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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 간절히 원했을 땐 숨었으면서.. 2
    위선자들의 사랑 (상준 외전) 2024. 12. 20. 14:28

     

     

     

     

     

     

     

     

     

     

     

     

     

     

     

     


    '03. 7.

     

     

     

     

     

    햇볕이 많이 뜨겁지?

     

    지금쯤 넌 공사장 인부들 틈에 어색한 모습으로 끼어 앉아 피울 줄 모르는 담배를 얻어 피우며,

    (이글거리는 태양에 주눅 들어 소심하게 부는) 귀한 바람을 겨우 붙잡고 잘생긴 이마의 구슬땀을 식히는 중일까..

     

     

     

    삶의 부조리한 면과 뜻대로 진행되지 않는 인생에 정면으로 맞서기보단

    외면하고 도피함으로써 차라리, 더 고단한 단순함을 선택한 것이니?

    그렇다면 너의 괴팍한 결벽과 - 남자의 자존심과 결탁한 - 청렴을 존경하면서도 원망한다.

     

     

     

    아름다운 글이란 항상 고통 속에서 잉태되는 거라며,

    고통이 남다른 시각을 키우는 거라며 넌 내게 이야기하곤 했어.

     

    그래서 나와 함께 해온 아픔의 기억들을 지우고, 함께 했던 쓰라린 아름다움을 지우고,

    우리의 피가 밴 체취를 (눈물 나도록 아린 "우리의 망령된 평화"를) 미련 없이 지우고,

    부담 없이 차려진 고통과 정신을 섞어 "진정한 깨달음이 담긴 시와 소설"의 씨앗을 잉태하였나요?

     

     

    탐미적인 시각으로만 바라보기에는 세상도 자기 자신도 너무 더럽다 하던 너..

     

    아무래도 사랑을 사랑답게 하지 못할 썩어가는 가슴이라며, 이는 어느 순간 운명에 악이 스며든 때문이라고

    한탄하던 너..

     

    너를 잊어야 하는 고통을 나에게 선사하면서 넌 나를 "씩씩하게 단순한 인간"으로 만들어 놓는구나. 조금씩..

     

     

     

     

    속절없이 무기력하게 아파만 하는 건 내게 좀 억울한 일이야. 슬퍼하는 데엔 이제 진력이 났어.

    그러기에, 영원히 잊겠다는 다짐이 절로 나와 한숨처럼..

     

    그런데, 여전히 이런 글들을 끄적이고 있네?

    아직 내 그리움은 그만둘 생각이 없나 봐...


     

     

     

     

     

     

     

     

     

     

     

     

     

     

     

     

     

     

    '04. 5.

     

     

     

     


    한없이 초라한 사랑을 담아 감히 불러 봅니다. 날 잊지 못해 가여운 그대, 나의 여인이여..

     

    그대에게서 도망친 주제에 "그대의 그리움이 날 살게 한다고" 믿는

    이 모지리의 잔인한 애착을 부디 용서하소서. 사랑할수록 두려워지고 두려움은 사랑을 찾는

    지긋지긋한 이중성에서 해방케 하소서.

    (달아나도 달아난 것이 아닌) 이 못난 "어찌할 수 없음"을 불쌍히 여기소서..

     

     

     

     

    나를 그리워하는 바보, 별종 같은 여인 나오미여..

    길 잃은 사악함의 눈물겨운 호소를 (착하고 싶은 자의 나약한 변명을) 들어 봐 주세요.

     

     

     

    난, 나를 위조하여 자학을 즐기는 가짜일 뿐입니다.

     

    난, 나를 비하하고 과소 포장하기 위해 안달하는 위악자입니다.

     

    그래야 숨통이 트여요. 삶의 전략이라기보단 이건 생래적인 것입니다.
    이것은 숨 막히는 "생존 각축장"에서 기꺼이 튕겨져 나오기 위한 음험한 몸부림, 만성 자살급 자포자기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붐비는 목축 우리의 바깥 사이드를 어슬렁 거니는 "말기 아웃사이더"입니다.


    그렇게라도 가늘고 길게 살고 싶어 합니다.

    그러려면 철저히 비열해져야 합니다. 위선과 위악을 양 끝으로 하는 진자 운동을 멈춰서는 안 됩니다.

