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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 이상한 사랑
    상준 이야기/이상한 사랑 2023. 3. 14. 17:34

     

     

     

     

     

     

     

     

     

     

     

     

     


    그해 시월, 상준은 홍주에서 혼인 신고를 하고 연지의 집에 부랴부랴 신방(新房)을 꾸몄다.

    그 즈음 아이가 태어났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부모의 허락을 받고 느긋하게 연애를 즐기다가 양가의 진정한 축복 아래 결혼식을 올리려던 계획은

    물 건너간 일이 되었고, 시련 속의 사랑은 더욱 애틋하여

    서울로부터의 기약 없는 희소식을 포기하고 결단을 강행하게 된 것도

    막나가는 사랑에 맛 들인 두 연인에겐 그저 상큼한 해프닝일 뿐이었다.

    (세상 밖으로 나온 아기의 존재가

    "중요하다 여긴 다른 현실 문제들"을 자잘하고 대수롭지 않게 만든, 영향도 컸다.)

     


    연지의 부모 역시 처음에는

    이들의 앞날이 순탄치 않을 것을 염려해 두 사람의 결합을 반대하였으나, 막내딸을 너무나 사랑하기에

    그리고 소중한 딸이 사랑하는 남자 또한 소중한 자식이나 다름없었기에,

    게다가 딸과 사위만큼이나 귀한 외손녀까지 생긴 마당이어서,

    이들의 맹랑한 거사에 동참하는 - 동조자까지는 아니더라도 - 적극적인 방관자(?)들이 기꺼이 되고 말았다.

     


    몇몇 친구들과 직장 동료들만 참석한 가운데 단출하게 반지 교환식을 가지는 것으로 일단은 예식을 대신하였지만

    연지와 상준은 세상을 얻은 것처럼 기뻤고,

    마치 희망찬 미래가 돗자리 깔아 놓고 기다리기라도 하는 듯 뿌듯함이 밀려와,

    웨딩드레스를 못 입은 서운함이나 신혼여행 못 간 아쉬움 등은 언제 휩쓸려 갔는지 모를 정도였다.

     

    (나중에 자리 잡히면 정식으로 결혼식 올리고 해외로 여행도 떠나자는 상준의 감언이설 같은 약속이 원동력이 되어

    그녀가 긍정적이고 의연한 태도를 겨우 유지한다 해도

    과언이 아닌 반면

    정작 그는, 번거롭고 부담되는 것을 넘어 공포스럽기까지 한

    사회적 격식을 피할 수 있어

    이런 단출하고 소박한 부분이 무조건 그냥 마음에 들었고

    애들 장난 같아서 또한 마냥 즐겁기만 하였다.)

     

     

     

    사실상 서울과는 연락이 끊어진 상황에서 상준은, 부모의 가슴에 못을 박았다는 자책감을

    "용기 있게 인생을 개척하고 있다는" 자부심으로 포장하면서,

    가슴 한편을 차지하고 있는 우울과 싸워 나갔다.

     


    이때까지만 해도, 삶에 충실히 임하는 성실한 자세를 견지하기 위해 애쓰던 그의 앞에

    또 다른 먹구름이 드리워지리라고는, 아무도 생각지 못하고 있었다.

     

     

     

     


    연지의 집안은 상준 부모의 선입견대로 그다지 풍족하지 못한 게 사실이었다.

     


    아직 미혼인 언니와 오빠는 각자 자립을 위해 객지에 나가 고생하는 처지였고,

    홍주에서 조그맣게 동네 슈퍼를 운영하는 부모님도, 지난해 여름 근처에 대형 할인 매장이 들어서고부터

    가게에 손님이 끊겨 적자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연지까지 상준과 사귀게 되면서 - 배가 불러 오기 전에 -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직장을 그만두어야 했다.

     


    90년대 초반의 경직된 직장 문화 풍토에서, 비전문직 사무보조원인 기혼 여성이

    우후죽순처럼 올라오는 앳된 새내기 후보자들을 누르고, 당연히 찾아올 임신과 해산 및 육아의

    기나긴 공백에 대한 면죄부(?)와 복직 보장이란 당근을 양손에 쥔 채

    무탈히 근무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희박한 일이었다.


    더구나, 이 공장 여사원들의 경우

    자발적으로 이어지는 그녀들만의 문화 자체가 (남성 문화의 음모적 의도가 개입된 자발성이겠으나..)

