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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2. 러브크래프트
    Letters to D.J. (지수 외전)/SUPERMAN 2022. 10. 14. 13:19

     

     

     

     

    Another stories of Jisoos in parallel universes : 1. Superman (원본) (12)

     

     

     

     

     

     

     

     

     

     

     

     

     

    저들의 텔레파시마저 중단되었고 저는 엄습하는 고독 속에서 우주의 지름길인 블랙홀과 화이트홀 그리고 암흑 에너지의 4차원 주름들을 차례로 (혹은 중첩하여) 통과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엄밀히는, 끝없이 반복되는 그것들을 튠 홀이 관통하고 있고 제 영혼은 그것 속에서 이중 캡슐 추진 방식으로 슬라이딩하였다는 표현이 더 옳겠네요.

    상념 속도라는 것이 상상을 초월하는 상상의 속도라 우주의 끝 경계면에 도달할 때까지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실 공포스러운 절대 고독을 맛볼 겨를도 없는 셈이지요. 그러나 우주의 끝을 돌파하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상념 속도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이동이 멈춘듯한 착각이 들 만큼 무한한 암흑의 허공이 펼쳐져 있을 뿐이랍니다. 즉, 속도는 줄지 않음에도 절대 공허의 공포감을 충분히 음미할 수 있을 정도로 이동 시간이 더뎌지는 것입니다.

    이를 체험할 준비가 안 된 영혼이 이와 같은 광대무변의 우주 간 영역으로 접어들게 되면 들어서자마자 곧장 패닉에 빠져버리고 말지요 저처럼 말입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제 아우라 입자의 가속화 통로가 튠홀이라는 겁니다. 정수라의 흥겨운 노래가 극한의 두려움을 약간이나마 상쇄해 주고 있었으니까요. 이마저 없었다면 저의 정신은 갈피를 못 잡고 무의식과도 같은 저 지독한 허무 속으로 흩어져 버렸을 겁니다. 물론 그 지경까지 가지 않게끔 운송자들이 조치는 해놓았겠지만서도..

     

     

    ** 누님, 저는 보았습니다! 그 무시무시한 무경계의 보이드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고 존재해서도 안 되는 영원의 흑막에, 무엇인가가 확실히 있었습니다. 육신의 눈이었다면 도저히 담아낼 수 없는, 인지가 불가능한 장면이었으나, 무한대 너머로 의식을 확장시킬 수 있다는 영혼의 상태였기에 인식하였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찰나의 해탈을 맛본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근원의 영감이 꿈틀대는 대우주의 심연 자체가 도의 현현이며 그곳에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영혼은 열반으로 물드는 것일까요. 미망에 사로잡힌 삿된 영혼은 이 창대한 공포에 금세 짓눌려버릴지언정 본인도 감당 못 할 일시적 득도의 황홀경에 압도되고 말았습니다.)

    극과 극은 이렇게 통하는가 봅니다. 실존하는 절대 공포는 인간의 미천한 환상을 깨부수는 신의 예술 작품이었습니다. 신의 상념이 이루어 놓은 실존계 영역이라서 그러한 것이 존재할 수 있었던 걸까요. 신인의 경지에 오르면 이러한 것을 상상할 수 있는 걸까요.

    그것은 맹세컨대 번개였습니다. 제 어휘 수준으로는 단연코 번개라고 밖에 묘사할 수 없으며 적어도 번개와 매우 유사한 그것은 수 백 수 천 개의 우주를 모아놓은 것보다 더 큰 규모였습니다. 초거대 우주의 번개가 번쩍하였을 때, 태양의 수 경 배보다 더 밝을 찬란한 빛이 드디어 영원을 비추게 되었을 때, 그것이 모습을 드러내었습니다.

    (흔히 번개가 번쩍하는 짧은 순간이라고 말들 하지만 이는 인간의 오감이 가지는 느낌인 것이고 여기서의 번쩍은 인간이 헤아릴 수 없는 측정치로서 신이 느끼는 짧음이며 신의 기준에서 순간이었을 겁니다. 한 인간의 평생보다 인류의 역사보다 더 긴 번쩍일지 모른다는 겁니다. 잠정적이고 불안정한 깨달음이라 해도 이럴 땐 요긴하더군요. 신의 감각으로 이 광대한 "짧은 순간"을 체험할 수 있었으니까요.)

