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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투정인 듯 다정인 듯위선자들의 사랑 (상준 외전) 2024. 7. 17. 18:16
누나는 살아오면서 참 많이 지쳤나 봐..? 그래, 너무 지쳐 버린 게야.
누나를 그리도 지치게 하는 데 적잖이 일조한 나로서는 유구무언일 따름이지..
지친 본인한테 이제는 제발 좀 맞춰 달란 얘기였구나.
그게 싫으면 자신을 떠나가 달라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구나.
누나한테 나는 참 부정적인 사람이었지? 견디기 힘들 만큼..
산전수전 공중전 다 겪는 삶 속에서 녹초가 된 누나가 원기를 회복하려면
"좋은 게 좋은 것"이 제일로 좋은 것이요, 무조건적인 긍정이 최고의 보약일 수 있는 것을..
가랑비 젖듯 누나에게로 스며든 "나에 대한 고정관념"을 일거에 불식하려면
내 몫을 제대로 수행해야겠지. 누나가 제시한..
현실의 뼈저린 고단함을 논할 수 있는 자격은 일과 후의 간절한 휴식에게만 주어지는 것이라 했어?
일상의 업무가 보장되었을 때에만 가능한 것이라고..?
현실을 직시하려는 시도도, 심신이 고달프지 않은 자들에겐 (실은 편하면서 고달픈 척하는 자들에겐)안 어울리는 사치이던가.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울 뿐인..
나 같은 이는, 어두운 내면은 묻어두고 그저 밝게 웃는 것이 상책이로구나.
숨겨도 무방한 치부를 구태여 후벼 판들 나 같은 인생에 무슨 영화(榮華)가 있겠어? 그렇지?
삶에 차이고 사람에 치인, 가련한 어른 나오미..
여기저기 아물다 만 그대의 생채기들이 심리적 안정을 몹시도 보채는가 보다.
논리가 생략된 어눌한 위로, 그 걸쭉한 정감 한 사발이 당장 절실한 모양이야. 누나답지 않게..
비논리의 부실함을 따지고 드는 것이 이제야 배부른 유희로 느껴져?
그렇다면,정염은 말끔히 제거한 채 몽환적 연인 관계를 그럴싸하게 흉내 내는 "인생의 수수한(!) 벗"이 되어
이유 불문 그대를 다독이고 또 다독일 일만 나에게 남은 것인가.이제는, 젠체하던 내 공연한 땡깡을 받아 줄 기운이 그대에게 없을 테니 말이지.
아, 비꼬는 것처럼 들렸다면 미안해. 내 못난 고질병 누나도 알 만큼 알잖아."또 지랄한다" 그냥 넘어가 줘. 언제나 나보단 마음의 평수가 한 뼘이라도 더 넓었던 누나였으니까.
누나가 이해돼. 사무치도록..
치열한 현실을 자포자기 심정으로 대충 비켜온 나로선
철없는 낙관이 몸에 배어 언제나 히죽댈 수 있는 나로선,
결벽적인 캄프라치를 위해서라도 겉멋 들린 비관 또는 우쭐대는 비장함이 절실했었나 봐.
비현실적 애절함이 나에겐 자양강장제일지언정 누나한텐 이제 인플루엔자와도 같은 것임을
우둔한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하였나 봐!
"불한당 같은 감성에 중독되어 폐인이 돼 버린 의식"의 묵은 때를 벗겨내지 않는 한
내 유일한 즐거움인 "그댈 향한 편지"도 누나에게는 백해무익할 수 있겠네..
"그새 열정이 식었니? 넌 아직 한창이잖아."
귀차니즘에 빠진 나를 다그치던 누나의 모습 엊그제처럼 생생합니다.
한데, 지금은 누나가 먼저 "늙었음"을 수용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우리의 관계에 대한 방향 전환까지 모색하는 거야? 매우 긍정적으로..!?
말 잘 듣는 어린애처럼 누나의 의견을 따르는 것이 곧, 누나와 나 모두에게 좋은 "윈윈 전법"이려나..
