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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 애절함을 감추며..
    위선자들의 사랑 (상준 외전) 2024. 6. 8. 14:23

     

     

     

     

     

     

     

     

     

     

     

     

     

     

     

     


    수다가 떨고 싶어졌어. 특정 주제 없이 분위기 흐르는 대로 대화해 보는 거.. 목적지 없는 여행처럼 즉흥적으로..


    사람들이 중구난방 지껄이는 카페 안에서 나 역시 무작정 떠들고 싶어졌어. 누구와? 당연히 상준이 너와..!


    그러다 보면, 우리의 나른한 수다에 세상도 함께 나른해질 것 같고..
    나른한 세상이면, 그 위의 풍파들도 잠시 쉬었다 오가지 않을까?

     



    "황진이"란 영화를 봤어.

    여인의 아름다운 한복이 자태를 뽐내는 고혹적인 화면 속에서, 유지태가 열연한 놈이와

    송혜교의 황진이는 "가늘고 긴" 로맨스를 나누더라..


    사랑을 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가슴 미어지는 슬픔 같은 무엇.. 오랜만에 느껴봤어.

     

     

    나는 항상, 사랑을 하면 아팠어.

    조금씩 베이는 상처가 잦을수록 아픔이 더해져 간다는 건.. 당연한 현상이겠지?
    목이 멜 만큼 울컥하는, 그런 가슴 통증.


    사랑이란 건..
    늘..
    아주 잠시만 즐겁고 황홀했던 것 같아.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시리고 아파오는 게 사랑이었던 것 같아..

     


    영화를 보고 나니, 너와 함께 "아픈 사랑"에 대한 수다를 떨고 싶어졌어.


    경험이 많은지 적은지는 잘 모르겠으나, 상준이 너도 어린 나이는 아니니

    사랑에 대해선 꽤 일가견이 있지 않겠어? 제대로 된 사랑인지 아닌지를 떠나서 말이야.

     

     


    언제 한가하면 연락 한번 주든가.


    이야기가 지들끼리 취하여 갈팡질팡 헤매든 말든, 그냥 흐르는 대로 주절주절 수다나 떨어 보자.

     

     

     

    야심한 밖에 눈이 펄펄 내리고 있네? 올겨울 들어 두 번째 내리는 눈일 거야 아마..

     

    너와 함께 눈을 맞았을 때가 떠올라. 그땐 정말 추웠었지.

    요즘은 그닥 춥질 않아. 그래서 겨울이 싱거워. 난 추위에 강한데..

    많이 추우면 네 생각이 더 났을 테니 차라리 다행인가..

     

     

    크리스마스가 또 어김없이 다가오고 있어. 새삼스레 설렘 따윈 없어. 나이 든 탓이겠지..


    난 외톨이라 - 어린 시절부터 여태껏 - 성탄절다운(?) 시간을 보낸 기억이 별로 없어.
    실속 없이 들뜨는 주변의 분위기에 공연히 편승하여 속으로만 살짝 즐거웠던 적은 있어도..


    대부분을, 무덤덤하게 아니면 약간 가라앉은 기분으로 지내곤 하였지.

     

     

    너와 함께 했던 그때가 그나마, 가슴이 아리면서도 벅찬 성탄절이지 않았을까.

     

     

    작고 허름한 찻집에서 뜨거운 차를 홀짝이며 밤 깊어지는 줄 모르고 이야기꽃을 피우던 기억이 새롭다.


    어쭙잖은 시론을 설파하던 너와 견해가 일치하지 않아 난 뭐라도 된 양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었지.


    자리를 옮겨 비어홀에서 취기가 오를수록, 마음을 비우지 못한 내 우울이
    너의 철없던 이기심을 못살게 굴긴 했어도.. 지금 생각하면 그마저 그리운 추억.

     

     


    그래..
    너와 나 이제 마음을 비울 만큼 비웠으니, 서로의 가벼운 넋두리 정도는 편하게 들어줄 수 있겠지.


    더는 사랑의 중력에 짓눌리지 않게 된 우린, 무중력 상태의 우주인처럼 두둥실 떠서
    발아래 어지러이 흩어진 "구름 같은 사랑"들을 찬찬히 음미할 수 있겠지.


