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 소통이라 하기엔 2위선자들의 사랑 (상준 외전) 2024. 10. 9. 21:21
그런 거 아니야. 날 잘 안다면서 왜 그렇게 느껴..?
내가 누나에게 보내는 편지란 것이 대충 이런 스타일임을, 잘 알면서..누나의 "감정 과잉"이 실은 참 아름다운 것이었음을,
한때 누나를 공박하는 구실로 삼았던 그것이 실로 누나만의 고귀한 (희소가치 충분한) 자산이었음을
뒤늦게 깨닫고, 떠오른 영감을 구체화하는 다소 치기 어린 문장에다가"섣불렀던 판단에 대한 반성"을 새겨 넣은 것뿐인데..
자숙하는 자세로 보내는 참회의 글마저 착한 누나는 불편해할까 봐,
직설법을 피하고 나름 우회하여 구불구불 써 내려간 것인데..
어쨌든, 의미 전달이 원활하지 못하였음을 인정할게.
누나의 고개가 갸우뚱했다면 내 의도야 어떻든 미숙한 글임에 틀림이 없겠지.설령 누나의 탁월한 독해력이 내 모자란 글에서 일말의 진정성(?)을 찾아냈다 해도, 그 또한 새삼스러웠겠지.
"그런데 그게 뭐..? 이제 와 어쩌라고..??" 딱히 이러한 심정일 테지..
뭘 어쩌자는 건 아니고..
투정이나 불평은 더더욱 아니고...
언제부턴가 내 글에서 다스한 정감은 자취를 감추고 차가운 비꼼만이 일관되게 발산되었나 보네.
그래서 누나 기분이 개운치 않았다면 - 사실 여부를 떠나 - 이 역시 내가 부족한 탓이리라.
이번에도 나의 꼬일 대로 꼬인 지겨운 문체가 사달을 낸 걸 테지.누나의 영민한 감정 과잉을 저렇듯 "재수 없게" 찬양하였으니..
(나란 놈 심사가 원래 꼬여 변변한 글이 드문가 보다. 염치없지만, 부디 아량으로 너그럽게 이해해 줘.)
정성껏(?) 지은 시 한 편 선물 받았다고, 가볍게 생각해 줬으면 좋겠어.
직접 누나를 찬미하면 나도 닭살 돋고 누나도 쑥스러울까 봐 내 딴엔 역설 비스름하게 에둘러 표현한 건데..
실력도 형편없는 아마추어 주제에 이놈의 못말리는 "문학 강박증"은 떠날 기미를 안 보이네.. 거 참..
쉽고 전달 가능하게 의미를 담아야 하는 "편지의 실용적 속성"을 자꾸만 망각하나 봐.
겉멋 든 "문학 소년"인 양 괜스레 이러고 있다..
요렇듯 얕은 수준의 현학으로 정돈 안 된 수사를 남발하였으니 진솔한 누나로서는 갑갑하고 골치깨나 아팠을 거야.
이해될 듯 말 듯 어설픈 비유로 자칫 오해의 소지마저 지니고 있는 내 글이 영 탐탁지 않았을 거야.부끄럽네..
피붙이가 아닌데도 나를 따뜻이 대해 주는 유일한 사람.. 내 어찌 그 고마움을 모른 척할 수 있으리..
누나에 대해선 항상 감사한 마음 기본으로 가지고 있어.
훗날 여유가 생기면 떳떳하게 보답하리라 작정하는 것도 나로선 당연지사.
그러나 당장은 물질적으로 넉넉히 베풀 수 없는 형편이니 일단 이렇게라도 고마움을 표시한다는 게,
역효과를 가져왔나 보다.
한 땀 한 땀 선물용 스웨터를 뜨듯이, 상념을 정제하여 나름대로 열심히 단어를 고르고 문장을 짰건만..
천재적인 작가도 아닌 것이 - 그래서 고통스러운 - 글쓰기를 허접한 낙으로 삼으면서
그나마 누나 덕분에 그 왜소한 낙을 조금씩 키우고 있었음은 뻔뻔하게 망각하고,
대단한 보시(布施)라도 하듯 거들먹거리며 성의 없이 자판을 두들겼나 보다.
금쪽같은 시간과 돈을 할애하여 행동으로 보여주던 "누나의 갚음"과는 비교도 안 될 안이한 방식이,
감히 감사를 표하겠노라 우쭐하며 나섰나 보다. 결과적으로 누날 속상하게 할 거면서..
미안해..
