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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또 다른 세상 속으로Letters to D.J. (지수 외전)/SUPERMAN 2022. 10. 14. 14:16
Another stories of Jisoos in parallel universes : 1. Superman (원본) (13)
두 번째 소절이 시작되려고 합니다. 노래가 들려오던 시점에서 일 절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저 우주에서 이 우주로 날아온 셈이네요.
정신이 멍해질 정도로 증폭되어 가던 소음은 어느새 적당히 쿵쾅거리는 비트로 바뀌어 있습니다. 아마도 목적지 아니 목표 대상에 무사히 도착한 것을 알리는 변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인지 그녀인지는 곧 알게 되겠지만 분신의 영혼이라 특별한 거부 반응이 없고 스무스한 것이 좋네요. 백회로 진입하여 가슴 차크라에 안착하는 느낌이 이제는 생소하거나 이상야릇하지 않습니다. 꼴에 처음이 아니라고 제법 익숙해진 모양입니다.
이 자의 귀를 통해 듣는 "정수라의 슈퍼맨"은 나의 영혼으로 온전히 받아들일 때보다 거칠게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 막연하지가 않고 이제는 인과 관계가 뚜렷한 소리로 인증 되고 있어서 조금은 마음 편히 그녀의 시원한 가창력을 음미할 수 있을듯 합니다.
대형 스크린 양옆 벽에 달린 큼직한 스피커가, 우주에서 들리던 소리의 진원지였습니다. 거대한 격자라는 것도 대단한 관문인 줄 알았는데 그냥 스피커 망일뿐이었네요. 튠 홀의 최종 출구가 저 투박한 스피커였다니 왠지 좀 허탈해지는데요. 그건 그렇고 이 상념계의 시작은 영화관이로군요. 여기가 극장 안이고 수퍼맨과 연관된 노래가 흐르고 있다면.. 현재 슈퍼맨이 상영되고 있다는 건가.
이 몸의 주인은 주의가 산만한가 봅니다. 시야가 스크린으로 고정되지 않아 무슨 영화인지 확인하기가 여간 어렵지가 않네요.
에휴 겨우 알았습니다. 크리스토퍼 리브의 슈퍼맨이 맞는 것 같아요. 아니 그런데 이건 뭐 국산 만화 영화도 아니고 촌스럽게시리 상영 중간에 한국 노래가 웬 말입니까? 비싸게 수입해 와서 이런 장난을 치면 관객들이 항의 안 할까 모르겠네.. 이 영화가 극장에서 틀어질 시기면 대략 언제인지가 나오는데, 아무리 이 십여 년 전이라지만 이걸 허용한다고? 제가 태어날 때 즈음이군요. 당시 우리나라에선 저러지 않았던 걸로 아는데.. 역시 이래서 상념계?
여기 우리나라 맞긴 맞는 건가? 아이고, 주위에 사람은 왜 이리 많은지 아주 빽빽하네요. 한창 상영 중인데도 내부는 웅성웅성, 시끌시끌. 아이 울음소리에, 군것질 사고파는 소리까지 원..
경상도 사투리가 들리는 걸 보니 확실히 한국이긴 하네.
와아 뭐야 사람들, 다 서 있잖아! 영화관 이거 개념 없구만. 자리가 찼으면 매진이지 입석은 또 뭐야. 통로고 계단이고 발 디딜 틈이 없네. 우욱 담배 냄새. 그 와중에 천장까지 연기가 자욱하구만. 불이 나도 모르겠어. 여기가 대체 도떼기시장인지 영화관인지..
관리가 전혀 안 돼 있는 삼류 극장이란 게 바로 이런 데였어.
저는 가 본 적 없고 말로만 들었었는데 결국 이렇게 체험하게 되는군요. 이 퀴퀴하고 시큼한 냄새는 뭐람. 사람들 등이 다 젖어 있네. 땀 냄새였어. 이런 극장이 겨울이라고 난방 빵빵하게 가동할 리는 없고. 바깥이 푹푹 찌는 여름이란 건 안 봐도 비디오. 극장 안이 이리 후끈한데 에어컨도 안 트네요.
극장주도 참.. 이러고 떼돈 벌어서 빌딩 샀겠지 양심도 없어. 벽에 고작 몇 개 달린 선풍기라도 돌아가니 그나마 양호한 것인가. 선풍기? 너무하네 냉방 시설이 아예 갖춰지지 않았단 얘기네.
설마 촌구석 허름한 극장은 아니겠지요. 이러면 당연히 개봉관은 아니고 여기까지 슈퍼맨이 내려왔다는 건 80년대 초? 아 이런 계산은 부질없나. 평행 우주의 시간표가 내가 사는 세상과 같다는 보장은 없으니.. 어 저거?
