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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 문학을 아는 척 1 :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상념 소용돌이 (상준 외전) 2023. 7. 2. 19:14

     

     

     

     

     

     

     

     

     

     

     

     

     

     

     

     

     
     

     
    엄석대.

    너는 "영웅"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넌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고 한 반의 질서를 나름대로 일사불란하게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조금 과장하여 전성기의 나폴레옹 같은 영웅에 비유될 수도 있겠으나,
    기실 네가 생산하는 권력은
    더욱 크고 절대적인 권력을 상징하는 담임의 묵인과 비호하에 혹은 그것에 편승하여 휘두르는 것이기에
    전혀 창조적이지 못하며, 약자의 희생이나 구조적 부조리에 대하여도 관용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너는 주류 지향의 "맹목적이고 살벌한 긍정"과 체질상 궁합이 맞는 권력형 인간이다.

     

    그런 네가 
    학교의 타성을 유지하는 제도적 큰 틀을 인정하고 그것에 자연스럽게 영합함으로써
    약자인 또래 급우들 위에 군림하는 절대 권위를 일종의 혜택처럼 부여받은 셈인데, 이렇듯

    큰 권력에 기생하여 유기적으로 파생된 작은 권력은,
    엄석대 네가 "빛만 좋은 규범"을 명분으로

    반장의 책무를 다하고 학급이라는 소(小) 사회를 질서 있게 운영한다 해도
    결국 극복될 수 없는 태생적 한계에 봉착하고 만다.

     

     

     
    처음부터 이상적이지 못하여 부조리를 양산하는 체제의
    표리부동하고 억압적인 그러나 주류 지향파들의 절대적인 (혹은 상대적인) 지지를 얻고 있는
    이른바 현실 유지 시스템으로부터
    필요한 자양을 꾸준히 공급받아야 하는, 소(小) 체계로서 학교와 학급이 존립한다 할 때,
    이러한 자체 모순 속에서 "엄석대라는 권력"의 이성적 판단이란 것은
    "언제나 불완전함에 기반한다"는 딜레마를 기질적으로 내포하게 되고,

    그런 판단에 의한 행동은 이 딜레마를 - 인지하든 못하든 - 기계적으로 정당화할 뿐이다.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이라던가
    "질서를 깨뜨리는 폭력에 대해선 - 정의라는 당의정이 발린 - 소위 신성한 폭력으로 마땅히 응징하여도 무방하다."와 같은 (부조리에 내재된) 음험한 규약들이
    행위의 합리화를 뛰어넘어 존재의 선험적 본질마저 유린하고 있는 상황에서,
    "약자"인 대다수 급우들은
    지저분한 폭력들의 준동으로부터 보호막이 되어주는 (수호신과도 같은) 너의
    카리스마를 인정하고 따를 수밖에 없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인데
    과연 이들에게 너를 배제한 다른 대안이나 선택의 여지가 있을지 의심스러운 일이다.

     


    현실 순응적이든
    중도적 성향이 강하든
    허무주의적 비관론자든 간에,
    자신의 창조적 권위를 적극 발산하며 개인의 존엄과 가치를 고양하지 않는 이상(以上)
    이들은 수동적인 타자(他者)에 불과하며
    인식의 지평을 스스로 차단하고 이리저리 쓸리는 모래알 군상일 따름이다.

     

     

     

     


    "나"를 비롯한 비교적 다양한 부류의 약자들이 엄석대 너에게 길들여지는 방식과 
    너 자신이 학교와 담임의 권력에 순응하는 방식은 언뜻 유사한 것처럼 보이나

    여기에는 결정적 차이가 있다.

     


    체제로부터 고통 당하는 아나키스트와 아웃사이더들은
    실존의 경계에서 서성거리는 "사이비 약자"들이다.
    이에 반해,
    이미 경계에서 한참을 안쪽으로 진입해 들어온 "영악한 약자"들은
    "현실의 그림자가 되어버린 부조리"와 너무나 잘 유착하여
    꿈속에서조차 실존에 관해 고뇌할 수 없게 된 무능력자들이다.

     


    반장으로서의 카리스마와 역량은,
    학교와 구담임으로 대변되는 체제의 근원적이면서 전통적인 불합리를

    철저히 자기 복제화하고 내면화함에 있어 지극히 "창조(?)적"이다.


    거대한 관성의 연못에 빠질 수밖에 없는 환경과 운명을 대세로 인정하고
    어리석은 익사 대신 산소통을 야무지게 준비하여 극복을 모색하는 자들이
    "영악한 약자"들이라면, 그들 중에서도
    스스로 또 하나의 연못이 되어
    자기한테 빠져들 희생물들을 지분처럼 적극 확보하는 "답습의 창조자"가 있으니

    그가 바로 엄석대 너인 것이다.


