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 숙주 2평행 지구 (판타지) 2024. 1. 11. 20:30
어떻소? 이래도 사기치는 걸로 보이오?
허허, 역시 믿지 못하는 표정이구만.
십 분짜리 동영상이니 보자 한 거지 삼십 분 넘어가면 틀지도 않았어.
이럴 거면 차를 얻다 대 놓고 트시지 계속 운행을 하시네.
N공장 도착하고도 남을 시간인데 대체 어딜 가시는 겁니까?
가고 싶은 마음 사라졌으면서 N공장 타령은..
왜, 요금이 눈덩이처럼 불어날까 걱정이신가?
행색만 봐도 현금조차 별로 없을 듯한데 댁한테 요금 받는 거 포기한 지 오래야. 설령 있다 해도
현금 거래가 준불법이 된 마당에 생체 칩도 장착 안 한 수상한 사람한테 돈 받을 생각 없다고.
그럼 어째서 내리라 하지 않고 계속 태우고 있냐고?
손님도 없고 심심하던 차에 자네같이 신기한 인간이 들이닥치니 이야기나 좀 해보려 한 거지.
신시아를 가지고 있지만 토벌대원은 아니고, 신에게 하사받은 것인 양 하면서 한편으론 시큰둥하게 여기질 않나,
하여간 재밌어. 정말 이곳 사람 안 같고, 나오는 얘기들도 나름 흥미진진해서 믿고 싶게 만든다니까.
그걸로도 요금값은 하고 있는 셈이니 부담 갖지 마쇼.
그리고 밤중에 아무 데나 차 세워 놓고 죽치고 있으면 좋을 것 없다오.
숙주야 이 차를 뚫고 들어오진 못하지만 검문 바로 들어오는 게 골치 아프다고.
자수하기도 전에 그거 발각되기라도 하면 자네나 나나 무사하진 못할 테니 말이야.
이럴 땐 차라리, 빈차 표시하고 자동주행 드라이브 모드로 빙빙 도는 게 나아. 지금처럼 말이지.
사실 돈은 거의 없었지만 마땅히 들어갈 곳도 없고 당장 얼어 죽을 것 같아서 무작정 타고 본 건데
시간이 지날수록 차비를 어찌하나 내심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습니다.
이해해 주시고 배려해 주시니 참으로 감사할 따름입니다.
후유, 이 애물단지 당장 차 밖으로 던져 버리고 싶지만 그랬다간 이걸 내게 준 존재한테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몰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답니다.
그나저나, 곧 통행금지가 다가오면 들어가셔야 되는 것 아닌가요?
후후, 손님 운 좋았어. 댁의 시간여행(?) 도착 시각이 내일이었으면 어쩔 뻔했는가. 오후 6시 통행금지로 바뀌는데 말이지.
그러고 보니 오늘이 밤 8시 통금의 마지막 날이로군.
정각에 철수하는 건 아니고 택시 운행은 삼십 분 더 여유를 가지고 마감할 수 있다네. 손님하고 이런저런 대화 나눌 여유는 아직 꽤 있다는 뜻이오.
또 젊은 양반 처지가 딱한 듯하니 정 갈 곳이 없걸랑 우리 집에라도 가자고. 하룻밤 정도는 내 묵게 해 줌세.
그리고 내일 오전에는 토벌대 앞까지 데려다 주지.
하아, 천상에서 받은 물건을 다른 우주의 지상에다 반납한다라..
이게 맞는가 모르겠습니다.
날 이리로 데려온 자들의 입장에선 지금 던져 버리는 거나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인데..
결국 후폭풍은 매한가지 아닐는지..
시간 여행자 연기에 어지간히도 몰입하는구먼. 그만하면 과거에서 온 거나 진배없지. 내 두 손 두 발 다 들었어.
후폭풍은 댁에 사정이니 알아서 처리하시고. 난 분명 충고했소이다. 당신 그렇게 어슬렁대다가 십중팔구 잡힐 텐데 그때 가서 내 얘기까지 불면 나 굉장히 곤란해지걸랑.
그 전에 내가 먼저 손님을 신고할 수도 있으니 자진 반납 건은 내 말을 듣는 게 좋을 거요.
아, 이거 협박 아니오. 괜히 또 위기의식 느껴서 속으로 이상한 꿍꿍이 실행할 생각은 추호도 마시오.
절 잠재적 흉악범 취급하시면 섭섭합니다.
