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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소녀 3이상한 병사 (상준 외전) 2022. 11. 27. 15:56
이제 보니 너 상당히 맹랑하구나.
글구 너 갑자기 말이 짧아졌다? 아저씬 네 과외 선생이라고!
벌써 잊은 건 아니겠지?
자아, 시시껄렁한 얘긴 그만하고 책이나 펴자.
에잉 알았다고요.
근데 첫날부터 바로 들어가요?
좋아. 진도는 낼부터 빼기로 하고 오늘은 첫날이니 학습 계획을 짜 보기로 하자.
네 실력이 실제 어느 정도인지 간단히 테스트도 해보고 말야.
근데 아찌는 내가 울 아빠 딸인 거 언제 안 거야?
오늘 첨 안 거야... 요?
그래 인마. 그게 뭐 그리 궁금해?
쓰레기장에서 나 봤을 때는 어땠어요?
이쁜 애라고 생각했어요?
너, 공부는 진짜 잘하겠다 사소한 것까지 다 기억하고.
그거 작년 일인데..
그래서 나 이뻤냐고요. 응? 아찌?
소린이 너! 자꾸 아찌 아찌 그럴래?
앞으로 선생님이라고 불러. 여기 오는 동안 만은 난 네 선생이야!
학생이 선생을 우습게 알면 어찌 공부가 되겠어!?
칫.
묻는 말에 대답도 안 해 주고..
이쁘다고 이뻐! 첫눈에 아주 뿅 갔다고! 됐냐?
휴우 암담하다. 널 어찌 가르칠꼬..
히히, 아찌도 아니 선생님도 내가 싫진 않았구나.
방학 때마다 아빠도 볼 겸 강원도로 놀러 오니까 좋지?
네.
경치 좋고 공기 맑고 참 좋아요. 아빠를 볼 수 있어 더더욱 좋구요.
그렇지. 오염이 거의 안 된 신선한 곳이지. 적적하고 겨울에 많이 춥긴 해도..
가끔 놀러 오기엔 괜찮은 동네야.
네 말이 틀리지 않는데 난 왜..
집에 가고 싶구나. 엄마 보고 싶구나.
알아요. 군인 아저씨 힘든 거..
짜식 제법이네.
아니야 인마. 선생님 그럴 짬밥은 지났어. 이등병 때 얘기지 그건.
하지만 선생님은 볼 때마다 외로워 보였어요. 작년에도, 지금도..
잘 웃지도 않고 맨날 시무룩해.
웃으면 훨씬 더 귀여울 것 같은데..
허어, 어린애가 못하는 말이 없네.
예리하구나. 아이의 눈은 속일 수가 없다더니.
글쎄..
사람은 누구나 외로울 수 있어 항상은 아니더라도.
하필 소린이가 볼 때마다 난 외로웠는지도 모르지.
나도 모르고 그냥 지나치는 그것을
아이의 맑은 영혼은 놓치지 않았나 보다.
어리다고 너무 무시하지 마요.
나도 외로울 때 많다고요 뭐..
그래, 무시하지 않으마.
하긴, 내가 네 나이 때에도 왠지 모를 쓸쓸함은 자주 곁을 맴돌았었으니까.
어쩌면 너도 그랬나 보다.
마침 그럴 때 나를 봤으니 나 또한 그렇게 보였나 보다.
선생님 오늘 엄청 피곤해 보인다.병사들은 날마다 피곤에 젖어 산단다.
근무에, 점호에, 훈련에, 사역에, 청소에..
우유 마시고 힘내세요.
선생님, 초코 쿠키 좋아한댔죠? 자요, 과자랑 같이 드세요.
번번이 고맙구나.
오늘은 너 혼자 있니? 사모님이 안 보이시네?
네에, 사모들 모임이 있다나 봐요.
그러니 오늘만큼은 긴장 풀어요.
응, 알았다.
숙제 내준 건 다 풀었니?
아뇨. 반 밖에 못 했어요. 나도 어젠 피곤해서요 헤헤..
