나

    (아메리카 연합국이랬나요?) 무슨 이유인진 몰라도 이를 묵인하고 나아가 방조하는 은하연합이나

    다 한통속이라 주장하겠지요. 혹은, 은하연합과 "지구의 그림자 정부"가 공동으로 추진하는 기획된 재앙이라고

    그네들은 굳게 믿으며 적개심을 키우는 중인지도요.

     




    자네 지금은 그렇게 3자적 태도를 점잖게 고수하고 있지만, 비극적인 현실을 직접 보거나 겪고도 과연

    지금처럼 태연할 수 있을까? 거두절미하고 일단 본 다음에 이야기하세나!
    이번에 더 노골적이고 끔찍한 현장 동영상이 입수되었다는데 보고 놀라 자빠지지나 말게.


    가만.. 본부 사이트가 어디 있더라..

     




    저기.. 괜찮습니다. 본 걸로 하죠.


    "에이리언들과 기생체들"의 동선이나 철저히 추적할 것이지, 가뜩이나 공포로 다운되어 있을 국민들 심기만 더 불편하게

    숙주들의 범죄는 필요 이상 부각하고 있군요.

    인간의 영성 진화를 방해하는 사악한 에너지가 퍼지는 데에 이러한 동영상 유포 또한 한몫하고 있음을

    잘 알 사람들이 말이죠..

     

     



    막상 보려니까 겁나나?


    하긴 요즘은 TV만 틀어도 거의 24시간 보이는 게 숙주들의 잔학상이라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그 역겨움에 면역이 될

    정도라네. 적당히 가위질해서 내보낸다고는 하나 그래봤자 심리적 충격을 완화하는 효과는 미미하다고 봐야지 뭐.

    허나 어쩌겠나. 현실이 이 지경까지 와 버린 것을..
    어쨌든 뉴스는 챙겨서 봐야 사태가 어찌 돌아가는지 짐작이나마 할 것 아닌가.

     




    쏟아지는 특보들을 앞으로 지겹게 볼 텐데, 미리부터 못 봐 안달할 필요는 없겠지요.


    '사악한 공포가 무겁게 뒤덮여 있는 세상.. 무법천지같이 음울하기 짝이 없어.

    이런 곳에선 일 분도 미적거리고 싶지 않은데 나 혼자의 힘으로는 빠져나갈 수가 없으니..


    내가 고작 할 수 있는 일이란 이곳의 명징한 음모에 쓸데없이 관여하지 않는 것뿐!!'






    "정말로 다른 별에서 뚝 떨어진 것 같은" 자네와 얘기 나눈다는 게 이리 흥미로울 줄은 미처 몰랐네. 후후..

     




    이제 슬슬 댁으로 들어가셔도 되지 않을까요?

     




    그래 볼까..?

     

    실은 나 역시, 우리 동네도 가까워졌겠다 이쯤에서 빈차는 - 차고지 복귀 모드로 전환하여 - 회사로 보내고

    자네랑 편안하게 쉬면서 못 다 한 이야기를 계속할까 했는데 말이지..

    좀 전에 입구로 접어들려고 할 때 악명 높은 오토바이 부대원들이 몇 명 보이길래

    혹시나 말도 안 되는 구실로 날 귀찮게 할까 봐 잠시 보류한 걸세.

    자네 같은 껄쩍지근한 사람을 태운 상태로 쟤네들한테 걸리면 골치깨나 아프걸랑.

    상황 봐서 최대한 저들을 피해 들어가자고.

     




    오토바이 부대라구요?? 토벌대 말씀이신가요?

     




    중앙에서 파견된 토벌대 정예군이라네. 베테랑 예비역들로 구성된..

     

    저들은 통행금지 이후 시각에 주로 활동하는데 이때 박혀 있지 않고 어슬렁 돌아다녔다간

    여지없이 붙잡혀 강제로 검사당하기 일쑤지.
    이 시각 택시 영업도 원래는 안 되지만 간신히 편법으로다 암암리에 활동하는 거라서, 웬만하면

    저들은 피하고 보는 게 상책이라구. 괜히 근처에 얼쩡거렸다가 긁어 부스럼 만들 필요 없지 않은가.
    요즘은 레지스탕스 때문에 특히나 저들 신경이 곤두서 있다네. 조심해서 나쁠 것 없어.

