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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부모
    상준 이야기/이상한 사랑 2023. 3. 3. 11:34

     

     

     

     

     

     

     

     

     

     

     

     

     

     

     

     

    상준과 연지의 꿈같은 사랑도, 아픈 현실 앞에서 난관에 봉착하고 만다.

     

     


    육 개월간의 인턴사원 기간을 마치고 이듬해 삼 월 정식 입사하게 된 상준이

    연지를 데리고 서울로 올라갔다. 부모님께 그녀를 소개하고, 결혼을 전제로 한 교제를 허락받기 위해서였다.


    연지의 부모님으로부터는 허락을 받아 놓은 상태에서 홀가분한 마음으로 그녀를 집에 데려왔으나,

    분홍빛 꿈에 부푼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예상은 했지만 이처럼 심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한,

    상준 부모의 심각한 반대였다. 

     

     


    자식을 소유물로 여기는 구태에 끔찍이 집착하고 있던 그들로선 어찌 보면 당연한 반응인지도 모른다.

     

     

     

     

     

     

     

     

     

     

     

     

     

     

    자기 자식이 세상에서 제일 잘난듯한 착각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은

    배 아파 낳은 새끼를 이뻐하지 않을 수 없는 "어미들의 선천적 본능"이라 치고 그러려니 할 수 있겠으나,

    그렇게 애지중지하는 자식이, 일찌감치 (자식의 유년 시절부터 일관되게) 제시해 놓고 강요한

    "세속의 비전"을 자꾸만 벗어나려는, 그리하여 그것에 합당치 않은 삶으로 방향을 전환하려는 태도를 보인다 해서,

    아량으로 헤아리는 시도 없이 냉혹하리 만큼 배타적인 강경 일변도를 고수하는,

    몇몇의 행태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본인들부터가,

    인류 유전(遺傳)학적 차원에서 보유하고 있는 근원적이고 3차원적인 오염 인자로 인해

    각종 편견과 타성으로 묶인, 무지와 부조리의 생물학적 총화이자, 인류사(史)적 모순의 개체형 축소판임은

    만분지일도 깨닫지 못하고,

    세속의 잣대에 불완전한 주관을 투영하여 그리고 사회 경험의 왜곡된 결실을 무기 삼아

    자식 몫의 행불행까지 자의적으로 재단하고 원천적으로 봉쇄하려 드니,

     

    그 결과 자식에게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인생의 몰개성적 황폐화"와

    (삶을 답습하는 비효율적 시행착오가 배태하는) "권태로운 회한"에 대해,

    과연 궁극적인 책임을 질 각오로 그러하는 것인지가 궁금할 따름이다.

     

     


    속물 근성에 나름대로 저항도 해본 청년기(期)가 감수해야 했던 공포와 절망, 자포자기의 곪은 상처를

    자식에게서 다시 발견할까 전전긍긍하며,

    의식 저편에 깊숙이 감추어 둔 수치심이 (기만의 유혹에 굴복하고 기만적 역사 발전에 동참한 데 대한 공범 의식과

    그로 인한 가책이) 아직은 순진한 어린 분신에게 대물림될까 봐 두려워,

     

    떳떳하지 못했던 삶임을 자식 앞에 용기 있게 고백하고

    본인을 반면교사로 삼을 기회 및 진정한 "인생의 지혜"를 전수하는,

    그렇게 자식의 주체적 행로를 존중하는

    선택지 대신,

     

    자식을 위한다는 명분 아래 일정한 방향으로만 다그치고

    사랑이란 이름으로 "융통성 있는 앞날"에 공구리 치는

    부모가,

    어디 한 둘이어야 말이지..

     

     


    그들 눈에 훤히 보인다는 "첫 단추를 잘못 끼운 자식의 비참한 미래상"이란 것도, 실은

    오염된 상념이 빚어낸 신빙성 부족한 허상일 뿐인 것을..