    그것들의 다양한 형상을 재미있게 구경하며 우린 비로소 "어깨동무"를 할 수 있겠지..

     

     


    그러자.


    둘만의 송년회를 오랜만에 가져보자

    또 한 해가 속절없이 가기 전에.

     

    다시 못 올 올해의 끄트머리에서..


    왠지 나의 "마지막 평온함"일 것 같은 이번 12월이 홀연히 사라지기 전에..

     

     

     

     

     

     

     

     

     

     

     

     

     

     

     

     


    올해도 얼마 남지 않았구나..

     

     

    세월 가는 걸 못 느낄 만큼 무관심하게 세상의 일 년을 살아 내고 있어.

    왜, 지나온 시간 동안 십자가인 양 지고 다녔을까? 이렇게 쉬이 비울 수 있는 많은 것들을..


    결국 그럴 만하니까 그리 살아지는 인생, 저 혼자 마냥 등 따습고 배불러도 괜히 죄스러울 필요 없었는데..

     

    남들에게 어떻게 보일까 신경 쓰던 "상준이"만 실속 없이 고생하였던 것 같아.


    파란만장했던 나의 시간들을 되돌아보면,
    다른 이들의 기대와 실망 때문에 지치고 힘들었던 지난 시절을 돌이켜 보면,
    그들이 만들어 준 "전상준의 빛 좋은 허상"밖엔 아무것도 없더라고.


    그들이 치켜세운 "전상준의 폼 나는 이미지"가 억지스러운 이해와 용서를 참 호기롭게도 뿌려댔었지.
    미워하기보단 차라리 용서하고 나 하나 바보 되는 게 착한 남자 콤플렉스의 깔끔한 마무리 같았으니까.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
    보이는 모습에 연연할수록 그것은 하나의 틀이 되었고 그 틀 속에서

    난 괴로우면서도 한편으론 보호를 받고 있었다는..


    야무진 착각이었지.


    틀 안의 나를 깨뜨려야 진실이 보일까? 아님, 내 밖의 틀을 깨트려야 진실이 보일까..
    스스로에게 던지는 이 물음들마저 공허하더군. 진실이 뭐길래..

     

     

    최소한 남들만큼 살지 못하는 게, 그들만큼 무언가를 쟁취하고자 노력하지 못하는 게 나로선 스트레스였어.
    삶으로부터 획득할 것이 대관절 무엇인지, 그것에 대한 의욕 없음이 이토록 죄스럽고 지탄받아 마땅한

    부도덕한 게으름인 건지, 절망적이리만치 혼란스러웠어.


    삶에서 "쟁취"가 무의미하다고 느끼는 것은, 가진 것에 대한 고마움을 깨닫지 못하는 무지의 소치일까.

     


    넉넉한 배려와 깊은 수긍 그리고 "신뢰가 충만한 인내"만이 우리를 그윽하게 하는 것 같아. 사람의 향기로..



    편견에 매몰되어 자신을 쪼아대며 지나친 엄격함을 선호하는 것이야말로
    스스로를 배려치 못하는 아둔한 "결핍"이요, 제대로 된 사랑의 경험을 불가능하게 하는 안타까운 "결격 사유"겠지.

     

     

    관계에 집착하면 머릿속이 복잡해져서 암울한 미래에 대해 덧없는 낙서를 하게 돼. 두통의 지름길..
    집요한 망상들, 상념 배설물들을 날마다 비워 내기에도 분주한(?) 하루하루.
    이렇듯 계속 비워가다 보면 언젠가는, 타인에게 내어줄 마음속 여유 공간도 제법 널찍하니 확보될까?

     

     

    나는 과연 어떠한 인생을 살고 싶었던 걸까. 포맷되는 뇌 속에서, 날 괴롭히던 질문들의 찌꺼기가 비명을 질러.
    어떤 것이 행복인가.. 어떤 게 진정 내가 하고 싶은 일인가..

     

     


    "잘한다. 잘한다. 너 참 잘 한다." 누나가 인정하니 일단 좋긴 하더군.