    그것은 눈이었습니다. 사람의 눈이 아니라 짐승의 그것 같았는데, 딱히 어떤 짐승이라고 단정할 수가 없는 눈이었습니다. 공룡의 눈이 저랬을까요. 상상의 동물 중에 저런 눈이 있었을까요. 명확한 건 너무 무섭고 사나운 눈이었다는 것. 그때를 기억하면 지금도 소름이 끼칩니다. 동공은 아주 작고 홍채는 눈 전체를 거의 차지할 만큼 비정상적으로 컸는데 컬러풀한 정도가 보통의 그것을 뛰어넘어 다채롭기 그지없었습니다. 거의 무지개색으로 알록달록 빛나고 있었지요. 눈의 크기에 대해선 따로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그 안에 우주를 몇 개나 넣을지 감이 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과연 눈만 그렇게 덩그러니 떠 있었을까요? 아니지요. 그것은 신체의 일부로서 자연스럽게 위치하고 있었던 겁니다. 초우주의 번개가 비출 수 있었던 사이즈는 딱 눈까지였던 것이죠. 그것을 어떻게 파악하였냐고요? 눈알 뒤로 검은 실루엣이 어른거렸으니까요. 4차원 영역의 그 어떠한 빛도 이것의 몸집을 완벽하게 드러내는 데는 실패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후덜덜한 것은 도대체 정체가 무엇이었을까요. 판타지의 대가 러브크래프트에게 이 광경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더군요. 그는 어떤 반응을 보일지..

    영감에 민감한 작가의 상념은 일반인들의 그것보다 훨씬 구체적이고 세밀한 우주를 창조하는 원천이 된다는데, 그의 코스믹 호러가 구현해 놓은 환상계들은 대우주의 어느 위치에 현현하고 있을까요. 만약 4차원의 수준을 뛰어넘는 영역에 그의 우주들이 있다면, 저 눈의 주인은 러브크래프트의 장대한 세계관이 빚어낸 피조물이자 동시에, 그가 의식의 심연을 통해 발견한 공포의 대마왕, 어둠의 창조주일 테지요.

    그러나 그의 창작이 4차원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환상계들과 교통한 것이라면, 저 신적 존재가 속한 우주는 러브크래프트의 상상력으로도 도저히 끄집어낼 수 없는 가공할 비밀계이지 않을까요. 그렇다고 했을 때 그가 영계에서 소환되어 이 존재를 목격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소스라치게 놀라 경기를 일으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본인의 상상력 너머에 존재하는 초우주적 몬스터는 처음 보는 것이기에 너무도 두려울 테니까요. 아니면 무릎을 탁 치며 아쉬워할 수도 있겠네요. 왜 나는 저것을 상상할 수 없었던가 하면서 말이지요.

    누님, 제가 글을 쓰고 있는 이 시각까지도 그 존재는 여전히 무섭지만 또 한편으론 호기심의 대상입니다. 네에, 다른 시공으로 진입하면서 운송자들에게 당연히 물어보았지요. 그들도 모른답니다. 당신들이 모르는 것도 있냐 니까 모르는 게 더 많답니다. 그리고 스스로 깨치라네요. 대 근원과 합일하면 모르는 게 없어진다고. 해탈하면, 우주 밖의 불가사의, 차원의 비밀, 미지의 존재 등등을 모두 깨닫게 되고, 본인들의 지성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가 된다 합니다.

    마스터들은 카르마와 윤회를 초월한 존재들이긴 하나 해탈의 자격은 부여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차원 상승도 검은 섭리에 의거한 승급 시스템을 철저히 따를 뿐이고 이를 위한 본인들의 의식 확장은 빛 존재의 열반 과정과는 완전히 다른 메커니즘이랍니다. 우주 내 모든 생명체에게 (하물며 지옥계나 코어 암흑계의 구성원들에게도) 난이도의 천차만별은 있을지언정 진화와 해탈의 기회가 열려 있는 반면, 검은 섭리에 의해 선택받은 마스터 그룹은 그들의 임무 특성상 불사의 특권은 가지되 해탈의 기회는 영구 박탈이라네요.