슈퍼맨이 안고 있는 저 아이.. 소영이다! 소영이가 어떻게 영화 속에 있는 거지? 내가 조금 전까지 보고 온 그 모습 그대로네, 머리 모양이며 옷도 다 그대로고. 상념계라는 걸 감안하더라도 혼란스러운 건 어쩔 수 없구나. 이곳에선 저 아이가 교포 아역 배우라도 된단 말인가. 슈퍼맨 1탄에 동양인 아이가 등장하다니..
그리고 또? 저 공간은..
그 국민학교구나! 저 폐허가 된 광경!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다. 어떻게 저럴 수 있지? 다른 것을 찾는 게 더 어려워. 슈퍼맨이 하립님이 아니고 크리스 리브라는 게 큰 차이이긴 하지. 음..
또 하나 찾았다. 여기선 거인은 아니구나. 보통의 어른 크기야. 그래 이래야 영화답지. 소영이를 운동장에 내려놓고..
악! 내 옆에 내려놓네. 저건 나의 분신, 어린 지수!
내가 다녀온 그 세상이 영화 속에서 재생되고 있습니다. 세트로 재현해 낸 수준이 아니라 그냥 그 세계가 영화 속으로 들어와 앉았어요. 내가 바로 그 현장에 있던 증인인데..
온몸에 아니 영혼에 닭살이 쫘악.
리처드 도너가 여기서도 감독일까요? 아니면 누가 이렇게 희한한 영화를 만든 걸까요. 저게 영화가 맞긴 한 걸까요?
다시 하늘로 날아올라 박진감 넘치는 싸움이 시작 됩니다. 이건 다시 영화답군요. 기존의 영화처럼 특수 효과를 적절히 섞어 아주 스케일 있게 잘 찍은 장면이네요. 이것마저 실재를 옮겨 놓았다면 너무 심심해서 흥행에는 치명적 장애 요인이 되었을 겁니다. 두 거인이 공중에 뜬 채로 정신감응을 주고받는 게 전부라면 거의 다큐일 텐데 무슨 재미가 있겠습니까.
아, 저 검은 마스터의 모습은 붕어빵입니다. 심지어 얼굴도 흡사합니다. 저 우주에서는 4차원의 마스터인데 이 우주에서는 조연급 배우에 불과한 것일까요.
아까 했던 말 정정해야겠습니다. 이런 괴이한 영화라면야 정수라의 노래가 정식으로 OST에 포함될 가능성 정도는 널럴하고도 남겠지요. 극장 꼴을 봐선 이 당시 우리나라의 위상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공동 제작할 단계는 아닌듯하지만 그래도 또 모르죠. 여긴 워낙 이상한 세상 같으니까요. 느낌이 좀 싸하네요. 역사가 괴상하게 흐르는 세계라면 우리나라인들 온전할 리 있겠습니까.
그런데, 저쪽 시공에 있을 때 천상의 나팔 소리처럼 하늘을 뒤덮던 존 윌리엄스의 테마곡 말입니다. 그것도 설마 이 극장 저 스피커에서 흘러나온 걸까요. 아니면 또 다른 타겟 시공에서 날아온 걸까요. 하아, 머릿속에 안개가 들어찬 것 같아요. 모든 게 의문투성이입니다. 제 생각이 꼬일 때마다 묻기 전에 풀어주던 저들의 센스는 어디 갔는지 아직까지 잠잠하기만 합니다. 한가로이 일문일답이나 하고 있을 상황이 아니라서?
지난번과는 달리 이곳의 사건은 더 긴박하게 진행되는 것일까요.
엄청난 굉음과 폭발, 전대미문의 대참사는 참혹하기는 하나 배경이 그러했다는 것이고, 분신에게 발생한 사건 아니 제가 겪은 체험은 비록 놀랄만한 임펙트로 다가오긴 하였지만 비교적 단편적인 것도 사실이었죠. 그러나 여기는..
제가 봐야 할 것들이 만만치 않을 거라는 예감이 강하게 듭니다. 더 복잡한 무언가가 이 분신의 운명을 파고들어 괴롭힐 것 같습니다.
의식의 흐름 대로 상념에 휘둘리다 보니 제일 먼저 파악해야 할 것을 잊고 있었네요. 이 상념계의 분신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제 또래와 비슷하거나 두세 살 위로 보이는 젊은 청년이었습니다. 왜소해 보이는 체구하며 더 설명할 것 없이 그냥 지금의 제 모습 그대로입니다. 유별난 행색의 낯선 외형일까 봐 조마조마했는데 지난번 어린 저의 모습이 오히려 특이할 만큼 위화감이 제로더군요. 외계인으로 등장하는 극단적 상상도 하던 터라 다소 김빠지는 안정감을 느끼면서도 마냥 안심할 수만은 없었습니다. 무언가 기분 나쁜 불안감이 더러운 극장 바닥을 스멀스멀 기어 다니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잠시 동안은 이 분신의 시점에서 상황이 어찌 돌아가는 것인지 관찰해 봐야겠습니다. 이 청년의 심상치 않은 심리적 파장이 제 영혼에 고스란히 전해져옴을 떨쳐낼 수가 없어서요.
