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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침략평행 지구 (판타지) 2023. 11. 10. 17:15
저기..아저씨, 올해가 몇 년도죠?
이 양반이..?어디 가냐고 묻는데, 뭔 헛소리야?!
'쳇, 불친절이 장난이 아니군. 미래가 왜 이 모양이지?'
혹시.. 서기 이천 년은 넘었나요?
당신 토벌대 맞아? 위험을 무릅쓰고 태워 줬더니 지금 나한테 장난치는 거요??
죄.. 죄송합니다.그런데 위험을 무릅쓰시다뇨? 그리고 토벌대는 또 뭡니까?
아니 이 작자가..?당신 혹시 탈영병이야? 군복은 얻다 벗어 놓고 이 추위에 속옷 차림으로..
신시아를 갖고 있는 걸 보면 그건 또 아닌 것 같고..
하긴, 어느 미친놈이 신성한 신시아를 들고 탈영하겠어? 그랬다간 신시아로 즉결처형인데.
요즘 같은 땐 탈영 자체도 목숨이 보장되지 않는 판에 하물며 그걸 지니고 탈영을..? 에잉, 그럴 리 없지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은 이상..
이거 외출 나와 어디서 늦게까지 퍼마시다가 귀대 시각 촉박해서 부랴부랴 서두르는 모양새 같은데?
금주령 내린 지가 언젠데 아직도 목숨 걸고 술 파는 아지트가 남아 있나 보구먼.
두 달 전에 토벌대 입대한 내 조카 생각이 나서 하는 얘긴데 말썽 좀 어지간히 부리게나.
그 녀석도 적응하기가 꽤나 힘든지 툭하면 편한 데로 빼달라 지 부모한테 연락질이고, 거기나 여기나 참..
나 비록 택시나 몰고 있어도 앞날 창창한 젊은이 상부에 꼰지르는 저열한 놈은 아니니 안심하시고
그 아지트 어딘지 대충 읊어 보슈. 놔두고 온 군복은 찾아 입고 복귀를 해도 해야 할 것 아녀?
'하, 택시 기사 아저씨들 수다스러운 건 우주가 달라져도 변하지 않는 진리로구나.
그나저나 신시아라.. 이것들이 신시아가 설치는 지구로 나를 옮겨 놓았단 말인가. 흑막의 냄새가 벌써 코를 찌르는군.'
아저씨, 제가 탈 때 헬멧이랑 이거 뒤로 숨긴다고 숨겼는데 어찌 아셨대? 특히 승차하자마자
좌석 밑에다 감추다시피 했다고요. 뒤 한 번 안 돌아보시고 잘도 알아맞히시네?
그리고 저, 술 안 마셨거든요?
다 보는 수가 있다오. 이 정도 차한텐 아주 초보적 기능인 것을.. 새삼스럽기는..
나도 처음엔 유랑하는 이방인이거나 원정 양아치겠거니 싶다가
신시아의 고유 주파수가 감지되는 바람에 토벌대원인 줄 안 거라오.
그런데, 고급 택시도 아니고 전국에 보급된 지 십 년이 다 돼 가는 택시를 오늘 처음 타 본 사람처럼 왜 그래? 술이 덜 깼..
그렇구먼, 자네 말대로 술 냄새는 안 풍기는구먼. 허어, 촉 하나는 내가 끝내 주는 사람인데 오늘따라 왜 이리 안 맞아?
손님 감시가 장난이 아니네요. 정작 저는 기사 분 얼굴조차 볼 수 없는데 말이죠.
이런 최첨단 택시, 외계인들이 전수한 기술력으로 만든 것 맞지요?
'제발 아니라고 말해 주세요.'
두 말 하면 잔소리지. 알면서 묻나 시방? 자네에게 저 거룩한 신시아를 하사하신 대(大) 은하 연합의 은총이
이 나라 곳곳에 미치지 않은 데가 없어. 이 승용차는 그 은총의 극히 일부라네.
젠장, 이깟 게 뭐라고 그리 벌벌거리세요? 그래 봤자 무기 나부랭이에 불과한 걸 가지고 웬 호들갑?
무어 얘기 들으나마나 첨단 무기니까 살상력은 기똥찰 테고..
