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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 한배를 타다
    지수 이야기/이상한 사춘기 2023. 4. 7. 13:31

     

     

     

     

     

     

     

     

     

     

     

     

     

     

     


    미스 나, 괜찮냐?

     

     

     


    신축 중인 연립주택 건물과 마주 보고 있는 그 문제의 상가 벽면에 등을 기대고

    지수는, 여러 번 한숨을 쉬며 놀란 위장을 가라앉히려 애썼다.

     

     

     

     

    사내 자슥이 그리 비위가 약해 빠져서 어따 쓰겠냐.

     

     

     


    `나보고 사내 자식이라고? 철용이 녀석, 약 먹었나..'

     

     

     


    노랗던 낯빛이 창백함으로 바뀌었으나 혈색은 좀처럼 돌아오지 않았다.

     

     

     


    너두 인제 알 거 다 아는 나이 아니냐.

    널 진짜 남자로 만들어 주려고 우리가 여기 데려온 건데, 우리 성의도 모르고..

    너 참 너무한다 야.

     

     


    미안해, 철용아.

    나도 내가 왜 이런지 모르겠어. 니들 말대로 재밌는 것 같긴 한데 (지수의 거짓말임)

    처음 보는 거라 그런지 좀 그렇더라.. 너무 충격적이고..

    솔직히, 더럽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만..

     

     

     


    철용이 그의 등을 다정(?)스럽게 두드린다.

     

     

     


    처음이면 그럴 수도 있지. 이해한다 이해해.

     

     

     


    아니꼽다는 표정으로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민호가
    철용의 천연덕스러운 연기에 쓴웃음을 짓는다.

     

     

     


    그건 그렇고, 니가 저질러 놓은 건 말끔히 치웠어?

     

     


    염려 마. 깨끗이 해놓고 나왔어.

     

     


    당연히 그래야지.

    그 아저씨 겁나게 무서운 사람이야, 재수 없게 걸리면 아작 난다고.


    저기, 미스.. 아니, 지수야.

     

     

     

     

    `얘가 또 뭘 시키려고 이러나. 을러메지 않으니깐 더 겁나잖아.'

     

     

     

     

    어쨌든, 너한테 몹쓸 짓을 한 셈이니까 사과도 할 겸 너랑 화해하고 싶은데..

     

     


    화해는 무슨..

    나, 화 안 났어.

     

     

     


    철용이 덩치답지 않게 미적거리자, 잠자코 있던 민호가 답답하단 표정으로 나선다.

     

     

     


    야, 나지수!

    우리가 널 처음 찾아왔는데, 설마 여기서 찢어질 생각은 아니지?!

     

     

     


    `평상시 같으면 지금 당장이라도 너희 놈들한테서 멀리 도망가고 싶지만,

    날이 날이니만큼 오늘은 정말 집에 일찍 들어가기가 싫다..!'

     

     

     


    그동안 우리가 많이 괴롭혀서 우리한테 쌓인 감정이 많을 거야.

     

     

     


    `얘네들 오늘 뭘 잘못 먹었나 쌍으로 이상하네?

    안 하던 짓을 갑자기 하면 뭔가 일어날 징조라던데..'

     

     

     


    아냐! 그런 거 없어. 나 괴롭히는 애들이 어디 한둘이라야 말이지 새삼스럽게 무슨..
    나 하는 짓이 놀림당할 만하니깐, 선생님들까지 놀리는 거 아니겠어?

     

     


    그래도 우리가 가장 심하게 괴롭혔잖냐.

    잘못을 반성하고, 앞으로 우리 셋 새로운 우정으로 출발하는 의미에서 조촐하게 파티라도 열고 싶은데..

     

    철용이 너도 찬성이지?

     

     

     


    교활한 민호가 응원군을 요청하는 눈짓으로 철용에게 말을 건넨다.

    그러나, 속으로 그의 즉흥적인 말발에 혀를 내두르느라 방심하던 철용은

    애드립에 약한 단순 무식함을 어쩌지 못하고 허무하게 엇박자를 놓고 만다.

     

     

     

     

    파티? 셋이서 무슨 파티??