    결혼을 하게 되면 - 낙하산 인사라던가 등의 특별한 예외들을 제외하고는 - 대부분 직장을 그만두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었으므로,

    남편도 같은 공장에 근무하고 있는 연지로선 그녀들의 눈치가 보여서

    다시 근무할 명분을 찾기에 더욱 어려움이 있었고,

    근무하는 동안 절대 아기를 갖지 않겠다는 (한 번 어긴) "공공연한 각서"를

    갑을 간에 다시금 주고받는 수순이 반복되는 것도 피차 멋쩍은 짓이라

    이래저래 재입사 시도는 첨부터 꿈꾸지 않는 게 속 편한 일이긴 하였다.

     

    알찬 내조를 펼쳐 보리란 살뜰한 결심으로, 직장 없는 아쉬움과 허전함을 달래는 수밖에..

     

    ※ 자체적으로 운영되는 탁아 시설이나 놀이방까지 갖추고 기혼 여사원을 배려하는

    작금의 평균적 기업 정서를 놓고 볼 때, 이게 무슨 황당한 개소리냐 싶겠지만

    요즘 같은 스피디한 시대에는 호랑이 담배 피울 적 얘기일 수도 있는 삼십여 년 전의 현실이 이러했다는 것이다.

    잘나간다는 회사가 이 정도였으니 영세한 업체에 관하여는 일러 무삼하리오!

    물론 기업도 기업 나름이라 몽땅 이러했다는 건 아니고..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와이프 몸 푸는 처가에 드나들다 어느덧 눌러앉는 형국이 되었고,

     

    갓난아기를 키우고 돌봐야 하는 중차대한 문제 앞에서 당황하는 초보 부모가 주로 택하는

    만만한 (임시방편적) 해결책의 유혹(?)에 그들도 굴복하여,

    겉으로야 기쁘게 받아주는 어르신들의 차마 내색 못하는 현실적 우려를 알아도 모른 척 가볍게 무시하고

    뻔뻔한 행보를 취하긴 하였지만,

     

    장인어른 명의의 방 두 칸짜리 연립주택은

    이제껏 연지 포함 친정 식구 세 사람이 부대끼며 살기에도 비좁은 지경이었어서,

    어떻게든 열심히 벌어 하루빨리 분가하지 않으면 안 될

    다급하다면 다급한 형편이기는 하였다.

     

    (월세로 단칸방 정도는 당장 구할 수 있는 상준이었으나,

    열심히 모아 그럴듯한 신혼집으로 들어가자는 명목하에 부모와 조금이나마 더 함께 지내고 싶어 한

    연지를 위하여 그간 기꺼운 마음으로 데릴사위 노릇을 자처한 그였다.)

     

     

     


    그런데,

    이렇듯 악착같이 성실해야 할 상준에게 적잖은 문제가 있었으니..


    가장으로서 생활을 영위하고 리드해 나가는 데 있어, 그의 성격적 결함은 치명적 방해 요인으로 작용하였던 것이다.

     

     

     

     


    별다른 고민 없이 살아온 그때까지의 인생 여정이 (대학 생활을 포함한 학창 시절과 군대 경험 그리고, 일 년여의 직장 체험이 전부임.) 험한 세상을 견뎌 가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면역력에도 못 미치는

    함량 미달의 백신을 제공하였기 때문이라는,

    단순 논리로는 그의 괴팍함을 설명하기에 턱없이 부족할 것 같다.

     

     

     

    카르마의 법칙과 인과응보적 제(諸) 섭리의 복잡성으로 인해 그냥 그러하게 생겨먹은

    실존을 해명하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상준의 현생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그를 둘러싼 환경과 사건들이 접근하는 비정상성과

    이로 인한 인간 성장 에너지들 간의 미묘한 부조화가 그의 이상(異常) 성격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 여기서 환경과 사건이 그에게 비정상적으로 접근하였다 함은,

    유아기 방치로 인한 애정 결핍,

    금기를 벗은 성(性) 앞에 무방비로 노출된 유년기,

    사랑과 희생이란 명분으로 가장한 탐욕이 감정의 찌꺼기를 배출하기 위해 일관성을 잃고 휘두르는

    체벌과 과잉보호가 무수히 교차하던 청소년기 등등의

    개인사(史)가 남발하는 그저 그런 트라우마들의 소소한 침투를 의미한다.