    (이런데도 내가 좋아요? 정말요??)

     

     

    목적? 의도? 이런 것들 없이 (희망 없이) 살고자 작정한 미치광이도 있답니다.


    가급적 도움을 주지도 받지도 않는 준고립 상태를 바라되 - 천성이 게으른 탓에 - 산중 자립은 감히 시도도 못하고

    빛바랜 도시의 혼잡한 타성 속으로 타협하듯 도피하는, 약해 빠진 모순덩어리가 바로 나예요.

     

     

    그렇게 겁이 많은 고독은 현재, 애틋함이 머리 위로 펼쳐 있고 비굴함이 발아래 깔려 있어 포근한

    "인간적인 천국(!)"의 품에서, 불완전한 인간들의 냄새를 위안으로 삼고 있습니다. 덕분에

    "나만의 절망"을 떼어내고 홀쭉해진 외로움이 되어, 포만한 궁핍의 자유를 여유롭게 산책하고 있습니다.

     

    보편화된 개념으로서의 객관적 궁핍이 주는, 솔직함과 단순함의 낭만. 그리고

    현실의 살만한 체념과 "속세의 견딜만한 갈망" 속에서 일차원적 본능을 다스리고 관찰하는 고행.

    나는 이러한 유희(?)들에 즐거이 중독되어 "품위를 표방하는 소비"로부터 스스로를 철저히 소외하는

    자본주의의 방관자요 경제적 금욕주의자입니다.

    그렇다고 돈을 달관하지도 달관하고 싶지도 않은, 돈이 두려워 돈에 벌벌 떠는 세속 지향자입니다.

     

     

    상부상조에 알러지 반응을 보이는 예정된 스크루지가

    자업자득의 홀로됨 그 지루한 "소멸의 진행형" 속으로 줄달음칩니다. (이런 막장이 또 있을까요..)

     

     

    인간의 기본과 상식을 전제로 하는 "빌어먹을 구원"에 질리도록 딴지를 걸어야 직성이 풀리는 병약한 악동,
    (아직은 배가 불러) "멀쩡한 추상성으로 표구된 인생"을 습관처럼 희롱하는 변태 히키코모리가 나입니다.

     


    피골이 상접하고 눈이 퀭한 사내가, 이 정도의 곤궁으로는 성에 차지 않은 듯 "약동하는 자멸"을 꿈꿉니다.

     

    자잘한 좌절들의 끝없는 도열, 권태로운 공포의 만연으로도 소소한 영생은 은근슬쩍 열릴 수 있음을

    (하늘거리는 지옥과 겹쳐진) 내 유치한 자의식이 여유작작한 일상으로써 느긋하게 입증하고 싶어 합니다.


    녹슨 세상이 철 지난 낡은 변증법을 가지고 "목마른 나"들을 얼마나 많이 구원하였기에
    거리들은 이토록 구석구석, "지질한 희망"들로 화려하게 도금된 걸까요..

     

     

     

     

    나를 처연하게 원망하는 "나의 구원자"여, 탕자가 돌아오면 조건 없이 받아 주고 싶나요?
    돌아온 탕자가 개과천선 없이, 탕자는 탕자일 뿐이라며 다시 스쳐 갈 텐데도..?


    그래준다면 나야 고맙지요..

     

    그래요, 파티마의 성모처럼 무지갯빛 환상으로 현현해 주세요. 나의 세월이 다할 때까지..

     

     

     

    내 추억의 동선에서, 당신의 시공은 - "당신"을 걷어내고 - 필름이 되어 미장센으로 남아 있습니다.

    속죄와 참회의 칼날이 추억의 장면마다 절절하게 박혀 있는 미장센 말입니다.

     

     

    하나 예를 들어 볼까요. 자꾸만 당신을 찌르던 현실이 급기야 당신을 착란으로 몰아갔을 때

    나는 당신이 걱정되고 너무 보고 싶어, 발각될 위험을 무릅쓰고 무모하게 병동으로 침투하였었지요.

    환자복을 입은 모습조차 이뻐 보여 정신을 못 차리는 나를 데리고 황급히 옥상으로 올라간 당신은,

    "경거망동을 꾸짖으려는구나 단정하고 의기소침해진" 내게 오히려 기특하다는 듯 입맞춤이란 상을 하사하셨죠.