호전적인 외계인 찬양은 좀 적당히 하시죠? 역겹습니다!
'아, 짜증 나네. 어디 와도 이런 음침한 지구로 끌고 와서는..'
문득 감이라도 잡은 양 자기 혼자서 사태 파악을 마쳐 버린 기사의 음성이 갑자기 떨려오기 시작했다.
사.. 살려만 주십시오. 처자식이 있는 몸입니다. 살려만 주시면 뭐든 하겠습니다..
아저씨, 지금 단단히 오해하시는 것 같은데 저는 토벌대도 아닐뿐더러 탈영병은 더더욱 아니에요!그러니 더 무서운 거죠. 누군지 도저히 예측 불가한 자가 신시아를 들고 나타났으니..!
저, 군복무 마친 지가 십 년이 다 되어가는 사람입니다. 탈영이라니요.
그건 토벌대원이 아니라는 증거가 될 수 없어요. 토벌대의 삼분지 이 이상이 예비군이걸랑요.오해는 그쪽이 하는 것 같은데요? 차라리 탈영병이면 다행이겠어요. 아무리 막 나가도
기본적인 정신 무장은 되어 있을 테니..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불경하기 짝이 없는 소릴 지껄이는 당신은 미친 게 확실한데
제정신이 아닌 인간 손에 신시아가 들려 있으니 이보다 위험한 일이 또 어디 있겠소?
저는 멀쩡한 사람입니다, 아저씨! 이걸 어디서부터 얘기해야 할지..
그리고 이 차 정도면 그 어떤 또라이 승객들로부터도 기사의 안전을 보장할 장치는 기본으로 되어 있을 텐데
그렇게 노골적으로 공포에 떨 필요는 없잖소?
신시아의 능력을 몰라서 하는 소리요? 알면서 그러면 나를 희롱하는 것이고, 정말 모른다면 그게 더 큰일!
이 특수 칸막이는 인간이 만든 재래식 무기에 대한 방어용이지 신시아를 막기에는 무용지물이란 말이오.
그런가요? 절대 해치지 않겠다 약속드릴 테니 부디 진정하시고 제 말을 들어 주십시오.
제 질문에도 답을 좀 해 주시고요, 네? 그리고 거, 닭살스럽게 자꾸 신시아가 뭡니까?
무시무시한 무기에다 여자 이름만 갖다 붙이면 살벌함이 사라진답니까? 그냥 총이라 하세요.
난들 그리 부르고 싶겠소? 공식 명칭이 그러하니..
어쨌든 알겠소. 말은 통할 것 같은 젊은 양반이구먼. 당신이 신원을 스스로 증명만 해 준다면 내 기꺼이 협조하리다.
그렇담 우선 내 이 질문부터 받아 주시구려. 그 신시아 아니 그 총은 대체 어디서 난 거요? 훔치기라도 했단 말이오?
외계에서 왔다는 이 총이 왜 나와 함께 있는지 그게 궁금하시다고요?그간의 너무도 복잡한 경위를 당장 설명드리기가 참으로 난감하네요.
일단 서두는 이렇게 시작해야 될는지..
제가 외계에서 이걸 들고 이곳 지구로 내려왔다면 믿으시겠어요?
그게 뭔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요? 당신이 무슨, 은하연합의 비밀 요원이라도 된다 이거요?
아, 그건 아니지만.. 사실 저도 많이 혼란스럽습니다. 이게 어찌 된 영문인지.. 내가 왜 여기 있어야 하는지..
안 보여도 아저씨 지금 표정이 상상되는군요. 정신병원에서 탈출한 놈으로 저를 보셔도 할 말은 없습니다만..마음 좀 가라앉히고 찬찬히 나름의 사정을 설명할 터이니, 일단 N공장으로 갑시다.
기사와 무작정 말씨름만 하고 있을 순 없는지라, 급한 대로 예전에 다니던 직장을 목적지라고 일러 주었다.
N공장이요? 거기 폐쇄된 지 오랜데..아니 뭐.. 그리로 굳이 가시겠다면 데려다는 드리리다.
