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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생명을 거니는 고독 : 시를 아는 척 1상념 소용돌이 (상준 외전) 2023. 3. 17. 17:05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지상으로부터 우뚝 솟아 황량한 바람을 받으며 나부끼는 깃발은, 생명의 본질을 향해 깊이 침잠하여 꿈틀대는 번뇌 그 소리 없는 아우성 속에서 유연하게 자신을 지탱하는 고독한 초인의 상징이다. 저 푸르고 넓은 바다, 조금의 내색 없이 정해진 방향으로 고요하고 진중한 흐름을 계속 이어갈 뿐인 거대 심연은, 태초부터 있어온 원시의 생명이요 인류에게 본능적 생동감과 활기찬 생명력을 수백만 년 이상 공급하여 온 태반이기에, 초인은 그곳에로의 영원한 향수를 못 이겨 바람보다 더 심하게 몸을 흔든다. 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의 푯대 끝에 애수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 그것은 본원적 그리움의 표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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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꿈속 꿈으로Letters to D.J. (지수 외전)/FRIDAY THE 13TH 2023. 3. 15. 16:35
Another stories of Jisoos in parallel universes : 2. Friday the 13th (원본) (11) 영화 속 슬로 모션인 양 느릿느릿 드러나고 있는 것은 자체발광하듯 번득이는 예리한 칼날이었습니다. 주방에서 흔히 사용하는 부엌칼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크기나 길이가 보통의 그것에 비해 두세 배는 되어 보였습니다. 잔뜩 머금은 선혈을 바닥에 뚝뚝 떨어뜨리며 등장한 그것은 거대한 야수의 날카로운 송곳니를 연상케 하였습니다. 저렇게 큰 식칼을 쥐고 있는 주체는 보나 마나 한 덩치 하리라 예상 안 한 건 아니나 그래도 반전이 있기를 아주 작게나마 기대했었는데, 예상을 뛰어넘는 비현실적 체구가 불쑥 튀어나와 아저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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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상한 사랑상준 이야기/이상한 사랑 2023. 3. 14. 17:34
그해 시월, 상준은 홍주에서 혼인 신고를 하고 연지의 집에 부랴부랴 신방(新房)을 꾸몄다. 그 즈음 아이가 태어났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부모의 허락을 받고 느긋하게 연애를 즐기다가 양가의 진정한 축복 아래 결혼식을 올리려던 계획은 물 건너간 일이 되었고, 시련 속의 사랑은 더욱 애틋하여 서울로부터의 기약 없는 희소식을 포기하고 결단을 강행하게 된 것도 막나가는 사랑에 맛 들인 두 연인에겐 그저 상큼한 해프닝일 뿐이었다. (세상 밖으로 나온 아기의 존재가 "중요하다 여긴 다른 현실 문제들"을 자잘하고 대수롭지 않게 만든, 영향도 컸다.) 연지의 부모 역시 처음에는 이들의 앞날이 순탄치 않을 것을 염려해 두 사람의 결합을 반대하였으나, 막내딸을 너무나 사랑하기에 그리고 소중한 딸이 사랑하는 남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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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귀월광 프로젝트 (판타지) 2023. 3. 10. 16:07
밤 10시가 넘어서 극장을 나오는 세 사람. 영화 재밌었니? 네, 신났어요! 007 영화가 다 그렇지 뭐.. 미영아, 오빠 팔짱 끼기로 했으면 꽉 좀 끼어 봐라! 밋밋하긴.. 오빤 덥지 않아요? 난 더워 죽겠는데.. 야, 오늘 같은 날 데이트 기분 팍팍 내야지 언제 내보겠냐. 그건 그래.. 살갑게 찰싹 달라붙는 미영의 제법 볼륨 있는 가슴이 팔꿈치에 와 닿는다. '으휴, 죽겠구만. 요 말랑한 감촉.. 빨랑 만져 봐야지.' 유리야, 너도 이리 와서 이 오빠 팔짱 좀 껴 보렴. 저녁 사주고 영화까지 보여 줬는데, 우리가 이 정도 서비스 못해주겠니. 싫어, 얘! 좋으면 너나 실컷 껴라. 쟤는 하여간 숫기 없어 탈이라니깐.. 괜찮아. 유리 좋을 대로 해. 난 그냥 미영이랑 사이좋게 걸을게. 이번엔 그녀의 절구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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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은밀한 타락지수 이야기/이상한 사춘기 2023. 3. 7. 17:10