     

     


    (하여간, 일생에 도움이 안 되는 새끼..) 말이 파티지, 근처 가게에서 먹을 것 좀 사다가 놀잔 얘기야.

    그러려면, 아무리 간단하게 한다 해도 머니가 좀 있어야 되고..

     

     


    아까 만 원 내고 남은 거스름 네가 가지고 있잖아. 그걸로 안 되니?

     

     


    그깟 오륙천 원 가지고 뭘 하냐! 턱도 없다, 야.

     

     


    그럼 어떡하지? 집에서 나올 때  만 원 밖에 안 가지고 나왔는데..

     

     


    어후, 이런 답답..

    아이큐는 전교에서 젤루 좋다는 녀석이 이럴 땐 대가리가 팍팍 안 돌아가냐?
    집에 다시 들어가서 가지고 나오면 될 거 아냐 짜샤!

     

     

     


    `그러면 그렇지, 드디어 본색을 드러내는군.'

     

     

     


    얼마면 되는데?

     

     

     


    조금 전의 실수(?)를 만회라도 하려는 듯 철용이 목소리를 높여 냉큼 대답한다.

     

     

     


    십만 원!!

     

     


    뭐?? 그렇게나 많이?

     

     


    아! 얘가 또 뒷골 땅기게 만드네..

    마! 니가 그딴 소릴 지껄이면 땅 밑으로 기어가던 땅강아지가 웃겠다.

     

     


    우리 집 돈이라고, 내가 맘대로 쓰는 건 아니라서..

     

     


    지금 우리보고 그 말을 믿으라고?

    니가 원하면 이 나라 땅 절반이라도 떼어주실 분들이 너네 부모 아니냐고!

     

    잔말 말고 빨리 집으로 가. 괜히 엉뚱한 데 통빡 굴릴 생각은 애시당초 하지 마라!?
    우리가 신사적으로 나올 때 고분고분 말 듣는 것이 니 신상에 좋을 것이야.

     

     

     

     


    두 악동의 호위(?)를 받으며 집 근처까지 온 지수,

    공중전화로 - 자신의 전용 번호를 눌러 - 자기 방에 전화를 걸자 마침 거기서 놀고 있던 조카들 중 한 명이 받는다.

     

     

     


    지순데.. 유모 아줌마 좀 빨리 바꿔 줘 봐!

     

     

     

     

     

     


    저녁 여섯 시 삼십 분경.

     


    어른들의 술자리 분위기가 한껏 무르익을 무렵, 높으신 분들 시중 들랴 저녁 준비하랴

    가정부, 집사와 더불어 정신없이 바쁜 유모가 젖은 손을 닦을 여유도 반납하고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지수야, 거기 어디야. 저녁 먹을 때 다 됐는데 그만 들어와야지. 어머니 걱정하신다.

     

     


    저녁은 친구네 집에서 먹었어.

    저어.. 부탁이 있는데요. 내 책상 맨 위 서랍 열면, 아 참, 잠겨 있지..

    저기, 큰 서랍 열어서 오른쪽 구석 깔판 밑에 보면 열쇠 있걸랑요? 그걸로 제일 위에 서랍 열면 상장들 밑에 돈 들어 있어.

    그중에서 십만 원짜리 수표 한 장만 꺼내 가지고 지금 바로 나한테 갖다 주세요. 대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빨랑 나오세요! 될 수 있으면 엄마 모르게요..

     

     


    무슨 일인데, 십만 원씩이나..

     

     


    나 바빠! 빨리요!

    전화 끊을게.

     

     

     

     


    짜식 제법인데, 이빨도 깔 줄 알고 말이지..

    너, 니 방에다 돈 깔아놓고 사냐? 그거 다 합치면 백만 원도 더 되겠다?

     

     


    아니야 그 정도는..

    용돈이랑 뭐 여기저기서 생긴 것들 틈틈이 모아 놓은 거야.

     

     


    확실히 있는 집 자식은 다르구먼. 틈틈이 꼬불쳐 둔 게 수표도 있고..

     

     

     


    근데, 너 무슨 죄 지었냐? 집엔 왜 안 들어가고 밖에서 전화질인데!?

     

     


    ................

     

     


    민호 넌, 궁금한 것도 많다.