     

     
    "내"가 현재에 이르기까지, 올곧지 못하고 어정쩡한 아웃사이더로서

    부조리한 사회를 실감하고 힘겨움과 절망 사이를 오락가락하면서도

    주류로부터의 도태를 위기로 인식한다는 것은,
    국민학교 시절 아주 잠깐 겪어 보았던 "포스트 엄석대의 이상향" 즉

    새로 온 담임이 상징하는 민주적이고 창조적인 변혁의 바람이
    결코 지속적이지 않았음을 당시 뼈저리게 체험함으로써 생긴

    정서적 외상의 여파라 볼 수 있지 않을까.

    (냉혹한 현실에 맞선다는 게 얼마나 무모한지 너무 일찍 알아버린 탓 아닐까.)

     


    "영악한 약자"들의 내면은 
    뿌리까지 새로워져야 하는 변화를 거부하고 있으며,
    집단 죄의식에 대한 무한 책임을 오롯이 떠안는 데 있어 무의식적인 두려움을 가진다.


    그래서 현실은 이상향을 낳을 수 없다.
    이상향이 현실을 포용할 뿐..

     

     

     

     


    영악한 약자들은

    엄석대나 새 담임이나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믿는다.
    그들에게는 이 둘의 차이를 규명할 능력이 없다.


    너도, 새로 부임한 담임도

    그들의 시각으로는 똑같이 "창조적 권위자"이며,
    그저 "새 담임이라는 권력(?)"이 새로이 부상하였기에 그들은 네게 등을 돌린 것이다.

     

     

     

    절름발이 이상향, 반쪽짜리 자유가 비리와 결탁하여 자잘한 폭력들을 양산하는 오늘날,


    본인이 다 자랐다고 생각하는 "내"가
    "새 담임과 같은 참신한 변화의 아이콘이 결국은 부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세상의 법칙

    매정한 엔트로피 증가를 아쉬워하고 두려워하면서도 한편으로,
    구태를 열심히 쫓던 "어린 시절의 엄석대"를 엉뚱하게 추억하고 심지어 그리워하는

    이율배반적 입장에 서게 된 데에는,


    엄석대 또한 새 담임 못지않게 희소성의 측면에서 가치(?)를 지닌다 여긴

    평소의 사상이 한몫을 하고 있다.

     

     


    사이비 약자로 성장했다고 착각한 "나" 역시, 실은
    영악한 약자들의 일원이 되는 정체(停滯)의 길 더 나아가 퇴보의 길을 걸어가는 중이었으며, 이로써
    (그들이 각기 추구하던 바의 상반된 방향성은 차치하고) 너나 새 담임과 같은 양극단의 "창조적 권위자"들에게

    안일한 마음으로 의존하기만 하면 되었던 그 시절이 차라리 지금보다야 낫지 않았을까 싶은

    (기억의 오류를 바탕으로 한) 서글픈 착시 효과가

    무의식에 도사린 "생명의 시원적 향수(鄕愁)"까지 자극하는 양상이라 하겠다.
    세파에 찌든 뭇 남성들이 고달픈 삶 속에서 군대를 추억하듯이 말이다.

     

     


     

    학창 시절 한 때 제법 용감하기도 했던 "참신한 부조리의 수호자"였다가

    정작 그 의지를 본격 구현해야 할 어른이 되어서는

    수갑을 찬 범죄자로 전락해 버린 석대 너나,


    "사이비 약자"를 꿈꾸다가 영악한 약자로 퇴화해 가는 주제에,
    정의를 함부로 재단하여 감히 어르신들의 부조리를 길들이려 한 발칙한 노예가

    영악한 약자들을 조화(?)롭게 다스리려고 공포를 방목하던,

    그때 그 시절을 추억하고 있는 "나"나,


    어쩌면 생을 마감하는 그날까지
    실존과 현실의 경계를 헤매게 될 얄궂은 운명인지도 모르겠다.
    본의든 아니든..

     

     

     

     

     

     

     

     

     

    그러므로
    국민학교 시절의 "추억 속 엄석대"가

    현재의 "완성되지 못한 나"에게 잠시나마 영웅처럼 느껴질 수는 있을지언정,

     

    사회가 포박하는 "전과자 엄석대"가

    현실에서의 소외를 불안해 하는 "나"에게는

    일그러져 버린 "한때의 영웅"으로 비칠지언정,

     

    엄석대 너의 "왜곡으로 오염된 본질"이 "영웅"을 시사할 수는

    결코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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