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 안티 인디고 1Letters to D.J. (지수 외전)/SUPERMAN 2022. 10. 17. 15:11
Another stories of Jisoos in parallel universes : 1. Superman (원본) (14)
이 친구 도대체 뭔 일을 저지른 거야? 어떤 곳인지도 모르는 세상에 떨어져서 가뜩이나 불안하고 피곤한데 얘는 왜 한 술 더 뜨고 이러는 걸까. 첩보 영화 찍는 것도 아니고 꼭 이렇게 나까지 덩달아 긴장을 타야 하는 건가.
그리고 나한테야 불가사의한 현상이지만 이곳 사람들에겐 그저 슈퍼맨 영화일 뿐인데, 뭐가 어떻다고? 이 친구 이야기가 맞다면 여긴 지독한 전체주의 국가다 이거네. 전두환 독재가 아니라 외계인 독재? 기가 막힐 노릇이군. 연타석으로 외계인 커넥션에 시달려야 하다니 이건 무슨 놈의 팔자인가.
정연은 또 누구야 이 친구 여친? 애인? 둘 중에 뭐든, 스토커 짓의 막장을 달리다 이 사달이 난 나보다는 낫군. 물론 둘 다 아닐 수도 있겠지만..
오 이건 또 뭐지? 이 여자를 생각하니까 이 여자의 생각이 나에게 몰려오네? 아니 내가 그녀의 상념 속으로 밀려 들어가고 있는 것 같다. 단순한 정신 감응이 아니야. 이 친구의 오감을 내 것처럼 느끼듯이 그녀의 오감도 내게로 다 전해지고 있어! 그녀에게 워크 인 (WALK IN) 한 것도 아닌데.. 나의 아우라가 확장하여 그녀의 것에 입체적으로 접속하는 느낌이랄까.
이것이 생령이 득하는, 매우 순한 맛의 해탈이란 걸까.
아니면 상념계 속 인물들은 모두 상념체와 연동해야 하는 태생적 한계를 지니고 있기에, 영적 데이터가 항시 세팅되어져 있는 것일까. 내가 언제든 실시간으로 스캔할 수 있게 말이다.
전자면 능력의 향상이고 후자면 새로운 발견이겠군. 어느 쪽이던 내 의식의 지평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겠지. 첫 번째 방문한 시공에서의 체험과는 확실히 달라. 어쨌든 이 현격한 차이가 내 영혼의 업그레이드였으면 좋겠어.
음, 저 여자가 처한 상황도 한가로운 편은 아니네. 이제부턴 정연의 시점에서..
앗! 이 정연이 그 정연이네? 나 의대 다닐 때 소개팅이었나 하여튼 몇 번 만났던 그 애 맞네. 큰 임팩트 없이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었는데 여기서도 딱 그 정도 비중? 은 아니 것 같고..
둘이 학생 운동이라도 하나?
아, 이곳의 지수는 정녕 괜찮은 놈인 것인가. 부잣집 아들이란 거 빼고는 변변한 구석도 없는 주제에 성격 특이하고 이기적이기까지 한 내가 평행 우주 분신에게조차 자격지심을 가지게 된다면 이건 아주 최악이겠는걸. 해탈과는 정반대의 마음 씀씀이, 조심하자. 다 된 밥에 재 뿌리기 싫으면, 후우, 평정 또 평정!
영화관 통로가 만원 버스 같아. 속된 말로 사람들이 이 영화에 환장하지 않고선 이럴 수가 없어. 스크린만 안 쳐다보면 될 줄 알았는데 귀로 들리는 소리가 호기심을 너무 자극해. 아아 보고 싶어진다. 설마 음향 효과나 배경 음악에도 뭔 짓을 해놓은 건 아니겠지. 그러고도 남을 자들이라 안심할 수가 없어.
주의하자. 임무도 마무리 짓지 않았는데 여기서 좀비처럼 멍하게 있으면 안 돼. 앞사람들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아서 차라리 다행이야. 그런데 조금 전부터 이 더러운 기분은 뭐지?
