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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 소녀 2
    이상한 병사 (상준 외전) 2022. 11. 25. 15:13

     

     

     

     

     

     

     

     

     

    전상병을 선탑자로 태우고 쓰레기 하치장으로 출발한 육공트럭이 읍내를 통과하는 중이다.

     

     

     

     

     


    내가 선탑을 다 해 보다니, 정말이지 거꾸로 달아도 잘만 가는 게 국방부 시계였군.

     

     

    아쉬워..

    제대할 날을 손꼽는 나, 어쩔 수 없는 놈인가.

    이곳이 좋아 말뚝 박을 이유가 내겐 무궁무진한데.

     

    타락해도 "순진한 시공"이라서 숨 쉴 만은 한데.

     

    "치밀한 명분"도 태생이 어수룩하여 정감이 가니, 못난 나라고 해도

    한껏 비웃으며 우쭐할 수 있어 좋은데.

     

    공포와 고통을 앞세운 "설레발"들이 평화롭게 합심하여 자신들 놀고 쉴 곳 마련하는 전장이라

    맘에 드는데.

     

    단장을 거듭하는 "멀끔한 예정"만 따로이 불로장생하며 은밀하게 난공불락을 축조하여도

    어차피 따로 노는 허술함이라,

    새침한 우울조차 한 편의 희극 보듯 키득거리게 되는데.

     

    그래서 체질이라 생각했는데.

    군대가 나를 거부하던 말든..

     

    야무진 착각인가.

    진정한 체질들에 대한 모독인가.

     

     

    괴팍한 도피는 변덕이 심하여 여기서도 도피를 꿈꾸는가.

     

    (삶이 진을 쳐서) 요란한 중력이 내 발목을 잡으면

    그곳이 어디든 그것이 어떤 형태든

    우선은 벗어나고픈 게, 나란 놈의 불치병인가.

     


    그래 쌩쌩 달려라.

    행길마다 골고루 널브러진, 고독의 파편들을 미처 발견할 수 없게.

     

     

     

     

     

     

    신호대기로 잠시 정차하여도 옆을 바라보기가 싫은 

    잿빛 파편들의 거리에, 오늘따라 강렬한 천연색이 스며들며 온전한 무언가를 빚어내려 한다.

    그리고

    형상화를 갈망하는 그것이 내 경직된 머리를 돌리려 무던히 애쓴다. 자기 좀 봐달라고.

     

     


    저 아이는..

     

    그새 자란 머리가 여린 어깨에 닿을 듯 찰랑인다.

    무릎이 드러난 치마 아래 가냘픈 다리는 여전하였으나,

    약간은 더 성숙한 "소녀로의 변화"를 또렷이 감지하기엔

    바뀐 헤어스타일과 부쩍 커진 키로도 충분하다.

     

     

     

    참, 지금은 겨울방학이겠군.

     

     


    그 애와 또 시선이 부딪쳤다.

     

    알 수 없는 힘에 사로잡힌 듯 나는 시선을 거둘 수가 없다.

    숫기 없는 내가 어찌 된 일이지?

     

    아이의 귀여운 입술이 조금 씰룩이는 것 같다.

    또 웃어주려는 걸까. 그때처럼..

     

    옅은 미소와 함께 이번엔 살짝 손까지 들어 흔든다.

    같이 웃어주지 못하는 내가 미안할 지경이다.

     

    수줍게 움츠리는 아이가 아님은 이미 짐작하고 있었지만, 저렇듯 발랄한 대범함까지는 기대하지 못하였는데..

     

    연대장의 딸이어도 그렇지

    아무 병사에게나 이러한 태도를 보일 리가..

    설마 나를 기억하고 있는 걸까.

    그렇다면, 그간 아이의 가슴에도

    여간해선 잊히지 않는 인상으로 내가 각인된 걸까.

    잠시 스치는 짧은 순간에 내가 그러했듯이..

     

     

     

     

     

     

     

     

     


    충! 성!

    상병 전상준, 중대장님 호출받고 왔습니다.

     

     

     

    충성, 어 그래 전상병 어서 오게. 다름이 아니고 말이야..

     

    거두절미하고 단도직입적으로 얘기하겠네. 연대장님 따님이 방학을 맞아 부대에 와 있어.

    내년이면 중학생이 되고 해서 보충 학습이 절실한 모양이야.

     

    물론 소린이가 공부를 못하진 않아.

    해외연수도 몇 달 다녀왔고 여러 모로 똑 소리가 나는 아이라네.

    중학 과정을 미리 예습하는 차원에서 과외를 좀 받았으면 하는데 자네 만한 적임자가 없더구만.

     

    봄방학까지 포함해서 넉넉잡고 보름

    자네가 수고 좀 해 줘야겠어. 알겠나?