지금 몰골은 이래도 제가 있던 곳에선 한때 촉망받던 청년이었고 반듯한 모범 시민이었습니다.
이렇게 좋으신 기사 분께 허튼 생각을 품는다면 전 인간이 아니고 짐승이죠. 암요..
한때는? 흐흐 왕년에 잘나가지 않은 사람 있나? 여하간 아님 됐고.
참, 하룻밤 재워 주는 것 역시 공짜는 아니야. 손님의 그 탈 많은 시간여행 경험담을 본격적으로 자세히 털어놔야 할 거요. 진짜인지 꾸며낸 얘긴지는 그때 가서 판단하기로 하고 지금은 잠시 보류해 두겠소. 하하..
퉁명스러운 분인 줄로만 알았는데 이렇게 마음이 따뜻하신 분일 줄이야..
그러나 제가 이 무기를 들고서 기사님 댁을 방문한다는 게 현실적이진 않다는 것 잘 압니다.
그래도 말씀만으로 불안과 근심이 조금은 누그러드는 것 같네요.
그게 맘에 걸렸으면 여태껏 손님을 태우고 있겠소? 진즉에 갖은 핑계를 대서 쫓아냈겠지.
물론 그걸로 난동 부렸다간 내 목숨도 온전치 못할 테니
어떻게든 안심부터 시키고 가능한 한 정중하게 거부 의사를 밝히겠지만.
그건 지금도 현재진행형 아닌지요?
기사님 마음이 언제 변할지 모르는 일이니 제가 이처럼 기사님께 협조적인 것 아니겠습니까? 헤헤.
어쨌거나 저로선 그저 고마울 뿐이죠. 적어도 얼어 죽는 건 면하게 되었으니..
낯간지럽게 그런 소리 듣자고 꺼낸 말은 아니니 그쯤 해 두고, 하던 얘기나 계속 하지?
그래서 자넨 이 영상을 보고도 여전히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이건가?
제게 잘 대해 주시는 기사님을 위해서라도 전향적으로 바라보고 싶습니다만
저건 좀 아니다 하는 느낌이 쉽사리 사라지지는 않는군요.
솔직해서 좋구만.
이 영상에서 공식적으로 신분을 밝히지는 았았지만 아마 지도자급 위치에 있는 "행성의 대표자들"이었을 걸세.
허큘리스 은하계의 입실런03T 행성인들 그 실제 모습을 본 소감이 어떠한가.
그들 또한 범우주적 악성 연쇄반응의 희생자들에 불과하다고 우리 은하연합군 사령관이 일찌감치 언급했지만서도
그 경악스러운 생김새를 보면 도저히 피해자라고는 여겨지지 않으며
누가 봐도 우리를 침략한 괴물들의 수괴에 딱 들어맞는 괴기한 모습 아니던가?
고전 S.F. 호러 영화 중에 에이리언이라고 있는데 거기 나오는 외계 괴물과 비슷하게 생겼다 해서
미디어에선 03T 에이리언이라고 부르는 놈들이라네.
자기들의 몰골에 어울리게 굳이 침략자임을 부인하지 않고
뻔뻔하게 공식 선언하는 작태를 저 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보이긴 했지.
지구를 얼마나 얕보았으면 아예 대놓고 선전포고를 한단 말인가.
비열하게 기습부터 때려 놓고 한참 지나서 사태가 자신들한테 유리하게 돌아가는 것 같으니까
못 이기는 척 전면에 등장하는 역겨운 꼬락서니하고는..
에이리언 시리즈 저도 즐겨 봤었죠. 이곳과 그곳의 에이리언이 완전히 다른 작품은 아니길 바랍니다.서로 비슷한 유형의 괴물이 나온다 치고, 하필 세계 대중들의 뇌리에 공포로 각인된 그 형태가 저 날 등장한 걸까요?
아무러면 위대하고 위대한 대 은하연합이 자네조차 추정할 수 있는 졸렬한 속임수나 쓰고 앉았겠나.
'얼마나 세뇌 공작에 줄기차게 노출되었으면..'
새삼 둘러보지 않아도, 이곳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아저씨 말만으로 훤히 알겠습니다.
사람들이 기사님처럼 생각한다는 걸 저 높은 곳의 소수 엘리트들은 꿰뚫고 있기에
오히려 역(逆)을 노려 유치한 정공법을 쓰고 있는지도 모르지요.