     

    어느 봄날의 어스름 깔린 병원 옥상, 인적 드문 으슥한 한켠에서 우린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대담하게 허물어졌어요.

    그렇게 우리 둘 모두의 감정 과잉과 조울증은, 모처럼 타이밍 맞추어

    천진한 "서로의 이기심"을 짜릿하게 애무했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때면 어김없이,

    애절한 사랑으로 둔갑한 내 "간특한 욕정"을 물리치기 위해 양심의 가책이 십자군처럼 밀려드는 것이었습니다.

     

    당신의 아쉬워하는 후희엔, 잊을만하면 - "머저리같이 우유부단한 나"를 어루만지는 - 푸념과 투정이 첨가되었었지요.

    그것은 내게 매운 양념과도 같았습니다.

    (나 스스로와 당신을 함께 기만하는) 입에 발린 막연한 기약으로 당신을 겨우 달래어 병실 복귀를 유도하였고, 그 후

    욕정이 물러간 자리를 꾸역꾸역 차지한 불안이 내 뒷덜미를 잡아 병원 밖으로 허둥지둥 끌어내려 했으나,

    이대로의 헤어짐이 못내 아쉬웠는지 아니면 들통나기 쉬운 조마조마함이 다시금 흥분케 만들었는지 당신은

    내 팔을 붙들어 병실 앞 긴 의자에 앉히고 자판기 커피까지 갖다 주며 대화를 이어나가려 애썼습니다.

     

    복용하는 약물 때문이었을까요. 나와는 대조적으로 심신이 많이 이완돼 보였던 당신은

    설령 발각되어도 아무렇지 않을 - 자신감이라기보단 - 자포자기를 즐기는 것 같았습니다.

    아니 그것은 나만의 착각이었고, (이 또한 처방된 약물 때문인진 몰라도) 당신은 나보다 훨씬 차분하고 오히려 냉정하게

    발각에 대처하는 여러 준비 태세들을 갖추고 있는 듯하였습니다. 이는 단순히 약물로써 설명되기 힘든, 경험의 측면이

    함께 작용한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간 나를 포함 서너 명의 이성들과 만나 오면서 자연스레 터득한, 즉

    다른 남자들과도 이와 비슷한 위기들을 같이 맞닥뜨리면서 쌓여간 일종의 학습 효과가

    당신에게 그리 깜찍한 여유를 선사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이 내게 실토한 대로, 그때는 "본성과 삶 간의 부조화" 및 인생의 불확실성이 주는

    고통스러운 고립감을 해소하려고 당신이 몸부림치던 시기였어요.

    계산적인 사회 그리고 각박한 현실을 벗어나 (순화된 본능의 세련미가 추구하는) 비현실적 즉흥성에 몰입하던 시기,

    이해타산에 집착하는 두려움과 위선적이라 괴로웠던 자괴감을 과감히 거세한 채

    성적 몽환에 도취된 파트너와 하나되어 "정서적 교감이 베푸는 깨지 않는 꿈"에 오래도록 심취하던 시기,

    따라서 낭만적인 파국을 불사하며 당돌하게 그것을 꿈꾸기까지 했던 시기 말입니다.

    그토록 왕성하게 소용돌이치던 요염한 상념의 시절이었기에 당신은 여봐란듯이 "비공식 남자"를 끌어들였겠지요

    "당신의 현실이 피를 토하는 지극히 사사로운 영역"으로까지 내밀하게..

     

    그렇게 당신은, 당신의 포근한 비밀 속에 안주하고 싶었던 나를 기어이 끄집어내어

    당신이 비루한 애물이라 비하하던 (그러나 다 가진 것처럼 느껴져 나로선 부럽기만 한) "당신의 단란한 현실" 앞에

    세워도 좋다는 마인드였던 것 같아요. 비루한 건 오히려 이쪽인데 무엇이 그리 자랑스러워 당신은

    당신의 공식 반려가 만드는 동선 속으로 (위험한 우연 속으로) 굳이 나를 밀어 넣었던 걸까요.