겨우 따돌리긴 했는데 정말 따돌린 게 맞는 걸까. 놈들이 쉽게 물러날 리가 없는데..
놈들의 차가 사라지는 걸 보고 들어왔으니 별 탈은 없겠지. 도보로 미행하는 놈들도 시야에 들어오기 전이었고..
휴우 아슬아슬했다. 간발의 차이로 붙잡혀 끌려가는 일은 정말이지 못 할 짓이야. 이 번에 잡히면 다시는 빠져나오기 힘들 거야.
좀 더 조심해야 했는데 이런 바보 같은 놈.. 다 내 탓이야. 내가 너무 부주의했어. 여길 무사히 나가게 되면 지금까지의 루트는 다 백지화해야지. 현재의 인원도 교체하고 새롭게 판을 다시 짜야겠어. 부족하지 않게 지원을 받으려면 되도록 빨리 우리 구역 청령 대원님과도 접선해야 해. 사태의 심각성을 잘 아실 테니 건의하면 신속히 집행해 주실 거야.
아직은 위험하고, 영화가 끝날 때 인파에 섞여 움직이자. 뿔뿔이 흩어진 다른 동지들도 잡히지 말아야 할 텐데 놈들을 잘 피했나 모르겠군. 젠장 지금쯤 아지트는 쑥대밭이 되어 있겠지.
에이 빌어먹을, 저따위 좆같은 영화 뭐가 재밌다고..
상영한지가 벌써 2년이 다 되어 가는데 아직도 이렇게 만원사례라니! 대체 간판은 언제 완전히 내리려는지..
관객 수 이 천만이 넘었으면 볼 사람은 다 봤단 얘긴데 정말 소문 대로 국민들을 전부 보게 할 속셈인가.
표값부터 다른 영화들의 두 배가 넘으니 흥행 수익도 어마어마하겠지 물론 국고로 거의 다 귀속될 테지만.
과다 투자했다는 제작비는 회수하고도 그 이상 남았을 것이고..
엘리트 놈들 한반도에 눌러앉아 직접 통치하더니만 돈맛도 알고 탐욕스런 인간 지배층과 다를 게 없어져 버렸군.
필름 조직에 마인드 컨트롤과 세뇌를 야기하는 외계 성분이 결합되어 있다고 아무리 알려봤자 유언비어 취급이나 당하고.. 이 우매한 민족을 어찌 한단 말인가. 저 슈퍼맨 영화를 보면 마인드컨트롤에 단단히 걸려들어 돈을 빌려서라도 몇 번씩 반복 관람하게 되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볼 것을 강력 권유한다는데.
일루미나티 미국 지부와의 합작인 이 영화, 국가 차원에서 케랄터 행성을 노골적으로 선전하고 미화하는 이 영화, 참으로 징글징글하네. 우리나라 가수를 영화 음악에 강제 참여 시켜놓고 낯간지럽게 세계 진출이다 국위선양이다 열을 올리며 광고하고 있으니 참나, 웃어야 할지..
소수 권력층과 부유한 계층에게나 기쁜 뉴스. 저들만의 리그.
십 초 이상 화면을 쳐다보지 말라고 거듭 주의를 주긴 했는데, 얘가 잘 지키고 있으려나. 사람들 사이에 꼭꼭 숨으라 했더니 너무 꼭꼭 숨었잖아!
"정연아 어딨어? 정연아!?"
웬만큼 크게 지르지 않으면 들리지도 않겠군.
끄응, 한 발짝 디디기도 이렇게 험난한데 얘를 어디서 찾나..
아야! 어떤 새끼가 발을 밟아!?
아 죄송합니다. 앞에 일행이 있어서..
좀 지나갈게요.
정연아 내 말 들리면 대답해! 나 뒤에 있으니까 여기로 와.
응 오빠, 나 여기 있어. 근데 움직일 수가 없어. 오빠가 와 줘..
거 좀 조용히 좀 합시다! 젊은 사람들이 매너가 없구먼.
이봐 당신 소리가 더 커! 편하게 앉아서 본다고 유세야 뭐야?!
뭐라고? 이 양반이??
아 씨발.. 더럽게 시끄럽네. 가뜩이나 쪼맨한 얼라들 난리법석으로 집중이 안 되는 판에..
이럴 거면 둘 다 나가슈!
이크, 최대한 작게 외친 건데.. 아저씨들 예민하시네 이러다 싸움 나겠어.
여기에 이목이 집중돼 봤자 우리에게 득 될 건 없으니 무리해서라도 정연이 있는 곳으로 이동하자. 생각보다 가까운 데 있어서 다행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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