누나에게는 편하고 기꺼운 "나와의 만남"이었겠으나, 내 초라한 자격지심은 좀 불편했었나 봐. 그래서.."앞으로 내 환경이 개선되지 않을 시" 가급적 누나를 만나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렸던 거야. 누나 부담될까 봐..
은연중에 베풂을 강요하는 뻔뻔한 모양새가 될까 봐 (본의 아니게 "갚음의 의무감"을 부추길까 봐)
그리하여, 나에 대한 좋았던 이미지가 실추되고 나쁜 편견이 심어질까 봐..누나한테 떳떳해질 때까지는 만남을 대신하여 편지로나마 보고픔을 이겨 보겠다고
혼자서 멋진 척 똥폼을 잡았으니.. 정작 상대방의 심중이 어떠할지는, 헤아릴 생각조차 없이..
막연한 그 시점까지 안 만날 자신도 없으면서 지키지도 못할 일방적 다짐 속에 스스로를 가두고
"혹여 답답한 누나가 먼저 다가와 풀어줄까" 비겁하게 눈치나 살피는 (다정으로 청승맞게 위장한)
이 못난 위선을 용서해 줘, 누나..
연락 가능성을 편지로 국한한 누나의 혜안을 존중한다.
과거와 현재를 혼동하는 내 "추억 울렁증"을 가라앉히기 위하여 만남의 짬을 최대한 길게 갖는
누나의 "속 깊음"에 감복해.
(그리하다가 자연스레 만남이 중단되어도 나쁠 것 없겠지..)
만남의 횟수에 반비례하여 나의 메일 내용은 관념화하는 것 같다.
잔잔하고자 하는 누나의 의지가 내 얍삽한 욕망을 잘게 쪼개는 것 같아. (감정의 희석이라 할까.)
그럼에도, 그렇게 분쇄된 "욕망의 파편"들은 하나하나 그리움의 탈을 쓴 채
누나를 향한 내 글들 속에 분산 배치되고 있어.초월하고자 하는 나오미의 집념이, 전상준의 (터프한 척 하는) 가짜 열정을 거세하는 중이야?
누나의 답장들은 내 불순한 열정이 미지근해지는 것을 환영하면서도
그것에 잔존하는 "속 보이는 애틋함" 그 음탕한 미련만큼은 철두철미하게 경계하더군.
나의 낯부끄러운 "보여주기식 상처"는 그런 식으로 철저히 차단되고 말더군.
"이성(理性)과 감각이라는 양극단에서 꼬물거리는 진심들"을 적절히 교배하여"타협하는 진심"을 잉태하기가, 이리 힘들 줄은 몰랐다. 이 작업을 일찍이 끝내고 느긋해진 누나와는 달리,
이제야 뒤늦은 행보로 상념의 지저분한 곁가지들을 치느라 나 혼자 아직 요렇게 부산스러운가 보다.
그러는 바람에, 애꿎은 누나까지 덩달아 심란해지려고 하는구나. 미안해..
재회 초기에는 그랬었지.
"편안한 가운데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새로운 관계 정립에 주력하면서도, 내심 누나는"성숙한 열정"을 바탕으로 한 "진솔한 접근"을 기대했었지.
그런 의미에서, 절박한 외로움의 속내를 나에게 사심 없이 털어놓기도 했었지.그러나, 나의 못난 "억측과 오해"에 된통 당한 후부터 누난 일말의 기대를 미련 없이 접고
비교적 살갑던 "애잔함의 정한"마저 서둘러 걷어 버렸어. "그럼 그렇지, 내 복에 무슨.." 이러면서..
홀로 비탄에 젖어 자조 섞인 한숨을 쉬어가면서..
누나의 메일에서 다감한 문구들이 대폭 줄어들게 된 것도 이때쯤이지 아마.그리고 이제는..
내 글본새가 마음에 안 들어 이의를 제기할 필요가 있을 때에만 지금처럼 날이 선 답장이 날아올 뿐..
그래도 그게 어디야.
나의 탁한 글발이 어쭙잖은 서슬을 내려놓고 후덕한 단순함으로 거듭나지 않는 이상,
굵고 짧은 "냉랭한 대답"이나마 감지덕지지. 그렇게라도 반응을 주는 누나의 친절함에 감읍할 따름이지.
나의 경솔한 망발에도 희망과 기대를 완전히 닫지 않고 이전처럼 대해 주려 노력하는 자세가 고마워.
한편으로는,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 실망감을 무릅쓰고 - 갚음을 이행하려 애쓰는" 누나가 애처롭기도 해.