     




    저야 이대로도 괜찮지만 기사 아저씨가 오늘따라 피곤하시겠어요. 저 때문에 말씀도 많이 하시고..

     

    연료 또한 꽤나 소모되는 것 같은데 요금도 못 내는 처지에 죄송스럽네요.

     




    아니, 내가 자네랑 있는 게 재미있다고 하지 않았나. 연료에 관해서도 전혀 그런 게 아니니 걱정 말고..

    반중력 저속 모드에선 엔진 무가동 운행이 가능하다네. 시속 40킬로 이하만 유지하면 연료 걱정 없이 하루 종일 달려도

    된다는 뜻이지. 그리고 통행금지 시간 동안의 (우리 기사들 나름의) "운행 철칙"이란 게 있는데, 이번 난리판을 겪으면서

    우리들 사이에 생긴 일종의 비공식 불문율이랄까. 뭐냐면, 되도록 정차 시간을 줄이고 3미터 한계 부양 운행을 유지하는

    거라네. 숙주들로부터의 봉변을 피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책인 셈이지.
    아무것도 모르고 속수무책 당하던 시기는 지났기에 이 시각 여자 손님을 태우는 일이 급격히 줄었고 아울러

    숙주로부터 공격당할 가능성도 대폭 낮아졌지만, 몇 번 큰일 날 뻔한 뒤로는 그냥 자연스레 습관화가 돼 버리더라 이거야.

    우선은 저 망할 놈의 오토바이 시야로부터도 적당히 차폐되는 효과가 있으니 숙주 핑계 대고 계속 이렇게 다닌다네. 물론

    오토바이 놈들이 뭔가 눈치채고 작정하고 날아오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말일세.

     




    마치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어요. 특히 아까 차 밖을 바라볼 땐 더욱이..

     

    한계치가 3미터라 하셨으니 그 이상 뜨진 않는 거죠? 어디까지나 자동차지 비행기는 아닐 테니까요.

     




    도로의 효율적 활용을 위한 제도적 장치에 따라 설계된 자동차인 만큼, 말 그대로 부양 한계는 3미터까지라오.

    바퀴로 구르지 않아도 엄연히 기존 차선을 지켜야 하고 교통 법규를 준수해야 함은 상식이지.

     




    지당하신 말씀.

    삼 미터 공중에서 서로 먼저 가겠다고 뒤엉켰다간 대형 사고가 무더기로 발생하겠지요.

     




    삼 미터 이상 뜰 수 있게끔 불법 개조한 차량들이 종종 말썽을 일으켜 탈이지.
    그런 차들은 안정성이 떨어져 심심찮게 추락하고 또 일단 추락하면 대형 사고로 이어진다네.

     




    단속을 철저히 하는 수밖에 없겠군요. 이곳 세상도 불법이 판을 치는 건 "내가 사는 세상"과 대동소이하구나

    왠지 이렇게 느껴집니다. 기사님이 친절하게 설명하지 않아도요.

     




    모르는 사이에 사태가 많이 심각해졌나? 평소와 다르게 저놈들 아예 검진 차량을 대동하고 진을 치다시피 한 걸 보니

    한두 시간 내로 철수할 태세는 아닌 듯하이.


    아침 늦게까지 잠을 자니까 딱히 졸리지도 않고.. 이거 좀 심심한걸?

    새롭게 올라온 따끈한 영상이니 혼자서라도 한번 더 봐야겠어. 자넨 보기 싫댔지?

    자네야말로 꽤 피곤해 보이는데 그러면 잠깐이라도 눈을 붙이든가..

     

     

     




    말이 끝나기 무섭게 기사는 인터넷에 접속하여 문제의 사이트로 들어갔다.

