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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천국을 거니는 고독 1상념 소용돌이 (상준 외전) 2023. 12. 18. 17:02
(1)
먹구름 한 번 스쳐도 휘청이는 바람이 수줍게 기대어 와도
연약한 그를 품으며 발갛게 물드는 그대.
구름을 호령하는 늠름한 바람이 위풍당당 다가와 거칠게 껴안는 순간
그대의 모든 그리움들은 간절히 기다렸다는 듯 그에게로 날아가 안깁니다.
성장한 바람은 자신이 연모하던 그대의 모든 것을 그렇게 앗아갑니다.
너무 기뻐 그대는 비명을 질러대는군요.
자기들끼리 부딪치며 즐거운 희생을 속삭이다가, "차갑게 얼어 기어 다니는" 소망들을 향해 희희낙락 투하됩니다.
그것들의 발 밑으로 기꺼이 뛰어들어 아름답게 증폭될 "그대의 비명들" 말입니다.
이렇게요..
사그락 사그랑 사라라랑.. 사그랑 사그랑 사랑 사랑..
[늦가을의 가로수 아래에서]
(2)
난쟁이 광대는 평지보다 외줄 위에서 안정감을 느낍니다.
가느다란 외줄이 평지보단 고독의 변화에 민감하니까요.
탄력이 발바닥을 파고들면, 겁 없는 그는 줄의 미세한 경련에도 간지럼을 탑니다.
어제와는 또 다른 태양의 작열이, 진땀일 리 없는 땀을 서늘하게 식혀 줍니다.
천 길 아래 무성한 수풀이 줄에 닿을 듯 솟아올라 흔들림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나무와 꽃들의 향기가 재채기를 유발합니다.
균형을 잡으려고 가까운 하늘 바라보지만, 줄의 다른 쪽 끝 까마득한 하늘이 짓궂게 평화를 흔들어
위태로운 그는 슬프답니다.
"까마득한 하늘이 펼치는 땅"을 밟고 천 길의 정원사들이 무리 지어 서 있습니다.
줄타기를 가르치고 배우는 천상의 거인들입니다.
평지를 밟은 적 없는 난쟁이라야, 줄 위에서 편안하게 흔들리며 잠을 잘 수 있습니다.
태어나기 전에도 죽은 뒤에도 광대는 묵묵히 외줄을 탈 뿐입니다.
(3)
아이들이 죽을 때마다 날아드는 하얀 넋두리.
아이들이 태어나면 물러서는 차가운 입술.
나부끼는 치맛자락에 매달리다가 만 길 낭떠러지 곤두박이는
아이들의 눈이 뜨이고 울음이 터진다.
"되풀이하는 생사"의 비린 젖을 보채는 아이들의 옹알이 앞에서는
그녀의 탄식도 어찌할 수가 없다.
그녀의 쓰다듬는 손가락을 깨무는 아이가 있다.
"어른이 되는 아이"들이 싫어 그들과 놀지 않는 아이이다.
(어른의 손을 잡아야 하기에) 자라면 사라질 서글픈 능력으로
이 영원한 아이를 잠깐 알아보는 아이들, 슬픔이 귀여운 아이들은
하늘에 닿는 이 아이와 눈을 맞출 줄 안다.
그들의 눈에 비치는 천진하게 꿈틀대는 황혼으로 그녀의 찬란한 사랑이 다시금 주름을 펴야,
영원한 아이도 비로소 앙탈을 멈추고 미완성의 새로운 시작에 안심하며 눈이 먼다.
[윤회를 거니는 고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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