나도 사람인데 어찌, 박정한 느낌으로부터 오는 상심에서 백 퍼센트 자유로울 수 있겠어..?하지만 정녕 그렇게만 생각한다면 나는 인간도 아니겠지.
내 모자람을 어서 보완하여 앞으로는 되도록 단순하고 명징한 메시지를 띄워 볼게. 치장 안 한 맨얼굴 같은..
담백해서 믿음이 가는 그런..
엉성한 상징과 서툰 은유가 여태껏 거북함을 마구 휘둘러 누나의 미간을 찌푸리게 하였다면
앞으로는, 자연스럽고 소박한 구어체가 누나의 귀여운 미간에 편안한 미소를 심어 줄거야. 믿어 줘..
항상 고맙고,항상 미안하고,
언제나 변함없이 사랑해...
부정적인 생각이 부정적인 삶을 만든다지?
난 그저, 그런 부정적인 생각이 날 침범하는 게 싫을 뿐이야.
상준이 너와의 관계는.. 늘 현실과 조금 동떨어진 느낌이 든다고나 할까?현실을 배척할 거면 확실하게 배척하고 너만의 멋들어진 몽상을 일관되게 구축하든가.
이상을 꿈꾼다면서, 환상 속에 게으름뱅이처럼 누워 있으면서,
현실의 각박함은 또 왜 그리 의식하고 불평하는지.. 현실을 바꿀 투사가 될 자신도 없잖아?혹시 "내가 각박해진 것" 같아서 그게 불만인 건 아니고?
우리가 쿵짝이 잘 맞던 일 년 남짓.산다는 것의 조화와 균형은 팽개치고 서로를 열렬히 그리고 열심히 탐닉하던 그때.
순수한 호르몬의 그 짧았던 전성시대는, 아쉽지만 다시 올 것 같지 않아.
(왜 아쉬우냐면 내겐 그것 또한 사랑이기에..
몸과 마음이 진하게 동하여 체험했으면 호르몬 때문이든 뭐든 그게 사랑이라 믿고 싶은 게, 나란 여자.
다 바친 후에는 그건 반드시 충만한 사랑이어야 해. 사랑이니까 비로소 쾌락이고 쾌감일 수 있는 것.
지극히 단순한 그래서 완전한 사랑을 한 여자에게
나중에라도 "우리의 사랑"을 의심하고 재단하고 - 분석한 끝에 - 과소평가하려는 남자의 시도는 용납이 안 돼.
사랑을 한 여자 앞에서 그 사랑을 부정하는 건 금기야.
사랑을 한 다음 사랑을 버릴지언정 "사랑도 뭣도 아닌 것"에 처음부터 본인의 모든 것을 할애하진 않아
적어도 나란 여자는..)
그래, 너와의 그런 시절이 솔직히 다시 안 왔으면 좋겠어. 난 널 볼 수 있어 기뻤는데 넌 그때마다 슬퍼 보였으니까.
나를 마음껏 사랑할 용기도 없으면서 무엇엔가 홀린 듯 내 손짓에 수동적으로 이끌리던 너, 이제 매력 없으니까.
"본능이 선사하는 원초적인 환희" 뒤에서 두려움으로 떨기나 하는 주제에 곧 죽어도 잘난 척하는
(네 표현에 의하면) 저주받은 고독이 나를 잡아당겼으니까.
틈만 나면 그렇게 "사무치는 외로움과 우울감"을 전염시켜 "널 사랑하고자 하는 의욕"을 떨어뜨리는
비겁한 고의성에 이제는 염증을 느낄 만큼 나의 콩깍지 사랑(?)이 옅어졌으니까.
내가 또 좀 예민하게 굴었지? 안 봐도, 무척 서운해할 네 모습이 절로 그려지는구나. 후후.너도 알다시피 요즈음 내 컨디션이 최악이잖니. 남자인 네가 - 그러려니 하고 - 이러는 나를 이해해 다오.
염치없는 부탁인가? 이럴 때 보면 우리는 서로가 많이 편하긴 한가 봐.
남들 같으면 속으로 욕하고 말 것도 서로의 면전(?)에 이리 직접 뱉어 내고 있으니 말이다.
(비록 글 속에서의 대립이긴 하나, 결코 간접적이라고만은 할 수 없는..
우리 입장에선 넉넉하게 직설적이지..)
너나 나나, "꿀 떨어지는 러브레터"를 주고받던 (죽고 못 살던) 그때에 비하면
꽤나 날카로운 글들을 죽기 살기로 보내는 요즘인 것도 사실이지 뭐.