    뻔하잖냐. 명절이라고 친척들 모여 복닥대는데 야처럼 조용한 녀석이 짜증 나것냐 안 나것냐.

     

    그렇지 미스 나?

     

     


    .................

     

     


    그렇다면 잘 됐네.

    돈도 생겼겠다 형님들이 오늘, 니 기분 팍팍 풀어 주마.

     

     

     


    남의 돈으로 생색은..


    한데 말이다, 아까 그 아줌마가 엄마 대신 널 태어났을 때부터 키워 줬다는 유모냐?

     

     

     


    시무룩한 얼굴로 고개만 끄덕이는 지수.

     

     

     


    우와, 넌 좋았겠다. 그런 이쁜 아줌마 젖도 실컷 빨아 봤을 거 아니냐.

     

     


    야, 예쁘긴 뭐가 예뻐. 날카롭게 생긴 게 성깔깨나 있어 보이더만..

     

     


    야! 권민호! 이게 보자 보자 하니까..

    너 언제부터, 나 하는 말에 고렇게 꼬박꼬박 토 달기 시작했냐? 확! 그냥!?

     

     

     


    대번에 기가 죽어 꼬리를 내리는 민호.

     

     

     


    내가 이쁘다면 이쁜 거야!

     

     


    알았어, 그래. 이쁘다 이뻐. 누가 뭐라냐?

     

     

     

     

     

     

     

     


    세 명이 도착한 곳은 아까 한바탕 생쇼를 했던 만화방. 아니, 그 만홧가게가 들앉아 있는 허름한 상가.

     

     

     


    여긴 또 왜?

    너희들.. 또 보려고?

     

     

     


    근심이 주렁주렁 달린 눈으로 지수는 두 "애 어른"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미쳤냐?!

    당분간은 여기 들어가고 싶어도 못 들어가게 됐다. 주인아저씨 오늘 받은 열 식자면 한 열흘은 걸릴 텐데

    뒈질 일 있어? 여길 또 들어가게..

    다 너 때문이야! 으이그, 이 내시 같은 자식.

     

     

     


    민호의 한 방 갈기려는 시늉에 바짝 쫄아 자라처럼 목을 움츠리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를 겨우 꺼낸다.

     

     

     


    그러.. 면, 왜...?

     

     


    야 다들 시끄럽고!

    권민호! 넌 가서 푸짐하니 좀 사와라. 요 앞 길 건너 슈퍼마켓 문 열었더라.

     

     


    으이씨..!? 니 전용 심부름꾼 놔두고 왜 날 시켜?

     

     


    어라?? 권민호, 너 많이 컸다. 나한테 막 개기고? 
    미스 나 보내면 얘가 알아서 술이랑 담배랑 참 잘도 골라 오겠다. 그치?

     

     


    저 새끼 왕내숭인 거 몰라? 아까도 야부리만 잘 털더라. 그냥 쟤한테 시켜.


    어이, 미스 나! 쩌어기 슈퍼에 가서..

     

     


    쓰읍! 맞고 갈래, 그냥 갈래?

     

     

     

    알았어! 가면 되잖아!

    야 그래도 명색이 이인잔데 저 쥐새끼 보는 앞에선 살살 좀 하자. 아오, 모양 빠지게시리..

     

    어후, 이걸 콱..

     

     

     


    두 녀석의 툭하면 벌이는 실랑이에 짓눌려 어쩔 줄 몰라하는 지수를 기어이 걷어차 버려야 직성이 풀리겠단 심보로

    민호가 공을 힘껏 차는 자세를 취해 보였다.

     

     

     


    이인자 같은 소리 하고 앉았네.

    속으론 날 차고 싶은 거지? 차 봐, 차 봐!

     

     

     


    철용이 민호 앞에 엉덩이를 들이댄다.

     

     

     


    돈은 줘야 뭘 사 오든 할 거 아니야!?

     

     


    내가 가지고 있었네? 옜다!

     

     


    이거 수푠데 바꿔 주긴 할까 몰라..

    우린 민증도 없잖냐.

     

     


    철용아, 내가 민호 따라갈게.

    만약 안 된다 하면, 우리 집 전화번호 적어 주면 되거든.