    무료할 때마다 수시로 즐겨 찾는 자료들인 듯, 검색 과정을 생략하고 바로 연결하는 기민함이 그의 동작에 배어 있었다.

     

     

     




    저건 누가 찍은 거죠? 종군기자들이 핸드헬드 카메라로 촬영한 비디오라면 저렇게 화면이 안정되고 선명할 리 없는데..

    클로즈업 정도로 봐선 저거 찍은 사람이 아직 살아있는 게 기적일 것 같은데요? 멀리서 줌인한 게 아니라면 말입니다.

     

     

     




    아무리 경각심을 높이기 위한 일환이라지만, 토벌대 본부의 공식 사이트라는 데서 - 기혼여성이

    숙주로 보이는 남자들 십여 명한테 붙잡혀 윤간당하는 - 끔찍한 동영상을

    생생한 현장음과 함께 상세히 전송하고 있다는 사실이 눈살을 찌푸리게 하였다. 실로 믿어지지 않는 장면이었다.

     

     

     




    안 본다더니 웬 관심인가? 눈빛이 아주 초롱초롱하구만 흐흐..

     

    어때, 진짜 참혹하지?
    생필품을 구하려고 몰래 집을 빠져나오다 놈들한테 발각된 거라네. 재수 더럽게 없는 여자지..

     




    일본말이 들리는데요..? 저긴 일본인가요?

     




    그렇다네. 일본도 현재 난리야.

     




    하드코어 포르노 영화의 도입부를 보는 것 같군요..

    저 여자는 물론 구출되었겠죠?

     




    천만에!

    계속 보면 알게 되겠지만, 초주검이 될 정도로 강간을 당하고는 사지가 뜯겨 죽을 것이야.
    곧 피가 튀는 장면이 나올 테니 눈 크게 뜨고 잘 살펴보라고.

     




    뭐라고요?? 이런 막나가는 세상이..

     

    무슨 스너프 필름 찍는 것도 아니고, 사람이 죽어가는데 먼저 구하고 봐야 정상 아닙니까?

    그러한 상식도 물 건너간 세상이 되었습니까? 살인 방임은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저건 미친 짓이에요!


    그리고 연합국은요? 지금 제정신이랍니까? 백 번 양보해서 경각심 환기용이라 칩시다.

    한두 번이면 족하지 계속 업데이트해 올린다는 건 도가 지나친 듯합니다.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아요!

     




    자네 얘기 들으니 그럴 법도 하구먼. 자료들 수위가 알게 모르게 조금씩 올라가는 것 같긴 했어.

    특히 이번 영상은 이때까지의 자료들하고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잔인해진 건 사실이야. 여러 단계를 건너뛰고

    갑자기 세진 느낌이라 할까? 이제까지는 토벌대를 쫓아다니는 스타일이어서, "나쁜 짓 하는 숙주들을 발견하고

    토벌하는 모습"을 담은 영상이 주류였걸랑. 희생자들의 참혹한 피해 장면도 그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삽입되었으나

    편집이라든가 모자이크 처리로 어느 정도 순화하는 모양새였는데..

    이번 것은 초장부터 여자가 당할 것을 예상하고 희생자를 추적하는 앵글로 시작하고 있으니..

     

     





    마치 추잡하고 잔혹한 좀비 영화 내지는 선정적인 공포 다큐물을 보는 것 같았다.
    상상을 초월하는 엽기적 사실성이 신경을 마비시켜 목이 움직여지지 않았고, 따라서

    화면에 고정된 시선을 좀처럼 딴 곳으로 옮겨 놓기가 힘들었다.



    피해자는 삼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젊은 유부녀였다.
    추운 날씨를 짐작케 하는 두꺼운 옷을 껴입고 빈 장바구니를 든 채 골목을 막 나오려는 찰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숙주들이 떼로 달려들어 다짜고짜 린치를 가하기 시작했다.

     

     





    아니, 지하실에 꼭꼭 숨어 있어도 모자랄 판에 "숙주들이 활보하는 거리"로 감히 나올 생각을 하다니!

