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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 사랑과 우정 사이
    상념 소용돌이 (상준 외전) 2023. 9. 30. 15:10

     

     

     

     

     

     

     

     

     

     

     

     

     

     

     

     

     

    네가 말한 대로 용기를 내 봤어.

     

     

     

    그랬더니 뭐라던?

     

     

     

    친구끼리 뭔 결혼이냐며 썩은 미소 날리더라.

     

     

     

    친구는 너랑 나 사이에나 어울리는 단어고..

     

    그럴 줄 알았다. 개자식.. 할 짓 다 해 놓고 이제 와서 친구..?

    비겁한 놈.. 남녀 간에 친구가 어딨냐더니..

     

     

     

    욕하지 마.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야.

     

     

     

    그러셔? 열녀 나셨네.

     

    너희 둘은, 비록 짧은 시간이었으나 누가 봐도 오래된 연인 같았어. 그리 알콩달콩하진 않았어도..

    너의 사랑이 일방적으로 그 녀석한테 미끄러져 들어가는, 애초에 기울어진 관계이긴 했지만 말이야.

     

    그런데

    결혼까지 생각할 수밖에 없는 너의 순수하고 진심 어린 사랑을 모독하고 아무 일 아니라는 듯

    뒤로 슬쩍 빠진다는 게 말이 돼?

     

     

     

    이유가 뭘까..

     

     

     

    바람둥이가 아니란 건 내가 보증. 성격 지랄맞은 건 너나 나나 인정.

     

    가벼운 연애를 원했는데 갑자기 진지하게 나와서? "갑자기"는 개뿔..

    네 순진한 "호감 표시"를 악착같이 이용하며 즐길 땐 언제고 뒤늦게 두려워진 것이겠지.

    착한 여자의 마음을 그만큼 가지고 놀았으면 이러한 과정은 자연스러운 순서란 걸 예상했어야지. 못난 녀석..

     

    천성이 악한 건 아닌데, 고등학교 졸업한 지 이 년이 넘었으면서 사춘기의 왕자병도 아직 떼지 못하고 똥오줌 못 가리는

    덜떨어진 새끼란 건 확실한 것 같다.

     

     

     

    또 다른 이유가 있지는 않을까? 그렇지 않고서야..

     

     

     

    원한다면 알아 봐 줄게. 하지만 그럴듯한 명분이 있을 거라 기대하진 마.

    남자는 남자가 정확히 본다고..

     

     

     

    그래도..

     

     

     

    "진중하지 못하고 현실감이 부족한" 놈인 걸 너도 잘 알았고 그랬기에 나도 첨부터 말렸었잖니.

    물론 말려서 될 일은 아니었지만..

     

    대체 어디가 좋아서 그런 무책임한 놈한테 푹 빠진 거야?

     

     

     

    그걸 어떻게 말로 설명해? 

     

     

     

    또 시작..

    생각만 해도 아주 좋아 죽겠어?

    너도 그 녀석이랑 다를 게 뭐야? 스무 살이 지나도 사춘기적 소녀 감성을 탈피하지 못하고

    첫눈에 반하면 다른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질 않으니 원..

     

    넌 어찌 여자애가 적당히 감정을 숨길 줄도 모르고 이처럼 좋아하는 티를 팍팍 내냐?

    이러니 널 만만하게 보고 그따위 수작에다 이용만 하려 들지.

     

    이것도 녀석의 운일까.

    현실의 쓴맛을 좀 느끼고 철이 들만하면 꼭 너 같은 여자애가 어디 숨어 있다가 불쑥 나타나 기를 살려 주는 바람에

    그놈 안의 "잘난 체하는 (재수 없는) 놈"은 산소 호흡기를 달고 꾸역꾸역 연명한다니까..

     

     

     

    너야말로 또 잔소리..

    내 친구 맞아? 맞으면 1절만 하자, 응?

     

     

     

    다른 여자들처럼 약아빠져도 시원찮을 판에 쓸데없이 착하기만 하니까 답답해서 그러는 거지.

    콩깍지 씌어서 예뻐 보이는 건 잠깐이야. 화가 나면 그 자식 면전에 대고 화를 내, 녀석이 뭐라도 되는 양 떠받들지만 말고!

    그게 정 어려우면 차라리 나한테 부탁을 하든가.

    네가 얘기만 하면 지금이라도 당장 달려가서 녀석을 두들겨 패 줄 수 있다고 난..

     

     

     

    인혁이 넌 이게 문제야. 자격도 없으면서 어설프게 가르치려 든다는 거. 마치 다 안다는 듯이..

    넌 교수님이 아니야. 우린 둘 다 학생일 뿐이라고 게다가 나이도 같고.

    이 점 명심해서 더는 날 혼란스럽게 하지 마. 내가 부탁할 건 이것뿐이다 친구야.

     

     

     

    아, 됐고!

    아무튼 그놈 헛소릴 듣고 넌 뭐라 했는데..?

     

     

     

    뭐라 하긴..

    농담했다 얼버무리고는 나도 상준이를 따라 멋쩍게 웃었지 뭐..

     

     

     

    에잇, 바보같이..

     

     

     

    미래의 장밋빛 희망도 좋지만, 지금 현재 나와 함께해 주는 그를 불편하게 하고 싶지 않아.

    다른 여자 때문이 아니라 단지 아직은 굴레고 부담일 결혼에 대한 해맑은 젊음의 무의식적 거부 반응이라면

    난 오히려 안심이 돼. 그럴 수 있어. 그 심정 충분히 이해할 것 같아.

    긁어 부스럼 안 만들래. 그가 나에게 결별을 선언하지 않는 한, 지금 이대로의 사랑을 천천히 유지하고 가꿀 테야.