    평생 칭찬과는 거리가 멀 삶의 방식으로 깊이 들어와 버린 내게
    잠깐이지만 우쭐한 자부심을 가져다준, 나의 누나 나오미.
    모범생의 표창장처럼 영웅의 훈장처럼 뿌듯함의 약효가 만만찮게 강렬했던, 나의 "구르는 재주".
    살아 있음의 짜릿함을 시시각각 주입하던, 내게 남은 (마지막을 향하는) 초라한 관능.
    활기 찬 긴장감의 동선에서 신나게 노닐던, 내 능란한 "순정인 척".


    살벌한 약육강식, 비열한 생존경쟁의 틈바구니에서 밥벌이의 비애를 그럭저럭 견딜 수 있었던 것도
    (나의 위험한 즐거움이 단단히 중독된) "누나와의 사랑 놀이" 때문이었지.
    그것으로 인해, 투박하기만 하던 열정은 세련된 존재감을 (품격 있는 생동감을) 획득하게 되었고..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나와 달리
    누나는 나를 사랑하기로 마음먹은 계기가 조금 달랐던 것 같아.

     

    누난 누군가를, 무언가를 가르치고 싶었던 거야. 현실에의 의지를 넘어서는 근원적 열망을..


    어쩌면 이제껏 살아오면서 누나의 세포들이 본능적으로 지시하는 무엇인가를
    누난 내게도 전수하고 싶었는지 몰라.


    누나와 인연을 맺고 누나의 몸과 마음에 스며들면서 내 삶이 맞물려 겪어내야 했던, 크고 작은 고난들..
    이것들이 내 인생에 어떠한 식으로든 영향을 미쳤고, 덕분에 난 돈으로 사기 힘든 교훈을 얻었지.


    우린 서로에게 삶을 진단하는 실험 도구가 되었던 건 아닐까. 기꺼이 몸을 던져 각자의 "나"를 제공하는..


    본인을 막장 인생이라 비하하며 막살고자 하는 욕망을 합리화하던 내게
    누난 스스로를 희생해 가며 때로는 반면교사까지도 되어 준 것이야?

     

     


    나와 비슷한 길을 걷고 있는 누나와, 내 지저분한 여정을 화두로 삼고 있는 누나와
    "공유하는 인생"의 특별한 체험을 함께하고 싶었어.


    나를 대신하여 (나보다 먼저) "나라는 삶"의 오묘한 특이함을 체득하고 학습하려 하는

    누나의 특이한 호기심이 마음에 들었어.

     


    서로가 간과하는 "각자의 비밀" 속으로, 우린 우연을 가장하여 깊이 잠수하는 것일까.


    생의 막다른 골목에서 주저앉도록 예정되었을지 모를 우리의 섣부른 계획에

    지금의 우린 소심한 반항을 하고 있는 것일까. 희망을 버리지 말라고, 절망과 당당히 맞서라고
    서로를 바라보며 거리낌 없이 외치는 방식으로. 사랑 같지 않은 사랑의 오지랖과 만용으로..



    누나와 함께 있으면, 상대를 상처투성이 반면교사로 활용하는 냉철함은 그만 벗어던지고
    몸소 앞장서는 희망의 전령사가 기꺼이 되어 따스하게 보듬고 싶은 의지가 절로 솟아올라.

     

    깨달음의 자격이 머지않은 장래에 자연스럽게 획득될 것 같은, 강렬한 느낌이 들어.
    누나와 함께하는 순간이 너무도 소중한 이유야.

    그런데 무엇을 깨달을지는 그다지 궁금하지 않아. 아직은 깨달을 자격조차 없어서겠지.

    우리가 깨닫기 위해 만나도록 예정되었기를, 그러므로 우리의 만남이 헛되고 삿된 것만은 아니기를

    바랄 뿐이야 현재로선..

     

     


    지금, 누나가 좋아하는 "카치니의 아베마리아"를 듣고 있어.
    고뇌하는 나오미에게 딱 어울리는 음악 같아. 누나의 상처 입은 영혼이 끌어당긴 분위기다워.

    누나를 울리는 "영혼의 울림"이 느껴지는 선율이었어? 그래서인지 내 가슴도 아파와..

     


    밥은 잘 먹고 지내?
    몸은 좀 어떤지.. 불편한 덴 없는지..
    또 무슨 신상의 문제로 참을 수 없게 마음이 아픈 건 아닌지..
    그렇더라도 내가 당장 해줄 수 있는 게..