1993년 추석 연휴의 마지막 날 오후 네 시경. 지수의 집. 모처럼 친지들이 모여 집안이 왁자지껄하다. 일 년에 한두 번 모일까 말까 하는 그들은 아버지의 형제들로, 할아버지와 장남인 아버지 덕택에 계열사 사장직을 맡고들 있었다. 밖에서야 업무관계로 아버지와 심심찮은 접촉들을 하고 있지만, 집에서 이렇게 모여 오후 늦게까지 있는 것은 명절이라 해도 꽤 오랜만의 일이었다. 회사가 바쁘게 돌아가는 경우, 집 안엔 청탁 내지 아부성 선물들만 산더미처럼 쌓이고 아버지의 지인들을 포함한 외부 방문객들로만 문전성시를 이룰 뿐, 이들을 제외하면 정작 오래 머물러야 할 가족이나 가까운 친척들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 명절일 때가 적지 않았는데, 아침 일찍 차례를 마치고는 (성묘는, 삼촌들 가운데 그날 가장 여유 있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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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꿈 파편Letters to D.J. (지수 외전)/FRIDAY THE 13TH 2023. 3. 4. 15:16
Another stories of Jisoos in parallel universes : 2. Friday the 13th (원본) (10) 마스터여 오랜만에 당신의 설명을 들으니 반갑네요. 아저씨가 씩씩거리며 학교로 걸어가는군요. 걱정이 좀 됩니다. 거긴 지금 거대한 괴수로 변한 교사와 좀비가 된 학생들로 인해 아수라장이 되어있을 텐데.. 과연 그럴까. 꿈의 공간은, 무수한 군상의 무의식 세계들이 겹쳐져 있고 꿈 파편들이 수시로 기습하여 불공처럼 쏟아져 박히는 복합 시공이다. 네 생각처럼 그리 단순한 곳이 아니란 얘기다. 활성화하는 의식이 무의식의 난삽한 농간을 서둘러 봉합하고 스토리를 마무리하여 꿈주가 깨어나기 위한 준비를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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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부모상준 이야기/이상한 사랑 2023. 3. 3. 11:34
상준과 연지의 꿈같은 사랑도, 아픈 현실 앞에서 난관에 봉착하고 만다. 육 개월간의 인턴사원 기간을 마치고 이듬해 삼 월 정식 입사하게 된 상준이 연지를 데리고 서울로 올라갔다. 부모님께 그녀를 소개하고, 결혼을 전제로 한 교제를 허락받기 위해서였다. 연지의 부모님으로부터는 허락을 받아 놓은 상태에서 홀가분한 마음으로 그녀를 집에 데려왔으나, 분홍빛 꿈에 부푼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예상은 했지만 이처럼 심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한, 상준 부모의 심각한 반대였다. 자식을 소유물로 여기는 구태에 끔찍이 집착하고 있던 그들로선 어찌 보면 당연한 반응인지도 모른다. 자기 자식이 세상에서 제일 잘난듯한 착각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은 배 아파 낳은 새끼를 이뻐하지 않을 수 없는 "어미들의 선천적 본능"이라 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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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색월광 프로젝트 (판타지) 2023. 2. 28. 14:15
자네를 일부로 위험에 노출시킬 리 있겠나. 우리 목적지의 웜홀 출구가 이 위치일 따름이지. 인위적으로 육신의 3차원 파장을 들뜨게 하여 고(高) 진동의 4차원체로 변환하는 과정이, 바로 이런 위험천만한 경우를 대비해서 필요한 거라네. 자네 같은 지구인이 평행우주를 여행할 때, 신변 안전 및 실존 붕괴 방지를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필수 코스라고나 할까. 자네를 위한 특별 배려인 셈이지. ※ 실존 붕괴 : 차원 통로를 거쳐 순간이동한 여행자의 3차원 육체가 "사건 소자" 격류에 휘말려 들 때 발생하는 현상. 자신의 분신과 맞닥뜨리거나, 분신의 "관념 동선"에 섣불리 개입하여 벌어지는 혼돈의 나비 효과가, 상념이 투사된 "거울 우주"들의 전자기 망을 연쇄적으로 교란하여, 여행자의 영체를 구성하는 광자 세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