     

    온갖 지탄을 몸으로 받아 내야 하는 법정에 세워질 때의 모멸감과 낭패감이 가상의 세계로부터 튀어나와

    무자비하게 나를 옭아맨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정신 못 차리는 놈은, 단죄될 가능성의 음침한 미래를 미리 맛보아 마땅하다는 듯이..

     

    간신히 다스리고 있던 불안이 다스릴 수 없는 패닉으로 발전(?)하고 있음을 나는 무기력하게 느껴야 했습니다.

    "이별을 재촉하며 짧아지는 대화"가 서글펐는지 당신의 말은 계속 늘어져만 갔고,

    사랑이라 믿고 싶은 대상을 지켜줘야 한다는 당신의 본의와 다르게 당신의 무의식은

    겁 많고 무책임해 보이는 남자로 하여금 모종의 테스트를 통과하도록 종용하는 것 같았습니다.

    "당신이 기댈 또 하나의 현실"이 될 자격 있는지, 혹은

    "하나의 현실을 버리고 여자의 남은 인생을 송두리째 맡길만한" 다른 하나로서 제대로 구실이나 할지 알아보기 위한..

     

    결국, 당신을 공식적으로 사랑하는 (그래서 더욱 진심으로 당신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알뜰한 현실의 시공"이,

    마취가 덜 깬 두 꿈결 앞에 당도하고야 말았습니다.

    결코 융합되어서는 안 될, 당당한 현실과 추레한 비현실의 충돌이랄까요..

     

    당신의 귀여운 딸아이가 아빠 품에서 내려와 당신에게 아장아장 다가올 때 나는 보았습니다.

    절대 꾸며져 나올 수 없는, 세상 대부분의 젊은 엄마들이 짓는 그 표정. 아무리 삶이 버겁고 세상이 고뇌를 유발해도

    그녀들을 견디게 하는 최후의 보루. 지옥 속에서도 웃을 수 있고 살 수 있는 애틋한 이유.

     

    집 밖을 헤매던 슬픈 눈동자가 밖에서 갑자기 자기 아이를 담으면

    눈물 맺힌 눈동자로 짓는 함박웃음은 너무나 자연스럽지요. 바로 그 애잔한 환희가

    찰나의 순간 당신의 희미한 눈에도 어리었어요. 자신의 아이를 닮은 천진한 행복감이,

    (단념한 채로 불벼락을 기다리는) "기형의 공간"을 그렁그렁 예쁘게 물들이면서 모녀의 상봉을 안정적으로 장식하더군요.

    나 같은 아웃사이더는 도저히 섞일 수 없는 너무 상식적인 정상성이었고 나한텐 그래서 기이한 분위기였습니다.

    아이아빠가 자신의 목숨처럼 지키고자 하는 일상임에 틀림없었습니다.

     

    몰염치한 절망감이 스멀스멀 등을 타고 기어올라 "얼어 버린 뇌"를 후벼 파며

    (감히 연적이 되는 건 꿈조차 꾸지 않는 소심함으로 어찌저찌 예까지 도달하고 만) 어리석은 내 "생각 없음"을

    연속해서 질타하고 있었으나 그것이, 얼음산같이 서늘한 "직면의 공포"로부터 당장 나를 탈출시킬 순 없었습니다.

     

    학습 효과라고는 하지만 될 대로 되라는 식의 허술하고 뻔한 둘러댐인데도 당신의 우직한 사내는

    한 번 속지 두 번 속냐가 아닌 두 번 속았는데 세 번은 못 속으랴라는 (깊은 사랑과 이해를 기반으로 한)

    달관에 가까운 심경인 듯하였습니다.

     

    먼 친척 동생이라 했던가요 아님 사촌 동생의 친구라 했었나요..

    기억에서 절실하게 삭제하고 싶은 장면이라 이제는 가물가물합니다만 여하튼

    "당신의 엉성하게 발휘된 기지 덕에 갑작스레 신분 세탁(?)을 한 나"를 힐끗 보고도 그는

    마치 낯선 이와의 대면이 쑥스럽고 어색한 사람처럼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잠깐 맞춘 시선을 황급히 돌려

    엄마에게서 아이를 받아 안고 입원실로 들어가 버리더군요.

