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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9. 면회
    상념 소용돌이 (상준 외전) 2023. 10. 11. 20:24

     

     

     

     

     

     

     

     

     

     

     

     

     

     

     

     

    야, 지지난 주 휴가 나갔을 때 우리 실컷 봤잖아? 그러면 됐지 별안간 면회를 또 오면 어떡해!?

     

     

     

    왜? 오면 안 돼? 우리 연인 사이 아니었어? 봐도 봐도 보고 싶은 걸 나더러 어쩌라고..

     

     

     

    그건 알겠는데, 요즘 훈련 기간이라 소대원들 눈치가 보여서 그렇지. 미리 연락이라도 좀 주던가..

    멀리 부대까지 와 준건 고맙지만 미안하게 됐다. 이번엔 외출 외박이 안 될 것 같아.

     

     

     

    6시간 걸려서 온 사람한테 정말 이러기야?

     

     

     

    그러게 누가 사서 고생하래? 안타깝지만 나로서도 어쩔 수 없다고.

    아쉬운 대로 여기 면회소에서 얘기나 나누자. 2시간 뒤면 들어가 봐야 돼.

    훈련 때는 원래 이래. 전에 말해 줬잖아..

     

     

     

    그래, 잘 알아. 그것 때문이 아니라 나를 대하는 네 태도가 참 섭섭하구나.

    하나뿐인 애인이라면서 어떻게 이리 무정해? 전혀 반갑지가 않은 얼굴로..

     

     

     

    알았어, 네 눈에 그렇게 보였다면 미안해. 그렇다고 눈물까지 글썽일 필요는 없잖아.

    내 사정이 이러하니 마음이 급하고 여유가 없었나 봐.

    너무 서운해진 마. 사랑하는 널 이렇게 돌려보내야 하는 내 마음은 오죽하겠어?

     

     

     

    진짜 사랑하기는 해?

     

     

     

    바보같이 그런 말이 어딨어? 누가 뭐래도 우린 자타가 공인하는 캠퍼스 커플이잖니!?

     

     

     

    그딴 게 뭐가 중요해? 당사자 간의 사랑은 당사자만이 증명할 수 있어.

     

     

     

    지금 여기서 우리의 사랑을 증명이라도 하란 말이니? 그건 외박을 나가야 가능한 건데..

    면회 온 사람은 너밖에 없으니 잘하면 키스 정도는 할 수 있겠다, 이 안에서도..

     

     

     

    실망이다. 그런 것으로는 남자의 사랑이 증명되지 않아. 내가 아무리 순진해도 그걸 모를까 봐?

     

     

     

    피 끓는 군바리라 본능에 충실한 짐승이 돼 버린 거겠지. 네가 이해해라.

    난 너밖에 없어. 너만 보면 안고 싶어져. 그러니까 예고 없이 찾아오면 안 돼. 그건 날 미치게 하는 행동이라고!

    너 이렇게 가 버리면 누가 더 슬플 것 같아? 홀로 쓸쓸하게 그 먼 길을 되돌아갈 널 생각하면 벌써부터 가슴이 미어져.

    좋아, 이왕 짐승이 된 거 솔직해질게. 순수하게 네가 불쌍한 것 더하기, 너와 하지 못해서 난 괴롭고 슬퍼질 거야.

     

    휴가 때 너랑 잘 지내고 "네가 충전해 준 사랑"에 힘입어

    심란한 마음 겨우 다잡고 부대로 복귀한 건, 너도 아는 사실이지?

     

     

     

    그럼! 혼자 가겠다는 널 내가 기어이 여기까지 바래다주었으니까..

     

     

     

    그때의 에너지로 지겨운 군 생활 잘 버티는 중이었는데, 그건 다 네 덕분이고 정말이지 고마운데,

    오늘 말없이 불쑥 오는 건 아니었어. 백 번 양보해도 아닌 건 아니야. 나를 진정 위하는 너라면 오지 말았어야 했다고!

    내겐 너무 잔인한 행동을 넌 아무 생각 없이 해 버린 거란 말이다. 이건 도무지..

     

     

     

    다 맞아. 내가 경솔했던 거 인정해. 사과할게. 내 마음 알아달라고 징징대지도 않을게.

     

    이것저것 좀 사 봤어. 이것들 가지고 들어가서 아저씨들이랑 맛있게 먹어. 나 이만 갈게..

    훈련 잘 하고, 건강 챙기고.. 

     

     

     

    내가 세게 나와도, 약한 모습 보여도,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아무 소용없다는 거.