     

     


    그래? 그럼 그렇게 해라.

     

     

     


    미스 나! 너 정말, 히프 그 정도밖에 안 돌아가? 
    수퍼 주인이 너네 집으로 전화하면, 우리가 술 담배 사는 거 다 뽀록나잖아!!

     

     


    이렇게 하자.

    내가 먼저 들어가서 과자랑 음료수만 대충 사 가지고 나올 테니깐

    넌 좀 기다렸다가 현금으로 사 갖고 와.

     

     


    역시, 아이큐 150 넘는 녀석이 뭐가 달라도 다르구나.
    권민호!

    너야말로 요 딱딱한 히프에다 기름칠 좀 해야 쓰겠다.

     

     

     


    철용의 손가락이 민호의 납작한 뒤통수를 쿡쿡 찌른다.

     

     

     

    ※ 아버지 또는 친척 어르신 심부름이라 둘러대면 술 담배쯤 미성년자가 프리하게 살 수도 있던 

        기이한 시절의 이야기라는 점, 잊지 마시라..

     

     

     

     

     

     

     

     

     

     

     

     


    땅거미가 내려 어스름한  상가의 옥상.

    두 양아치 지망생들이 평소 애용하는 아지트(?)다.

     


    어디서 주워 왔는지 제법 널찍하게 깔아 놓은 신문지 위에 사 온 것들을 늘어놓고 둘러앉은 세 명은

    아니 정확히 말해 두 명은 희희낙락 연방 싱글거렸고,

    즐겁지 않은 (즐거울 리 없는) 나머지 한 명을 달래며 으르며 부추기느라 신이 나 있었다.

     

     

     

     


    어이, 미스 나. 뭐 해? 우리 대장님 술잔 비었잖아?!

     

     


    간신배 같은 놈, 빈말이라도 듣긴 좋네. 대장이라..

     

    그래, 미스 나가 찰찰 넘치게 한번 따르어 보거라.

    한 방울이라도 흘리면 이 자리에서 확 후장 따 버릴 거야!? 하하하!

     

     


    히히히..

     

     

     


    지수는 철용이 옆에 무릎 꿇고 앉아, 떨리는 손으로 맥주병을 들고 그가 내민 종이컵에 술을 따르기 시작한다.

     

     

     


    옳지, 사랑하는 만큼 꾹꾹 눌러 담아라.

    미스 나, 너두 한 잔 해야지?

     

     


    나, 술 못해. 너희들이나 많이 마셔.

     

     

     


    뭐?? 우리나 실컷 마시고 빨리 뻗으라고?

    이런 싸가지를 봤나!?

     

     


    아.. 아냐, 그런 뜻이..

    나 정말 체질적으로 술 못 마셔. 오죽하면, 엊그제 차례 지낼 때 아버지가 음복술도 못 먹게 했겠니.

     

     


    알 게 뭐야.

    그리고 이게 술이냐? 맥주가 술이야? 싸가지가 분위기 파악도 못하고..  
    좋게 말로 할 때, 우리 보는 앞에서 빨랑 마셔라이!?

     

     

     


    그래, 이 철용 님이 친히 한 잔 내릴 터이니 약 먹는 셈 치고 꼴딱 삼켜라.

     

     

     


    철용이 넘치게 따라 주어 손등으로 거품이 흘러내리는 종이컵을 하는 수 없이 입 가까이 들어 올리긴 하였으나,

    차마 입에 대지는 못하고 지수는 머뭇거리기만 하였다.

     

     

     

     

    니 기분 풀어 주려고 우리가 이렇게까지 애쓰는데, 너 자꾸 이딴 식으로 초칠 거야?

    아주 맛있다는 표정으로 단숨에 들이켜야 해?!

     

     


    그만 좀 해라.

    니 협박에 질려서 술이 제대로 목구멍 찾아 들어가겄냐?

     

     

     

     

    철용이 지수를 생각해 주는 척하며 민호를 말릴수록

    그는 시샘이라도 부리는 양 더욱 표독스럽게 지수를 닦아세웠다.

     

     

     


    이 새꺄! 술잔 앞에 놓고 시방 고사 지내지?!

    강제로 아가리에 들이붓기 전에 빨리 처마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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