     

     


    부와 명예를 기반으로 한 개인의 영달만이 세속적 성공의 유일한 증표임을

    개인의 뼈아픈 경험으로 뼈저리게 느끼고 톡톡히 배웠다면, 오케이 거기까진 인정.

     

     

    물질적 심리적 안위와 "진리란 것"을 억지로 동일선 상에 겹쳐 놓고서,

    타성을 가속화하는 노화한 세포들의 음모인 "단순화 전략"에 편승하여

    단조로운 진리, 단순한 유토피아의 명쾌한 비전에 기꺼이 세뇌당한 채,

     

    ("그림자의 섭리"에 만성 감염된 자들이 늙어가면서 겪게 되는 공통 현상인) 죽음에 대한 맹목적인 공포와 거부감을

    회피하기 위한 정서적 보상책으로서

    물질적 풍요를 통한 정신적 육체적 건강 유지와 병마로부터의 해방에 집착하는 것도,

    백번 이해할 수 있다 치자.

     


    청춘기의 복잡한 상념과 이로 인한 방황을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노쇠한 두뇌가,

    자기의 소중한(?) 체험을 합리화하는 방편으로,

    진리적 실체의 부스러기라도 만져볼 수 있는 "가능성의 시기"를 애써 격하하고

    젊은이의 고뇌에 찬 항변을 - 한때의 젊음이 우쭐하는 - 객기 정도로 치부하여,

    그의 유치한 진지함 뒤에 연결되어 있는 거대한 실존의 끈을

    "행복" 이데올로기의 "호도된 명쾌함"으로 싹둑 끊어 버려야

    직성이 풀리겠는가.

     

     


    종교가 의미를 부여하는 경건한 삶마저

    안위와 자존감을 바탕으로 세속의 타성과 관행에 의해 둥글둥글 굴러가야

    직성이 풀리는 어르신들이, 하물며 인륜지대사를 직면함에 있어

    그들 인생의 주춧돌 격인 비지니스적 이해관계를 어찌 무시할 수 있으랴.


    그들 스스로

    신선한 변화의 길을 걷기에는 너무 많이 정도(正道)를 벗어나 역부족임을 잘 알기에, 기왕지사

    각자의 영혼을 저당 잡혀 쌓아온 알량한 기득권이나 굳건히 수호하면서,

    이를 기반으로 하지 않고는 우정과 사랑, 화목과 평화, 그리고 참된 행복 및 영원한 번영도 있을 수 없다는

    애처로운 합리화로부터 존재의 의의를 찾는 수밖에..

     

     

       
    일부러 자식을 파멸의 길로 이끄는 부모가 어디 있을까마는,

    인간사를 교묘하기 짝이 없는 음모로 지배해 온 속임수의 복잡성을 도무지 간파하지 못하는 그들의 무지가,

    아낌없이 베풀고도 결과적으로 자식을 괴롭게 하고 본인들 또한 자식에게서 배신감을 느끼는

    정서적 지옥으로 몰아가고 마니,

    대대로 이어지기 일쑤인 이 저주 받은 악순환의 고리를 대체 어디서부터 끊어야 한단 말인가.

     

     


    사랑하기 때문에 진심으로 염려하는 차원에서 경솔함을 지적하고 "자식이 원하는 바"를 기를 쓰고 말린다고는 하지만,

    그 이면에

    "내 말 안 듣고 잘 되나 두고 보자.

    나중에 잘못되어 평생 후회하지 말고 내가 하라는 대로 해! 내 말 듣고 손해 보는 일 없을 테니까."라는 식의

    독선과 아집이 도사리지 않는다고,

    누군들 자신 있게 말하랴.

     

     


    윤회나 유전적 특이성, 양육 환경 등의 다양한 요소들이 복잡하게 얽혀 작용하는

    인성 발달의 메커니즘상, 한 인간의 변화무쌍한 심리와 그것의 다층 구조는

    당사자도 제대로 된 파악이 불가능한 것이거늘,

    단지 낳았다 하여 자식에 대해 속속들이 안다고 여기는 건

    일종의 교만이 아닐런지..