    그래서 마스터는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보유한 생명을 존중하며, 그가 관리하는 상념 창조자를 함부로 다루지 않는 차원을 넘어 존경하고 추종하기까지 한다더군요. 우주의 스토커라고나 할까요. 그러면서도 추종 대상의 해탈은 어떻게든 막으려고 하다니 참으로 아이러니하지 않나요?

    그렇다고 이들이 내적 갈등을 겪는다는 건 아니고요. 인공지능 수준으로 감정이 절제된 종족이니까요. 저의 운송자들이 얼핏 해탈을 부추기고 독려하는 것처럼 보이나 이는 치밀하게 계산된 태도라는 것이지요. 제 영혼을 이렇듯 끌고 다니는 것이 저들의 목표를 완수할 최적의 지름길이거든요.

    저들이 안내할 시공 곳곳에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제가 현재 깨닫고 있다는 이 자체가 저의 의식 진화가 의도치 않게 진행되고 있다는 증거라는 걸 저들도 잘 알지만 그다지 개의치는 않는듯합니다. 그 정도 부작용은 감수하고 짜놓은 전략일 테니까요. 아무튼 저들 입장에서 아직까지 작전 수행에 차질이 생긴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저들의 수고가 아직은 헛되지 않고 있단 얘기죠.

    그러나 결과는 두고 봐야 아는 법. 마지막에 어느 쪽이 웃을지..

    누님도 흥미롭지 않으신가요?

     

     

    영원할 것 같은 우주간 공간이지만 영혼의 속도 앞에선 결국 맥을 못 추고 마는가 봅니다. 어느덧 타겟 시공이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속도도 속도지만, 영혼의 눈에도 보이지 않는 - 4차원 영역 고유의 - 지름길 패턴이 마치 축지법을 구사하듯, 제가 올라탄 웜홀을 목표한 시공으로 사출해 내는 양상이랍니다.

     

    (여기서 잠깐.

    시공 버블이란 표현이 그러하듯 거품처럼 엉겨서 오밀조밀 붙어 있는 우주를 저부터도 연상하였으나 이는 근원 의식의 시야로 내려다 본 거시적 조감도일 뿐, 인간의 입장에서는 위에서 얘기한 바와 같이 평행 우주 사이가 영원의 길이만큼 떨어져 있는 것. 그러므로 시공 버블 안에서 목적지 시공을 향하여 여행을 한다 할 때 우리가 어느 방향으로 가던 중간에 위치한 다른 시공들을 관통하는 일은 결코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

     

    타겟 우주의 바깥 경계면을 뚫고 진입하면 그다음부턴 일사천리지요. 은하계, 태양계, 지구의 권역을 차례로 지나면서 튠 홀은 엄청난 빛의 세례를 받게 됩니다. 단순한 태양빛은 명함도 못 내밀 만큼의 농밀한 백광이 튠홀 둘레에 또 하나의 터널을 구성하며 상념 속도를 고스란히 받아내고 있습니다.

    마스터도 낮은 차원으로의 변환과 관련된 현상이라고만 간단히 대답하고 말더군요. 조급한 듯 귀찮은 듯 성의 없는 답변으로 보아 여기서 벌어질 흥미진진한 사건에 저들의 정신이 어지간히 팔려 있는 것 같습니다. 저 역시도 불안한 긴장이 고조되고 있음을 느낍니다 정체불명의 빛에 더는 구미가 당기지 않을 만큼.

    정수라의 노래가 엄청나게 증폭하기 시작하는군요. 3차원 계 진입을 증명하는 또 다른 현상일까요. 영혼의 진동수 교란이 심해지기 때문에 나타나는 증상이라고 합니다. 다른 육신으로의 입식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신호라는 것이죠. 아 그렇군요. 이곳에서도 어김없이 저는 분신과 도킹해야 하는 신세로군요.

    오오, 거대한 격자무늬가 코앞까지 다가옵니다. 부디 이곳 세상을 맞이하는 마지막 관문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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