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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불장난지수 이야기/이상한 사춘기 2023. 5. 5. 11:29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 내가 이런 지옥에 떨어진 걸까.차라리 옥상에서 뛰어내려 버릴까..'
지수 하는 짓이 답답해 미치겠다는 듯 연거푸 두 잔을 들이켜는 민호.
인마! 나 술 취하면 무섭다!? 여기서 확 던져 버리는 수가 있어!최소한 맥주 한 병 다 까기 전엔 여기서 걸어 내려갈 꿈도 꾸지 마! 알았어?
담배연기만 푸우푸우 공중으로 뿜어대고 있던 철용이 한 마디 거든다.
쟤, 술 먹고 꼬장부리기 시작하면 나도 감당 못 한다.미스 나, 담배는 피울 줄 알아?
한 번도 안 펴 봤어.
그럼, 술은 놔두고 이거나 한번 빨아 봐라.
자신이 피우던 담배를 지수의 코앞에 들이민다.
이거 피우면 술 안 마셔도 돼?
너 하는 거 봐서..
어휴, 저 여우 같은 새끼..또 통빡 굴리네.
국민학교 때 호기심으로 제삿술 잘못 마셨다가 혼쭐난 경험은 있어도 담배를 피워 본 적은 없는지라,그저 호락호락하게 생각한 (술 안 마셔도 된다는 거짓 언질에 고무된) 지수는
그것을 입에 가져가 물고 천천히 빨아당겨 보았다.
"코로 들이쉬는 숨"을 막고 기도(氣道)를 통하여 부드럽게 연기를 흡수해야 하는데,생전 담배라는 것을 처음 빨아 보는 지수는 - 일단 위기는 벗어나고 보자는 일념으로 - 사전 지식이 전무한 상태에서
매캐하고 독한 연기를 꿀꺽 삼켜, 눈물 콧물 기침 사레 등의 합동 공격에 한참을 시달려야 했다.
어때? 피울만 하지? 하하하.
눈알이 빠질 것 같은 고통을 호소하며 바닥에 엎드려 캑캑거리는 그의 모습을 즐기면서철용이가 크게 인심이라도 쓰듯이 터무니없는 제안 한 가지를 내놓았다.
연달아서 담배 열 대만 피우면 술은 안 마시게 해 주마.
어떡할래?담배 열 대 피울래? 맥주 한 병 마실래.
빨리 정해, 미스 나!
그거 정말 공평한 방법인데요? 대장님, 헤헤헤..
지수는 눈물까지 흘려가며 통사정 해 보았지만 날을 잡아 괴롭히기로 작정한 두 녀석한테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당장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은 공포에 굴복한 그는 결국 종이컵을 잡고 말았다.
어둠이 완전히 깔려 한 치 앞도 잘 보이지 않는 깜깜한 계단을 조심스럽게 내려오고 있는 검은 형체들.
그중 더 커보이는 형체는 어깨에 무언가를 둘러메고 있다.
야, 이번엔 니가 틀렸어, 인마!이게 무슨 왕내숭이냐. 진짜로 술이 쥐약이잖아!
하아, 이 자식..
어떻게 맥주 세 잔에 꽐라가 되냐. 그것도 종이컵으로..
막 거품 물고 쓰러지던데, 이거 이대로 괜찮을까?
겁먹었니? 철용이 너답지 않게..
겁은 무슨..야, 그러는 넌 걱정도 안 되냐? 이러다 영영 안 깨어나면 어쩔래?!
넌, 술 먹으면 소심증 도지는 버릇 있구나. 쓸데없는 걱정을 다 하고..
얜 지금 심하게 취해서 곯아떨어졌을 뿐이라고. 단지 우리보다 술이 약해 이렇게 뻗은 거란 말이야.
약해도 이만저만 약해야 말이지..이러다, 사람 죽였다고 총살 당하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
에이! 재수 없는 소리 작작 해!차라리 잘 됐지 뭐.
우리의 마지막 계획이 끝장을 보려면, 이 새끼 이렇게 조용히 뻗어 있는 편이 더 낫다고.
야, 미스 나가 언젠 안 조용했냐? 우리가 하자는 대로 다 했잖아.
빨간 비디오에도 그 정도 난리 법석을 떤 녀석인데 거기 가면 어떤 난동을 부릴지, 어찌 알아?!
아하, 알았다. 그러니까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 이 얘기지?
(으이그, 이 무식이 먹여 살리는 놈아!)그게 아니고, 쥐도 구석에 몰리면 고양이를 물지 모른단 말이지, 내 말은..
하쭈, 요놈이 또 형님 말에 토 달고 있네!? 아주 재미 붙였냐?
거 참, 지금이 한가하게 말다툼이나 할 때가 아니라니깐. 빨랑 가야 될 거 아냐!
꾸물거리다 누구한테 들키기라도 하면..
알았다! 알았으니깐, 그 잘난 주둥이 그만 잠가라이!?나 열받게 하면 미스 나를 니가 업는 수가 있다!?
세 명의 철딱서니 없는 녀석들을 태운 택시가 도착한 곳은선아리 시장 입구.
철용아, 너 길 알아?
넌 잠자코 나만 따라오면 돼.한 달 전에 여기 왔었다는 말, 참말이지?
짜식이 속고만 살았나..오늘 내 덕분에 똘똘이 호강시키는 줄이나 알고 있으라구.
아니지, 엄밀히 따지자면 요 귀여운 녀석 덕분인가?
철용은 자신의 등에 업혀 축 늘어져 있는 지수의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가볍게 두드린다.