     

     

     
    자식을 - 무의식 중에라도 - 소유물로 여기는 무지한 부모의 극단적 케이스에서는,

    "그렇게 결정할 수밖에 없는 통전적인 원인이 자식에게 존재함"은 전혀 고려치 않은 채

    "스테레오 타입을 강요하는 (단순함의 폭력이 횡행하는) 세상"과의 피상적인 마찰만을 염려하여

    그에게 선택의 폭을 강제하고 부지불식간에 그를 코너로 자꾸 몰아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


    이때

    선택의 여지가 없어진 자식은 극단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의사를 관철하려는 무리수를 둘 것임이

    분명하지 않을까. (감수성이 특히 예민한 상준의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으리라.)

     


    물론,

    부모와 자식의 가치관 내지는 견해가 일치하여 혹은 일치까지는 아니라도 공통분모가 형성될 여지가 커서

    별다른 갈등의 발생 없이 양쪽 공히 몰개성적 타성에 만족하며 살아간다면

    다행(?)한 일일 테지.


    이는,

    유년기부터 적절한 세뇌가 곁들여진 가정교육에 무리 없이 적응하였고 그리하여,

    소소한 사춘기 갈등 정도는 그 테두리를 크게 벗어나지 못할 만큼

    물질적 평안을 겸비한 여유로운 일상을 바탕으로 "무마성 화목"의 생산 용량이 넉넉한

    우리네 능력(?) 있는 가장들과의

    공존공영을 자식들이 미덕으로 수용한,

    대다수 현실 가정에서 보이는 현상이기도 하다.

     

     


    한편

    가급적 없어야 할 최악의 시나리오가 있으니

    감성이 예민하지만 착해 빠진 "우유부단한 자식"의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다 큰 어른으로서의 당당한 의지 표명과 독립적 결행의 권리를 포기하고

    우리나라 특유의 "효" 이데올로기 그 전형적 권위에 승복하여 부모의 요구 대로 따르다 보면

    (대신 살아주는 이 없는) 자기만의 인생에서 대가로 치러야 할 고통과 절망이 너무 클 것이며,

     

    설사 종국에 가서 그럭저럭 자신의 의지 대로 살 수 있게 된다손 쳐도,

     

    양육의 보상을 노골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바라는 몰염치 그리고 그것과 꿍짝이 잘 맞는

    대리 만족에의 경망한 기대를 끝내 포기하지 못하여

    불편한 심기를 굳이 감추려 들지 않고 권리로서 차선의 효도를 당당히 요구하는 부모

    또는

    그간 보여준 관심과 희망의 에너지를 일거에 상실하여 완전히 포기한 채

    자식의 일을 간섭 못하게 된 허탈감으로 무기력해진 부모 앞에서,

     

    불효에 대한 죄책감과 자괴감이 자기 연민을 뛰어넘어

    삶에 지장을 초래할 정도의 시달림을 줄 터인데,

     

    참으로 곤란한 딜레마가 아닐 수 없지 않은가.

     

     


    설상가상으로,

     

    부모의 뜻을 따르지 않고 (세속의 성공을 추구하지 않는) 자신의 가치관에 충실한 삶을 선택했음에도

    속세의 위세에 눌려 공교롭게 실패의 쓴맛을 보게 된다거나,

    통속적인 성공과 실패의 관념을 벗어나 자기만족의 안빈낙도를 향유하는 동안

    자신 때문에 몸고생 마음고생만 하던 부모가 훌쩍 세상을 떠나 버리기라도 한다면,

     

    여리디 여린 감성의 착한(?) 자식은 자칫, 역경을 헤쳐나갈 추진력을 잃고

    방향 감각이 사라진 철새처럼 자책이란 울타리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나약한 자식일수록

    늙어가면서 본인의 삶을 한탄하여 비관에 빠지게 되고,

    알코올이나 기타 등등에 의존하는 경향도 농후해진다.

