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 강제 경험지수 이야기/이상한 사춘기 2023. 3. 20. 17:09
지하는 뜻밖에 만화방이었다.
큼직한 만화 포스터가 붙어 있는 문으로 들어서자, 바깥의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게내부는 국민학생들부터 어른들에 이르기까지 사람들로 제법 붐비고 있었다.
열대여섯 평 남짓한 공간의 사방 벽에는 만화책들이 빼곡히 꽂혀 있었고, 중앙에 얼기설기 놓여 있는 낡은 소파들은독서삼매경(?)에 빠진 사람들의 엉덩이와 하나 된 지 오래였다. (들어온 사람 수에 비해 소파가 크게 부족하여,
바닥에 주저 앉은 아이들로 통로를 지나다니기가 힘들 정도였다.)
낮은 천장에 붙어 껌벅거리는 질 나쁜 형광등 세 개에만 의존하여 만화책에 코를 박고 있는 아이들 대부분의 공통점은지수처럼 안경을 쓰고 있다는 점이다.
아저씨! 저 왔어요.장사 잘 되시죠?
철용이구나.네 눈엔 이게 잘 되는 걸로 보이냐? 죽 쑤고 있다, 짜샤!
에이, 농담도..사람이 이렇게 많은데요?
이게 뭐가 많아? 너, 사람 많을 때 와 봤으면서 그런 말을 해?!
숨 쉬면 등짝에 가슴 닿을 정도는 돼야, 장사 잘 된단 소릴 할 수 있는 거란다. 알것냐?
문 옆 카운터에 앉아 TV를 보고 있던 건장한 체격의 삼십 대 아저씨에게, 철용이가 열심히 알은체를 한 것이다.
구릿빛 피부에 스포츠머리, 날카로운 눈매의 전형적인 한가락(?) 아저씨가완연한 가을인데도 반팔 티셔츠만 걸친 채 헬스로 다져진 듯한 상체를 자랑하고 있었다.
뽀빠이를 연상케 하는 양쪽 이두박근에는, 소매로부터 삐져나온 용머리와 꼬리가근육의 움직임에 따라 굼실거리고 있었는데,
아마도 몸통은 어깨에 걸쳐져 셔츠 속에서 꿈틀대고 있음이 틀림없어 보였다.
오늘은 못 보던 친구를 데려왔네?척 보니깐 공부깨나 하게 생겼구먼.
우와, 아저씨 족집게시다.
야, 요 굵은 안경알 좀 봐라. 비실비실한 체격 하며..누가 봐도 범생이 아니냐.
얜, 미스 난데요, 우리가 오늘 요 녀석 어른 좀 만들어 주려고 데려왔어요.
미스 나? 하하하.그러고 보니 예쁘장한 샌님같이 생긴 것이, 치마만 입혀 놓으면 계집애라 해도 손색없겠구나.
아저씨, 헤헤..오늘 볼 수 있죠? 헤헤..
그러엄! 언제든 준비되어 있으니깐 걱정은 붙들어 매라구.너희들까지 합치면 대충 머릿수는 맞아떨어지겠지..
자아, 좁은데 이러고들 서있지 말고 어서 들어가거라.
예!!
카운터 뒤에 달려 있는 때 묻은 커튼을 제치자, 한 사람이 겨우 다닐 수 있는 비좁은 통로가 나타났다.
미스 나, 뭐 해! 빨리 안 들어오고..
`날 어른이 되게 해 준다고? 갈수록 태산이군.불법으로 뭔가를 하는 모양인데, 이 아저씨한테 물어보기도 겁나고..
에라 모르겠다, 설마 죽이기야 하겠어?!'
사 미터쯤 지나 통로는 막혀 있었고, 우측에 위치한 (베니어합판을 오려 만든) 간이 출입문을 철용이 열었다.양쪽 통로 벽 역시 베니어합판으로 되어 있어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그냥 벽인 줄 알고 지나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앞장서 가던 그가 주저함 없이 그리로 들어가자, 도망 못 가게 뒤에서 막고 있던 민호가
머뭇거리기만 하는 지수를 기다렸다는 듯 쪽문 안으로 매몰차게 밀어 넣었다.