노느라??
그럼 지금이라도 마저 풀고 있으렴. 너 푸는 동안 선생님 삼십 분만 눈 좀 붙일게.
우와, 정말 대따 졸리신가 부다.
완전 새로운 모습이셔 우리 선생님.
선생님 놀리지 말고 어서 숙제나 마저 해.
깊이 잠들지 모르니 혹시라도 누가 오면 무조건 신속하게 깨울 것.
절 믿으시고 코주무세요. 자장가 불러주까요?
또 넘친다.
고맙지만 사양 하마. 베개나 하나 다오.
바닥은 딱딱하잖아요. 그러지 말고 내 침대에서 편하게 쉬어요.
그.. 그럴까 그럼..?
네에, 연대장님.인마! 인터폰 좀 빨리 받아!! 밖에서 뭐 하는 거야!?
죄.. 죄송합니다.
차 준비하느라 잠시 자리 비웠습니다.
커피 하나, 유자차 하나 가져와!
예! 알겠습니다.
미리 준비했단 놈이 왜 이리 늦게 가지고 들어와?!하여간 굼떠 가지곤.. 쯧쯧..
죄송합니다.
아주 입에 붙었군. 죄송할 일을 안 하면 되잖아!
아아, 얘가 전역한 이병장 후임으로 들어왔다는 애군요.
다음 달에 병장 달 놈인데 매사가 꾸물꾸물. 답답해.
이병장 반만 해 줘도 좋을 텐데 말이야..
호호, 급하기도 하셔라.
이제 갓 올라왔다면서요? 차차 익숙해지겠죠.
갓은 무슨.. 삼 개월 넘었다고.
삼 개월이면 초짜는 아니네.
우리 까다로우신 연대장님 수발드느라 힘들지?
허허, 반중위, 뭔 말을 그리 해?
편들지 말라고. 너무 그러면 기어올라 이것들은..
에이, 농담한 거예요 연대장님.
이름이..
전.. 상준이로구나.
인물은 이병장보다 훨 낫네요? 호호.
전상병, 앞으로 우리 자주 보게 될 거야.
연대장님이 가장 자주 찾는 장교가, 나 반중위란다.
뭐해? 악수 안 하고!
숙녀분이 먼저 손 내밀잖아!
아, 네에..
죄송합니다.
연대장님, 너무 다그치신다. 가뜩이나 주눅 든 아이한테..
어머, 병사 손이 어쩜 이렇게 보드랍다니?
여자인 내 손이 다 민망할 지경이다 얘.
어흠..
넌 이제 그만 나가서 일 봐.
예! 알겠습니다!
유자차 잘 마실게.
그런데 전상병, 군복이 많이 작아 보이네. 군에 와서 훌쩍 자랐나?
네?? 아, 네에..
그.. 그렇습니다.
어머나! 히프 빵빵한 것 좀 봐.
확실히 남자는 군대를 와야 된다니까.
이렇게 훤칠해지고 얼마나 좋아?
어허, 반중위 또 시작인가?
아무리 상관이라지만 젊은 사내 궁둥이를..
우리 사단의 꽃 반중위, 체통 좀 지키게나.
호호, 제가 또 오버했네요 연대장님.
전상병 미안해요? 함부로 엉덩일 툭툭 쳐서.
어? 선생님 어디 가세요?선생님이 자전거 살살 타랬지. 여긴 차량 통행이 잦은 곳이라 특히 더 위험해.
아하, 알았다.
선생님, 장 보러 읍내 나가시는구나.
땡볕에 너무 오래 나다니지 마라.
강원도 햇살 장난 아니다. 이쁜 얼굴 새까매질라..
헤헤, 이쁜 건 알아 가지고.
떽! 버릇없이..
그럼 이따 집에서 봐요 오빠.
그래두 욘석이..?
야, 지프차 온다. 길 옆으로 붙어!
어머, 전병장!
읍에 나가는 길이야?
앗 충성, 이게 누구세요?