     

     

     

    위에서 언급한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되어 자식의 인생이 순탄치 못해 지는 것도

    따지고 보면,

    고착된 관습과 편견으로 무장한 부모의 업식이 자식에게 유전되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리라.

     

    그도 그럴 것이,

    부모에 대한 죄의식을 보상하려는 심리 때문인진 모르겠으나

    "생전에 부모가 강요하던 가치관"에 동화되어 자신을 부모와 동일시하고

    따라서

    자기 자식에게도 조부(모)의 잘못된 관념을 주입하려고 애쓰는

    줏대 없는 어르신들이 비일비재하다.

    아이러니하게..

     

     

     

    ※ 상준이 이 케이스라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는 것이, 그는 후레자식 끼를 적당히 타고난 뻔뻔한 불효자라,

    더 나이를 먹고 남들 다 든 철(?)이 뒤늦게 들면 또 모르겠지만 현재로선

    부모에 대한 연민을 그에게서 기대하는 자체가 바보 같은 짓.

    한마디로,

    부모나 자식이나 도긴개긴인 - 그렇다고 콩가루라는 건 아니고 - 우리네 보통의 가정에서

    흔히 보는 가족 간의 마찰, 평행선이랄까

    심각하다면 심각한 대립의 양상이 이번 혼사 문제로 더욱 불거졌을 따름이고,

    당분간은 화합보단 반목과 불화가 이 집안 분위기를 대표하리란 건 명약관화.

     

     

     

     

     

     

     

     
     

     

     

     

     


    하여간 상준의 부모가 주장하는 요지는, 잘 난 자기 아들이

    공장의 일개 사무 보조원에 불과하며 별 볼 일 없는 집안의 "대학도 나오지 못한 아가씨"하고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고 어울려서도 안 된다는 얘기다.

     

     


    특히 그의 어머니가 극렬한 반대를 하였는데,

     

    올바른 성장을 위한 중요한 시기랄 수 있는 유아기를

    가정의 피치 못할 사정들을 (경제적 어려움이 가장 큰 이유이겠지만..) 핑계로 방치하여

    훗날 성적(性的)인 집착을 초래하는 "만성 애정결핍 증후"의 단초를 제공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억압적인 교육에 타율적으로 길들여진 (모범생의 소양이 싹트기 시작한) 소년 시절이 되어서야 뒤늦게

    못 다한 애정을 무분별하게 쏟아부어 상준으로 하여금 마마보이의 굴레를 쓰도록 함과 동시에,

    지독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로 인한 자기혐오에 빠지게 한 장본인으로서,

     

    아들을 사이에 두고 아들의 여자에게 위기의식까지 느껴가며

    조건을 트집 잡는 반대의 입장을 강하게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아들과 걸맞지 않은 상대임을 적극 부각하여 세속적 욕망을 수호하려는 목적이겠으나,

    아들을 빼앗길지 모른다는 상대적 박탈감에

    미모의 며느리 후보에 대한 여자로서의 잠재된 질투심 또한 무의식적으로 작용하였음을

    간과할 순 없겠다.

     

     


    그러면 그의 아버지는 또 어떠한가.


    기성세대의 평균치로 수렴해 가는 속인(俗人)의 대표 주자로서,

    아들의 혼사를 자신의 대인(對人) 비즈니스와 결부하는 지극히 평범(?)한 인간일 따름이다.

    예를 들어 자식의 결혼식이 "그동안 투자한 부조금은 꼭 회수돼야 하는" 당위성을 위해 존재한다고

    믿는 것처럼.

     

    그러한 것과 맥을 같이 하여,

    당신의 자존심과 체면을 세워주는 한도 내에서 자식의 배우자가 결정되기를 은근히 바라며

    고로, 맞선을 통해 조건을 요모조모 따져 선택하는 것이 가장 안정적이라 주장하는 "맞선 예찬론자"이기도 하다.