     

    당시에 나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눈치가 부족하고 좀 무딘 사람이로구나" 합리화하기에 급급하였으나,

    이제 와 생각하니 그는 아마 "그에겐 언제나 사랑스러웠던 당신"의 소소한(?) 일탈들을 - 늘 그래왔듯 - 알고도 모른 척

    눈감아 주었던 것 같네요.

    아픈 당신이 더 아파할까 봐 정작 본인의 화는 "문드러져가는 속"에다 가까스로 쟁여 놓고, 참고 또 참았나 봅니다.

     

    애정 전선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당신이 혹여 자기를 버릴까 저렇듯 전전긍긍하는 그의 약한 모습이 있었기에

    나 같은 못난 놈도 지금 이렇게 목숨 부지할 수 있는 걸 테죠.

     

    나는 착한 것과 우유부단을 (우울한 무기력을) 혼동하였습니다. 내가 루틴이라는 성스러운 중력을 거부하고

    불안이라는 상스러운 무중력 안에서 허우적거리며 천형 같은 게으름을 즐기는 동안, 그 진짜로 착했던 남자는

    가정을 지키는 아주 단순하고도 무거운 루틴을 육중한 십자가 지듯 짊어지고, 퇴폐적이지 않은 교과서적 성실함으로

    보듬고 보호하는 방식의 사랑을 당신에게 바쳤단 말입니까. 그것이 당신을 어지간히 숨 막히게 하는 것과는 별개로

    그는 정녕 그러한 고난의 길을 묵묵히 걸을 만큼 용기를 지녔단 말입니까.

     

    그는 심신이 불안정한 당신을 충심으로 가여워하고 이해하려 노력할 뿐 아니라 최대한 분란은 회피하면서,

    (파국을 상정해야 하는) 내연에 대한 분별없는 분노보단 당신의 옅어진 사랑을 조심스럽게 다시 모으는 것이 급선무라 여기는 듯했습니다. 따라서 당신의 불안정에 일익을 담당한 "나라는 존재"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철저히 무시하였겠지요.

     

    죄책감에 영혼마저 혼미해지는 현재, 요런 같잖은 참회록을 끄적이면서 불현듯 뇌리를 스치는 생각이

    기시감라는 확신이 듭니다. 그래요, 그때 그 시점에도 난 분명 - 오줌이 지려지는 황망한 공포에 짓눌려 으깨지기 직전의

    단말마인 양 - "살고자 하는 아니 죽고자 하는 본능"에 따라 다음과 같이 행동하려고 아주 짧은 순간 마음먹었던 것 같아요. 우선 그 불미스러운 자리만 모면하기 위한 이기심에서 간교한 위선이 수작을 부리려 했던 게 아니라, 뭐랄까

    다 내려놓고 쫀득한 "현실계의 절망" 속으로 ("확정된 공포"의 결박 속으로) 뛰어들 심사였을 겁니다.

    납작 엎드려 그의 다리를 잡고 오열로써 간곡하게 용서를 빌고픈 생각이 불현듯 들었던 겁니다. 그때에도 지금처럼..

     

    막 그리하려던 차에, 아이를 얹은 "그의 야윈 어깨"는 주저함 없이 들어가 버렸고요.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소심한 제 성정 때문에, 그런 자포자기성 돌출 행동은 결국

    병실 출입문조차 넘지 못했던 것입니다.

     

    내가 정말 그랬다면 당신은 어떠했을까요.

    현재의 당신이라면 이런들 어떻고 저런들 어떠하리란 마인드겠으나, 당시의 당신으로선 도저히 용납이 안 되는

    비굴한 "뒤통수 치기"에 지나지 않았을까요? 사랑한다면서 - 용기는 주지 못할망정 - 실망을 넘어 절망을 떠안기는,

    배신 행위라고 일갈하며 원망하지는 않았을까요? 상대와 겨루어 당신을 쟁취하기는커녕 변변히 시도도 못해보고

    꼬리를 내려 스스로를 포기하는 비겁함에, 치가 떨렸을 수도 있었겠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당신은 왠지, 비록 실천으로 옮기진 못했어도 그런 마음을 먹었다는 것 자체가

    진정한 용기를 향한 첫걸음이었다며 나를 북돋아 줄 것만 같습니다.