    이 사실이 나를 무너지게 해. 어쨌든 네가 가고 나면, 이곳에 머무르는 내 기분은 한없이 엿같아져, 아주 서글픈 형태로..

     

    그러면서도 난 네가 사 온 빵이나 과자를 씹고 있겠지 흐르는 눈물과는 상관없이.

    여긴 그런 곳이야..

     

     

     

    여기만 그런 것 아니야. 대단히 아픈 척하지 마.

    나라가 만들어 준 명분을 업고 넌 나를 함부로 대하고 있어. 그게 팩트야.

     

     

     

    이제 좀 마음이 편해지네. 그리 매몰차게 말해 줘서 고마워. 그게 진심이든 아니든..

     

    남은 한 시간 동안 우리가 뭘 더 하겠니. 이쯤에서 빨리 돌아가.

    이미 많이 늦은 것 같다. 집에 도착하면 자정을 넘길 수도 있겠어. 걱정된다.

     

    사랑은 이곳에선 사치야. 너에 대한 사랑은, 전역하면 네가 만족할 만큼 증명해 줄게

    한 마리 짐승이 아니라 (네가 원하는) 이성적이고 예의 바른 인간의 방식으로.

    그러나 지금은 너를 그리워하는 것만으로 벅차. 어서 가!

     

     

     

    응. 듣던 중 반가운 소리야. 그리움의 수준을 따지지는 않을게.

    남자의 본능이어도 좋으니 그 그리움을 날 향해서만 발산해 줘.

    더는 바라지 않을게. 널 향한 내 그리움만큼만 나를 그리워해 줘. 기대해도 되지?

     

     

     

    일단 거기까지! 그렇게 속삭이는 네 목소리만으로도 이 외로운 병사는 꼴린단 말이야..

     

     

     

    하여간 못 말려.

     

     

     

    하하, 나를 누가 말리겠냐..

     

     

     

     

     

     

     

     

     

     

     

     

     

     

     

     

     

    면회는 잘 다녀왔어?

     

     

     

    응..

     

     

     

    같이 가자니까 고집은..

     

     

     

    너 안 가길 잘했어. 훈련 중이라 두 시간도 못 보고 온걸.

     

     

     

    이런! 그러길래 미리 연락하고 했잖아.

     

     

     

    호호, 친구 아니랄까 봐 둘이 똑같은 소리를 하네?

     

     

     

    혼자서 많이 힘들었겠다. 그럴 때일수록 내가 같이 가 줬어야 하는데..

     

    어땠어? 상준이는 잘 지내고 있지?

     

     

     

    내가 너무 이기적이었어. 가는 게 아니었는데..

     

     

     

    왜, 또..?

     

     

     

    내가 불쑥 나타나서, 많이 흔들리는 것 같았어. 엄마와 떨어지지 않으려는 어린애처럼..

     

    가까스로 평온함이 유지되는 그의 그곳 생활을 휘젓고 말았어. 난 그저 보고 싶어 간 것뿐인데..

     

     

     

    애인이 어렵게 찾아왔는데 함께 나가지도 못하고, 녀석 심정도 말이 아니었을 거야.

    애처럼 굴었어도 네가 이해하고 넘어가렴. 군대 끌려간 남자들 불쌍하잖아?

    군복 입으면 열이면 아홉은 다 그렇게 유치해진단다.

     

     

     

    나한테 이해하고 말고 할 자격이 있나.. 나 또한 이래저래 당황하고 그의 반응도 섭섭하고 해서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고 쏟아 냈는걸. 그래서 지금 무척 후회되고 마음이 아파.

     

     

     

    연인 사이엔 원래 그런 거지 뭐. 너희들 사랑 싸움마저 부러운 내가 있다는 걸 잊지 말고 제발 작작 좀 하자?

    아, 나도 빨리 연애를 하던가 해야지 원..

     

     

     

    저번에 친구 소개해 준대도 극구 사양하더니 이제 와서?

     

     

     

    .................

     

     

     

    있잖아 인혁아.. 난 아마도 나쁜 여자인가 봐.

    심리적으로 내게 매달리는 모습도 싫지만은 않았어. 오히려 귀엽고 사랑스럽더라.

    면회 갈 때마다 "내가 그에게 힘이 되고 의지가 되는 사람임"을 새삼 느낄 수 있어서 참 좋더라.

    "미치도록 보고 싶다는" 단점만 빼면, 이렇듯 서로에게 간절하고 애틋할 수 있는 2년여의 시간도 나름 괜찮은 것 같아.

     

     

     

    후후.. 그 말, 그녀석 앞에선 절대 하지 마라. 거품 물고 뒤로 넘어가는 모습 보기 싫으면..