    간덩이가 부어도 이만저만 부은 게 아니군. 비축해 두었던 식량이 다 떨어진 겐가?

    저 난리통엔 생필품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인 터라 마음먹고 나간다 해서 물건이나 음식을 산다는 보장이 없는데..


    어차피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모험을 건다손 치더라도, 이런 건 남자가 총대를 메야 하는 것 아냐?!
    숙주가 여자에 환장하는 놈들이란 정보는 이제 공공연하게 밝혀져 저 여자 또한 모를 리가 없을 텐데..

    집에는 남자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극도의 위험을 무릅쓴 모양이지?

    그렇게 나선 대가 치고는 너무 처참한 결과가 발생하고 말았어. 쯧쯧, 참으로 안타깝지만 이게 작금의 현실일세..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그의 말투에는, 더욱 자극적이고 흥미 만점의 쇼킹한 씬을 기대하는

    악동의 짓궂음이 서려 있는 것 같았다.

     

     

     




    일본 애들이 원래 변태 성향이 강하다더만, 숙주들의 행동 역시 가관이로세.

     

     

     

     

    멀쩡한 인간의 형상을 하고도 저런 천인공노할 짓을 서슴없이 저지르는데,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으나

    에이리언으로 본격 탈태하게 된다면 또 얼마나 잔학무도해질지 상상만 해도 끔찍합니다.

     

     

     

     

    별 걱정을 다 하는구려. 입실론 03T 행성인들의 흉측한 몰골이 하루아침에 형성된 것은 아니라오.

    인간형에서 에일리언형으로 모습이 바뀌는 데 수백만 아니 수천만 년 이상이 소요되었을 수도 있단 얘기지.

     

    우주생물학자들은 이 행성 숙주들의 진화 역사 전반에 걸쳐 03T 기생체들이 점진적으로

    행성 특이적 생체 반응에 관여하면서 변이의 패턴화에 상당 부분 기여했을 거라 추론할 뿐인데, 이것이 곧

    초거대 "우주 문명"을 이룩하는 데 적합한 발전적 진화 모델로서 채택되고 유구한 세월을 거치며 진행된

    "에이리언으로의 변이 과정"이고, 따라서 숙주화 초기의 (부작용과도 같은) 퇴행적 난폭성과

    에이리언화(化) 사이에 - 그 엄청난 시간적 간격만큼이나 - 직접적인 상관관계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 이 말씀이야.

     

    이러한 논리에 입각하여 - 또 다른 인간형 행성인 - 우리 지구의 운명을 전망하자면, 숙주의 입장에서 봤을 때

    과도기적 부작용을 잠시 겪고 있는 지금이며 금방 지능을 회복하여 우주를 향한 고도의 진화 프로세스 그 장구한 여정을

    밟아 나아갈 것이기에, 머잖아 괴물의 형태로 둔갑하여 두 배 세 배 포악해지리라는 가정은 기우에 지나지 않을 공산이 커.

     

    "인간과 판이한 외양"에 대해 지니고 있는 뿌리 깊은 편견, 인간의 심층 의식에 박혀 있는 "외계 존재에 대한 막연한 공포심"

    뭐 이런 것들이 자네로 하여금 인간 숙주보다 에일리언 숙주가 훨씬 가공(可恐)할 것이다라고 지레짐작하게 했을 테지.

     

    그러나 겉모습과는 별개로 입실론 03T의 에이리언들이 현시점에서 우리의 적대 세력인 것은 분명하니까 이 점은 항시

    유의하도록 하게. 아무리 찬란하다 한들 숙주의 문명은 태생적 한계를 드러내게 마련이라네. 저들의 목표는 오로지

    기생충을 퍼뜨리기 위하여 타행성을 침략하는 데에 맞춰져 있으니까 말일세. 놈들은 자신들의 문명이 소멸하는 날까지

    그 짓을 계속할 거야. 일단 침략에 성공하면 그 행성은 더 이상 그들의 안중에 없어. 애초에 그 행성의 에너지, 자원 등을

    노리고 들어온 것이 아니므로 - 차원이 다른 기술력으로 - 원주민을 대대손손 지배한다거나 본인들의 인프라를 집요하게

    이식하려는 욕심 또는 의지 자체가 결여되어 있다고. (입실론 03T 안착 초기에 이루어지는 에이리언 측의 전폭적인 지원이

    무엇인가에 쫓기듯 속전속결의 양상을 띠는, 이유이기도 하지.)