     

    나를 향한 당신의 그리움이란 사실 연민이 아닐는지요. 맹목적인 그리움이라기보다는,

    진작 명징한 현실로 투항하지 못하고 - 사랑을 기망하는 떳떳지 못한 삶에 환멸을 느껴 - 도피 중인 내가

    그저 안타까울 따름인 연민..

    연민이라도 좋아요. 연민이라서 다행입니다. (물론 나에겐, 다행이라고 말할 자격도 없습니다만..)

     

    긍정적이고 희망적으로 보이는 "당신의 지금 상태"와는 상관없이, 나는 용서를 구하렵니다.

     

    먼저, 나로 인해 가슴 아팠을 "과거의 당신"에게 용서를 구하겠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당신을 사랑하는 (당신을 열심히 지키고 한결같이 아끼는) "현재의 그분"께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증오를 누르고 그때 이미 나를 용서하셨을지라도.. 감히 속죄의 의미를 담아 매일매일 기도하듯이..

     

    아, 예전과 달리 이제는 당신의 아낌없는 사랑을 배부르게 먹고 있을 "당신의 소중한 분신" 그 귀여운 아가에게도..

     

     

     

     

    그렇지만 한편으론, 나의 이 치열한 부끄러움을 당돌하게 위로하는 "당신의 자취"가

    내 쓰라린 후회를 과감하게 도포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함부로 규정된 미학"의 그림자는 나를 여전히 감염시키는 중입니다.

     


    종로가, 명동이, 신촌이, 동대문이..

    혜화가, 춘천이, 월미도가, 미사리가..

    고궁이, 터미널이, 시장이, 도서관이..

    누나의 손을 잡고 타던 지하철이, 손을 잡고 헤매던 골목들이..

    누나와 마주 앉아 상대를 향한 욕망들을 잠시 다독이던 카페, 주점, 식당들이..

    애잔한 솔직함과 (서로에 대한) 끈적이는 탐구가 적나라하게 뒹굴던 노래방, 비디오방, 모텔들이
    내 뜨거운 기억 속에 살아 숨 쉬며 누나의 모습으로 뛰어놉니다.

     

    그곳들은 더 이상 내게, 건조한 일상의 장소가 아닙니다. 차가운 군중의 공간이 아닙니다.

    누나로 인해 피가 돌고 살이 돌아 누나와 하나 된 지 오래인 땅덩이들입니다.

    정감 어린 시공이 되어 내 상념 속을 떠다니는 그 자리들은, 언제나 누나를 향해 날아가고 있습니다.

    항상 제자리를 지키는 "누나의 쓸쓸한 그리움"을 향하여..

     

     

    누나의 상념에 추억으로 위장하고 내가 들어와도, 이젠 들뜨지 않고 잠잠히 있었만 주는 누나..

    서운하지 않고 그냥 고마워요. 누나의 비현실이 (아름다운 슬픔이) 마음껏 활개 치면

    내가 그전처럼 겁에 질려 사색이 될까 봐, 그러는 거죠? 고맙습니다..

     

    다가가는 건 내가 할 테니, 누난 "우리가 된 그 공간들"처럼 누나의 자리를 묵묵히 지키고서

    따뜻한 미소만 여기 내 고독으로 보내 주세요. 가끔..

     

     

     

     

    내 헛헛한 어린 시절의 잔향이 흐릿하게 배어 있는 숨 죽은 고향을

    고답적이던 누나의 마을이 지난날의 시공으로 보드랍게 감싸고 있어 푸근합니다.


    누나의 숨결로 오롯하게 뭉뚱그려진 "서정의 공간"에서 누나의 속살 같은 모유동(洞)은
    결핍에 시달리던 내 유년기를 보듬고 젖을 물려 수유하는군요.

     

     

    지금처럼 멀찍이 거기 서서, 그곳에 가면 항상 있는 모유동처럼,

    이놈의 행복한 영양실조에 훈훈한 그림자만 드리워 주세요 누나.


    나 혼자 끌어당겨 혼돈에 달아 놓고 드세게 흔들어도, 움직일 염려 없는 "굳건한 전설(傳說) 같은 그림자"..
    그것으로 충분히 좋습니다 누나. 그거면 돼요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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