     

    아들 덕은 물론 며느리 덕까지 보려는 옹골찬(?) 욕심을 굳이 감추지 않고

    "부모는 모름지기 그럴 자격이 있음"을 수시로 피력하며, 이왕이면 가문과 재력 모두 나쁘지 않은 며느리를 맞아 (게다가

    능력 있는 전문직 커리어우먼이라면 금상첨화일 테고..) 혼수 걱정도 덜고 예단도 기대하면서

    식장을 찾는 하객들에게는 신부의 든든한 배경도 자랑할 수 있는

    일석삼, 사조의 효과를 보려 하니


    이는,

    당신 집안의 볼품없는 내력과 (적자를 면치 못 하는) 부실한 재무 구조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자식에 대한 과대평가와 과도한 기대만 찐빵처럼 부풀려

    소위 "잘 나가는 며느리"에 대한 집착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뻔뻔함과 현실 감각 결여에서 비롯된 안타까운 소산이 아니고 무엇이랴.

     

     


    실정이 이러할진대,

    다짜고짜 장래의 며느리감이랍시고 데려온 연지에게 그들이 호의를 보일 리 만무하지 않은가.

     


    더군다나,

     

    부모의 사고방식에 대한 거부감과 혐오를 숨기지 않고 이의를 제기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

    상준의 평소 행동으로 미루어 짐작컨대,

    자신들의 과잉 기대에 부담을 느낀 아들이 일종의 반발 심리로서 저런 아이를 앞뒤 재지 않고 데려왔거나,

    자신의 주제를 잘 안다고 지나치게 겸손(?)해 하는 아들이

    과분한 며느리감은 감당하기 힘들다며 지레 겁을 먹고

    상대적인 우월감과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아이와 함부로 연애질을 하여,

     

    일이 이 지경에 이른 것은 아닌지

    그들은 못 말리는 오해(?)까지 하고 있었다.

     

     

     

     

     

     

     


    갑자기 등장한 그녀의 존재에 본능적인 의구심과 과민 반응을 보이는 "상준의 부모" 앞에서

    연지는, 생각지도 못한 카운터 펀치를 맞고 비틀대는 권투 선수처럼

    모멸감과 당혹스러움으로 정신이 혼미해지는 듯한 충격에 휩싸였다.

     


    생전 처음 보는 남의 집 딸 앞에서 예의상으로라도 숨겼어야 할 속물근성이

    집안 곳곳에 인이 박인 그 역겨움을 주체하지 못하고 백일하에 드러나자,

    상준은 그들에게 대항할 마지막 비장의 (식상한 통속극 같은) 카드를 꺼내었다.

     

     

     


    어머니, 아버지가 반대하셔도 소용없습니다.
    연지는 제 아이를 가졌어요. 임신 3개월이란 말입니다!

     

     

     


    순조롭게 일이 진행되어 양가의 용인하에 떳떳이 교제한다면야 구태여 이따위 편법을 쓸 필요도 없겠고,

    이때를 대비하려고 혼전 임신한 것은 더욱 아니지만, 초장부터 일이 꼬이게 되니 뭐 어쩌겠나.

    미래의 사랑스러운 2세가 난데없는 "결혼 허락용" 협박(?) 무기로 돌변하는 수밖에..

     

         


    아들의 돌출 발언에 잠시 놀란 표정을 짓던 어머니는 이내 냉정을 되찾고,

    고개 숙인 채 무겁고 어색한 분위기에 눌려 있는 연지에게 맞대응용(用) 최후의 카드를 던졌다.

     

     

     


    아직 3개월 밖에 안 되었다니 그나마 다행이구나.

     


    아가씨도 보아하니 똑똑한 것 같은데, 우리가 하는 얘기 다 잘 알아들었으리라 믿어요.


    저 녀석이 젊은 혈기에 사고를 친 모양인데.. 이런 걸 한때의 불장난이라고들 하지?