     

    침략에서 살아남은 행성 원주민들이 전부 기생물에 노출되어 숙주가 되는 날, 놈들은 미련 없이 그 행성을 떠난다오. 왜? 임무를 완수하였으니까. 그들의 주인인 기생물의 명령을 충실히 이행하였으니까. 그 행성에 정착하는 건 기생물이고

    새로운 노예 숙주들이 기생물을 위한 "숙주의 행성"을 알아서들 잘 만들어갈 테니까. 

    "인간의 지능은 범접하기 힘든 수준"으로 똑똑하고 영리한 동시에 사악하기 그지없는 에이리언 역시도

    어디까지나 입실론 03T에 맹목적으로 복종하는 숙주일 따름이므로, 본인들의 행성에 복귀한 후

    다른 타깃 "메일 피메일 (male - female) 행성"을 침략하기 위하여 전열을 가다듬고

    원정의 주기가 도래하면 다시금 산부 원정단을 기계적으로 꾸리겠지. 놈들을 조종하는 기생체의 본능에 따라..

     

     

     

     

    아까 미처 못 물어본 게 있습니다. 원정에서 다음 원정까지의 텀이 얼마나 긴지는 모르겠으나

    이리 막대한 물량으로 산부들이 제공되려면 입실론 03T 행성의 한정된 에이리언 수로는 도저히 불가능할 듯해서요..

    더구나 남성들만의 행성이라 성관계를 통한 번식은 사라진 지 오래일 테니 말입니다. 영생이 보장되지 않는 이상

    건장한 남성 일인당 잉태 케파 또한 무한정은 아닐 테고요. "거의 무한의 수량일 기생물"을 담아야 할 생체 용기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면, 우주의 행성들을 침략하는 저들의 역사가 오랜 세월 지속되기란 어렵지 않을까요?

     

     

     

     

    날카로운 지적이군.

     

    놈들은 아직 영생이라는 바벨탑을 쌓지 못하였네. 이에 대해선, "저들의 업보이며 신이 허락하지 않았다"는 정도로만

    이야기해 두지. 그런데 설령 영생의 기술력에 도달하였다 해도 그 방법만으로는 자네의 의혹이 해소되지 않을 거야

    그렇지? 더욱이 놈들은 동시다발로 은하계 행성들을 침략한다고도 하니, 이리 되면 "영생의 방식으로도 감당할 수 없는"

    범위까지 확장되는 셈이니까..

     

    그럼 이번엔 내가 물어보리다. 손님이 기술력 충만한 에이리언이라면 이럴 때 어떤 방식을 도입하겠소?

     

     

     

     

    무어 생각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겠네요. 용기를 대량 생산하면 해결되는 문제일 듯요. 저들에게 생체 복제 기술은

    그다지 어려운 과제도 아니잖습니까? 저들의 행성이 유지 관리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수의 복제 에이리언들이 필요하다면

    까짓거 (복제 생산에 필요한 모든 게 갖춰진) 알맞은 식민지 행성 하나 찾아내서 행성급 공장으로 활용하든가

    또는 아예 복제를 위한 전용 인공 행성을 건설하든가 하겠죠.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대단한 존재들이

    이곳 지구에 몸소 납시었다고 봅니다. 참 나..

     

     

     

     

    어떤가.

    우리가 놈들에게 굴복하여 숙주들만 남은 세상이 되면 먼 훗날 필히 맞이하게 될 디스토피아적 발전상이.

     

    우리의 암울한 미래가 코앞으로 다가와 - 미처 준비되지 못한 - 자네를 살벌하게 위협하는

    이 순간에 대한 소감이.. 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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