     

     


    도를 넘은 감수성,

    인생의 부정적 측면을 천착하는 강박증과 이로써 생기는 냉소주의,

    지나친 내향성과, 권위주의에 대한 맹목적 거부감이 낳은 대인 기피증,

    허술한 완벽주의와 "무늬만 결벽증"이 상호 결탁하여 활성화시키는 "나는 신(神)이로소이다" 류의 정신착란 기미,

    사회 구성원의 결속을 해치고 대인 관계의 그물을 갉아먹는, 극단적 사고와  비현실적 몽상 기질 그리고

    주기적인 조울 징후..


    이 모든 것이 종합적으로 작용하여 나타나는 (회의, 시선, 적면, 광장 등의 각종 공포증과 공황 장애, 피해망상으로 대변되는) 2차 3차 증후군들이, 한동안

    "그가 멀쩡한 어른으로 자람"을 근본적으로 방해하지는 않고

    "경계가 모호한 그림자"로 뭉쳐 간헐적인 갈등과 단속적인 고통을 가하는 것에만 만족하나 싶더니,

    삶의 어느 순간에 이르자 그간의 페이크성 잠복기를 청산하고

    다양한 양상의 비교적 명확한 병증으로 표출되어

    선명한 윤곽의 노골적인 파상공세를 - 때론 각개 격파식 때론 양동 작전으로 - 본격화하기 시작하였다.

     

     

     


    "삶의 어느 순간"이 구체적으로 언제인지는 확실치 않으나, 아마도

    연지와의 사랑이 꽃피던 시점 이후의 시기가 아닌가 생각된다.

    한 여인과의 정상적인 사랑과 더불어 정상적인 결혼 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는 점이

    그의 상태가 심각한 수준에는 아직 오르고 있지 않았음을 입증하는 셈이니까.

     

     

    그러나 좀 더 부정적인 관점에서 볼 때, 그녀와의 연애 이전부터

    상준의 정신적 불행을 예감할 수 있는 전조들은 충분히 발견되고 있다.


    제대와 복학의 시기 전후로 여성에 대한 관심이 부쩍 증가했고, (물론, 낭만적인 환상에 의탁하여 성충동을 의식적으로 부정하는 단계에 머물러는 있었지만) 이것이

    무의식의 늪에 잠복해 있는 흉측한 악마의 도래가 임박했음을 암시하는 징조인 줄은, 깨닫지도 못한 채

    원인 모를 우울과 허탈에서 벗어나기 위한 근시안적 미봉책으로서 여자와의 열정적 사랑에

    그는 광적인 집착을 보이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연지와의 부자연스러운(?) 사랑도 어찌 보면 그 연장선상의 자연스러운 귀결일 수 있다.

     

     


    그녀 또한 어린 나이 탓에 상준의 외양과 (작위성이 농후한) 표면적인 매너에 쉽게 함락되었고,

    객관적이고 냉철한 판단을 하기엔 그의 불같은 애정 공세에 너무 깊숙이 매료되어 미처 파악하지 못했겠지만,

     

    사귄 지 불과 일 년여 만에 (태어난 아기로 인한 불가피함과 더불어 주변의 반대에 대한 강력한 반작용 탓도 있었겠으나)

    속전속결 식의 불완전한 결혼을 강행한 점이라던가, 그전에 애정을 키워가는 과정에서도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가는 정공법 대신 비교적 빠른 시기에 (사귀기로 합의한 지 열흘 남짓만에) 잠자리를 요구하는

    소프트한 대담성을 드러낸 점, (다행히, 상준 못지않게 사랑의 감정이 급속도로 고양되고 있던

    연지와의 절묘한 밸런스로 인해 합의된 성행위가 이루어질 수 있었지만..)

    그리고

    여체에 대한 과도한 애착과 도착적 행위 추구 등도, 경우에 따라선

    "연착륙성" 인성 붕괴의 본격 진행을 알리는, 결코 백안시할 수 없는 상징적 의미가 되는 것이다.

     

     

    동거 직전까지

    (임신 기간을 포함) 못해도 일주일에 한두 번 꼴로 성교를 가졌으니 이것만으로도

    그가 연지의 육체에 대해 얼마나 강한 집착과 소유욕을 보이고 있었는지 짐작 가능한 일이다.

