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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문학을 아는 척 2 : 적(赤)과 흑(黑)상념 소용돌이 (상준 외전) 2023. 7. 15. 22:52
"욕망 (적)은 의지 (흑)으로 다스릴 수 있는가"라는
질문 자체가 성립할 수 없습니다.
중력의 영향을 받는 지구상 인류 중 어느 누구도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성인(
동서고금을 통하여도 그러한데, 하물며 고대 성인(聖人)들조차도
육신을 가지고 이 땅에 태어난 이상 이 욕망의 메커니즘을 활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랑과 자비
지복의 유토피아와 조화로운 평화
순간의 영원성과 신성한 창조를
끌어오고 동시에 확산시킨 "절대 실존"들에게
득도의 과정으로서 인간적 열정은 필수불가결한 것이었으며,
여기서의 "열정"은 욕망 또는 의지와 다름 아닙니다.
다만 구도자들은
열정적 의지를 활용하여 역설적으로 그것을 버린 셈인데,
욕망으로부터 비롯되는 의지,
의지가 추구하는 욕망,
이러한 순환 고리를 끊고
의지와 욕망 이 둘을 서로의 구속에서 해방시켜 자유롭게 한 것입니다.
즉
무의식의 영역을 강화하는
"욕망에의 매몰"과 "무지의 반복 (윤회)"에
제동을 걸고,
명징한 의식을 바탕으로,
방생되어 여여히 흐르는 욕망과 의지를 관조하는 경지에 도달했을 뿐 아니라
중생들에게도 그 길을 제시하였습니다.그러나 불행히도,
중생에 해당하는 고금의 인류 대부분은 욕망의 사슬을 절단하기는커녕
욕망을 이용하여 욕망에 매몰되는 무지를 그저 하릴없이 반복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이러한 시지프스적 한계는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요.
초월자가 아닌 보통의 인간에겐
"천상천하 유아독존"적 욕망을 창조하여 부릴 역량이 없습니다.
우리들에게 있어 욕망이란,
종교의 형이상적 열망에서부터 지극히 개인적인 듯 보이는 것에 이르기까지
인류 집단 무의식의 그물망 격자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역사와 사회가 종횡으로 얽혀 엮인 집합 의식이 우리들의 머리 위로 촘촘한 그물처럼 드리워져
가치 체계의 내면화는 잠재의식의 혼탁한 늪 속에서 은밀하게 진행될 수밖에 없고,
욕망의 수위 조절을 (일탈적 욕망과 규범적 욕망 사이를 오가는 다양한 타협들을) 가능케 한
"자체 검열의 자동 개입"은
"주류(主流) 의지가 결집된 사회 권력"의 (개인에 대한) 집요한 간섭이 일궈 낸 성과입니다.
이쯤에서 "욕망"의 의미를
"줄리엥 소렐"적인 그것으로 국한시켜 보겠습니다.
사회의 불문율이나 규범, 명문화된 법 체제 등을,
인간의 집합 의식이 정성(定性)적으로 조율하고 정제한 욕망의
의지화한 구현체라고 볼 때,
줄리엥은,
자신의 무의식이 ("타락 유전자"의 활성 타이밍을 맞춰 놓은 내면 시계가) 예정한 일탈적 욕구를
상기(上記) 격자화된 범(汎)의식적 (구조적) 욕망에 거부 반응 없이 스며들도록 다듬을 줄 아는
영리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서민 계층의 열정적인 청년이 신분 상승이라는 야심을 야무지게 품고
경탄할 만한 의지력과 추진력 및 주류에의 적응력을 과시하면서
하나하나 목표를 이루어 가는
정형화된 패턴을 보이고 있으나,
너무도 전형적인 "권력 획득을 향한 야망" 이면엔
그도 의식하지 못한 일탈적 욕망이 같이 묻어 굴러가고 있는 것입니다.고로 여기서,
"레날 부인 유혹" 사건이나
상관의 딸임을 아는 상태에서 마틸드에게 접근하는 등의 행위가
과연 비난받을 만한 일이며 진정 일방적 매도의 대상인가를,
따로 떼어 논의하는 것은 무의미해집니다.