     

     

     

    그 자식한테 속고 있단 생각은 정말 안 드니? 내가 감히 충고하자면

    여자가 가장 경계해야 할 남자는 현실 대신 환상을 선택하여 삶 속에 끊임없이 주입하는 부류야.

    이들이 무서운 것은, 자신이 만들어가는 "현실 속의 미묘한 환상"이 만족할 수만 있다면

    그 어떤 짓도 서슴지 않고 저지를 수 있다는 거다. 뭐랄까.. 감정 과잉의 "낭만적 소시오패스"라 할까..?

    그녀석이 딱 그런 부류라고! 아마 싫증이 날 때까지 너의 모든 걸 이용하려 들걸? 지금도 그러고 있겠지만..

     

     

     

    넌 그와 둘도 없는 친구라면서 그렇게 악담을 퍼붓고 싶니?

     

     

     

    그러니까 이렇게 얘기할 수 있는 거야. 술 한 잔 할 때나 그 외에도 몇 번 이런 말 해 줬다 걔 얼굴을 마주하고 말이지.

    친한 만큼 진심 걱정되니까 서로에게 거리낌 없이 충고하는, 우린 그런 사이야. 그리고..

    너 역시 내가 아끼는 친구기 때문에 두고 볼 수만은 없어서, 널 진심으로 생각해서 해 주는 얘기란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야..

     

     

     

    네가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지금은, 네 얘기 네 걱정, 귀에 들어오지 않아.

    네가 날 친구라 여긴다면 이 상황에서 진정 나를 위하는 게 뭔지 다시 한번 생각해 줘.

    내가 현재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너도 잘 알잖니.

     

     

     

    좋아, 그렇다 치고..

    이제 어찌할 건데? 용기 내어 프러포즈했음에도 남자한테 바로 차이고

    여자의 자존심은 금이 갈 대로 가 버린 이 시점에서, 네가 할 수 있는 건 무엇인데?

     

     

     

    아니, 난 절망적이지 않아. 내가 원한 답변이 아니라서 실망스럽긴 했지만

    결혼에 목매기엔 우린 너무 젊고 나의 발언과 상관없이 그도 나도 우리의 사랑을 여기서 그만둘 생각은 없다는 거..

    그거면 돼.

     

     

     

    군대도 아직 안 간 놈하고 결혼하는 건 좀 빠른 게 맞아.

    내 조언도 문자 그대로 꼭 결혼하란 뜻은 아니었어. 네가 하도 답답해하길래

    녀석의 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다소 대담하고 직접적인 방법을 권유했을 따름이야.

     

    네 마음이야 현재로선 당연히 확고할 테고.. 그러나

    그놈도 과연 그럴까? 녀석의 사랑을 자신할 수 있어? 아니

    녀석이 널 사랑한다 치자. 그 사랑이 네가 바라던 사랑인지 확신할 수 있냐고.

     

     

     

    휴일에 야외로 드라이브하자니까 그러자고 했어.

     

     

     

    그게 사랑의 증거니? 웃음밖에 안 나온다.

    얼마나 순진무구하면 넌 그 흔한 "여자의 촉"도 발동할 줄 모르냐.

     

    네가 택시비에 일일 데이트 비용까지 거의 다 낸다며? 그놈이 널 만나는 이유들 중 하나가 이런 건데

    굳이 마다할 리 있겠어? 가뜩이나 무료함과 권태에 찌든 녀석이?

     

     

     

    초 치지 마.

    강변을 달리면서 "내가 녹음한 테이프"를 듣자고 했어. 그도 그러마 했고.


    조용한 카페에서 잡담을 나누자고 했어. 그러니 뭐라 한 줄 알아?
    우리의 눈 속에서 녹고 있는 달콤한 그리움의 결정(結晶)들을
    찬찬히 저어 조금씩 아껴가며 마시자더라.

     

     

     

    그 녀석 고약한 취미 중 하나가

    촌스럽고 유치한 시를 즉석에서 그럴싸하게 지어내 어색한 문어체로 씨불이는 것이긴 하지..

     

     

     

    제발 그리 말하지 말아 줘! 내가 모르던 냉혹한 진실을 네가 실토하는 것 같아서 두려워.

    너의 냉소가 그를 향하든 나를 향하든 난 가슴이 아파!

     

     

     

    미안해. 그럴 의도는 아니었어..

    네 아픔을 열심히 위로해 줘도 모자를 내가 오히려 아픔의 원인이 되었다니..

    그나마 네 옆에 있을 수 있는 친구라는 자격마저도 나에겐 없나 보구나. 정말 미안하다.

     

     

     

    알았어. 죽을죄 지은 건 아니니 너무 미안해할 건 없어.

     

    이럴 때 의논하고 하소연할 수 있는 너라도 있어서 참 다행이야.

    내 친구인 동시에 그의 친구이기도 해서 난 네가 좋아.

     

     

     

    네가 아프면 나는 슬퍼져.. 그러니 너무 아파하지 마.

     

     

     

    어머, 그랬어?

     

     

     

    그.. 그럼..

    그렇다고 나를 의식해서 아픔을 참으란 얘기는 아니니까 오해하지는 말고.

     

    친구 간에 아픔과 슬픔을 공유하는 건 기본이잖아? 하하, 이런 내가 있어 든든하지?

     

     

     

    그래, 아주 든든해서 배가 부를 지경이다 호호.

     

     

     

    그래도 많이 아프면 오늘처럼 내게 힘껏 기대렴. 내 어깨는 항상 널 위해 준비되어 있으니까..

     

     

     

    얘가 점점..? 방금 멘트는 좀 느끼했다 얘!

     

     

     

    하하, 오버 떨지 말라 이거지? 오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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