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병사 (상준 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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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 단상(斷想)..이상한 병사 (상준 외전) 2022. 12. 2. 00:23
(1) 치밀한 대세가 평화를 급조한다. 그것으로도 만족하는 용기들, 열정들이 배정된 자리를 지키고 작심하여 어른이 되어간다. 현실을 걸친 음험한 평화는 감춰둔 송곳니로 추상화만 골라서 찢으려 든다. 대세의 평화에 겁먹은 외톨이는 반듯한 캠퍼스에 액자를 묻어두고 도피로 질주한다. 액자 없이 자유로운 불안한 추상은 천진한 긴장 속으로 달아나 푸르른 부조리를 덮고 이 년 반 동안 곰삭는다. 그래봤자 추상화라는 걸 알기에.. (2) 목놓는 통곡 말고, 내무반 옆 변소 안에서 어머니 사진 몰래 꺼내는 목청 없는 슬픔.. 기발한 유머 한 자락에 인심 쓰는 숙녀의 쓴웃음 말고, 쓰레기장과 씨름하는 초라한 한숨이 귀여워 대장의 외동딸 열두 살 아이가 나눠 주는 꿈결 같은 미소... 사랑을 보장하는 답장은 말고, 나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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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소녀 3이상한 병사 (상준 외전) 2022. 11. 27. 15:56
이제 보니 너 상당히 맹랑하구나. 글구 너 갑자기 말이 짧아졌다? 아저씬 네 과외 선생이라고! 벌써 잊은 건 아니겠지? 자아, 시시껄렁한 얘긴 그만하고 책이나 펴자. 에잉 알았다고요. 근데 첫날부터 바로 들어가요? 좋아. 진도는 낼부터 빼기로 하고 오늘은 첫날이니 학습 계획을 짜 보기로 하자. 네 실력이 실제 어느 정도인지 간단히 테스트도 해보고 말야. 근데 아찌는 내가 울 아빠 딸인 거 언제 안 거야? 오늘 첨 안 거야... 요? 그래 인마. 그게 뭐 그리 궁금해? 쓰레기장에서 나 봤을 때는 어땠어요? 이쁜 애라고 생각했어요? 너, 공부는 진짜 잘하겠다 사소한 것까지 다 기억하고. 그거 작년 일인데.. 그래서 나 이뻤냐고요. 응? 아찌? 소린이 너! 자꾸 아찌 아찌 그럴래? 앞으로 선생님이라고 불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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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소녀 2이상한 병사 (상준 외전) 2022. 11. 25. 15:13
전상병을 선탑자로 태우고 쓰레기 하치장으로 출발한 육공트럭이 읍내를 통과하는 중이다. 내가 선탑을 다 해 보다니, 정말이지 거꾸로 달아도 잘만 가는 게 국방부 시계였군. 아쉬워.. 제대할 날을 손꼽는 나, 어쩔 수 없는 놈인가. 이곳이 좋아 말뚝 박을 이유가 내겐 무궁무진한데. 타락해도 "순진한 시공"이라서 숨 쉴 만은 한데. "치밀한 명분"도 태생이 어수룩하여 정감이 가니, 못난 나라고 해도 한껏 비웃으며 우쭐할 수 있어 좋은데. 공포와 고통을 앞세운 "설레발"들이 평화롭게 합심하여 자신들 놀고 쉴 곳 마련하는 전장이라 맘에 드는데. 단장을 거듭하는 "멀끔한 예정"만 따로이 불로장생하며 은밀하게 난공불락을 축조하여도 어차피 따로 노는 허술함이라, 새침한 우울조차 한 편의 희극 보듯 키득거리게 되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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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소녀 1이상한 병사 (상준 외전) 2022. 11. 25. 00:33