저게 음모론적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한 자작극이며
(지구 엘리트들의 속임수를 능가하는) 현묘한 우주적 트릭이 개입된 제작물이라면,
아주 그럴듯하게 짜 놓은 설계가 아닐 수 없군요.
언뜻 한 가닥의 허점도 빠져나올 수 없을 만치 촘촘해 보이나
바로 그 한 가닥을 우리가 놓치고 있지나 않은지 항시 유의해야만 합니다.
자네가 감히 능멸하는 은하연합의 설명에 따르면, 저놈들도 첨엔 평화로운 은하 변방의 인간형 항성계 종족이었다는군.
그러다가 아주 오래전에 다른 은하의 불청객들로부터 지금의 우리가 처한 것과 똑같은 재앙을 선물 받았대.
이게 무슨 뜻이냐, 입실론 03T를 살포하는 극악무도한 저놈들이야말로
지극히 희박한 확률로 진화한 이른바 숙주들의 역사적 발전 모델이요 눈부신 문명으로 성장한 성공 케이스라고나 할까.
아이러니하게도 말이지.
릴레이 식인가요?영원(永遠)에 가까운 텀을 두고 디스토피아의 정점을 찍는 (일종의 마계와 같은) 초문명 행성들이
잊을 만하면 나타나서 불특정 다수의 행성들을 향해 신의 계시인 양 신성한 의무인 양 우주 기생충을 실어 나른다?
은하계 전체를 초토화할 만큼의 상상을 초월한 기술과 어마어마한 물량을 동원하여?
그렇게 폭발적으로 퍼트려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게 된 감염 행성들 중에서
하나 얻어걸리듯 또다시 저딴 그로테스크한 숙주 행성은 희박한 확률을 뚫고 탄생하는 것이고요?
따지고 보면 진정한 가해자요 승자는, 언제 어디서 기원했는지 전혀 알 도리가 없는 그 미지의 기생체가 되겠군요.
(그것들이 정복한 뒤에도) 멸망하지 않고 살아남았을 뿐 아니라 발전을 거듭하여 고도로 진화한 숙주의 세상들,
그 행성들의 이름을 따서 불렸고 현재도 그리 불리고 있는 존재 말입니다.
자칫 이대로 가다가 여기 지구도, 숙주들의 세상이 되어 만에 하나 무한의 시간과 더불어 마성의 진화를 거듭하게 되면
저들처럼 사악한 의도를 가지고 우주로 나아가는 것이 가능할 수 있단 얘기네요. 이론적으로는 말입니다.
저능한 미개인처럼 행동하고 폭력성과 욕정만 키워가고 있는 "지구의 숙주"들이 과연
찬란한(?) 문명의 시원이 될 수 있을진, 다분히 회의적입니다만..
"우릴 모조리 없애고 지구를 파괴하려는" 계산된 목적의식을 뚜렷하게 지니고 온다기보단
본인들의 존재 근거인 입실런03T 무리를 맹목적이고 본능적으로 퍼뜨리기 위해
일정한 주기에 맞춰 초거대 규모의 원정단을 꾸린다잖소. 마치 특정한 시기에 발정기를 가지는 짐승들처럼 말이오.
기생물의 씨앗을 뿌리기 위해 "3차원 생명체가 존재하는" 은하계 행성들을 찾아온 우주를 헤매는
(말하자면) "발기"된 족속들인 것이지.
이 앙큼한 것들이 자신들보다 몇 수 위인 은하연합의 파워는 어떻게 알아가지고, 지상으로 감히 내려오지는 못하고
본인들이 뚫어 놓은 "지구 곳곳의 비밀 포털"을 통해 다량의 기생체를 실은 캡슐들만 기습적으로 침투시키는 모양이야.
원격 기동대를 전방위로 투입한다고나 할까.
이렇게 밀어붙이는 (그 저주받을 것들의) 물량이 엄청나서
은하연합 포털 사령부의 즉각적인 대응으로도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격이라니, 말 다 했지 뭔가.
그 잘나신 은하연합이 무어 그리 쩔쩔맨답니까?
"녀석들의 함대들이 위치한 본진"으로 돌격하여 섬멸해 버리면 그만인 것을..
그 정도의 능력도 안 되는 세력이랍니까?
그게 그러니까, 놈들은 지구 근처 태양계에 위치하지도 않고 있다 하더라고.