    결론 안 나는 공허한 걱정 말고는 아무것도 도와주지 못하지만, 혹..

    외로움이 뼈에 사무쳐 잠이 오지 않는 밤이라면, 나의 이 덧없는 끄적임도 위로가 되지 않을지.

    나의 사랑이 좀처럼 잠들지 못하는 새벽에, 누나의 사랑 역시

    같은 하늘 아래에서 같은 마음으로 불면의 밤을 지새우고 있다는 증거니까..

     

     

    메리 크리스마스 앤 해피 뉴 이어..

     

    멀리서도 잘 지낸다면 그걸로 다행이다. 그래 그렇게 살면 돼. 사는 게 뭐 별건가?
    앞으로도 지금같이 편하게 살아가길 바라. 행복은 마음먹기 나름이니까.

     


    세상 곳곳에서 발발하는 참혹한 불행들에 비하면 우리의 올망졸망한 아픔 따윈 아무것도 아니지 뭐..

     

    세월이 흘러 열정이 식고, 이상을 포기하고, 현실에 안주하고,
    적당히 비열해지고, 인정이 메마르고, 가식적 속물이 되고..


    팍팍한 삶에 찌들어 내 배 불리기 급급한 것도,
    밋밋하게 고생하며 살다가 하늘이 언제라도 부르면 미련 있든 없든 눈을 감고 마는 것도
    우리네 민초의 지극히 자연스러운 생리인 것을..


    크고 작은 업보들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 고통조차 아우를 준비가 본능적으로 되어 있는,
    질박한 겸손으로 마음을 비울 자세가 습관화되어 있는 우리네 평범한 주변에서
    누나와 난 멀리 떨어져 있지도 않았어.
    우리도 그들 가운데 하나고 그들처럼 살다 간다는 말이지.


    누나와 나 그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음을 당연하게 (다행스럽게) 여기고
    아무런 후회 없이 "민초의 생"을 밟아 각자의 종착역까지 담담하게 늙어감을
    한 편의 "홍상수 영화" 보듯 스스로 바라볼 수 있다면, 그렇게 하는 것만으로 행복하지 않을까.

     


    더 잘살고 더 못 살고,
    더 행복하고 더 불운하고..


    지구를 뒤덮은 지긋지긋한 "상대성 놀음"에서 아주 조금만 벗어날 수 있다면,
    우리의 운명을 유린하러 떼강도처럼 몰려오는 변수들도, 두려움 없이 맞이하는 편한 동반자에 불과하리..

     


    뒷짐 지고서 추하다 손가락질하는, 인간에 대해 한참을 모르면서 비꼬는
    헛똑똑이들의 속 빈 조소를 달게 받으며, 묵묵히 치열하게 "자업자득의 중력"을 지탱하는 어수룩한 늙음들.

    우리도 어느덧 그들 축에 들어, 왕년의 우리였던 반듯한 인사이더들의 눈치를 보게 되었구나.
    우리는 헛똑똑이었으나 반듯한 저들은 그렇지 않기를, 바라는 수밖에..


    그들의 존재만으로도 세상이 현명해지는, 소수의 영광스러운 늙음들. 경험들..

    그 대열에 합류하지 못하여도 우린 부끄러워하지 말자. 나잇값 못하고 청춘의 사랑을 흉내 내더라도

    우린 바보라서 그것이 황홀하고 그것에 가슴 벅찰 뿐.

    누나와 난 이미 그리 정해진 거야. 더는 잘난 척 말고 거부하지도 말고 받아들이자 못난이들의 삶을..

     


    생전에 꽃피지 못할 "저주받은 감성"은 소수의 천재들에게나 해당되는 것.
    "고상한 불행"을 부러워도 아쉬워도 말고, 안락한 여생을 소망하는 (땀 흘리는) 필부가 되자.


    자연이 몰아가는 대로 우리의 타고난 범상함 속에 뼛속까지 젖어 들어 보자.


    우리에게 허용된 "천진한 치열함", 굽이치며 흐르는 그 도도한 섭리 속으로 기쁘게 투신하자.

     

     


    깊은 밤, 진심으로 누나의 행복을 빌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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