     

     

     

    말이 그렇단 얘기지. 나도 걔 못지않게, 전역하는 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고.

    맨날 지지고 볶는다 해도 내 옆에 두고 싶단 말이야.

     

     

     

    알지, 네가 어떤 의도로 하는 말인지..

     

    네가 나쁜 여자면 세상 모든 여자들이 다 나빠야 돼.

    네가 나쁜 여자라는 건, 세상에 착한 여자는 하나도 없다는 뜻이니까.

     

     

     

    얘, 나 또 살짝 설렐 뻔했잖니! 진부하다 못해 촌스럽기까지 한 표현인 걸 뻔히 알면서 왜 난 항상 이러나 몰라.

     

    넌 그 닭살 멘트 실속 없이 나한테 자꾸 사용하지 말고, 감동해 줄 대상을 얼른 만들어.

    미래의 네 애인한테 너의 이 특기를 발휘하면 많이 예쁨 받을 거야. 내가 장담할게.

     

     

     

    혼자 오는 길이 무척 쓸쓸했겠구나.

     

     

     

    쓸쓸한 정도면 다행이게? 창피해서 비밀로 간직하려 했는데 너니까 이야기한다.

    나 차 안에서 한참이나 울었어. 을씨년스러운 날씨도 슬픔을 부추기는 데 한몫하더라고.

     

     

     

    그 녀석을 핑계로, 사무치는 "존재의 고독"을 내면 깊이 느껴 보았구나. 아님 말고..

     

     

     

    내가 너니? 난 그런 어려운 말 몰라.

     

    "그이와 함께 하고픈 것"들 가운데 하나를 그날 하려 했는데, 결과가 좋지 않아서 어찌나 울적하던지..

    깜짝 놀래켜 주듯 기쁨을 선사하고 싶었지만 본의 아니게 그의 기분을 망친 것 같아서..

     

     

     

    그래? 그게 뭐였을까? 몹시 궁금한데?

     

     

     

    미안. 이건 진짜 나만의 비밀. 알고 싶어 하는 이가 너라고 해도, 얘기 안 할래. 묻지 마..

     

    알았어, 삐치지 말고.

    대신 내가 평소 그와 하고 싶었던 일들이 뭔지는 말해 줄 수 있어.

     

     

     

    그건 대부분 현실에서 이뤄 낸 소망들 아니야? 그렇다면 별로..

     

     

     

    또 맘대로 생각한다. 연애 기간이 길어도 못하는 게 얼마나 많은데..

     

     

     

    상대가 그녀석이니 뭐 그럴 수도 있겠네.

    남들 다 누리는 소소한 행복들로부터 거의 고립되었겠지. 안 봐도 비디오.

     

     

     

    틈만 나면 까는구나. 아무리 격의 없고 허물없어도 그렇지 쯧쯧..

     

     

     

    흥, 그놈은 나보다 더해!

     

     

     

    네, 그러셨어요?

     

     

     

    뜸 들이지 말고 어서 말해 봐. 그놈이 못해 준 게, 아니 안 해 준 게 뭐뭐인지..

    봐서, 나라도 해 줄 수 있음 해 줄게.

     

     

     

    이런 미친.. 그게 말이니 방구니?

     

     

     

    그래, 방구다. 알았으니까 1절만 하고 빨리 읊어 봐.

     

     

     

     

     

    그의 팔짱 끼고, 고즈넉한 고궁의 낙엽 깔린 비원을 거닐고 싶었어.

     

     

     

    지난 몇 년 동안 겨우 그깟 걸 못해 봤다고?

     

     

     

    했어. 내가 졸라서..

    내가 주도해서 스케줄도 짜고 데이트 비용도 내고..

     

     

     

    쳇, 그럼 됐지 뭐가 불만인데?

     

     

     

    물론 좋았어. 하지만..

    그이가 먼저 나서서 나를 리드했으면 훨씬 더 행복하지 않았을까 하는, 약간의 아쉬움?

    내가 열거할 것들이 다 이런 식이란다. 했어도 한 것 같지 않고, 좋아도 마냥 좋지만은 않은..

     

    왜? 내 얼굴에 뭐 묻었니?

     

     

     

    '너의 매끈한 이마에 입 맞추었으면..'

     

     

     

    그에게 줄 선물을 자주 고르면서도 난 항상, 나란 여자 자체가 "삶에 지친 그를 위한 따스한 선물"이었으면 했어.

    그도 그렇게 생각할까? 직접 물으면 당연히 그렇다고 할 사람이지만, 솔직히 여태껏 이심전심은 느껴지지 않았거든..

