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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한 병사 (상준 외전) 2022. 11. 25. 00:33

     

     

     

     

     

     

     

    전상병!

    너 오늘 오후 훈련 열외다.

    점심 먹고 나서 애들 두 명 델꼬 쓰레기장 투입해!

     

     

     

     

     

    내무반장 송병장이 뒤늦게 식사하러 내려오다, 짬 식히는 나를 불러 넌지시 건넨 전달 사항이다.

     

    그래 내가 젤 만만하겠지. 물상병 둘씩이나 놔두고 나를 시켜?

    하긴 뭐 이등병 때부터 찍힌 군번

    상병 달았다고 달라질까.

    난 저들에게 상병 3호봉이 아니야. 그저 애물단지 영원한 일병일 뿐..

     

     

     

     

     

     


    각종 폐기물과 고철 쓰레기 등이 한 데 뒤엉켜 커다란 둔덕을 형성한 쓰레기장.

    그 언덕(?) 위로 세 명의 장병이 등정하듯 올라가 있다.

    하나같이 디딤발이 불안정한 위태로운 자세다.


    강원도의 매서운 추위가 겨울의 막바지를 쥐고 흔들며 좀처럼 물러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들 셋의 차림은 단출한 체육용 트레이닝복.

    저녁식사 전까지 끝내야 할 작업의 강도를 가늠하기에 충분한 복장이다.

    땀범벅의 녹초가 될 것임을 짐작하고도 남는 유경험자 전상병이

    쓰레기 작업에 처음 투입되는 후임들을 위하여 지시한 것이다. 그 정도로 가볍게 입어야

    산악 지형의 칼바람조차 무색한 육체노동의 열기를 감당할 수 있겠다.


    고약한 악취가 진동을 하는 쓰레기 더미 위에서 삽 하나씩 달랑 들고 선 이들은

    엄두가 나지 않는지 잠시 멍을 때리며 주변을 바라본다.

    일 년에 두 번 행하여지는 정기 행사와도 같은 대형 작업을

    단 세 명이 스피디하게 해치워야 한다.

    벅차 보여도 지원은 없다.

     

     

     

     

     

     

    이 정도 냄새는 약과다.

    한여름에 한다고 생각해 봐. 죽는다 죽어.

    지금 하는 걸 다행인 줄 알아.

     

     

     

     

     

    전상병의 엉뚱한 행적을 익히 듣고 몸소 겪기도 하여, 잘 아는 백일병.

    일병 갓 단 까마득한 후임이 그의 말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며 외면한다.

    소대 돌아가는 상황에 아직은 어두운 막내 김이병만

    약간의 두려움이 서린 눈빛으로 그에게 귀를 기울이고 있다.

     

     

     

     


    백일병 너마저냐.

    새삼스레 섭섭할 건 없지. 충분히 예상하며 시작한 군생활인 걸.

     

    아주 바르거나 아주 악독하거나, 아주 잘해주거나 아주 엄하거나..

    이러한 일상의 선임들 모습에서 상당히 비껴 선 나인 걸.

     

    다, 나의 자업자득.

    이해해 너희들을.

    나를 무시하는 게 정상이다.

    나 같은 놈은 자대에 한 명이면 족해. 그래야 부대가 돌아가지.

    별종은 언제나 극소수여야 군대가 유지되지.

     

    그러나, 난 자업자득이 좋아. 엄마의 품처럼 아늑해..

     

     

     

    백일병 정도 짬밥일 때 이 작업을 처음 했었지.

    재수가 없어야 제대 전 두 번이라는데 난 벌써 두 번째군.

    후후 상관없어. 이 따위로 생활하면서 재수 좋길 바라는 게 도둑놈이지.

     

    훈련보다 차라리 이런 잡일이 좋아.

    아무리 힘들어 죽을 것 같아도, 왠지 평화로운 이 일이 맘 편해.

     

    병장 달아도 할까.

    "지옥의 쓰레기 작업"에 세 번 투입된 기록, 한 번 세워 볼까.

    굳이 결심할 필요도 없지. 그때 되어도 저들은 나를 부를 테니까.