    아가씨도 같은 직장을 다녀서 알겠지만 우리 애는 아직 한가하게 여자나 사귀고 있을 처지가 아니라우.

    결혼은 말할 것도 없는 거고.. 이제사 정사원으로 갓 입사한 주제에, 결혼은 무슨..

     

    우리 집 형편이, 돈 없는 아들 장가보낼 만큼 넉넉한 것이 못 돼 나서 말예요.
    더 기반을 다지고 한 서른은 넘겨야 장가갈 자격이 생기는 것 아니겠수? 특히 요즘 같은 세상에는..


    아가씨도 그렇지, 갓스물에 임신은 무슨 임신이야?

    요즘 애들은 약은 것 같으면서도 가만 보면 헛똑똑이란 말이야. 이렇게 대비가 없어서야 원..


    피어나는 젊음이 아깝지도 않아요?

    아직은 한창 즐기고 놀 나이인데, 왜 요즘 추세에 맞지 않게 미리부터 구속당하는 삶을 살려는 거지?

    마음을 가라앉히고 차분하게 생각해 봐요. 어찌하는 것이 현명한 판단인지..

     

    그리고 이런 말 해서 어떨까 싶지만, 우리 상준이한텐 어른들끼리 따로 봐 둔 색시감도 있다우.

    일단 올해 선을 보이고 얘 맘에 들면 내년엔 약혼식을 올리기로, 양가에서 이미 말이 오간 상태랍니다.

    정식 결혼이야 물론 한참 뒤의 일이지만서도..

    아, 오해는 말아요. 이건 얘한테도 아직 얘기 안 한 내용인데 상황이 이렇다 보니 꺼내야 할 듯해서..


    우리 상준이를 좋아해 주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가고 고맙지만, 정말로 우리 애를 사랑한다면

    서로의 앞날을 위해서라도, 저 미련한 놈보다는 아가씨 쪽에서 먼저 결단을 내려 줬으면 하는데..


    더 늦기 전에 나랑 같이 병원부터 가는 게 어떨까.

    처음에야 가슴이 아프겠지만, 세월이 지나면 지금 선택을 백 번 옳았다 느끼게 될 거야, 분명히..

     

     

     


    어머니는 짐짓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으며 연지의 떨리는 손을 잡고는

    연민으로 가장한 냉혹한 시선을 그녀에게 보내고 있었다.

     

     


    병원비는 물론이고, 이놈의 철없는 짓으로 인한 정신적 육체적 보상까지

    우리가 아쉽지 않을 만큼 해줄게. 알았죠?

     

     

     


    형편이 넉넉지 않다고 방금 전에 말했으면서 이렇듯 앞뒤가 안 맞는 립 서비스를 날릴 수 있었던 것은,

    이리된 판에 돈이나 뜯어내겠다는 그렇고 그런 여자가 아님을 관상으로 대번에 알아챘기 때문이며,

    그래서 안심하고 "결코 실현되지 않을" 빈말을 보태었던 것 같다.

     

    그렇다 해도 - 자칫 발목을 잡힐 수 있는 - 사족의 멘트를 더하였다는 건,

    연지에 대한 불편한 심기와 흥분을 급속히 끌어 앉힐 정도로

    "당신이 판단한 바 사태의 현실적 심각성" 앞에서 초조하고 애가 달아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라 볼 수 있겠다.

     

     

     


    그녀가 내던지는 한마디 한마디가, 치명적인 비수처럼 연지의 가슴으로 날아와 꽂혔다.


    아랫입술을 지그시 물며 수치심에 몸을 떨던 그녀,

    천천히 일어선다.

     

     


    말씀 잘 들었습니다.

     

    이만 가볼게요.

    그럼 두 분.. 안녕히 계세요.

     

     

     


    상기된 얼굴의 연지가 떨리는 음성을 간신히 가누며 한 말이다.


    도망치듯 현관을 나서는 그녀를 상준도 따라나섰다.