서서히 정 끊는 수순을 착실히 밟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나의 직감도,
"시크릿" 이론으로 무장하게 된 누나한테는, 피곤한 "부정성"과 다를 바 없겠지.
참 많이 지친 누나를 도인처럼 포용하려면, 나 역시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최소한 누나만큼은 지쳐야겠구려.
그래야, 적어도 우리의 만남에 빙충맞은 허무는 끼어들지 않을 테니까.
그래야, 심술궂은 상념이 할 일 없어 주리를 틀지 않을 테고 우리의 온전한 안식을 훼방 놓지도 않을 테니..절이 정말 좋아서, 깽판 치지 않으려고 잠시 떠나는 땡중도 있다오.
좋은 절에 걸맞는 참된 스님이 되어 돌아오려고 잠시 절을 벗어나 고행을 택하는..
(물론 누나가 좋은 절이고 땡중은 나니까 오해 없기.)
지쳐 버린 누나를 편하게 방치할게.딴엔 나도 힘들게 살아온 인생이라 생각했는데 누나에 비하면 한참 하수였나 봐.
지금보다 더 "현실적으로" 뺑이 좀 치고, 오만방자하던 부정성의 군살이 제법 빠지걸랑,
그리하여 그대와의 수준이 얼추 대등해지걸랑, 누나가 바라 마지않는 이상적인 관계에 감사히 부응할게.어렵더라도 노력하는 모습 보여 줄게.
편히 쉬어요. 상념을 비워 아름다운 벗이여..
그간, 누나의 "푸근한 긍정"을 야금야금 침범하는 곰팡이 노릇을 하여 면목 없고 미안해.
앞으로는, 누나가 평화롭게 쉴 수 있는 안락한 의자가 되도록
내 가능한 한 노력해 볼게요..
초가을의 높아만 가는 하늘 아래 어느 한낮이었을까.인적 드문 공원 안에 동공 풀린 눈으로 내가 앉아 있더라.
지난여름의 열기가 가라앉은 시원한 바람은 내 머리를 날리고
그 바람 속에 묻은 가을의 향기가 콧속을 간지럽힐 때
다 타지 못 한 잿더미의 약한 불씨처럼 난 아스라한 외로움에 떨고 있었어.
외롭다. 외롭다. 외롭다..
인생은 어차피 혼자 왔다 혼자 가는 것이라 되뇌며 초탈한 척 스스로를 속여 봐도 효과는 그리 오래가지 않더군.
이 지랄맞은 외로움은 아무래도 변종인가 봐.
정작 뭔가에 몰두해야 할 긴박한 상황이 오면 오히려 족쇄가 되어 집요하게 날 괴롭혀.
오랜만에 친구를 불러 고깃집 노천 테이블에 앉아 낮술을 마셨어.
뙤약볕 밑에서 몇 순배 술잔이 오갔고 그렇게 말문이 트여 버리더라.
무모하지만 나는 아직도 사랑이란 걸 하고 싶었던 거야.
열정적이고 모든 걸 다 태울 사랑을 그리워하고 있었어.
내 나이 이제 누가 봐도 청춘이 아닌데 그럼에도 난 여자이고 싶었던 거야.
세상의 목표를 향하여 달려가는 게 결국엔 현명한 것이라 다들 이야기하지만
난 여전히 사랑이란 환상 속에 안주하며 살고 싶었어.
다 태우지 못하고 남은 불씨.. 모질게 꺼지지 않는 이놈이
시원한 바람 부는 계절만 되면 겨울처럼 혹독하고 매서운 사랑을 하라며 부추기는 거 같아.
사람이 두려운데.. 이별이 두려운데.. 내 가진 것들을 또 아프게 할 수는 없는데...
난 미치도록 중독성이 강한 그 사랑에 다시 취하고 싶어서 지금 금단 현상을 겪고 있는지 모르겠어. 어찌하면 좋을까?