그곳은 세 평가량의 좁은 방이었다.
비닐 장판이 깔려있는 바닥엔, 스무 명은 족히 되어 보이는 아이들이시루 속의 콩나물 대가리처럼 꽉 들어차 꼬물거리고 있었다.
대부분 중고등학생이었지만 개중에는, 국민학교 고학년으로 보이는 애들도 더러 끼여 있는 것 같았다.
신발이 수북이 쌓여 있는 문 앞에서 반쯤 넋이 나가 있는 지수의 옆구리를 민호가 팔꿈치로 세게 쳤다.
어이, 삼천 원 내놔! 이거 구경하는 값이니깐..
여기서 영화 보는 거니?
맞아, 영화는 영화지.아주 끝내주는 영화니깐, 놓치지 말고 끝까지 봐야 한다!?
늦게 왔더니 자리가 없네..아그들아, 잠깐 자리 좀 만들어야 쓰것다.
철용이, 근처에 앉아있는 (만만해 보이는) 애들한테 눈을 부라리자,코딱지만한 면적이 금세 확보되었다.
,
곧 아저씨 들어올 거니까, 거기 그렇게 서 있지들 말고여기에 엉덩이 한쪽씩이라도 붙이고 있어라.
철용이 말대로 근육질 아저씨가 이내 들어왔고, 튼튼한 다리를 휘저어앉아 있는 아이들을 헤치면서
선반 위에 높다랗게 놓인 중고 텔레비전과 비디오 데크 쪽으로 다가갔다.
오늘은 특별히 센 걸로 준비했으니까, 한 명당 천이백 원씩 내야 한다!이의 있는 놈 있나?
불만 섞인 구시렁거림이 잠시 방 안을 돌아다닌다.
천 원 밖에 없는 사람은 어떡하나요?
같이 온 애들한테 빌려서 내!
아니면 외상으로 할 거니까, 우수리 이백 원 외상해야 하는 녀석들은 이름하고 전화번호 댄다, 알았나?!
예에!!
미스 나, 육백 원 더 내야겠다.
`이상한 영화를 틀어 주려나 보다. 나, 그런 거 보기 싫은데..도망칠 수도 없고 이를 어쩐다..?'
스무 명 가까이 되는 아이들로부터 일일이 돈을 받고, 거스름돈을 주고, 외상 장부에 기록하느라,다시 몇십 분이 속절없이 흘러갔다.
외상한 녀석들은, 삼 일 내로 갚아야 한다. 안 그러면, 집으로 전화 때릴 거야!?설마 가짜 번호 댄 녀석은 없을 테지?
혹시나 그런 놈 있으면, 동생들 풀어서 집으로 쳐들어가기 전에 지금이라도 자수해 광명 찾아라.
없나?
좋다! 한 가지 더 당부하겠는데, 매번 하는 얘기지만 너희들은 절대
우리 집에서 딸 비디오 본 일 없는 거다!? 특히 학교에서나 부모한테 입방아 찧는 일 없도록!
너희들도 이런 거 보는 재미 놓치고 싶진 않지?
예에, 예에!!
좋아, 너희들을 믿어 보겠어.그럼, 재밌게들 보도록. 이상!
근육맨의 일장 연설이 끝나고 드디어 "명작(?) 영화"가 상영되기 시작하였다.
테이프가 돌아가자마자, 발냄새와 겨드랑이 냄새로 절어 있던 방 안에여자의 것으로 추정되는 (괴성에 가까운) 신음 소리가 새롭게 차올랐다.
TV 화면에서, 벌거벗은 서양 여자와 남자가 뒤엉겨"철용이 지수를 붙잡고 강제로 시범을 보인 바 있는" 동작과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어떠냐, 미스 나. 많이 보던 장면이지?
하나도 빠뜨리지 말고 눈여겨봐 둬라. 내일부터 우리도 저대로 해볼 거니까는.. 히히.
지수는 속이 메스꺼워 화면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
어라? 이 새끼, 눈 내리까네?야! 모가지 차렷 못해?!
