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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2. 욕망을 거니는 고독 : 사랑 옆에서 2
    상념 소용돌이 (상준 외전) 2023. 1. 20. 00:01

     

     

     

     

     

     

     

     

     

     

     

     

     

    새벽 1시경

    부근 모텔.

     

     

    오빠, 보기완 딴판인데?

     

    괜찮았어?

     

    응, 아주 좋았어.

     

    너도 내가 기대했던 대로야.

    그럼 우린, 겉과 속이 제대로 맞아떨어지는 커플인 셈인가?

     

    커플?

    커플은 지금 있는 하나면 족하지 않아?

    이 단어 왠지 진부하게 들린다.

     

    현실을 직시하자는 거냐?

    둘 다 싱글이 아니라 해서 커플 되지 말란 법 있어?

     

    현실을 바로 볼 줄 알았다면 오빠를 만나지도 않았겠지..?

     

    현실을 바르게 보는 것과 우리가 만나는 것은

    별개 아니었나?

     

    어떻게 살아야 정답인지를 내가 알고 있었다면

    이렇게 심심하지는 않았을 거라고.

     

    넌 심심해서 나온 거구나.

    난 사람들이 들이대는 정답들이 숨막혀서 나왔어.

     

    웬 방황?

    처자식 거느리고 정착한 가장 입에서 나올 말은 아닌 것 같은데..

     

    와이프처럼 말하는구나.

    너까지 날 숨 막히게 할 필요는 없잖아.

     

    쏘리.

    내 남편하고 많이 다르네. 우리 허즈번드는 지독히 현실적이라 탈이지.

     

    하하, 그러니?

    네 남편이랑 내 와이프가 커플 하면 잘 어울리겠다.

     

    그놈의 커플 커플!

    이 단어는 너무 형식적이야.

     

    커플이란 말 자체에 숨막혀 하네..

    너한테 커플은 무조건 속박인 거니? 특히 부부라는 커플?

     

    그렇다고 하면 악처가 되는 건가?

     

    사랑이 현실과 타협하면 부부가 되지. 물론 사랑이 없어도 타협은 할 수 있어.

    책임을 지고 싶어 안달하는 어른. 그런 어른이 되지 않으면 불안한 우리가 강박적으로 타협하여 부부가 되는 거지.

    부부라는 관계를 부정하기 싫은 건 단지 자존심이야.

    남편이라 불리는 자의 자존심.

    아내라 불리는 자의 자존심..

     

    그래. 결혼은 남녀간의 타협인 것 같긴 해. 아니 협상이라고나 할까. 그리고 적어도 협상에 있어선 남자보다 여자가 한 수 위야. 여러 면에서 여자가 불리한 이 나라에선 더욱이 그러하지. 약자의 방어 수단이랄까 생존 본능이랄까.

     

    여자는 사랑에 약하지만 때로는 사랑을 냉정하게 무시하기도 하지.

    사랑의 의미가 체화된 존재이면서 동시에

    사랑을 가장 잘 합리화하는 존재..

    생리적 사회적 역사적 명분을 획득하였기에

    죄의식 없이 당당하게 이런 태도를 견지할 수 있는 여자들. 그녀들이 어떨 땐 부럽기도 해.

    아, 일반화의 오류는 아니고

    현대의 일부 젊은 여성들이 특히 더 이러한 경향을 보이는 것 같단 말이지.

     

    못난 남자..

     

    그렇게 말하지 마. 억울해..

     

    후후, 농담이야.

    따져보면 나 또한 사랑 없이 결혼했던 것 같아.

    그저 남편의 구애에 수동적으로 반응했을 뿐.

    남자의 사랑에 반응하는 것이 여자의 사랑이요 미덕인 줄로만 알던, 순진한 시절이었지.

    때로는 기쁘게, 때론 의무적으로.

    때론 적극적으로, 때론 소극적으로.

    그렇게 반응하고 다시 남편의 반응을 살피고.

    손해 보는 느낌으로 결혼 생활을 시작하였으니,

    살면서 남편이 조금만 잘못해도

    필요 이상 화나고 서글프고 짜증 나고..

     

    답답하고, 뛰쳐나가고 싶고.. 그치?

    남편의 잔소리가 간섭으로 여겨지고,

    남편의 분신인 아이에게까지 짜증이 옮겨가고?

     

    잘 아네? 댁이 지금 그러셔?

     

    응..

    그래서 널 이해해.

     

    권태기가 이런 걸까?

     

    지금이

    슬기롭게 극복하면 넘어가지는 한시적 기간이라고, 생각하니? 진정?

     

    처음 만난 사내와 한 이불을 덮고 있는 게

    슬기로운 일은 아니겠지?

     

    지현아, 네가 심심한 건 바람을 피우지 못해서가 아니다.

    심심하다 느끼는 건 다름 아닌, 자유를 경험하고픈 충동이야.

     

    웃긴다 자유라니. 가출 소녀도 아니고..

    나 그딴 거에 미련 없어.

     

    단지 인간이란 이유로 느껴볼 수 없는 자유,

    인간이기 때문에 얻지 못하는 자유를 말하는 거야.

     

    그런 자유가 있어? 그게 뭔데?

     

    나도 몰라. 인간이니까..