아리따운 강하사님이 손수 선탑을 하시고 어딜 가시나?
아이, 왜 이래 낯 간지럽게..
오늘 사단 들어가는 날이잖아.
타라. 가는 길에 내려 줄게.
안 그러셔도 되는데..
무슨 소릴!
우리 전병장이 타 주는 맛난 커피, 얻어마신 게 벌써 몇 잔인데.
하하, 별말씀을..
그럼 신세 좀 지겠습니다.
어어?
소린이 아직 안 가고 있었니?
흥!!!
어서 들어가!
오늘도 숙제 안 함 선생님한테 혼난다!?
흥! 몰라욧!!
아무나 여자면 다 이쁘다지..
이크, 우리 아가씨 질투하나 보네?
전 병장 이제 클났다. 호호호..
놀리지 마세요 강 하사님.
오빠 두고 봐.
이따 아빠한테 다 이를 거야, 메에롱!
'으휴, 팔자야..
병장 달고 군생활 꼬인다 꼬여!!'
사춘기 초반부로 막 진입한 소녀의, 일시적인 시한부 순정.
깜찍한 그것이, 군생활 후반부를 이어갈 수 있는 엉뚱발랄한 (야리꾸리한) 원동력이 되어 주었다.
그 덕택에, 심리적으로만 널럴해진 말년을 쑤시고 들어올 (괴로우리만치 이상한) 멜랑꼴리를 무사히 견뎌낼 수 있었다.
아울러, 군대 내 여군들의 싫지 않은 추파 및 희롱과 함께 소녀의 순정은,
적당한 자뻑(왕자병?)이 선사한 짜릿한 활력을 더욱 강화하는 "구릿빛 긍정 효과" 그 자체였다.
그렇게 사춘기 소년 비슷한 나르시시즘과 오랜만에 재회하여,
괜찮아 보이는 이성에 대해 - 여자 남자를 떠나 - 순수한 호감을 거리낌 없이 표현하던 시절
(모두가 촌스럽던) 그때의 감성으로 잠시지만 회춘하여도 보고, 그러한 맥락에서,
(추억 속의 소녀들을 떠올리게 되는) 순진한 감정 코드로 말년을 대책 없이 설레게 한, 대장의 귀엽던 딸내미 그리고 유독 어여뻤던 한 여하사를, 뒤끝 없이 좋아도 해 보았다.
머리로는 전혀 반가울 게 없던 제대 당일,
제대하는 남들처럼 내 가슴도 두근거려 곤혹스러움을 느끼는 가운데,
그들의 환호에 부화뇌동하는 (정신없는) "신남과 기쁨"이 내 멱살을 잡고 위병소 밖으로 내동댕이쳤다.
미묘한 감정이 포박했던 "소녀와 여인"도 얼결에 풀려나, 이때다 싶어 비현실의 안갯속으로 쏜살같이 사라져 버렸다.
나는 기나긴 혼수상태에서 (건강함을 제작하고 조립하는 몹시도 지루한 꿈에서) 막 깨어난 환자가 되어,
골골대는 나를 받아 줄 (역시 골골대는) "위병소 밖 세상" 속으로 묵묵히 들어갔다.
이 년 여의 기간이 아무 변화를 야기하지 않은, 남부끄러운 일관성만 한아름 안아 든 채..
동시에,
군바리의 그리움 목록에서 그녀들을 미련 없이 삭제하고
이별의 정한조차 쑥스러워 과감히 외면하였다.
괴팍한 야박함이 이렇듯 제대로 발동되고 있음은, 내가 군생활을 마쳤다는 또 하나의 증거.
집으로 돌아오는 (실은 나간 적도 없지만..) 탕자처럼 새록새록 나를 찾아오는 "나다운" 증거들.
짐스럽기만 한 그것들을 가슴에 달고 다른 아무런 치장도 하지 않은 채
군인 대접 못 받은 자의 지극히 초라한 몰골로
야반도주하듯 - 국방색이 처연하게 물든 - 2년여의 기간을 도망쳐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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