전상병! 너 오늘 오후 훈련 열외다. 점심 먹고 나서 애들 두 명 델꼬 쓰레기장 투입해! 내무반장 송병장이 뒤늦게 식사하러 내려오다, 짬 식히는 나를 불러 넌지시 건넨 전달 사항이다. 그래 내가 젤 만만하겠지. 물상병 둘씩이나 놔두고 나를 시켜? 하긴 뭐 이등병 때부터 찍힌 군번 상병 달았다고 달라질까. 난 저들에게 상병 3호봉이 아니야. 그저 애물단지 영원한 일병일 뿐.. 각종 폐기물과 고철 쓰레기 등이 한 데 뒤엉켜 커다란 둔덕을 형성한 쓰레기장. 그 언덕(?) 위로 세 명의 장병이 등정하듯 올라가 있다. 하나같이 디딤발이 불안정한 위태로운 자세다. 강원도의 매서운 추위가 겨울의 막바지를 쥐고 흔들며 좀처럼 물러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들 셋의 차림은 단출한 체육용 트레이닝복. 저녁식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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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레지이상한 병사 (상준 외전) 2022. 11. 13. 21:05
중대 꼴통 정하사가 나를 불렀다. 전일병 이누무시키 후후, 이병 딱지 떼니까 정신없던 아랫도리가 슬슬 기지개를 켜지? 엉덩이를 워커 발로 툭 치며, 이제는 익숙해진 능글맞은 농지거리를 어김없이 던진다. 널 이뻐라 하는 이 정하사가 오늘 인심 한 번 썼다. 오늘 나하고 외출이다. 지금부터 5분 준다. 후딱 준비하고 행정반으로 칼같이 튀어왓! 싫다. 귀찮고 피곤하다. 그에게 구속 되어 하릴없이 다리품을 판 경험이 저번에도 있던 터라 그렇고 당시 눈치없이 그를 따라나섰다 복귀 후 소대 내에서 호되게 당한 후환 때문에라도 그렇고 무엇보다, 주인 잃은 초췌한 그리움이 산발하고 돌아다닐 읍내에 난 더 이상 나가기가 두렵다. 토요일이지만 오늘은 우리 소대에 특별 사역이 할당돼서 말입니다.. 어쭈구리, 그래서 특급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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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퇴행이상한 병사 (상준 외전) 2022. 11. 10. 14:07
야, 전이병, 어머니 면회 오셨다. 이 씹탱가리, 이등병 갓 단 노무시키가 빠져갔구.. 2주 전에 외박한 놈이 또 면회야?! 구획되고 정돈된 우울은 사람을 참 구질구질하게 만든다. 몰염치하고 한없이 졸렬한 정신박약으로 만든다. 일반화의 오류는 범하지 말자. 내가 그렇다고 내가. 너희는 아니고 내가. 산속으로 도피한 내가.. 휴전선 아래 살벌한 긴장이 늘어지게 하품하며 고도 비만으로 뒤뚱거린다. 기름진 기만의 각 잡은 의기충천은 이를 악물고 버티는 자기 최면들의 핏발 선 목청에서 아름다운 군가들을 무한 반복으로 뽑아낸다. 별들이 우수수 하강하여 늠름한 필요악을 호령하는 판에 줄줄이 엮이는 잡풀들은 그저 꾹 참고 버텨야지, 견뎌내지 않으면 무슨 수가 있으랴. 그런데 견디는 수도 가지가지. 정석을 비껴가는 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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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징집이상한 병사 (상준 외전) 2022. 11. 8. 00:14
사는 게 왜 이리 서글프지? 공부도 이제 지겹고. 적성에도 안 맞는 학과를 왜 선택했을까. 스무 살이 넘어도 난 어린아이. 집에서 등록금 내줘, 책 사 줘, 밥 먹여 줘, 하지만 용돈은 NO. 그런데도 알바 한 군데 뛸 주변이 없으니. 풍족하지 않지만 굶진 않으니 동기 부여 NO. 취미가 은둔. 몸만 어른, 정신은 중학생. 대학과 고교를 구별 못해 학교는 따분할 뿐. 몸은 자꾸 동하여 춘정을 주체 못 해도 여자 사귈 생각은 없고 제 손만 성가시게 해. 여자를 뭣하러 사귀어라기 보단 사귀는 법을 몰랐지. 여자한테라도 일찍 눈 떴으면 인간이 좀 되었을까. 사회적 활동에 적극 나서는 생산적 인간 말이야. 과연 그럴까. 달랑 여자 때문에? 맘에 드는 한 여자만 찍어 주야장천 지극정성을 쏟았다면 이토록 외롭지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