두려움을 무던히도 억누르고 있는 듯한 기사의 음성에 미심쩍음이 덕지덕지 끼어 있었다.그의 입장에서 보면 이상한 소리만 지껄이는 상준을 계속 경계하고 의심의 고삐를 쉬 풀지 않는 게 당연하리라.
폐쇄라고요?! 공장이 망하기라도 했다는 뜻인가요?이렇게 아무것도 모르는 걸 보니, 외계에서 뚝 떨어졌다는 손님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야 하는 건지 원..
여길 몰래 시찰하러 내려온 은하연합 본진의 높으신 분이라면 이곳 돌아가는 형편을 이렇듯 모를 리가 없는데..
아까와 같이 운전석과 승객용 좌석을 격리하던 가림막 일부가 - 모종의 재질이 부리는 신비한 마술인 양 - 다시 옅어지기 시작하더니 입체적인 홀로그램 스크린으로 빠르게 대치되었다.
기사가 작동하는 대로 그 결과물이 홀로그램(?)에 원격 투영되는 시스템이면서 동시에승객 쪽에서도 컨트롤이 가능한, 일종의 양방향 디스플레이 입체 패널 같은 것일까.
대관절 지금이 몇 년도이기에 이런 S. F. 가 현실로..아무리 외계인이 정체를 드러낸 평행 세상이라지만..
내가 지내던 동네와 별반 다를 바 없는 곳이거늘 참 어색한 이질감일세.
참고로 저는 1999년에서 왔어요, 아저씨.
젊은 양반 나랑 농담 따먹기 하자는 거요? 16년 전 과거에서 타임머신이라도 타고 날아왔는가?왜요, 댁이 찬양하는 찬란한 은하연합 문명도 아직 타임머신은 개발하지 못했나요?
'그것보다 16년 전이라..
현재 2015년이면 예측대로 근미래인 게 맞군. 불과 16년 뒤에 이렇게까지 디스토피아가 된다고?
제발이지 이곳이 내 직계 미래가 아니기를..'
아니 뭐.. 아주 허무맹랑하게 들리는 건 아니고..
하긴, 은하연합 고위 관계자 가운데 한 분이 비밀 엄수 규정을 깨고
시간 여행의 일부 핵심 기술을 아메리카 연합국 지도부에 넘겼다는, 소문이 언제부턴가 떠돌기는 했어.
당국은 서둘러 낭설이라고 못박았으나, 국내외 제법 영향력 있는 호사가들 사이에선
이미 공공연한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네.
따라서 나 역시 젊은 양반의 농담인 듯한 소리에도 일 프로의 신빙성은 있다고 믿는 일인이니
이 무식한 범부의 경박한 한 마디 한 마디에 너무 고깝다 반응하진 말게나.
밖에서 보았을 때의 새까만 합금 덩어리 차체가, 내부에 앉아서 볼 때에도 그 모양 그대로였다.
옵션 기능이 대동소이하여 조잡한 디자인과 인테리어로 승부 보는 기존의 차들과 달리
이 차의 성능은 워낙에 인간계를 뛰어넘는 수준이라, 디자인에 급급하지 않는 여유인지
극도의 단순함 속에서도 특유의 품위가 유지되고 있는 듯하였다.
다만 불만스러운 것은 밖에서뿐 아니라 안에서도 바깥의 배경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인데
이야말로 여느 차들과는 판이한 두드러진 특징이 아닐 수 없었으나,
차창을 통해 풍경을 음미하는 데 익숙해져 있는 상준으로선 - 아늑함을 느낌과 동시에
마치 좁은 공간에 꼼짝없이 갇힌 듯한 갑갑함 또한 느낄 수밖에 없어 - 독보적이란 표현까지는 사용하고 싶지 않았다.
더구나 안쪽에도 손잡이는 역시 보이지 않아 약간 과장하면 폐소공포증을 유발하기에 충분한 구조 같았다.
어후 아저씨, 근데 여기 창문은 없나요? 너무 답답한데요?
그래도 명색이 자동차인데 바깥 구경 정도는 할 수 있어야잖아요?
점점..? 16년 전에서 점프해 온 사람처럼 이야기하는구려. 연기를 하는 거라기엔 너무 진심이 느껴지긴 하오.