     

     

     

    상병 전상준.

    네에! 알겠습니다!

     

     

     

     

     

     

     


    여어, 전상주이!

    존나 풀렸구만 팔자에도 없는 과외병까지 하고.

     

    땡보직 맡았다고 너무 좋아할 건 없어.

    그거 핑계로 뺀질대면서 뭐든 열외 할 궁리부터 했다간 알지?

     

     

     

    고 병장님 기대할 걸 하십시오. 전상병 유일한 재주가 하이바 굴리는 것 아닙니까.

     

    아오, 저 시키 이참에 가방끈 덕 톡톡히 보네. 아오, 열받아!

    우리들 좆뺑이 깔 때 저 녀석 한 동안 훈련 사역 빠지는 꼴, 어케 본담..

     

     

     

    나상병 님 누군 뭐 좋아서 하는 줄 아십니까? 군대에서 까라면 까야지 별 수 있냐 말입니다.

     

    가뜩이나 피곤한데, 머리 굳은 군바리

    책 붙잡고 누굴 가르칠 생각 하니, 벌써부터 눈앞이 어찔합니다.

     

    그깟 며칠 가르친다 해서 성과가 날 리 없는데,

    만에 하나 별 효과 없다고 연대장님 화내시면

    영창 아님 최소 완전군장 뺑뺑이지 말입니다.

     

     

     

    아, 지랄..

    많이 컸다 전상준? 상병 3호봉도 짬밥이냐?

    말로 할 때 아가리 닥쳐라이 쫄따구들 보는 앞에서 대가리 박기 싫음.

     

    하하하, 고 병장 님, 이 자슥 말하는 것 좀 보십시오.

    우리 부대에서 까라는 대로 안 까기가 둘째 가라면 서러울 놈이

    요럴 때만, 까라면 깐다네요 허허.

     

     

     

    어후, 나철민 네가 더 시끄러. 일 절만 해라.

    열받아 봤자 너만 손해잖아. 저놈 하나 갈구다가 속 터져 뒈질 일 있냐고.

    저 인간 안 갈궈본 고참 있음 나와보라 그래.

    그렇게 여럿이서 악으로 굴렸건만 어디 고쳐지디?

     

    못 말리는 사고뭉치 저러고 상병 짬밥까지 처드신 게 도리어 대단한 일이지.

    이쯤이면 그냥, 속이나 편하게 생각하자고.

    까라는 대로 안 깐 게 아니라 까려고 해도 못 깐 거라고 말야.

    체력, 정신력, 모두가 저질이라서 배 째라며 나가떨어지는 데야 뭔 수가 있겠어?

     

    뒤늦게 속병 걸려 제대하기 싫음

    저놈 그만 터치하고 우리 살 길이나 신경 쓰잔 얘기지.

     

    차라리 잘 됐어.

    안 그래도 애들 물들까 걱정되던 차에

    알아서 떨어져 주니..

     

     

     

    고벵요, 속지 마십시오!  저 사이비를 정식 고문관 취급해 주면 안 됩니다.

    그게 저놈의 노림수라고요. 저 인간 뺑끼질 한두 번 당했습니까 어디?

    군바리 취급 안 하고 쌩깐다 해서 괴로워할 종자가 아녜요 저눔은.

    오히려 좋아 죽을 걸요? 속으루다?

     

    지 버릇 개 못준다고, 연대장 딸내미 개학하면 도로아미타불이잖습니까.

    이참에 중대장한테 건의해서 앗사리 본부로 전출을 보내 버리는 게 어떨까요.

     

     

     

    뭐 고벵?!!

    친하다고 봐주니깐 틈만 나면 기어오르지? 이걸 확!?? 죽을라구..

     

    띨빡아, 그게 맘대로 되니? 애 성적 팍팍 올려서 연대장 눈에라도 들면 모를까..

    그리고 그간 시도 안 해 봤냐고요. 이리 갈굼 당하면서도 본인 스스로가 전출은 절대 안 가겠다 하잖냐.

    강제 전출당할 정도의 사고는 치지 않으면서 우리 피를 살살 말리는 게

    전상주이 주특긴데, 우린들 어쩌겠냐고.

     

    어이 전상병, 오늘부터 관사 가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제발이지 연대장 눈에 들도록 해라.

    네 말대로 애 성적 올리는 건 물 건너갔다면, 연대장 똥꼬라도 싹싹 야무지게 빨아 봐.

    혹시 알아? 당번병으로 차출될지..

     

     

     

    오호, 그런 방법이 있었네. 역시 고병장님 짬 허투루 드시지 않았어 헤헤.

     

     

     

    그려, 이눔처럼만 하면 되겄네. 아첨은 우리 나상병 따라갈 인재가 없지.