    제대하는 날까지 나를 그렇게 취급할 테니까.

     

     


    찌는 무더위 속에서 - 걸레가 되어가는 - 런닝만 걸치고,

    골라낸 소각물들을 화염 이는 소각장으로 날랐었지.

    그리고 육공 트럭 뒷칸,

    좌석을 접어 올려 빈 틈 없이 가득 채운 더러움 속에 파묻히다시피 쪼그리고,

    우글대는 구더기들과 함께 읍 외곽 하치장으로 갔었지.

     

    (어리바리하지만 일은 잘하는) 건장한 이병 보는 앞에서

    깐깐한 상병 고참의 갈굼 비를 맞아가며 최후의 구더기까지 싹싹 쓸어내야 했어.

     

    그런 지긋지긋한 날이 난 달콤하게 기억돼.

    왜일까.

    위대한 긍정을 추종해서?

    아니, 여기서의 내 사고 메커니즘은 그 따위 추상성에 의존하지 않아.

     

     


    쓰레기와 씨름하는 일병의 초라한 한숨을 연민하여 꿈결 같은 미소를 수줍게 나눠주던

    열두 살의 어린 소녀..

    연대장의 외동딸이었지. 이름이..

    아아,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방학이 끝날 무렵

    서울에서 올라와 열흘 가량 관사에 머물다 간 아이.

    희고 창백한 피부, 초롱초롱한 눈망울, 짧게 친 커트..

    허약해 보이지만 똘망똘망한 사내아이 같았지.

     

    자전거를 타고 혼자서 영내를 유유히 돌아다니다 소각장 근처에 멈춰 선 후

    맹렬한 기세로 하늘을 찌르던 검은 연기를 물끄러미 바라보더군.

    아이답지 않은 진중한 모습으로..

     

    쓰레기장과 소각장 사이를 닷지 트럭으로 두세 번 왕복한 탓에 거의 녹초가 된 우리는

    사실 낯선 아이를 주시할 여력이 없었다.

    아니 나만 그러했으리라. 나보다 어린 고참은 체력이 남아도는지

    민간인에 대한 왕성한 호기심을 주체하지 못하고 기어이 말을 걸었으니까.

     

     

     

     

     

     

     

     

     

     

     

     


    고 녀석 이쁘게도 생겼다. 니 머스마가 가시나가?

     

     


    나 여잔데요.

     

     

     

    어색한 미소와 함께 입가에서 흘러나온 목소리는 여아의 가느다란 그것이 분명했다.

     

     


    니 여긴 우째 들왔노? 위병이 안 잡드나?

    아님 영관장교 딸내미쯤 되는 모양이제?

     

     


    박상병 또 시작이냐? 여자라면 그냥 나이를 가리지 않으니..

    이러고 노닥거릴 시간 없다. 서둘러!

     

     

     


    마침 진척 상황을 체크하러 내려온 인사계가

    잔소리와 더불어 그의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그럴 의도는 전혀 없었으나..

     

    우릴 향해 주름 굵은 미간을 찌푸리던 천중사가 아이에게 얼굴을 돌리자마자

    환한 표정으로 돌변하며, 마치 친한 삼촌인 양 친절이 과하게 묻은 몇 마디를 건넨 것이다.

     

     

     


    우리 아가씨 여기 있으면 위험해요.

    어서 공관으로 돌아가세요. 혹시나 연대장님 보시면 아저씨 혼나요.

     

     

     


    연대장이란 단어에 박상병은 적잖이 놀라는 표정이었고, 나 또한 그제야 아이를 흘끔거렸지.

     

    햇빛에 벌겋게 그을린 얼굴과 목은 그을음 섞인 땀으로 얼룩져 번들거렸지만

    그래서 결코 호감 가는 모양새가 아니었는데도,

    나와 눈을 마주친 귀여운 아이는 금방 고개를 돌리지 않았으며

    입술에 머금었던 당돌한 미소도 중단 없이 그대로 유지하였다.

     

    어린이 드라마에나 등장할 참한 모습이 나를 잠깐이나마 설레게 하였지.

    짧은 순간 각인된 그 모습 아직도 선명해.

    이름은 기억나지 않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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