아무리 사람이 많다지만 필요 이상으로 바싹 붙어 있네. 치한이 분명해. 고등학교 때 통학 버스 안에서 당한 이후로 처음이야. 그때 겪었던 악몽 같은 일이 지금 반복되고 있구나. 만원 극장 안에서 인파를 방패 삼아 이 짓을 하는 상습범이겠지. 이놈의 짓거리가 영화의 유혹을 거부하는 데 도움이 되긴 하지만 이런 식은 정말 아니야.
엉덩이 사이에서 묵직하고 뭉클한 게 느껴져. 너무 싫다. 청바지를 입어서 망정이지 치마였다면..
으으 상상을 말자. 어맛 이 새끼가 정말..?
허리에 팔을 두르고 있어. 귓가에 뜨거운 바람은 또 뭐야. 대담한 놈이네. 이놈은 뭔데 저 영화에 빠져들지 않는 거지? 변태적 성 욕구가 얼마나 세면 케랄터 지도부의 세뇌 공작도 무용지물로 만드는 것일까. 그게 가능하다고? 아니면..
하여간 무슨 수를 써야 하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아. 왜 이러지? 가슴에까지 손길이 닿았는데도 온몸이 굳어서 움직여지지가 않아. 이대로 두었다간 어떤 추잡한 짓도 행동으로 옮길 놈이다. 소리를 질러버릴까. 하필 전투 씬이라 스피커 소음이 장난 아닌데 묻혀버리면 어쩌지. 그래도 명색이 여자의 비명인데 최대한 하이톤으로 지르면 이목을 끌기에는 문제가 없을 거야.
아아 그치만 혀까지 굳는 것 같아. 이러는 나 자신이 한심해. 왜 이러는 거니 대체. 죽을까 봐 두려워서? 인의 장막에 갇힌 이런 환경에서 성적 노리개가 발버둥 친다고 죽여버린다? 단단히 미친놈이 아니고서야 그럴 확률 거의 제로에 수렴하는데 뭐가 두려워 이 못난 년아.
그러나 이놈이 바로 그 미친놈이라면..
제 딴엔 여자의 심리를 꿰뚫는다고 자신만만해 하던 놈이 본인의 예상과 다르게 나오는 여자를 잘못 건드렸다가 당황한 나머지 우발적으로..? 또는, 치한 주제에 치욕은 못 견딜 만큼 자존심이 쎄서, 항상 완전범죄를 꿈꾸지만 만에 하나 거사(?)가 틀어지면 소지하고 있던 흉기로 자해를 빙자 너 죽고 나 살자?
여자의 반격을 무서워하는 대다수의 어리석고 소심한 놈들 틈에 그러한 별종이 끼어 있을까 봐, 0.1프로도 안 될 확률이 하필 자기에게 백 프로로 다가올까 봐, 피해자들은 대부분 머릿속이 하얘지고 심신이 마비되는 것일까 나처럼 이렇게.
아악, 놈의 손가락이 입속에 들어왔다. 다른 손으론 가슴을 주무른다. 더러운 판타지를 어디까지 실현하려는 거야!? 불결한 손가락으로 혀를 만지고 있어. 지금이 기회야! 지금 깨물어 버려야 돼. 나의 이성은 이렇듯 정상 작동하는데 이 바보 같은 감정이 말썽이네. 왜 안 깨물어지는 거야 왜!
여기 네 편은 없어. 그러니 앙탈 부릴 생각은 꿈도 꾸지 마. 넌 지금부터 나의 일행이고 내 애인이야. 네가 아무리 일을 크게 만들어도 그건 우리의 사랑싸움일 뿐이라고. 네 말 믿어줄 사람 아무도 없어. 그리고 더 중요한 게 뭔지 알아? 사람들은 지금 영화 보는 것 외엔 관심이 없어. 네가 시끄럽게 해봤자 너만 손해란 얘기지. 넌 그저 감상을 방해하는 불청객에 불과할 테니까. 자아 내 사랑 애먼 데 힘 빼지 말고 극장 데이트나 마저 즐겨보자고. 후우.
귀에 침은 왜 묻히는 거야. 아, 무서운데 존나 더러워.
이 자식 대충 웅얼거리는데도 무슨 말인지 쏙쏙 들어오네. 기분 나빠 죽겠어. 그리고 이 새끼 얘기가 틀린 게 하나 없다는 것이 짜증 나.