     

     


    여기서 그녀가 상준의 끊임없는 요구에 단 한 번의 거절도 없이 응했던 것은

    사랑하는 남자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순수한 동기 때문이었으며,

    혼신을 다해 안아주는 남자의 정열에서 자기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는 원초적 행복을 맛볼 수 있었기 때문인 것이지,

    그와 마찬가지로 섹스 자체에 탐닉하는 소위 색녀 기질이 강해서 그리했던 것은 당연히 아니었다.
    이는,

    상준이 성행위 중에 다양한 체위나 변태적인 게임 (어색한 연극 효과를 도입하는 일견 무리한 연출)을 강요하더라도

    그저 수동적으로 따랐을 뿐 나서서 적극적으로 리드하거나 반대로 심하게 불평하거나 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히 입증 가능한 부분이다.

     


    말이 나와서 얘기지만, 이런 면에서 연지의 그에 대한 사랑과 배려가 어느 정도였냐 하면,

    월경 주기에 따라 심리적 육체적 변화가 미묘하고 무쌍하게 마련인

    여체의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거절 없이 요구에 응하였고

    나아가 만삭의 불편함까지 무릅쓰고 그의 욕망 해소를 위한 배우자의 역할을 충실히 하였다는 것.

    (물론 태어날 아기가 염려되어 - 무지막지한 남편을 달래가며 - 무리한 움직임은 최대한 자제하는 선에서..)


    이기적인 쾌락 추구에만 급급하던 상준에 비해 상대적으로 얼마나 희생적인 사랑을 보여 주었는가 말이다.

     


    이렇듯 어리석을 정도로 맹목적인 사랑에 헌신했던 그녀였기에

    상준의 예기치 않은 변화가 주는 충격은 어느 누구보다 더 컸고 그만큼 배신감을 느꼈던 것이다.

     

     

     

     


    "삶의 어느 순간"이 점차 구체화되어 상준의 현실을 사로잡게 되자,

    직장 내에서의 사소한 부조리도 참지 못하겠다, 직장 생활이 영 적성에 맞지 않는다 운운하며, 그는

    한없이 게으르고 싶은 자기 파괴적 욕구를 합리화시켜 줄 핑곗거리를 찾아 헤매기 시작하였다.


    타고난 감수성을 빌미 삼아, "삶의 권태가 찾아올 수밖에 없는" 실존적 까닭을 필요(?) 이상으로 체득하였고,

    현실 전부를 부정하는 극단주의로 치달은 결과, 자신의 가까이에 있는 모든 것을 회피하고 매사에 의욕을 상실하는

    무기력한 인간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한 본인의 모습에 스스로도 불안하고 화가 치밀어 신경은 극도로 날카로워졌고,

    이를 치유하려는 일종의 보상 심리랄까 초라해지는 남성의 권위와 자존심을 회복하고자 하는 유치한 발상에서,

    (그 또한 권위 혐오자라 의식적으로는 경멸하는 주제에) 무의식적인 남근 숭배주의자가 되어

    한층 더 연지의 몸을 탐하게 되었으며, 이때의 섹스는

    대상에 대한 정복감을 만끽하는 방향으로 나날이 노골화되어 갔다.


    남편으로서 반려자를 위한 최소한의 예의도 상실한 채

    함께 기거하는 장인 장모의 존재와 그들의 민망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상준은 밤마다 그녀의 옷을 우악스럽게 벗기는 것이었다.

     


    남성의 우월감을 선택적으로 유지하려 하는 그의 비이성적 행동은, 병적인 심리 상태에서 파생된 것이기에

    융통성 없고 소심하며 여유롭지 않는 "경직성의 전형"을 보여주었고,

    상대방이 비협조적이고 반항이라도 한다 치면,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빼앗겼을 때 울고불고 난리를 피우며

    잔망스러운 폭력을 행사해서라도 기어이 되빼앗아 오고야 마는

    악동의 기질까지 서슴지 않고 나타내는 바람에, 연지를 적잖이 당황케 하기 일쑤였다.

     

     


    참다못한 친정 부모가 쫓아내다시피 하여 일 년을 채우지도 못하고 데릴사위 신세를 마감한 상준은,

    (해방감으로 날아갈 듯한 그의 기준에서는) 둘만의 보금자리인 아니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사랑스러운 딸 (돌도 안 지난) 소영이까지 합하여 세 식구의 보금자리인

    좁디좁은 월세방에서, 물 만난 고기처럼

    드디어 발정 난 늑대의 참능력(?)을 맘껏 발산하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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