댁과 입장을 바꿔 16년 전의 나였어도 그리 말했을 거요. 이걸 쓰세요.
예의 그 칸막이 하단부에서 작은 서랍 같은 게 저 혼자 스르륵 열렸고 그 안에는
보통의 선글라스보다 조금 두꺼워 보이는 검은색 안경 비슷한 게 들어 있었다.
이런 작은 부분에까지 경계를 늦추지 않기에는 몹시 피곤하였고 그리하여 그는
될 대로 돼라는 식의 포기 반, 호기심 반의 심정으로 그것을 집어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냉큼 써 버렸다.
이것 또한 기사가 작동하는지 승객은 그것을 끼는 동작 외에는 다른 어떤 부가적 움직임도 필요치 않았다.
※ 훗날 블루투스라 불리는 근거리 무선 기술의 원격 조종 버전인 셈인데, 1999년에 생애가 멈춰 있는 일반인 상준으로서는
생전 처음 겪어 보는 체험이라 그저 신기할 뿐 이러한 방식의 디지털 통신 기법을 알 턱이 없었다.
헉! 이게 뭐죠? 이거 무슨 장면인가요? 영화 속 배경인가요? 내 손이 내 몸이 보이니까 영화는 아닌데..
이런 걸 1인칭 시점이라 하는 건지.. 난 분명 차 안에 있는 거 맞죠? 그런데 나 혼자 공중에 붕 떠서 이 차의 속도대로 치닫고 있잖아요??
워워, 진정하쇼. 지금 보이는 장면은 영화가 아니고 차 밖의 실제 모습이라오. 이 차에 탄 손님들은 다 이렇게 밖을 본다오.
기가 막히는군요! 아저씨도 당연히 착용하고 계시지요? 운전하려면 필수적일 테니까요.
잘 아시는군. 기사용은 여분이 하나 더 있소. 만일을 대비해서 말이오. 그러니 사고 염려는 할 필요 없다고.
그의 몸을 관통하듯 맹렬한 속도로 다가와 부리나케 뒤로 달아나는 거리의 이곳저곳이
예외 없이 적막하고 을씨년스러웠다.
아저씨, 홍주시에 무슨 큰일 일어났습니까? 한창 붐빌 시간에 차량들도 뜸하고, 행인들도 나다니지 않고게다가 불이란 불은 다 꺼져 있네요? 오늘 등화관제 훈련이라도 실시하나요..?
모든 게 신기한 듯 그리 순진하게 물어보시니, 적어도 한국 사람으로 둔갑한 은하연합 외계인 나리는 아니겠단확신이 드네요. 이보슈 젊은이, 백 번 양보해서 댁이 과거로부터 왔다 치고 당신이야 까맣게 모르는 게 당연하겠지만
현시점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네 서민들이라면 거의 다들, 정신 차릴 틈도 주지 않고 홍수처럼 들이치는 비극적 사태와
그에 마땅히 따라오는 패닉을 진저리 날 만큼 체험하고 있소이다.
상준이 워낙 어리벙벙한 표정으로, 상황을 직시함에 애를 먹고 있어서일까.신원 미상의 이방인에 대한 두려움과 경계심이 다소 풀렸는지 기사는 퉁명스러운 말투를 슬금슬금 되찾아 가는가 싶더니 어느새 본래의 모습으로 완전히 복귀한 눈치였다.
예? 그 정도로 사태가 심각하다고요? 대체 지금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길래..
홍주시는 밤 8시부터 통행금지라네. 그러나 사실상 일곱 시 이전부터 시민들 자체적으로 바깥출입을 자제하는 분위기가 팽배해진 지 오래야. 하여간 내가 설명하는 것보단 이걸 한 번 들어 보소. 볼 것도 없는 바깥 경치는 그만 감상하고..
마침 7시 정각이군.
(입체 스크린에서) 뉴스를 진행하는 아나운서와 그녀의 차분한 멘트가 기다렸다는 듯이 재생되며차 안에 가득 퍼져 있던 그의 혼란한 상념을 정돈하기 시작하였다.
11월 29일 "7시 저녁 뉴스"를 알려 드리겠습니다.