어? 그런데 어떻게 아는 거지? 놈도 이 영화의 비밀을 아는 눈치인데? 이놈 보통의 변태 놈이 아닌가 봐. 역시 내 촉이 맞았어. 이놈도 나와 같은 부류인 게 틀림없어.
이 내막을 알고 있는 자들은 두 부류뿐이지. 지수처럼 빛 존재와 연계된 저항 조직에 몸담은 사람들, 그리고 나처럼 케랄터 엘리트 집단의 앞잡이로 육성된 혼종들.
이런 짓을 하는 놈이 레지스탕스일 린 없고 분명 외계인의 씨로 잉태된 혼종 놈일 테지. 혼종들 가운데 심심찮은 비율로 미치광이 사이코패스가 튀어나와 사회를 어지럽힌다고 하던데.. 이 때문에 엘리트 지도부도 골머리를 앓는 중이라 하고.
오래전부터 뉴스가 각종 흉포한 범죄들로 도배되는 이유도 바로 이들이 문제를 일으키는 때문이리라. 계엄에 준하는 엄격한 법률을 적용 즉결 처형으로 청소하다시피 해도 이들은 꾸역꾸역 나타나고 있으니..
식민지 공식 선언 이전에는 한반도 전역에서 가임기 여성들을 납치하여 아이를 잉태 시키고 기억을 지운 뒤 돌려보내는 사례가 빈번했었지. 식민지 건설 준비 단계에서 이종 교배 적합도 실험 명목으로 비밀리에 이렇듯 광범위하고 무분별한 시도가 횡행하였고, 그로 인하여 당시 엄청난 베이비 붐이 몰아쳤었는데, 오늘날 폭주하는 사이코 범죄자의 대부분이 그때 태어난 혼종들이라는 사실은, 준비가 부족한 채 단시간 강행된 그 실험의 끔찍한 부작용이 뒤늦게 드러난 결과이리라.
케랄터 식민 시대 2기의 막이 오르면서 행성인들은 초창기의 야만적 행위를 공식 인정하고, 이미 공론화되고 있던 혼혈종 이슈도 못 이기는 척 사실로 선언함으로써, 순혈 인간과 혼종 두 계층 간의 뿌리 깊은 대립과 차별을 오히려 더 심화하고 말았지. 그런데 소수의 이런 악랄한 범죄자들은 저 두 족속이 갈등을 겪든 말든 관심이 없어. 그들은 범죄를 즐기기 위해서라면 타겟이 인간이던 혼종이던 상관하지 않아. 어찌 보면 불쌍한 놈들이지. 본인들이 원해서 그리 태어난 것이 아닌데 공동의 적으로 낙인찍히고 따라서 즉결 처분으로 사라지면 안도하기만 할 뿐 유감을 표하는 이 아무도 없으니까. 자신을 기다리는 것이 절망과 죽음뿐이라는 걸 잘 아는 놈들이라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악마와 결탁하고 최후의 발악처럼 포악해지는 건지도 모르겠어.
여기 나를 주물럭거리는 이놈이 그 비밀 실험의 부작용인지는 확실치 않으나 그렇다 해서 지금 나에게 몹쓸 짓을 하고 있다는 이 사실이 변하지는 않아. 테러 수준의 끔찍한 일을 벌이는 흉악한 사이코패스들에 비한다면야 이놈이 하는 행위가 괴팍한 장난 정도로 치부될 수도 있겠지만, 불쾌하기 짝이 없는 색정광의 추행 또한 심각한 범죄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 이놈은 요 따위 파렴치한 짓만으로도 만족이 되는 낮은 수준의 오류 덩어리인가. 능구렁이 같은 혼종 새끼!
이놈 말대로 지금 당장은 내가 어찌할 방법이 없고 설사 신고가 가능하다 해도 이놈에게 즉결 처형이 내려질지는 미지수. 상만 씨가 이리로 곧 요원들을 보낼 테니 그때까지만 이놈이 본격적인 사이코 변태로 돌변하지 않게 적당히 장단을 맞춰주자.
그래 침착하자고. 난 일반 혼종이 아니잖아. 순수 인조 영혼을 이식받고 인공 배양기에서 급속 성장한 안티 인디고라고.