뛰어난 워프 기술을 활용하여 위치가 특정되지 않는 우주 구역에 꼭꼭 숨어 있는 데다 수시로 이동까지 하고 있어서
잡아내기가 녹록지 않다던데? 그도 그럴 것이
"산부(産夫)" 원정단의 하부 그룹들 가운데 하나인 지구 침략 군단의 우주 함선 내부는
입실런03T를 밴 산부들로 가득 차 있어서, 그들을 각별히 보호할 필요가 있었겠지.
근데 독특한 점은 - 한자(漢字)를 보면 알 수 있듯이 - 산부가 암컷이 아니고 백 퍼센트 수컷이란 점이네.
그리고 자네가 은하연합을 단단히 오해하는 것 같은데
저들 호전적인 무리와 동일 선상에 놓고 동급 취급하는 잘못을 저지르진 말게나.
아무리 상황이 호락호락하지 않아도 은하연합이 일단 섬멸을 목표로 삼으면 저들은 결국 우주에서 소멸되게 되어 있다네. 놈들이 우리 은하계를 감염시키겠다고 작정한 순간부터 그것이 얼마나 치명적인 오판인가를 뼈저리게 느끼기까지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는단 얘기지.
그러나
전(全) 우주의 평화를 기조로 활동하는 은하연합에게 - 그것이 설혹 적대적 세력이라 해도 - 우주 생명체의 몰살이란 결코 묵과되거나 용납될 수 없는 것이며, 따라서 우리 은하를 수호하는 우주 보안관 역할을 함에 있어서도
은하의 안전과 영속에 위협을 가하는 중범죄를 단죄하는 방식이 절대로 야만적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오.
그러므로 이번에도 아마, 지구에 퍼진 감염원을 솎아내고 몰아내어 일단 급한 불부터 끈 다음
저 문제 행성의 지도자들을 체포하는 선에서 마무리할 것으로 보이오.
기생체를 소탕하거나 - 어디론가 숨어 버릴 게 뻔한 - 주모자들을 색출하는 데 얼마의 시간이 소요되든
은하연합은 무모한 지름길을 택하지 않고, 신중하게 설정된 이 방향을 유지하며 나아갈 것이오.
사악한 본능이라 해도 놈들로선 어찌할 수 없는 자연적 본능일진대
은하연합은 본디부터 우주의 생명과 우주의 자연적인 조화를 중히 여기는 존재이며
워낙에 본인들보다 미개한 종족들에 대하여서는 측은지심과 박애를 지니고 있으므로
더욱 그리할 수밖에 없을 테지요.
하물며 "범우주적 관점에서 놈들 역시 기생체에 점령당한 숙주요 피해자"라는 기본적 인식을 갖고 있으니
그러한 수준의 분들께 극한의 이분법적 대립 구도를 기대할 순 없잖겠소?
'충실한 대변인 나셨군. 이 또한 철두철미한 세뇌의 효과일까? 책을 읽듯이 술술 읊어대고 있잖은가?!딴 건 몰라도 은하연합을 칭송할 때만은 안광이 번득이는 게, 본인은 아니라고 해도 광신도의 기운이 흐른다니까..
너무 반대 의견을 고집하거나 딴지를 거는 짓은 되도록 자제해야겠어.
당장 이자의 도움이 절실한 입장에서 말이야.'
알겠어요.기사님 보기보다 박식하시네요. 뉴스를 달고 사셔서 그런가..
집단이 흔히들 내세우는 슬로건은 언제나 실체와 상관없이 번지르르하기 마련이지만,
은하연합은 원체 대단한 우주적 집단이라 뭐 아닐 수도 있겠네요.
예, 그 부분은 인정하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말이죠..
에이리언이 직접 내려와 지구의 남자들을 공격하지는 않는다는 것 잘 알겠고, 그렇다면
그것들이 낳자마자 내려보낸다는 기생충들이 타깃한테 달려들었단 얘긴데
그걸 목격한 목격자가 이제껏 없었다면 그게 더 이상한 것 아닌가요?
날마다 숙주들이 엄청나게 쏟아지고 있는 현시점에서요.
아직까지 기생충의 침투 경로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해서 드리는 말입니다.
그렇게 대단하다는 분들이 못하는 건지 안 하는 건지 원..
보기보다?
그럼 처음엔 무식해 보였단 얘긴가?
아니, 그런 뜻이 아니고요.
기사님은 사소한 것에 꽂히는 스타일이신가요? 뭔 말을 못 하겠네 정말!
후후, 젊은이는 처음부터 예리한 구석이 있어 보였어.