     

     

     

    '너의 가슴에 머릴 대고, "나를 사랑하는 여인"의 풋풋한 설렘을 맘껏 들을 수만 있다면..'

     

     

     

    졸려? 내 얘기 들어주기로 했으면 끝까지 들어.


    해마다 그와 함께 첫눈을 맞고 싶었어.

     

     

     

    너야말로 피곤하겠다. 아직 할 이야기 많이 남았니?


    저기 저 구름 보여? 참 귀엽게 생기지 않았냐?

     

     

     

    나처럼? 하하..

     

     

     

    '응 너처럼..'

     

     

     

    그이하고 백 편도 넘게 영화를 본 것 같아. 그런데 그의 감동과 내 감동이 일치한 적은 극히 드물었어.

    이유가 뭘까. 아, 물론 영화 보자고 먼저 말한 쪽은 거의 대부분 나야. 그래서일까..

     

    자의식 강한 그가 한두 번쯤은 불평할 만도 한데 웬일로 말없이 내 취향을 잘 따라주더라.

    애초에 영화 감상이 목적이 아닌 듯 행동해서, 열심히 영화 보는 나를 악동처럼 참 많이도 방해하였지만,

    본인 취향 아니라 재미없어서 그랬겠거니 이해가 되긴 했어. 그리고, 공공장소라 난처했지만

    애정에 목마른 사람처럼 나를 갈구하는 애인의 눈치 없는 대시가 아주 싫었던 것도 아니라서..

     

    드문 경우지만 그가 보고 싶어 하는 영화를 보러 갈 땐 확실히 진지했었던 것 같아.

    앞으로는, 진지한 그를 배우기 위해서라도 그의 취향에 좀 더 집중해야겠어. 그에게 더욱 맞춰 가야겠어.

    그렇게 해서 그의 감동을 온전히 내 것처럼 느껴 볼 테야.

     

     

     

    대체 얼마나 더 그놈한테 맞추겠단 소리야? 넌 지금도 차고 넘친다고!

     

     

     

    추임새 하고는..

     

     

     

     

    '동그랗게 눈을 뜨고 날 바라보는 네가 좋아. 널 기다릴 수 있게 해 줘, 부디..'

     

     

     

    이상하다. 오늘따라 왜 자꾸 그런 눈으로 쳐다보는데? 마치 내게 하고픈 이야기를 잔뜩 숨긴 사람처럼..

    나에게 한 번도 한 적 없는 새로운 이야기를 막 꺼내려는 사람처럼 말이야.

     

     

     

    난 두려워.
    그 녀석 때문에 너의 청초한 순수함이 작별을 고할까 두렵다.
    그놈으로 인해 너의 해맑은 활달함이 사라질까 두렵다고..

     

     

     

    어제오늘 일도 아니고 네가 날 걱정해 주는 건 잘 알겠어. 하지만 너무 이러면 싫어.

    우리 셋은 누가 뭐래도 막역한 사이고, 그러기에 인혁이 넌

    다른 누구보다 열렬히 우리 둘을 축복해 줘야 해. 알겠지?

     

    그리고, 뭐가 그리 두려워? 우린 젊고 특히 넌 남자잖니?
    누구에게나 젊음을 누릴 권리는 있잖아? 너와 나도 예외는 아니고.

    넌 너대로 난 나대로 그 권리를 떳떳이 행사하면 돼.


    난 나의 권리를 그에게만 행사하겠어. 내 젊음을 그에게 바치고 싶어 간절하게..!

     

     

     

    '여기 내 옆에 앉아 있는 그리움이 가슴을 태우는구나!


    내 젊음을 춤추게 할 이벤트들이 인생에 배정되었다 해도, 너의 사랑을 만질 수 없다면 그것들은 나에게 의미가 없어..'


                                                                

    그와 그토록 허무하게 헤어지고 먹먹한 가슴을 주체하지 못하며 전방을 벗어나는데
    하늘에선 무심한 눈송이들이 하염없이 떨어지더라.

    차창에 부딪쳐 번지는 그러나 닦이지 않는 하얀 외로움들을

    헛수고인 줄 알면서 괜스레 닦아 내었어. 부딪쳐 올 때마다 하나하나 세어가며 차분하게 울먹였어.

     

     

     

    다 큰 사람이 굳이 왜 그랬니..

     

     

     

    난, 다 크지 않았나 봐.

    너와 이야기하는 이 순간에도 그가 미치도록 보고 싶어. 그를 향해 다시 전방으로 달려가고 싶어. 아아, 나 어떡해?!

     

     

     

    '이런 바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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