빛 존재인 인디고 크리스탈 아이들의 대항마로 선택된 고급 혼혈종이란 말이다. 엘리트 지도부의 총애를 받고 조만간 케랄터 행성으로의 유학도 예정된 나 강정연이 요까짓 시련을 버티지 못한다면 안티 인디고가 아니지.
안티 인디고의 기본 초능력만 발현된다면 이딴 놈 후려잡는 건 일도 아닌데, 발현 시점이 아직 아니라는 게 원통할 따름이다. 인간의 나약함, 여자의 나약함이 나를 짓누르고 있어 이겨내기가 너무 힘들구나. 이놈은 이제 노골적으로 내 바지 속에 손을 집어넣는데도 나는 이토록 무기력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한다니..
빨리 와라 이것들아. 왜 이리 굼떠. 작전에 혼선이 빚어지기라도 한 걸까.
좋다 이렇게 된 이상 이 자식의 얼굴이라도 봐둬야겠어. 얼마나 뻔뻔한 혼종 놈인지 뇌에 똑똑히 각인시켜놔야겠어. 그럴 리는 없겠지만 혹시 놓치게 되더라도 나중에 꼭 잡아 처넣으려면.
그래 이건 모험이다. 이놈에게 통해야 할 텐데..
위대하신 프리메이슨 마스터시여, 저에게 용기를 주소서.
** 누님, 정연이의 생각 흐름이 부자연스러웠더라도 양해 바랍니다. (제 분신 지수의 생각 또한 같은 맥락에서 많이 부자연스럽다 느끼셨을 겁니다.)
말도 안 되는 위기에 봉착하여 두려움과 당혹감에 숨이 넘어갈 지경일 텐데 저렇게 서사적인 상념을 여유작작 떠올렸다는 건 아니고요. 이 여자와 접속하는 순간 그녀의 무의식에 저장된 누적 상념 데이터가 빠르게 부팅되는 바람에 제가 그것을 극히 짧은 시간 훑었고, 본의 아니게 정연의 실시간 상념과 그것이 합쳐지면서 문어체적으로 늘어져 버린 것입니다.
이는 시간의 진행과 무관한 초시공적 사고 패턴이며 융합된 상념은 그녀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합니다. 미싱 링크가 일시적으로 연결되었다 탈락하는 상념 전환 양상이며 따라서 정연이 입장에서는 감정의 회오리와 지금 꼭 필요한 생각 그리고 곧 발휘될 찰나적인 기지만 실제로 떠올리고 있는 것이지요.
그냥 넘어가도 될 부분이지만 명철하신 누님께서 혹시나 읽기 불편하셨을까 봐 이렇게 구차한 해명을 해보았습니다. 그럼에도, 저의 글쓰기 방식이 묻어난다는 이유로, 급조한 냄새가 풀풀 난다 의심의 끈을 놓지 않으실 수 있겠지요. 누님의 입장이 되어 보면 저라도 그럴 것 같아요. 그 심정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하늘에 맹세컨대, 글이라는 특성상 저의 쿠세가 반영되고 약간의 살붙임은 있었을지언정, 결코 스토리를 지어내거나 인물들을 가공해 내지는 않았음을 약속드립니다.
아마도 제 상념에서 비롯된 영감이 돌리고 있는 평행 우주이기에 저의 분신 및 기타 상념체들의 심리 기저에는 근원적 원형으로서 제가 자리 잡고 있는 건 아닐까 조심스레 유추해 봅니다. 아울러, 이들의 잠재의식을 뒤져서 생각 데이터를 스크리닝하고 그루핑하는 주체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저이기 때문에, 이들의 사고 연속성을 훼손해가며 인위적 편집을 추가한 특정 구간은 제 입김이 묻어난 저 혼자의 독백처럼 느껴지시는 게 당연합니다.
'Letters to D.J. (지수 외전) > SUPERMAN' 카테고리의 다른 글
16. 혼종 (0) 2022.10.18 15. 안티 인디고 2 (0) 2022.10.17 13. 또 다른 세상 속으로 (1) 2022.10.14 12. 러브크래프트 (0) 2022.10.14 11. 튠 홀 (0) 2022.1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