내 얼굴부터가, 잘생긴 자네와 달리 약간 무식하게 생기긴 했지.
그리고 좀 잠잠해졌나 했더니 다시금 의심병이 도진 모양이야?
그 기생물은 철저하게 야행성이라, 낮에는 클로킹 된 캡슐 안에서 수면 상태로 있다가
한밤중에 각개격파 식으로 은밀히 정한 목표물을 쫓는다네.
크기도 잘해야 어른 손바닥만 하다는 썰이 있고 지독한 혐기성 생물이니만치
일종의 보호 장비 안에 들어가 마치 갑옷을 입은 듯하다고도 하더이다.
내가 이렇게 설명할 수 있는 것 자체가
은하연합과 아메리카 연합국의 합동 연구반이 아예 손 놓고 있는 건 아니란 증거지.
이들의 성과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또 있어.
소위 역추적 방법으로 이것들의 순환 메커니즘을 규명해 내기도 했지.
침투한 숙주의 복강에 자리 잡고 성체로 자라는 과정에서
자웅동체인 이것은 자신의 몸 안에다 수많은 씨앗 벌레들을 잉태하기 시작한다네. 그리고
숙주가 성체를 분만하면 성체는 세상으로 나와 새로운 숙주를 찾는 거지.
점령 초기에는 공기에 대한 치명성과 관련하여 적지 않은 시행착오를 겪지만 이들의 침략 대상이 애초에,
이런 결점을 과학 기술로 커버할 잠재력을 갖춘 3차원 문명 행성이므로, 흐르는 세월과 함께
기생체들의 약점은 보완되게 마련이라네. 그리하여, 우주를 누빌 만큼의 기술적 도약에 이르기까지 장구한 세월 동안
무수히 많은 기생체들을 (숙주 행성 안팎의) 적정한 환경에서 냉동 보관하였다가
때가 되면 이것들을 데리고 "희생자 행성" 사냥을 나서는 것이지.
이번 입실론 03T 행성의 경우 기(旣)보관되었던 것들은 다 소진하였고 그래서
분만실을 완비한 함대에 - 이 역시도 셀 수 없이 많은 - 산부들을 실어 나르고 있는 게야.
한편, 아직은 추정이고 가설일 뿐이네만
기생충의 생체 구조상 혹은 보호 갑옷의 특수 장치를 통해
마이크로미터 범위의 미소한 씨앗 벌레들이 대량으로 타깃에게 투여되는 양상이라는군.
눈에 안 보일 정도의 가느다란 바늘 같은 것이 희생자의 척추를 찌른 상태에서 그것들이 주사되는 방식이랄까.
흡사 수많은 정자들이 경쟁하여 최후의 승자가 수정에 다다르듯
척수를 타고 흐르는 이것들 중 오직 한 마리만 복강에 자리한다네.
그 많은 벌레들이 어떤 식으로 경쟁하고 도태되는지 정확히 밝혀진 바는 없으나
상대적으로 넓은 복강을 한 마리만 차지하도록 설계된 것은 아마
숙주의 삶을 보장하여 양질의 분만 형태를 갖추는 방향으로 진화가 이어진 결과인 듯싶네.
어찌 그리 해박하십니까? 어디, 저명한 과학 저널이라도 열심히 구독하시는지요?
온통 추정이고 가설뿐이라 해도 신빙성이 아주 없진 않네요.
그러나 어쨌든 결론은, 일반 대중의 시선에서 이들 우주 벌레의 정체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이거잖아요?
안개에 싸인 채 도무지 현실적으로 다가오지 않는 대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자네한테나마 칭찬을 들으니 기분이 썩 나쁘진 않군.
조만간 이 대환란의 진상을 샅샅이 파헤쳐 우리 서민들도 적극 대응할 수 있는 더 명확한 지침을 하달해 주실 것이니
너무 보채지 말고 기다려 보세나.
'허 참.. 산부 원정단이라니..
명칭은 또 왜 이리 지었대?
하여간 이곳 세상의 사건들은 하나에서 열까지 다 선정적이야, 돌아가는 상황 자체가 온통..'
'평행 지구 (판타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6. 음모의 점화 2 : 은하 연합 (0) 2024.04.26 5. 음모의 점화 1 : 에이리언 (0) 2024.04.23 3. 숙주 1 (1) 2024.01.10 2. 침략 (0) 2023.11.10 1. 사건계(界) (1) 2023.1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