한껏 젠틀한 듯하나 그 속에 뾰족한 발톱을 숨기고 할퀼 기회만 노리는 문장들.
(너보다 내가 더 노골적인 비난을 서슴지 않는 셈인가? 이제 와서 앙갚음이라도 하듯?
앙갚음도 "갚음"에 포함된다 봐야겠지? 흐흐..)
이 또한 일종의 욕구불만이라고 해 두자. 벌거벗는 사랑이 깨끗이 식어 버리기엔
우리 정도의 "늙음" 가지고는 충분치 않은 모양이야.
허니문 같던 그때 우린 참, 대화가 통하고 감성도 통하는 사이였는데.. 그치?
불안에 시달리던 "상처뿐인 허니문"이었긴 하지만..
그런데 일 년여의 짜릿함이었으니 허니-어스(Earth)라 해야 함? 아무튼..
이왕 이렇게 된 거, 정염의 찌꺼기 남아 있다면 각자 훌훌 털어서 비워 내고마치 무릉도원의 두 도인처럼, 옛날 가난했던 청렴한 선비들처럼
냇가에 발 담그고, 값싼 탁배기 한 사발의 취기를 핑계 삼아 유유자적
구성지게 시조나 읊조리듯, 우리만의 안빈낙도를 조촐하게 즐기며흐르는 세월과 함께 우리도 같이 흘러가자꾸나..
세속적인 대화의 퍽퍽함에 현실의 기름을 바르는 스킬은, 이해타산을 행동으로 구체화하는 포스는
사회생활의 따끈따끈한 현역인 내가 그대보다 한 수 위 아니든가? 이 사실만 믿고 무식한 아줌마가 감히 충고하건대경험을 앞지르는 (경험의 백업을 받지 않는) 이론은 없어. 그러니 공허하고 무기력한 이론으로 경험적 현실에 딴지 걸지 마.
현재의 너한텐 - 미안하지만 - 치열하게 현실을 논할 자격이 없다.그러한 작업은 - 네가 신나게 까대던 - "기성(旣成)의 찬란한 경험"들한테나 맡겨. 믿음이 안 가도 너보단 나을 테니까.
그리고 우리는 그냥 좋은 이야기, 좋은 생각, 좋은 기억들만 찾아서 데리고 놀자. 행복하잖아?
좋고 좋고 또 좋은 것들에 푹 절어서 살아도 모자라는 게 우리네 삶 아니겠니?
좋은 마음가짐, 긍정적 사고로써 여유롭게 "좋음"을 음미해 보자. 그러고 나서
인생에서의 좋은 관계란 무릇 어떠해야 하는지 시간 나면 머리를 맞대어 숙고해 보자고.
이것이, 우리의 어색해진 관계가 모색해야 할 "새로운 사랑의 방식"인지도..
이렇다면 해결의 열쇠는 결국 상준이 너한테 있다고 봐야겠지?
전적으로 네게 달려 있다고 말한다면 무책임한 떠넘기기가 될까? 그렇다 해도 지금의 나로선 어쩔 수 없어.요사이 너무 지쳐서.. 너랑 뜬구름 잡는 말장난, 글 장난을 이어 갈 여력조차 다 고갈된 느낌이라서..
내가 그대에게 무엇을 바라는지, 눈치가 빤한 넌 대략 짐작하고도 남겠기에,개떡같이 풀어도 찰떡같이 알아들을 너이기에 이렇듯 귀차니즘의 전형적인 두서없음을 안심하고 보낸다.
독한 처방약이 (내가 원하는) 적당한 멍청함 속으로 나를 몰아넣은 탓일까. 오히려 좋기는 한데 덕분에
내용이 자꾸 맥락을 상실하고 두루뭉술해지려 하네?
(내가 더는 너의 낭만과 감상 속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이제 좀 실감하겠어?)
상황이 이러하니, 네 거친 무의식이 날 이용하려는 본색을 집요하게 드러내려 하면
(야속할 정도로) 언제나 점잖고 상식적이던 네가 이번에도 잘 다독이고 무마해 보렴.
알겠지? 왜 모든 게 너한테 달려 있고 네가 바뀌어야 하는지를..
'위선자들의 사랑 (상준 외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8. 간절히 원했을 땐 숨었으면서.. 2 (5) 2024.12.20 7. 간절히 원할 땐 숨었으면서.. 1 (9) 2024.11.08 5. 소통이라 하기엔 1 (0) 2024.08.24 4. 투정인 듯 다정인 듯 (0) 2024.07.17 3. 애절함을 감추며.. (1) 2024.06.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