먼저, 작년 9월 초 입국한 선발대 교관단에 이어 아메리카 연합국의 토벌대 제8사단 지상군 전투병력이예정대로 오늘 오후 5시 평양 군 공항에 무사히 도착했다는 소식입니다.
우리 계엄 사령부의 긴급 요청에 따라 에일리언 전문 추적 조사단을 포함하고 있는
본진 성격의 이번 지원대가 합류함으로써, 현재 활발히 진행 중인 "입실런 03T 무리들의 대대적인 섬멸" 작전에
더욱 박차가 가해질 수 있으리라 전망됩니다...............
아저씨! 이거 생방송 뉴스 맞나요? S. F. 드라마가 아니구요??그리고 평양 군 공항이라니요? 그렇다면 이곳 지구의 한반도는 이미 통일이 된 후라 이 말입니까?
믿을 수가 없군요. 게다가 에일리언은 뭐고 입실론 03T는 또 뭡니까?!
무료하던 일상 속에서 아드레날린을 뿜게 만드는 사건들이 펑펑 터지니 신이 나는가?나도 처음엔 그랬는데, 숨통을 조여오는 (언제 끝날지 모르는) 현실적 공포로 24시간 절여지는 삶에 매일 노출되다 보면
내가 그때 얼마나 어리석었는가를 뼈저리게 통감하지 않고는 못 배겨.
앞으로 지겨울 만치 "생존을 보장할 수 없는 두려움"에 떨게 될 테니, 쓰잘데기없는 "여유로운 흥분"은 개나 줘 버리고
차분하게 뉴스나 계속 들어 보라고!
............... 기생 외계 생명체의 가공할 침략이 중국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권 전체를 강타한 시점에서,우리나라 25개 도(道) 전역에도 "숙주 인간"들의 폭발적인 증가와 함께 그들의 동시다발적 준동으로 인한 폭력 사태가
전염병처럼 번지고 있습니다.....................................
25개 도라고요? 평양에 미군 부대가 들어오질 않나..이런 식의 급변 양상은 가히 B급 판타지스럽다고 해야 할지..
내가 사는 세상의 역사는 죽었다 깨도 2015년에게 이러한 전개를 허용하진 않을 텐데..
나는 정녕 지옥으로 들어온 것인가!
.............. 어떠한 경로로 인간의 몸을 점령하는지 아직까지 그 메커니즘도 명확히 규명되지 않은 채, 숙주 인간들만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추세입니다.
입실론 03T가 이 땅에 몰려온 지 일 년 반이 지난 현재까지도 뚜렷한 대책을 내놓고 있지 못하는 관계 당국은오늘 입국한 연합국 전문 기술진과 함께 방금 전 7시 긴급 비상대책회의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한편 관련 소식통에 따르면, 작년 5월 20일 전국에 내려진 비상 재난통제령을 국가 비상 계엄령으로 강화한 지두 달여가 지나고 있음에도 "남성들이 대부분인 숙주들"에 의해 자행되고 있는 살인과 강간의 양상은
시간이 흐를수록 잔인무도해지는 추세라고 합니다. 따라서, 현재 각 자치구역별 자율 조치에 의존하고 있는
통행금지령의 통행 제한 시각들을 오후 6시로 일괄하는 방안이 빠르면 내일부터 시행된다고
비상대책회의 시작 전(前) 계엄 사령관 대변인의 발표가 있었습니다.
........................ 숙주들이 입실런 03T의 인체 강탈 매개체로 직접 이용되는지에 관한 여부조차 아직 확실치 않은 가운데보건 위원회와 군경 당국은, 국민들에게 가급적 외출을 삼가고 집안에 칩거하여 뉴스를 주시하라는 당부만
반복하고 있습니다................................
계엄하(下)라면 언론 통제도 심할 텐데 비교적 객관성 있게 보도하는 채널 같군요. 아니면 조만간 요 정도 비판적 시각도 뉴스판에서 사라지려나..아무튼 사안의 긴박함이 장난 아니네요. 이 보도가 사실이라면 우리나라에 정말 끔찍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는 건데..
어디 우리나라뿐인가? 전(全) 세계가 아수라장이라고!특히 아녀자들, 컴컴할 때 괜히 밖으로 나돌다가는 괴물 같은 놈들한테 당하는 거 시간 문제지.