    이런 집구석에 앉아서 계속 숨 쉬고 있을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저것 봐요.

    어른이 한소리 했다고 휭하니 자리에서 일어나는 버릇은 어디에서 배웠을꼬..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쯧쯧..

    여러 모로 봐도 상준이 하곤 어울리지 않는 애라니깐!

     

     


    못난 놈, 여자 고르는 안목이 저 정도밖에 안되나?! 누굴 닮아 그 모양인지..
    얼굴만 이쁘면 뭐 해!  속 빈 강정인 걸..

    나이를 거꾸로 처먹어도 분수가 있지, 뒷수습도 안 될 일이나 덜컥 저지르고 참 나..

     

     


    당신 닮아 그런 걸 큰소리는..

     

    입 헤벌리고 정신없이 쳐다볼 땐 언제고..
    이래서 늙으나 젊으나 육방망이 달린 화상들은 안 된다니깐!?

    이쁜 것들이 꼬릴 살랑대면 에미고 마누라고 눈에 뵈지도 않지?!!

     

     

     

     

     


    구시렁거리는 속된 냄새가 밖으로 새어 나오지 않게 현관문을 쾅 소리 나도록 닫은 그는,
    총총걸음으로 모퉁이를 돌아 시야에서 막 사라지려고 하는 연지를,

    복받치는 애타는 심정과 함께 쫓아갔다.

     


    연두색 투피스를 맵시 있게 차려입은 그녀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바쁘게 다리를 놀리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그 와중에도,
    미니스커트와 높은 굽의 하이힐 사이에서 곧게 뻗은 각선미는

    유난히 매력적으로 상준의 눈에 들어왔다.

     


    금세 다가간 그가 팔을 뻗어 연지의 팔목을 낚아채듯 잡는다.

     

     

     


    연지, 미안해. 모든 게 내 불찰이야.
    이럴 줄 아예 예상 못한 건 아닌데..

    널 데려 오는 게 아니었어.. 정말 미안해!

     

     


    돌아선 그녀의 옅은 눈화장이 눈물로 얼룩져 있었다.

     

     


    자책하지 마요. 상준 씨가 미안할 일이 아니잖아요?

    그리고, 오늘 상준 씨 부모님 뵌 것도 아주 잘 된 일이에요. 현실을 빨리 직시할 수 있었으니까요. 단지 화가 나는 건..

     

    나도 자존심 있는 사람이에요. 내가 무슨 이유로 면전에서 그런 수모를 당해야 하죠?

    상준 씨 사랑하는 게 무슨 큰 죄나 되는 것처럼 여기시잖아요, 두 분이.

     

    이런 모욕을 받으면서까지, 우리 집 우리 엄마 아빠까지 멸시당하면서, 상준 씨와 맺어지고 싶은 생각

    나도 없다고요!

     

    우리, 다시 생각하고 결정해요, 상준 씨!

     

     


    그는, 흥분으로 떨리는 연지의 어깨를 다독이며 나란히 걸었다.

     

     


    연지 화내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야. 나도 이렇게 화가 나 죽겠는데 넌 오죽하겠니..

     

    나한테라도 실컷 화풀이해.
    하지만,

    다시 생각하잔 말만은 말아 줘. 그건 나보고 죽으라는 얘기나 마찬가지니까!

     

     


    상준의 가슴을 밀치며 소리 지르는 그녀.

     

     


    그럼, 나보고 어쩌란 말이에요!?

     

     


    연지, 나 사랑하지 않아?

    사랑한다면 나를 믿어 줘. 다시는 오늘처럼 널 실망시키지 않을게, 약속해.

     

     

     

     


    거기까지 말하고 그는 외투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그녀의 눈 주위에 얼룩진 눈물을 닦아 주었다.

    그리고

    그녀의 작고 보드라운 손을 꼬옥 쥐어 주었다.

     

     

     

     

     


    그날,

    두 사람은 막차를 타고 홍주로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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