    인간으로선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그곳을 막연히 그리워하는 게 인간의 슬픈 운명이지.

     

    무슨 해괴한 소리야?

    오빠만의 개똥철학은 사절할게.

    현실에 별 도움이 안 될 것 같아서 말이지.

     

    궤변인가? 내가 가끔 이래.

    그렇다면 실용주의 여사님, 당신이 심심하신 진짜 원인은 무엇인가요? 직접 말씀해 보시죠.

     

    진정한 사랑을 하고 싶어.

     

    진정한? 진실한? 그런 사랑은 어떤 사랑이지?

    세상에 있기나 한 사랑인가.

     

    정답 없는 세상이라며..

    사랑이라고 정답이 있겠어?

    내가 하고 싶은 사랑이 진정한 사랑이겠지.

     

    그러니까 그 하고 싶은 사랑이란 게 뭔데?

     

    진정한 사랑!

     

    못 말리겠군. 뭐 그렇다 치고,

    남편하고는 "진정한" 사랑을 할 가망이 없어서 다른 대상을 찾게 된 건가? 고작 채팅 같은 방법으로?

     

    커플이 아니라 소울메이트가 필요해 나에겐..

     

    실용주의자 답지 않은 발언인데?

     

    나, 실용주의자라 한 적 없어.

     

    네가 말한 현실은, 현실이 아니라 실존이었군.

    그것 봐, 너도 자유를 원하는 것 맞잖아! 나처럼..

    설명이 불가능한 자유와, 설명이 불가능한 사랑은

    결국 같은 것 아닐까?

    뭉뚱그려 그리움이라고 해두지.

     

    오빠! 미화하지 마. 불륜은 불륜이야.

    인정할 건 인정하고 우리 여기서부터 시작하자.

    내가 맘에 든댔지? 나도 오빠가 좋아.

    우리 오늘부터 사랑할까? 서로를 열렬하게 사랑해 볼까?

     

    그래 하자. 까짓것 사랑이 별건가.

     

    그 말 책임져야 돼?

    나의 심심함을 우습게 알고 가볍게 접근하다 큰코다치는 수가 있어.

     

    어째 협박으로 들린다?

    여자가 작정하고 바람 피면 물 불 가리지 않는다더니

    가정이 풍비박산되는 것도 불사하겠다?

     

    남편도 차라리 딴 여자 만났음 좋겠어.

     

    남편이 널 무지 사랑하나 보다.

     

    한 해 두 해 세월이 갈수록 남편의 사랑은 더 깊어지는 것 같아. 그이한텐 권태기란 것도 없나 봐.

     

    자랑하냐? 나 이런 남편 가진 여자야 라고.

     

    맘대로 생각해.

    내가 못되게 굴고 사고를 칠수록 그이는 내게 더 집착하는 거 있지? 이런 걸 애증이라고 하나?

     

    나 말고도 몇 번 사고를 치셨어요 사모님?

     

    왜.. 질투나?

    자격도 없으면서..

     

    왜 이러시나, 질투라니..

    남편의 광적인 사랑이라..

    이거 좀 겁이 나는 걸?

     

    슬슬 부담이 되시나 보죠 상준 씨?

     

    글쎄..

    부담이라기보단..

     

    괜찮아요. 그런 반응 예상은 하고 있었으니까.

     

    너의 심심함이 예사롭지 않은 간절함이듯

    내 외로움 역시도 만만하지는 않단다.

     

    말 돌리시네..

    가장의 비애를 논하시려고? 남편한테 지겹게 들은 얘기니 패스.

     

    헉. 바깥양반이 불쌍해지려고 한다.

     

    사랑으로만 승부하자구요. 사랑의 대상에 충실해 줘.

    난, 당신의 추상적인 애정결핍을 위한 도피처가 아니야.

     

    그리 차갑게 말하지 마.

    서로의 상처를 핥아주는 것도 사랑이야.

     

    그래? 알았어.

    오빠의 희한한 외로움이 - 내가 안아줄 - 가치를 지니고 있으리라, 믿어.

     

    너무 계산적인 것 아니니?

    이런 게 소울메이트는 아닌듯싶은데..

     

    나도 인간이고 여자야. 내게서 초월적인 것을 기대하지 마. 더도 덜도 말고 인간답게만 사랑하자.

     

    말 잘 했다.

    난 욕심 없어. 딱 인간의 따스함 정도로만 사랑해다오.

    이상과 현실의 괴리는 그 정도로도 충분히 커버가 되니까.

     

    관념적인 인간애라면 자신 없으니 딴 데 가서 알아봐.

    하지만, 단지 내 체온이 필요한 거면 날 송두리째 흡수할 만큼 꽉 껴안아도 돼..

     

    아아, 몸이 다시 뜨거워진다.

    현실의 커플이 될 수 없는 너와 난, 열병 같은 사랑을 하는 수밖에.

    그 열병 속에는 "실현 불가능한 자유"와 "실현 불가능한 사랑"이 바이러스처럼 도사리고 있겠지.

    그러니 널 이렇게 으스러져라 안고도

    네가 그리운 거겠지.

     

    오버하기는..

    객쩍은 소리 그만하시고 어서 몸으로 사랑해 줘요,

    나의 소울메이트..

     

    까칠하게 구니까 더 섹시하다.

    지현아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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