     

     

     

    에이 또 왜 이러십니까 고벵 아니 고병장님.

     

    그러고 보니 연대장 사무실 따까리가 아마 말년인가 그렇지요?

     

     

     

    아, 그, 이 병장..

    말년은 아니고, 한 사오 개월 남았나..

     

    여튼, 전상병은 잘해보라고.

    이런 좋은 기회가 어딨어? 웬만한 빽으론 들어가기 힘든 자리야.

    그러니 지금부터 눈도장 확실히 받아두란 말이야. 애먼 놈이 채가기 전에.

     

     

     

    고병장님두..

    그리 탐나는 보직이면 고병장님이 한번 도전해보시지 말입니다?

    고병장님 또한 저 못잖은 가방끈이시지 않습니까.

     

     

     

    마, 대학이라고 다 같은 대학이냐?

    글고 병장 단 놈이 거길 뭣하러 올라가?

     

     

     

    참 어지간히들 제 꼴 보기가 싫으신가 봅니다.

     

    제가 바본 줄 아십니까?

    고참님들 말씀대로 여지껏 온갖 수모 견뎌 가며 예까지 왔는데,

    병신 취급, 개 취급당해가며 간신히 단 상병 계급장인데,

    혼이 반쯤 나갈 정도로 개고생 실컷 하고 이제야 겨우 한숨 돌릴 짬밥에

    연대 본부 올라가서 제대하는 날까지 뺑이나 쳐봐라 이겁니까?

     

     

     

    어이쿠! 남이 들으면 진짠 줄 알겠네.

     

    입이 삐뚤어도 말은 바로 하자.

    막말로 네가 무슨 고생을 그리 뻑적지근하게 했냐? 오히려 너 땜에 네 위 선임들이 죽어났지.

     

    선임들만 죽어났으면 그나마 양호한 거지.

    너 하는 일 없이 처묵은 짬만 늘어갈 때 네 밑 군번들이 표현은 못하고 쌓아두는 불평불만들

    넌 알기나 해?

    눈치 없기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네가 알 턱이 없겠지.

     

    위아래 없어지고 소대 군기 빠질까 봐

    꼴에 상병인 널 두둔하고 싶어도, 이거야 원

    녀석들 얘기가 틀린 구석이 있어야 말이지.

     

    쯧쯧, 고참 망신은 혼자서 다 시키고..

     

     

     

     

     

     

     

     

     

     


    추웅!! 써엉!!!

     

     

     

    어서 오게. 자네가 전상준이로구만.

    유 대위한테 얘기 들었어. OO대 다니다 왔다고?

     

     

     

    네에! 그렇습니다!!

     

     

     

    들었겠지만, 딸아이가 내년에 중학생이라네.

    적어도 영어하고 수학은 중학 교과 수준에서 미리 예습해두는 것이 낫겠지?

    자네 생각은 어떤가?

     

     

     

    상병 전! 상! 준!

    네에! 맞습니다!!

     

     

     

    교재는 선생님 것까지 준비해 놓았으니까

    그걸 참조하셔서 가르치시면 될 거예요.

     

     

     

    감사합니다 사모님!

    그렇게 하겠습니다.

     

     

     

    소린아, 과외 선생님 오셨다.

    뭐 하니 나와 보지 않고..

     

     

     

     

     

     

     

     


    나..

    아찌 알아요.

     

     

     

    나도 알아, 네가 나 안다는 거.

    일전에 읍내에서도 봤었고..

     

    군인 아저씨가 과외 선생이라니 좀 우습긴 하다 그치?

     

     

     

    흐히, 아찌 너무 쫄지 마요. 울 아빠 무서운 사람 아니야.

     

     

     

    쪼.. 쫄기는.

    군대에선 원래 상관한테 이렇게 하는 거야. 특히 네 아빤 아저씨한테 최고 대장이잖니.

     

    이 롤케잌 맛있구나. 과자두..

    넌 안 먹니?

     

     

     

    주스랑 같이 마셔요. 그러다 목메겠네.

    후후, 군인 아찌들은 단 거 되게 좋아한다더니 역시..

     

     

     

    어흠, 아저씬 아니야.

    사모님이 직접 차려 주셨는데 안 먹으면 예의가 아니란다.

     

    너 소린이, 공부 잘한다면서? 학교에선 몇 등 하는데?

     

     

     

    으응 그냥 쫌 하는 편.

     

    아찌 오늘은 딴 사람 같네?

    깨끗하게 목욕하고 왔구나.

     

     

     

    당연하지.

    연대장님 관사에 오는데 더럽게 하고 오냐?

     

     

     

    원래 귀여운데 씻으니깐 더 귀엽당.

    아찐 내가 좋아하는 타입이걸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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