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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천국을 거니는 고독 2상념 소용돌이 (상준 외전) 2024. 1. 1. 17:58
(4)
길을 걸으면 하늘 끝이 코에 걸리네요.
하늘 끝에는 아이를 잡아끄는 손이 있네요.
태어남이 없는 곳에 숨어 아이를 부르는 소리가 있습니다.
혼자인 아이의 고단함이 끌리는 음률이네요.
리듬에 배인 그녀의 기침을 온전한 그녀라 믿고 아이는 멜로디를 만듭니다.
선율이 좋아 선율에 미치면 아이는 그녀를 잊지만
아이의 멜로디에서 그녀의 체취가 나네요.
그녀를 부정하고 화음에만 매달려도 그 속에는 그녀의 미열이 있네요.
고단함을 이끌고 기침과 체취와 미열이 모퉁이를 돌면
귀 막은 첨탑들의 야단스런 웅크림 위에서 하늘의 끝이 내려와
혼자인 아이의 코를 간질입니다. 아이의 시원한 재채기가 하늘 끝 너머로 퍼질 수 있게.(5)
그녀를 사랑한다면 시를 써도 시인이 아닙니다.
"유치하지 않고 완성도 높은" 문학은 그녀를 사랑할 수 없습니다.
창조의 격정이 세포 하나하나 소용돌이쳐 지고(至高)의 감동을 발산하는 작품이 나오면
그것은 그녀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미치게 쓰고 싶어 게걸스레 쏟아내도 유색의 향기는 유색의 그녀들만 낚을 뿐
시인의 작품은, 그녀를 외면하는 구애의 한 송이. 시들어 소멸할 수천수만의 핏빛 한 송이들.
그녀를 사랑하지 않고는 시를 쓰지 못하기에 그녀를 사랑하기로 선택하는 존재가 시인입니다.
그러나 그녀를 진실로 사랑한다면, 시가 써져도 그는 시인이 아닙니다.
그녀를 사랑하도록 정해진 인생은, 시인의 삶이 아니요 "그녀를 닮은 시" 자체입니다.
그녀를 향한 태생적 사랑은, 그녀를 추구하는 시인이 되지 않고, 그녀를 표현하는 시로 남지요.
그녀를 떠나면 아무것도 아닌, 그녀의 품에서만 시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녀를 뒤에 두고 홀로 하는 애착이 불멸의 시인을 박제합니다.
그녀와 함께하는 강렬한 모티브여야 시는 환생하여 진화합니다.
슬픔이 행복을 시샘하지 못하게
기쁨이 불행을 업신여기지 않게
그녀의 사랑이 잠시 시간을 재우면,
무한의 잠시를 살뜰히 부유하던 시는
활짝 열린 그녀를 품고 지순한 서글픔이 됩니다. 그렇게 다시 시간을 깨울 준비를 합니다.
(6)
몇백 번을 죽었다 깨도 시가 되진 못할 그릇이
지난 시절 "내가 따라갈 시인"을 찾았다면, 지금은
나와 같은 말을 하는 시인을 기다리겠습니다. 그의 시가 나의 말이어서 우선은 기쁘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나의 맥박과 일치할 백발의 호흡을 향해 손짓하겠습니다
시인을 말하는 시가 나를 가리키는 날에
시인은 두꺼운 돋보기로 나의 시를 쫓지 않아도 되도록.
지금의 시대에는
그녀를 만나려고 서두르는 노쇠함이 시인을 두르고 급히들 단장하지만
앞으로는, 나를 입은 청정한 시가 노쇠한 신(神)들을 안고 "널리 읽힐 그녀"를 천천히 기다리는
시대가 도래한답니다.
(7)
"볕이 좋은 친구"만큼 커지는 너.
"어둠이 싫은 두려움"만큼 커지는 너.
"볕이 벗긴 몸"을 훔쳐보는 수줍음만큼 커지는 너.
달이 해를 가리는 낮,
호기심 많은 내가 소멸의 기쁨에 오줌을 지릴 때
"벗은 몸의 천식(喘息)이 걱정되는" 친구의 기도만큼 커지는 너..
[그림자가 나를 따르는 걸까 내가 그림자를 따르는 걸까]
(8)
지금의 그대는 "먼 훗날 누군가"의 추억인지도 모르겠어요.
누군가의 추억은 얼마나 곱기에 그대가 있는 것일까요.
내게 소중한 선물은, 그 누군가의 추억이면 충분합니다.
그대의 추억이 나를 빚었습니다.
내가 본 모든 것과 내가 볼 모든 것이, 그대 추억의 일부입니다.
내 삶은
그대의 추억이 이끄는 대로 움직여, 그대 추억의 가장 아끼는 순간까지 나아가겠지요..
[동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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