생애 마지막이 될지 모를 멋진 소설 그 미완의 작품을 우리 기어이 마무리해 볼까? 내게 답을 줘 상준아..
네가 내 미련(未練)에 호응한다 해도 나 역시 노력해야 함은 기본이겠지.
본능이 알아서 뜨겁게 달궈 주던 시기가 확실히 지난 듯하니 예전의 추진력은 잘 나올 것 같지 않아서 말이다.
인간은 죽어 가루가 될 때까지 외로울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거.. 우린 너무 잘 알고 있어 슬프게도..너와 나의 외로움에 질적 양적 차이는 있겠으나 이제 우리 그런 것은 그만 따지고
어쩌지 못하는 외로움들을 따뜻하게 이해하며 감싸주는 넉넉한 사랑이 되자꾸나 서로에게..
인간은 어차피 이기적인 동물이란 것. 그래서 나중엔 "원초적인 고독"을 오롯이 혼자 떠안게 될 가련한 운명이란 것..서글프지만 우리도, 이를 너그럽게 봐 주고 당당하게 인정하자꾸나. 좀 늦은 감은 있지만..
세상 누구나 끝까지 외면하고픈 이것을 너와 난 약간 더 예민하게 노골적으로 파고들었나 보다 쓸데없이.
(이를 굳이 천착할 필요도 능력도 없는) 우리네 지구촌 이웃들이 세월에 순종하듯 무의식적으로 이에 순응하고 있었다면
이 또한 섭리인 것을..
인류 대중의 현명하고 성스럽기까지 한 교집합을 무시하고 엘리트인 양 우쭐대며 실속 없는 감수성을 찬양한 우린
참으로 무지하였구나. 우리야말로 진정 어리석은 소수였구나!
우리처럼 미련한 감수성을 지닌 (쓰잘데기없이 민감한) 종자끼리라도, 이 갑갑하기 짝이 없는 섭리로부터 배어 나오는
비애감을 알콩달콩 서로 위무하자꾸나.
우리한테 사랑이 남아 있다면, 우리에게 사랑이 허락된다면, 이제는 이런 형태가 아닐까 싶다.
아니, 지금의 우리에겐 이런 게 사랑이어야 한다고 믿으련다.
사랑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 걸 불사를 순 없다는 것이 소멸을 두려워하는 평범한 사람의 한계임을 받아들이자.절실한 그리움이란 것도 실은 이러한 한계 때문에 생기는 게 아닐까.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기에 절절한 그리움이 찾아오는 것이고, 결코 이뤄질 수 없기에
그리움은 중독되고픈 환상으로 곧잘 변환하는 것 아닐까.
그래, 절대적 사랑은 보통의 인간 수준에서 가능하지 않음을
너와 나의 쓸쓸한 내면이 일찌감치 깨닫는 것은 당연해.
앞으로는 우리, 속세와 정상적인 소통을 함으로써, 사랑은 이러이러한 거라 당당하게 말할 자격을 획득하자꾸나.그리하여 세상과도 공생할 수 있는 긍정적인 사랑을 실천하는 거야.
머뭇거리지 않고 행동에 옮길 수 있는 그러나 모나지 않고 둥근, 용감하지만 아량이 넘치는 사랑을 말이다.
그러니까 상준아..
아직 늦지 않았으니 지금부터라도, 현실과의 교류 속에서 피어날 수 있는 사랑을
영악하여 아름답고 "실속 있게 착한" 사랑을 연구해 보렴.
너와 내가 절망을 벗 삼지 않고 계속 살아갈 수 있는, 꿋꿋하고 질긴 사랑.
우리가 서로를 배제하지 않아도 죄책감이 들지 않는,
네 안에 나를 내 안에 너를 떳떳하게 품을 수 있는 (해맑게 염치없는 유토피아적) 사랑을..
이렇게 주눅 든 사랑이나마 꿈꾸며 너에 대한 미련을 떨쳐내지 못하는 나,
스스로 판단해도 참 못난 것 같다.
그만 쓸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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