민호가 그의 턱을 들어 올리며 윽박지른다.
울부짖음과 흡사한 교성이 점점 톤을 높여가자, 그것에 맞추어 꼴딱꼴딱 아이들의 침 넘어가는 소리도 잦아졌다.
우람한 체격의 흑인과 백인 남자가 서로 경쟁하듯이 풍만한 "금발의 미녀"를 공략하고 있다.
어때, 좆끝이 간질간질하지?그래야 정상인 거니까 너무 놀라진 말거라이? 히히.
철용의 손이 어느새 지수의 사타구니에 닿아 있었다.
`아, 정말 싫다! 이런 분위기..얘네들은 뭐가 그리 재밌어서 저걸 돈 주고 보는 걸까.
가슴이 너무 답답하구나. 빨리 밖으로 나갔으면 좋겠는데..저 망할 놈의 비디오는 도대체 언제 끝나는 거지?'
다양한 자세를 남김없이 구사하고 있는 세 명의 남녀들.
똥개들 교미하듯 그 짓에 아주 미쳐 있다.
히야, 저 새끼들 정력 한번 끝내주네.
얀마! 저 정돈 돼야 사내 새끼랄 수 있는 거다. 알겠냐, 이년아?
민호가, 자꾸 눈을 감으려는 지수의 뒤통수를 냅다 갈겼다.
뒷골이 울리자 메스껍던 속이 더욱 울렁거리며 구토가 쏠리려 하였다.
야, 이 새꺄! 누가 내 허락도 없이 미스 나 괴롭히래!?주둥이 잠그고 저거나 봐!
철용의 서슬 퍼런 한마디에 민호는 금방 꼬랑지를 내리고 만다.
어떤 새끼들이야!!?시끄러워 집중을 할 수 없네. 한 번만 더 떠들면..
알아서들 해!
화면 근처 명당(?) 자리에 앉아 있던 고등학생 형이 뒤를 돌아보며 으름장을 놓는다.
이빨 새로 말을 잘근잘근 씹으며 이쪽을 노려보는 형상이, 영락없는 불량 청소년의 상판을 하고 있다.
가늘게 찢어진 매서운 눈매와 마주치니, 천하의 차철용도 얼른 시선을 피하여 머리를 처박고 만다.
캬아, 자세 죽여주는구나.우린 언제 저런 거 해본다냐. 저 새끼 부러워 죽겠구만..
민호가 철용의 그 소릴 놓치지 않고, 다시금 그에게 귀엣말을 건넨다. 이어서, 대단한 굿 뉴스를 들은 사람처럼철용의 (여드름에서 분출하는 개기름이 번지르르한) 얼굴엔 기름진 미소가 활짝 피어났고, 아울러
지수를 바라보는 그의 눈이 심상치 않은 빛을 발산하였다.
한편,
아이들의 붉게 달아오른 숨결이 사방 벽으로 거칠게 뿌려지고,철없는 색정들이 흥분하여 싸지르는 단내가 합판의 곰팡내와 섞여,
비위 약한 지수를 참을 수 없는 지경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어휴, 저러다 찢어질까 겁난다 야.
소리부터 달라지네. 저게 좋아서 내는 소리여, 아파서 내는 소리여?
클라이맥스로 다가서고 있는 배우들의 실감 나는 연기에 푹 빠져 침을 질질 흘리는 고삐리 문제아.몰아지경(?)에 접어들었는지 철용이와 민호가 아무리 쑥덕거려도 이제는 돌아볼 생각을 하지 않는다.
포르노 배우들의 "욕정을 부르는 합창"이 절정으로 치닫자 이것이 신호가 되어,협소한 공간 안에 자발적으로(?) 갇혀 있던 소년들 모두는
합의된 "쾌감의 끝"에 도달하게 되었고, 그중 예민한 일부는 의도치 않게 신체적 경험까지 하고 말았다.
미스 나, 저게 바로 자지가 흘리는 콧물이란다.너도 내 덕분에 여러 번 흘려 봤지? 코 풀 때마다 엄청 찌릿찌릿했을 거다.