나도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 사실 좀.. 떨린다, 야.
잘난 척은 혼자 다 하는 녀석이 왠 약한 모습? 오늘 만화방에서 본 대로만 하면 돼.
으으, 상상만 해도 무진장 꼴리누나.
그나저나, 이 자식이 깨어나 줘야 만사 오케인데..
그러게.그래야 신나는 구경거리를 안 놓치고 보는 건데..
좀 어떻게.. 흔들어서라도 깨워 보자.
제자리에서 껑충껑충 뛰기도 하고 허리를 좌우로 마구 흔들어대기도 하면서 철용이는기절했는지 곯아떨어졌는지 구분이 안 가는 지수를 깨우려고 덩치에 안 맞게 촐싹거려 보았으나,
살짝 벌려진 입에서 간간이 옅은 신음만 침과 함께 새어나올 뿐
여간하여 정신 차릴 기미를 보이지 않는 그였다.
설마 하니 제깟 녀석이웬 모르는 누나가 좆대가리를 빨아 재끼는데도 태평하게 코만 골고 있겠어? 흐흐흐..
히히히..
대부분 가게 문이 닫힌 을씨년스러운 시장통을 가로지른 다음희미한 가로등만 드문드문 서 있는 으슥한 골목을 따라 오 분여를 내려가 오른쪽 모퉁이로 접어드니,
드디어..
"순진한 음탕함"을 친절하게 유혹한 최종 목적지가 - 야한 교태로 얼룩진 - 모습을 드러내었다촌스러운 분단장을 마치고 싸구려 향수 냄새를 풀풀 풍기면서
사춘기 악동들을 집어삼킬 만반의 태세를 갖춘 채.
유리 상자 같은 쇼윈도들이 길 양쪽으로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길게 늘어서 있었다.
안에선불그스름한 조명을 받아 귀신처럼 보이는 여자들이 반라에 가까운 의상을 뽐내며
무표정한 얼굴로 유리 밖 세상을 멀거니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 폼들이 하나같이
초점 없는 시선의 마네킹 그대로였다.
이야! 여기가 바로 신천지였구나.후와, 저 누나들 부라자만 차고 있네?!
저 짧은 치마는..똥꼬까지 다 보이겠다, 야. 으헤헤헤..
이런 촌닭, 침이나 닦고 말해라.여기가 그렇게 신기해?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들어가지? 어리다고 퇴짜 맞는 건 아닐까?
야, 촌티 좀 작작 내! 다 방법이 있으니깐 그만 두리번거리고..이 형님이 하는 대로만 따라 하란 말이야! 앞만 보구 똑바로 걷기만 하면 되는 거야.
경험자의 조언(?)을 받아, 민호는 자꾸 움츠러드는 가슴을 억지로 펴고 맨 앞에서 당당하게 걸어가는 듯하였으나,그럴수록 철용의 눈에는 더 우스꽝스럽고 어색하기 짝이 없는 몸짓으로만 보였다.
어머머! 어린 오빠들이 이 시간에 여긴 어쩐 일들이실까..?
얘, 이 덩치 좀 봐라. 어리긴 뭐가 어리니!오빠, 돈은 있어?
어디서 뿅 하고 나타났는지, 늘씬한 몸매를 자랑하는 아가씨 두 명이각각 민호와 철용의 팔을 붙잡고 찰거머리처럼 매달렸다.
그럼, 있고말고..
오빠들, 하고 싶어서 왔구나. 하기야 한창일 때지. 잘들 왔어.
고이면 썩기밖에 더 하겠어? 빼고 싶을 때 시원하게 빼야 건강에도 좋은 거라고요.어서 들어가자, 울 자기들..
덕지덕지 찍어 바른 두꺼운 화장발 때문에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묘령(?)의 누나들이오빠랬다가 자기랬다가 간드러진 콧소리로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녀석들의 혼을 쏙 빼놓고는
풍만한 가슴을 얼빠진 얼굴들에 들이밀다시피 치근대는 마지막 일격으로 녀석들을 완전 그로기 상태에 빠뜨려,
그녀들의 먹잇감을 연하게 녹이는 데 어렵지 않게 성공하였다. (그녀들은 프로였던 것이다.)
근데, 이 애기는 누구신가? 오빠 아들이야? 호호호!철용의 팔을 잡아끌던 여자가 그제서야 지수의 존재를 발견하고
사냥감을 확보한 사냥꾼의 느긋함으로 여유만만 농까지 던진다.
누나도 참.. 내가 그렇게 늙어 보여?!얜 내 친군데 술 몇 잔에 이 지경이 돼 버렸네?
지금쯤 깰 때가 됐거든.얘도 한 명 붙여 주세요.
호호, 물론이지.아직 꼬추도 여물지 않은 애송이 같은데.. 제대로 해낼까 몰라. 호호..
짙은 화장품 냄새에 취해 비틀대는 민호의 허리를 껴안고 키낮은 건물 안으로 끌고 들어가는 여인은 긴 생머리였다.
그 뒤를 따라, 적당히 볶은 쇼트커트의 여인이 철용이와 팔짱을 끼고허탕 친 동료들 앞에서 으스대며 개선장군처럼 신천지(?)의 동굴로 들어간다.
돈 되는 짓이면 미성년자도 가리지 않는 뻔뻔한 탐욕이
그녀들의 핫팬츠 속에서 기어나와, 반들거리는 허벅지를 타고 흘러내린다.
철용의 등에 업힌 채 얼떨결에 악(?)의 소굴로 빨려들어가 버린
지수의 운명이 자못 궁금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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