그것이 사랑이었냐 아니냐
출세를 위한 수단이었냐 출세 후의 프리미엄이냐 등을
따지는 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여성에 대한 사랑 혹은 그와 비슷한 다양한 애정 행각이 성적 쾌락의 합법적 교두보임을
일단 기정사실로 하고
"사랑"이란 이데올로기 또한 관념화된 욕망의 일개 부분에 불과하다고 본다면,
줄리엥이
자신의 만개한 성적 매력과 - 자신감의 원천인 - 사회적 능력을 미끼로
그녀들에게 노골적인 유혹을 쏟아부을 수 있는
그 자체가 곧,
시장과 후작이 상징하는 "공인된 거대 욕망계"가 "포육하는 구성원"에게 기특하다고 베푸는
일종의 포상인 것입니다.
하지만
채찍 없는 당근은 여기까지였습니다.
줄리엥 특유의 "상처 입은 무의식"에서 새록새록 돋아난
퇴행성 "사랑"염(炎)은
견고한 그물망에 흠집을 내어 "집합 내면"의 자체 검열 기능을 망가뜨리고
급기야,
다듬어진 관념을 비웃으며 반(反) 규범적 욕구 분출을 극한까지 밀어붙였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반듯한(?) 욕망의 격자 아래 기생하는 혼탁한 무정형(無定形)의 사념 (애증, 분노, 시기, 질투, 절망 등등..)이
"가뜩이나 영민함의 약발이 사라져 가고 있던" 줄리엥을 거미줄처럼 옭아매어
그를 사면초가의 수렁에 몰아넣고 파멸의 수순을 밟게 하였으니..
하인과 레날 부인의 밀고로 대변되는 "사념의 거미줄"은,
억압을 매개로 명맥을 유지하는 "욕망 격자"가 안고 갈 수밖에 없는
(무의식의 배설 메커니즘이 가지는) 하부 구조입니다.
이렇듯,
집단 욕망의 상하 "이중 그물망"이, 전리층처럼 대기권에 견고히 깔려
그 아래 살아가는 인간 개개인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치며
각자의 불완전한 의식 속에
"개인의 욕망"이라는 허상을 강력히 심어놓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중력이 형성된 순간부터
애초에 순전한 개인적 욕망이란 존재하지 않았으며 존재할 수도 없었음을 의미합니다.
중력을 초월하는 초인이 다시금 나오지 않는 이상,
인간은 영원히 집단 무의식에 매몰되어 "순수 욕망"을 저당 잡힌 채
사이비 "개인 욕망"에 순응하며 살아갈 것입니다.
(일탈로 인한 파멸이든, 상처뿐인 저항이든
끝없는 아나키즘의 향연이든, 안정 지향의 체제 옹호주의든 간에
이것들은 모두,
"가짜 개인"의 "가짜 의지"에 순응하는바보들의 불꽃놀이일 뿐...)
욕망 격자의 정보 속에 포함되지 않는 "독보적 욕망"을
창조할 줄 아는 초월자만이
순수 의지로써 이것을 다스리거나 활용할 수 있으며,욕망이 개인을 빚어내는 뒤집어진 세상에서는,
무의식의 그물망을 떠도는 (유령과 같은) "불특정한 의지"가 "빚어진 주인"을 골라 위협하는
주객전도의 세상에서는,처음부터
"다스려질 욕망"도 "다스릴 의지"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저,
"욕망의 허상"과 "의지의 허상"이 맞물려 돌아가면서
인간의 삶에
저주받은 "편의(?)"를 제공할 따름입니다.
본질이 이러할진대,"욕망 (적)은 의지 (흑)으로 다스릴 수 있는가"라는 질문 자체가 성립할 수 없음인데,
어찌
다스릴 수 있다 없다 왈가왈부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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