어럽쇼?? 이 녀석 보게? 얼굴이 샛노래졌잖아..!?야, 나지수! 너 황달 있냐? 왜 그래?!
지수는 지독한 멀미와도 같은 메스꺼움을 참지 못하고 그만 방을 뛰쳐나오고 말았다.소심하기 짝이 없던 그가, 두 악동의 방해는 물론이요
옴짝달싹 못하게 하는 "인의 장막"까지 밟다시피 뚫고 달아날 만큼,
사태는 심각하였으나 이미 때는 늦어 몇 발짝 걷기도 전에목까지 치고 올라온 구토물이, 입을 가리고 있던 손가락 사이로 비집고 나왔다.
통로에 쪼그리고 앉아 위장이 뒤집어질 정도로 토하고 또 토하는 노골적인 소리에
급기야 커튼이 열리고 근육맨이 사나운 모습을 드러내었다.
뭐야!!?아니, 이 더러운 자식 보게나..
개똥 밟은 표정이 된 그가, 쪼그린 지수를 훌쩍 뛰어넘고 비디오방(?)으로 짓쳐들어왔다.
야! 차철용! 너, 그만 보고 꺼져! 어디서 저딴 새낄 데려와 골탕을 먹이는 거야?!말로 할 때, 너희 셋
비디오 끝나기 전까지 저거 깨끗하게 치워 놓고 검사 맡고 간다, 알았어??
"빨간 비디오"를 끝까지 못 보고 중간에 나와야 하는 것이 못내 아쉬운 두 녀석.
화면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시선을 억지로 떼어 내고 미적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으이씨..또 무슨 짓을 저지른 거야?!
좋아, 오늘, 날 잡았다, 그래..
야, 이 새끼야! 진정해. 물주한테 그러면 쓰나..오늘 잘만 하면 이깟 빠구리 영화가 대수겠냐?
물주는 얼어 죽을..그냥 확 빼앗아 버리면 될걸..
멍청한 놈, 난 그렇게는 못하지.미스 나를 환락의 구렁텅이로 처넣는 쾌감을 나더러 포기하라구?
걘 우리와 공범이야. 우리랑 갈 데까지 가야 한다고!
이때 어디선가 일회용 라이터가 후덥지근한 공기를 예리하게 가르며 날아오더니철용의 귀를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합판 벽에 부딪혀 둔탁한 음향과 함께 튕겨 나왔다.
야! 두 놈, 일로 튀어 와!!
문제의 그 고삐리가 (두 악동 때문인지 아니면 포르노 영화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잔뜩 상기된 얼굴로민호와 철용이를 노려본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두 녀석은 동시에 그를 향하여 90도 각도로 허리를 수그렸다.
형님! 죽을죄를 졌습니다!저희들, 잘못을 깊이 뉘우쳐 이제 그만 보고 갈랍니다, 형님.
그럼 즐거운 시간, 마저 가지십시오, 형님!헤헤헤, 이만 실례..
그러고는, 눈썹이 휘날리도록 도망치는 뚱뚱이와 홀쭉이.
그래봤자 문 열고 지수 있는 곳까지지만입을 헤벌리고 군침만 삼키는 아이들의 장벽을 믿고 모험을 걸어 본 것이다.
화면이 바뀌고, 아까의 금발보다 귀엽고 앳된 단발머리가 혼자 등장하여 야한 장난감으로 얄궂은 짓을 하는신(SCENE)이 나오자, 여느 때 같으면 지구 끝까지라도 쫓아가 두 놈을 요절내었을 양아치가
언제 뭔 일 있었냐는 듯 그녀의 관능적인 신음에 홀려 애꿎은 몸뚱이만 비비 꼬고 있다.
'지수 이야기 > 이상한 사춘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12. 불장난 (1) 2023.05.05 11. 한배를 타다 (0) 2023.04.07 9. 은밀한 타락 (0) 2023.03.07 8. 미스 나 대 미스 나 (1) 2023.02.21 7. 엉뚱한 연정(戀情) (2) 2023.0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