제길.. 통행금지가 두 시간이나 앞당겨졌으니 이건 뭐 죽으라는 얘기군.
아저씬 이런 판국에도 계속 영업을 하시네요?
집에 박혀 있으면 저절로 돈이 생기나? 아무리 난리가 터졌어도 먹고는 살아야 되잖겠어?!
난 독신이라 식구들 때문에 집구석에 죽치고 불침번 설 필요는 없으니까, 여타 가장들과는 달리이렇듯 부담 없이 운신할 수도 있고 말이지.
'아까는 처자식이 딸린 몸이니 살려달라 해놓구선..생존 본능이 잽싸게 꾸며 낸 뻥이었구먼.'
그리고 말이야.. 그 숙주란 것들 여자들한테만 환장한 놈들이라 그런지특별히 대들거나 하지 않으면 건장한 남자들을 찾아다니며 해코지하진 않더라고.
그래서 나 같은 쫄보들도 용기 내어 생업에 종사할 수 있는 거라네.
거 참 알다가도 모를 희한한 놈들이야,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지만서도..
물론 외계 생명체의 숙주가 될 (치명적으로 높은) 확률은 나 또한 감수하고 이 짓을 하는 거라오.
까딱해서 숙주가 돼 버리는 날엔 여태 우릴 지켜 주던 천사 신시아가 악마로 돌변하기 때문에
항상 조심 또 조심하면서..
숙주 놈들 처단하는 귀신이 바로 그 총이야. 보나 마나 자넨 그런 중요한 사실도 몰랐겠지?
에이, 그게 어찌 자네 수중에 들어가서는..
그거 절대 사람한테 겨누면 안 돼! 알겠나? 그리고 그걸 들고 활보하다간 십중팔구 자넨 무사하지 못할 게야.
내, 젊은이 위해 하는 말이니 차에서 내리걸랑 곧장 토벌대로 가서 인계하게. 비상 시국이라 쉽게 풀려나긴 어렵고
만만치 않은 심문을 받겠지만, 어디서 주웠다고 대충 둘러대면
가뜩이나 바쁘고 정신없는 군인들이 더는 물고 늘어지지 않을 거야. 자수해도 안전하다고는 백 프로 장담해 주지 못해
미안하네만, 이것 하나만은 명심하게. 그거 들고 밖에 얼쩡거렸다간 자넨 죽어!
거, 본인 일 아니라고 말 참 편하게 하시네. 둘러대는 게 어디 말처럼 쉽습니까?우선 아저씨한테도 어찌 설명해야 할지 몰라 이리 버벅대고 있구만..
안 그래도 불안해 죽겠는데 겁 한 번 오지게 주시네 정말.. 그건 제가 알아서 할 테니 잔소리 그만하시고요!
아저씨나, 저 내리자마자 신고때리는 비겁한 짓 하지 마세요.
헤헤, 여부가 있겠나..
나라 전체가 아노미 상태인데도 택시 잡는 손님들이 있긴 있나 보죠?
관공서나 회사들이야 숙주들의 난동으로 파괴되어 거진 다 문을 닫았지. 그래도 그들은 퇴직금은 받았다 하더구먼.당분간이겠으나 어쨌든 숨 쉴 구멍이라도 있는 그들과 다르게, 우리같이 영세한 자영업자들은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목숨 걸고 기어 나올 수밖에..
흐흐, 그런데 죽으란 법은 없더군. 이런 때일수록 뭔 구경 났다고 더 싸돌아다니는 나사 빠진 녀석들은
언제나 있잖은가? 왜 그, 난리만 나면 기자 병 도지는 오지랖쟁이들 말이야. 자네 보고 하는 말 아니니 괜한 오해는 말고..
목숨이 여러 갠 줄 착각하고 싸구려 호기심 때문에 괜스레 들떠 여기저기 기웃대며 쏘다니는 철없는 애들 얘기니까.
아, 네..
그치들뿐 아니라 실제로 택시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아직까진 적지 않다네. 종군 기자들도 있고 (진짜 기자 말일세.)
자원봉사자들, 외출하거나 귀대하는 토벌대 한국 병사들 등등..
그나저나, N공장은 왜 가려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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